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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68화 (68/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68화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피치 못 할 순간,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운명이 극적으로 달라진다는 뜻이다.

긍정적으로든, 아니면 부정적으로든.

그런 의미에서 태을문의 선택은 최악이었다.

정마대전 때 고군분투하는 동료를 배신하고 자기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고, 마교 편에 섰다가 문파 자체가 홀딱 망해 버렸으니.

뭐, 정의로운 결과이기는 하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졌다고는 하나, 눈앞의 이익 때문에 남 뒤통수는 사람이 잘 먹고 잘살아야 하겠는가.

‘아버지는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한 걸까?’

다만 그 자식들은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들은 태을문의 배신에 아무 관여도 하지 않았으니.

당시 겨우 여섯 살, 네 살이던 하돈, 하식 형제가 뭘 알겠나.

그저 입안에 달달한 당과 하나 물려 주면 행복한 아이였을 뿐인데.

‘아직도 기억난다, 주변 정파들이 태을문을 공격하던 그날이.’

아버지는 태을문의 정문을 부수고 들어온 그들에게 무릎 꿇고 비셨지.

가문의 모든 재산을 내놓고 문파를 해산할 테니 제발 일가족의 목숨만 살려 달라고.

아무 소용 없었지만.

아버지가 내민 조건만으론 그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힘들었다.

아버지도 짐작은 하셨던 것 같고.

그러니 자식들만이라도 어떻게든 살라고 미리 뒤뜰로 통하는 산으로 대피시키지 않았을까?

‘차라리 죽음보다 못한 삶이었지만.’

한순간에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들의 삶은 비참했다.

매 끼니 당연하게 나오는 밥을 구하기 위해 뒷골목 오물을 뒤져야 했고, 추운 겨울을 보내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길거리에서 얼어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그러다 행여 그들 형제를 알아보는 사람이라도 만난다면?

“제 가문의 일과 저희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제발 저희를 살려 주십시오.”

아무 잘못이 없는 그들은 빌고, 또 빌어야만했다.

그런 환경 탓일까?

아니면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료도 아무렇지 않게 배신한 아버지의 이기적인 성격을 이어받은 탓일까?

하돈 형제는 삐뚤어졌다.

배가 고프면 객잔에 들어가 당당히 요리를 시켜 먹곤 값을 치르지 않고 도망쳤다.

돈이 필요하면 남의 집 담을 넘었고.

필요하다면 폭력도 행사했다.

탕아가 된 거지.

특히 형인 하돈이 더욱 그랬다.

자신에게 득이 된다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그런 그가 힘을 가졌네?

가문의 복수는 물론이거니와, 자신을 잡으러 온 남궁세가의 무사들을 물리칠 수 있을 만큼.

“푸하하하, 하찮은 놈들.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들어와.”

처음엔 한 무리의 생명체들이 우르르 몰려왔기에 동생이 온 줄 알았다.

곧 아니란 걸 알았지만.

동생이 데리고 있는 강시들은 말을 못 한다.

누굴까, 저들의 정체가 무엇일까, 무슨 목적으로 동굴에 왔지?

‘설마 자신이 혈강시를 만드는 걸 알고 왔나?’

침입자들의 정체와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동굴 속에 울려 퍼지는 소리에 집중했다.

‘…….’

사실 그리 집중하지 않아도 됐지만.

어느 한 사람의 목청이 얼마나 큰지 그 목소리가 동굴 속에서 쩌렁쩌렁 울렸다.

덕분에 저들의 정체도 알게 됐고.

‘남궁세가의 현무단이라.’

솔직히 이땐 좀 쫄았다.

하돈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남궁세가의 여러 부대 중에서도 현무단의 명성이 높다는 것을.

그런데 더 들어 보니 이곳에 혈강시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것도 모르면서 이 동굴은 어떻게 찾은 걸까?

우연히 찾아오기엔 이곳은 너무 깊숙한 산속에 있는데.

동시에 마음속에서 강한 복수심이 불타올랐다.

‘남궁세가만 아니었으면 아버지의 선택이 옳았을 것을.’

태을문을 직접적으로 멸문시킨 건 삼서현 인근의 정파들이다.

그렇다고 남궁세가는 책임이 없을까?

아니지.

만약, 남궁세가의 가주가 천마를 이기지만 않았다면 마교가 정마대전에 승리했을 것이다.

그러면 태을문이 멸문할 일도, 자신이 그리 비참하게 살 일도 없었을 거고.

남궁세가는 태을문 멸문의 간접적인 가해자다.

그것이 하돈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제 발로 이곳엔 찾아온 저들에게 복수하고 싶은데…… 문제는.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상대는 무려 천하제일세가, 남궁세가의 정예들이다.

혈강시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힘들게 만든 혈강시들만 부서질 수도.

그런데.

“한길에 한 개 조씩 차례대로 들어가면 되잖아.

저 목청 큰 놈이 대장인가?

전력을 분산하란다.

다른 사람이 반대했지만, 목청 큰 놈이 계속 고집을 피웠다.

나눠서 가라고.

이렇게 고마울 수가.

아주 죽여 달라고 용을 쓰는구나.

“…….”

진짜로 현무단이 훑어졌다.

귀를 바닥에 대 보니 저들이 따로따로 가는 발자국의 진동이 느껴진다.

각 무리의 숫자는 하나, 둘, 셋…… 대략 스무 명인가.

‘크크크큭, 이러면 내가 너희들을 살려 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잖아.’

이 동굴은 하돈의 앞마당 같은 곳.

그래서 잘 알고 있었다.

이곳 길이 개미굴보다 더 복잡하게 꼬여 있다는 것을.

일단 한 번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 어렵다는 것도.

‘제아무리 현무단이라도 고작 흩어진 소수의 사람들로는 혈강시를 감당치 못할 것이다.’

하돈은 그리 확신했고, 실제로 결과도 그렇게 나왔다.

“끄아아악.”

“으어어억.”

고통에 몸부림치는 현무단원들을 보니 뿌듯하다.

가문의 복수를 한 것 같아서.

‘이제 2개 조 남았나?’

지금까지 3개 조를 해치웠으니.

그래도 막상 붙어 보니 현무단의 명성이 왜 높은지 알겠다.

혈강시들도 많이 상했으니.

바닥에 쓰러진 현무단원들 사이로 목이 잘린 혈강시들도 있었다.

“딸랑~”

주령을 흔들자 남은 혈강시들이 하돈 앞에 섰다.

……절반도 안 남았네.

공들여 키운 혈강시들이 열다섯 구 넘게 부서져 속이 쓰릴 법도 하지만, 하돈은 오히려 크크큭 웃었다.

복수했다는 만족감이 크기도 했지만, 또 다른 기대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좋은 재료들이 생겼군.’

하돈이 현무단원들을 혈강시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죽이지도 않았고.

현무단원들이 치명상을 입고 땅바닥에 쓰러지긴 했지만, 모두 살아는 있었다.

아직까진.

“나머지 2개 조까지 다 처리하고 쓸 만한 놈들을 추려 볼까.”

강시는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싱싱한 시체로 만들어야 했다.

생전 실력이 좋으면 좋을수록 더욱 강한 강시가 되고.

그러니 하돈의 마음이 얼마나 흡족하겠는가.

복수도 하고, 좋은 재료도 얻었으니.

이런 상황을 가리켜 님도 보고 뽕도 딴다고 하던가.

어젯밤 돼지꿈을 꾸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딸랑~”

하돈이 주령을 울렸다.

나머지 현무단원들을 처리하기 위해.

*   *   *

“남호 단주님, 동료들이 위험에 빠진 것 같습니다.”

“…….”

“단주님, 동료들이 위험하다고요.”

끄아아악, 현무단원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비명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얼마나 끔찍하고 처절한지 남궁건은 귀를 막고 싶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다.

“단주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우리는 이제 어떡해야 합니까?”

상황을 통제하고 현무단원들을 구해야 할 남궁남호의 넋이 나갔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동료들을 구하러 가야 합니다.”

“……그래, 가야지. 근데 어떻게?”

길이 너무 복잡하고 꾸불꾸불하여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소리를 쫓아갈 수도 없다.

밀폐된 공간의 특성상, 소리가 증폭되어 그 진원지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원을 나눈 것이 실수였나?’

그제야 남궁남호는 자신의 패착을 깨달았지만, 인제 와서 다른 방법이 없다.

더구나 그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상남자 아니던가.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동굴 밖으로 나간다.”

그러니 남궁건은 기가 막힐 수밖에.

“동료들을 버리자는 겁니까?”

“버리는 게 아니다. 일단 밖으로 나가서 전력을 재정비하자는 거지.”

“너무 비겁한 변명입니다. 저 비명이 안 들리십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동료들은 죽어 가고 있다고요!”

“저 비명이 현무단의 것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현무단이 아닐 수도 있잖아.”

“그럼 확인이라도 해야지요? 저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 우리의 동료인지, 아닌지.”

“어떻게 확인하냐고. 확인할 방법이 없잖아.”

“그래서 나가자고요?”

“내 결정에 불만 있나? 그럼 너 혼자라도 남든지.”

인간은 극한 상황에서 본성이 드러난다고는 하지만, 저 정도면 정말 상상 초월이다.

자신은 이때까지 저리 이기적인 인간을 상관으로 모셨단 말인가.

큰 회의감과 함께 남궁경호에 대한 혐오감마저 피어올랐다.

“세가로 돌아가면 이번 일을 보고하겠습니다.”

폭우가 오는 상황에서 부하들을 혹독하게 부린 것부터 시작해서, 적의 유인에 속아 동굴 속에 들어온 일.

여기에 더해 본인의 고집으로 전력을 분산시켜 놓고는, 길이 복잡하다는 핑계로 동료들을 버린 일까지 싹 다.

대장로에게 보고하면 뭉개 버릴 게 뻔하니 가주님한테 해야겠다.

그러면 알아서 징계를 내리겠지.

사안이 사안인 만큼 아마도 단주 직을 내려놔야 하지 않을까.

남궁건은 그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남궁남호가 현무단에서 나온다고 해도 죽은 동료들이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다.

유능한 적보다 무서운 게 무능한 지휘관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지.

남궁남호는 아직도 제 잘못이 뭔지 모르는 것 같지만.

“무슨 보고?”

그렇게 묻는 남궁남호의 말투는 사나웠다.

“단주님의 독단으로 현무단이 입은 피해 말입니다. 가장 심각한 건 동료들을 버린 것이고요.”

“그래서 그 일을 말해야겠다? 누구한테, 남궁도를 찾아가려고?”

“대장로님한테 말해 봐야 소용없을 테니까요.”

남궁남호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천한 놈, 제법 재주가 있는 것 같아서 조장 자리까지 줬더니 감히 주인을 물려고 해?

‘남궁건, 네놈이 주제를 모르고 나대는구나.’

그럼 알려 줘야지.

내가 누군지, 너는 누군지에 대해서.

“현무단주로서 남궁건 조장에게 명령한다.”

“……?”

“너는 이곳에 혼자 남아 동료들을 구해라, 모든 현무단원들을 구하기 전까진 절대 동굴 밖으로 나오지 말도록.”

남궁남호의 명령에 남궁건은 반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혼자 동굴에 남으라니, 이건 그냥 죽으라는 말과 똑같지 않은가.

“억지입니다. 저 혼자 어떻게 동료들을 구합니까?”

“아까부터 네놈이 그리 원하는 것을 하라는 데 뭐가 불만인가?”

“저도 할 수만 있다고 하고 싶지만, 능력 밖입니다.”

“그래서 못하겠다고?”

퍼억, 남궁남호가 검집으로 남궁건의 복부를 가격했다.

그 충격에 남궁건이 배를 부여잡고 앞으로 쓰러졌다.

“상관의 명을 거부하는 건 죄다. 그건 너도 알고 있겠지?”

이렇게 치사할 수가.

되지도 않은 명령을 내려놓고, 죄를 묻다니.

푸하하하하.

남궁건이 웃음을 터트렸다.

억울했다.

이런 자 밑에서 청춘을 허비했다는 것이.

“닥쳐라, 시끄럽다.”

남궁남호가 또다시 검집을 휘둘러 남궁건을 때리려고 할 때였다.

“……달?”

갑자기 이게 웬 기현상인가?

저쪽에 동그란 발광체가 둥둥 떴다.

작은 달처럼 생긴.

근데 그달을 어떤 사람이 들고 있네?

더구나 그 사람은 남궁남호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남궁정혁?”

야명주를 든 남궁정혁이 물었다.

“너희들 뭐 하냐?”

혈강시하고 싸우라고 동굴로 유인했더니 왜 지들끼리 싸우고 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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