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69화
“……이렇게 된 것입니다.”
남궁건에게 그들이 왜 싸우고 있는지에 대해서 들었다.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남궁건의 혀가 절대고수의 쾌검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니까, 남궁남호가 위기에 빠진 부하들은 버리고, 지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려고 했다는 거잖아.
‘그 아비에 그 자식이군.’
정마대전 때 남궁수도 저랬다.
동료들은 목숨 걸고 싸우는데 자기 혼자 살겠다고 도망쳤지.
그러다 나한테 딱 걸려서 오줌까지 질질 쌌고.
‘얼굴만 비슷한 게 아니라 하는 짓까지 비슷하네.’
뭐, 어찌 보면 당연하다.
팥 심은 데 팥 나지, 팥 심은 데 콩 날까.
아들이 아버지를 닮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
아, 나는 빼고.
나는 절대 남궁도를 닮지 않을 것이다.
닮아서도 안 되고.
외모야 어쩔 수 없다지만, 속이 다르잖냐, 나는.
그러니 성격까지 닮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만약 내 성격이 남궁도와 비슷해진다면…… 어휴, 됐다.
상상만으로도 소름 끼친다는 듯 머리를 흔든, 남궁정혁이 남궁남호 앞에 섰다.
“왜 부하를 괴롭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잘못한 게 있으면 당연히 보고를 해야지.”
“네놈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 현무단 내부의 일이다.”
“나도 남의 집 일에 참견하고 싶진 않지. 내가 그렇게 오지랖이 넓진 않거든. 근데 못 본 척 지나가자니 나의 정의감의 꿈틀거리는데 어떡해? 그리고 남의 집도 아니네?”
물론 핑계다.
내가 정의감 따위가 있을 리 있나.
그저 남궁남호에게 시비가 걸고 싶을 뿐.
뭐, 정의감을 떠나서 내가 이런 더러운 꼴은 못 참기도 하고.
남궁남호가 하는 짓이 너무 치사하잖아.
“자기 혼자 도망치는 네 아비한테 배웠냐?”
“네 아비? 감히 남궁세가의 대장로를 모욕하는 것이냐?”
굳이 모욕하자는 건 아닌데, 그 인간 하는 짓거리를 봐선 딱히 공경할 마음도 생기진 않더라고.
“그 잘나신 대장로께서도 예전에 그랬거든, 너처럼 동료들은 배신하고 혼자서 살겠다고 도망쳤지. 그리고 오줌까지 쌌고.”
스릉, 남궁남호가 검을 뽑았다.
“한 번만 더 내 아버지를 모욕하면 그 혀를 잘라 버리겠다.”
“모욕이라니, 난 진실을 말했을 뿐인데. 못 믿겠으면 네 아버한테 직접 물어보든가.”
아, 모욕은 될 수 있나?
사실적시모욕.
“네놈이 정녕 죽고 싶은가 보구나.”
그새 벌이 늘었다.
아까는 혀를 자른다더니 이제는 죽인다네?
진실을 말해도 믿어 주지 않으니 조금 억울한 감은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 나와 주면 나야 고맙지.
자고로 무림인이라면 혀보단 몸으로 대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검을 뽑은 남궁정혁이 남궁건을 보았다.
“이것도 보고서에 적어, 남궁남호가 검을 먼저 뽑아서 싸웠다고.”
행여나 나중에 남궁수가 시비를 걸 수도 있으니까.
왜 자기 아들을 때렸냐고.
그때 증거 자료로 써야지.
당신 아들이 나한테 먼저 검을 겨누었다고.
남궁정혁이 그렇게 자기방어를 하려고 할 때였다.
딸랑, 딸랑.
멀리서 방울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서서히 가까워졌다.
그리고
“까아아악.”
혈강시들이 흐느적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근데 많이 상했네?
총 삼십구라고 안 했나?
그동안 싸우면서 부서졌는지, 지금 나타난 건 체 열 구가 안 된다.
그중에 한쪽 팔이 없는 혈강시도 있었고.
저 모습만 봐도 저들과 현무단원들이 얼마나 처절한 전투를 벌였는지 알겠다.
“저게 뭐야? 저것들도 강시인가?”
“저렇게 끔찍한 몰골은 처음인데.”
혈강시를 처음 본 듯, 남궁건과 현무단 5조원들이 기겁했다.
당연한 반응이기도 하고.
태어나서 혈강시를 처음 봤으니 놀랄 수밖에.
“부하들이 저런 것과 싸웠던 것인가?”
남궁남호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고.
이제야 네 죄가 뭔지 알겠냐?
그러게 왜 전력을 나눠서 고생을 사서 하냐, 멍청한 놈.
딸랑.
방울 소리는 혈강시 무리 맨 뒤에서 들렸다.
그리고 보니 영환술사와 남궁남호가 비슷하긴 하네.
자기들은 뒤에 물러서서 부하들만 부려 먹으니.
이번에도 그러려고 하고.
“뭐 하나, 현무단 5조는 적에 맞서 싸울 준비를 해라.”
남궁남호의 말에 남궁건과 5조원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기 혼자 도망치려고 할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또 상관인 척하는 게 기가 차는 거지.
하지만 어쩌겠나.
“각 단원들, 두 명씩 조를 짜서 응전하라.”
남궁남호의 말이 아니더라도 살아서 돌아가려면 저들을 물리쳐야 하는 것을.
남궁건의 명령에 5조원들이 두 명씩 뭉쳤다.
당황스러운 순간임에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걸 보니, 저들의 훈련이 얼마나 잘돼 있는 줄 알겠다.
딸랑, 딸랑.
방울 소리가 더 울리자 혈강시들이 손톱을 세웠다.
“까아아악.”
“겁먹지 말고, 평소 훈련한 대로 행동하라.”
혈강시와 5조원들이 격돌했다.
혈강시들은 손톱을 휘둘렀고, 5조원들은 필사적으로 막았다.
2대 1의 결투.
아무래도 불리하다.
숫자에서 앞선다고는 하나 5조원들이 서서히 뒤로 밀렸다.
아무래도 혈강시들은 절정급 강자이니까.
게다가.
깡!
몸뚱이도 얼마나 단단한지 검까지 튕겨 냈다.
‘…….’
저 정도면 내가 아는 혈강시보다 더욱 강한데.
천수마의의 강시술이 더욱 발전한 것 같다.
하긴 이십 년이면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니지.
빌어먹을 영감탱이, 쓸데없는 잡기술만 늘었다.
그럼 지금처럼 위급한 상황에서 현무단주씩이나 되는 남궁남호는 무얼 하고 있을까?
“끝까지 버텨라,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이길 수 있다.”
뒤에서 열심히 응원하고 계셨다.
이쯤 되니 저 인간의 머리를 쪼개서 뇌를 해부하고 싶다.
그렇게 목이 터져라 외치느니, 본인도 같이 싸우는 게 낫지 않을까?
그게 상식적인 행동 아니냐고.
……설마?
하도 어이가 없어서 마음 한구석에 의문이 생겼다.
‘무공이 약하나?’
남궁수가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을 아들이라고 현무단주에 억지로 앉힌 걸까?
내가 아는 남궁수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성이긴 한데.
……확인해 봐?
내가 또 궁금한 건 못 참거든.
“그렇게 말만 하지 말고 네가 직접 시범을 보여 봐.”
남궁남호의 뒷덜미를 잡아 휙, 혈강시 무리 한복판에 던졌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혈강시가 그를 공격했다.
“네 이놈, 남궁정혁! 나한테 이러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입만 산 건 아니다.
잘 싸우는데.
지능이 문제였지, 무공에는 문제가 없다.
그의 검에 시퍼런 강기를 흩날렸다.
괜히 현무단주가 된 건 아니었구나.
챙챙챙챙, 남궁남호와 혈강시가 십여 수 주고받는가 싶더니, 남궁남호가 혈강시의 목을 베었다.
“잘하네~ 계속 그렇게만 싸워.”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주살검을 쥔 채 앞으로 달려갔다.
“고개 숙여.”
첫 번째 목표물은 지금 한 현무단원의 목에 손톱을 쑤셔 박으려는 강시.
커억, 나의 검이 강시의 목을 파고들어 시원스레 날려 버리자 그 현무단원이 인사했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딱히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너희들을 이곳으로 데려온 사람이 나니까.
이 비밀은 평생 지켜지겠지만.
남궁정혁과 남궁남호의 참전으로 5조원들의 숨통이 트였다.
그들은 혼자서도 혈강시들을 상대할 수 있는 고수들이니.
오조원들이 혈강시들과 정면에서 싸우고 있으면 남궁정혁이 뒤에서 목을 쳤다.
그 모습을 본 남궁남호도 따라 했고.
게다가 다른 현무단원들을 상대하고 오느라 애초에 혈강시들의 숫자도 적지 않았나.
처음의 흉흉한 기세가 무색하게도 혈강시들의 숫자는 빠르게 줄었다.
그러니 오조원들의 기세가 올라갈 수밖에.
“이것이 남궁세가의 힘이다.”
“동료의 복수는 이제부터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5조원들의 얼굴이 밝아진 만큼, 반대로 안색이 어두워진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다른 조보다 실력이 월등히 강하잖아.’
영환술사, 하돈이었다.
그가 어찌 알았겠는가.
현무단의 다섯 개 조 중, 5조의 전력이 가장 강한걸.
게다가 남궁정혁과, 남궁남호.
초절정에 근접한 두 명의 고수까지 있으니 더욱 상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이럴 줄 알았으면 맨 마지막이 아니라, 맨 처음에 찾아올 것을.
전력을 온전히 보전한 그때라면 분명 승산이 있었을 텐데.
젠장, 실수다.
‘하지만 아직 늦은 건 아니지.’
일단 후퇴해야겠다.
강시는 나중에 또 만들 수 있으니.
딸랑, 딸랑…….
이제 남은 강시는 단 두 구.
방울 소리에 따라 물러선 강시들이 동굴 한가운데 섰다.
자신이 도망칠 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곳을 잘 막아라.’
아니, 적들의 발목을 잠깐만이라도 붙잡아 두면 된다.
그러면 충분할 것이다.
미로처럼 복잡한 이곳에서 적들의 추격을 뿌리치기에는.
하돈은 그리 확신했다.
상대 중에 그의 의도를 읽고 있는 사람만 없었다면 정말 그리됐을 수도.
“헉.”
하돈이 경악했다.
누가, 언제 던진 것일까?
날카로운 검이 그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왔다.
두 손을 모아 겨우 막았다고 막았는데, 검에 실린 위력이 생각보다 훨씬 막강하다.
쾅, 그 충격에 뒤로 날아간 하돈이 동굴 벽에 부딪혔다.
……젠장, 옆구리가 욱신거린다.
갈비뼈나 부러졌나.
더구나.
‘……주령도 부서졌잖아.’
이러면 강시를 부릴 수도 없다.
실제로 움직이던 강시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심장까지 한 번에 꿰뚫을 수 있을 줄 알았더니 동생보다는 강하군.”
물론 검을 던진 사람은 남궁정혁이었다.
전투가 개시된 이래로 그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영환술사를 잡을 기회.
근데 도통 틈이 나지 않았다.
영악한 하돈이 강시들 뒤에 멀찍이 떨어져 있으니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다.
야명주의 광채가 거기까지 닿지는 않더라고.
그렇다고 섣불리 접근하자니 중간에서 막는 강시들도 많다.
어설프게 시도하면 내 의도를 눈치챈 하돈이 도망갈 수도 있다.
그래서 싸우는 틈틈이 하돈이의 기척에 신경 썼지.
놈이 언제쯤 전투를 포기할까? 언제쯤 도망갈까?
딸랑딸랑, 마지막 방울 소리가 울릴 때 눈치챘다.
놈이 도망갈 시간을 벌려는 거구나.
그러니 강시가 뒤로 후퇴하지.
그래서 주살검을 냅다 던져서 잡았다.
요 쥐새끼 같은 놈.
뚜벅뚜벅, 남궁정혁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하돈의 멱살을 잡고 남궁남호 앞에 섰다.
“내가 이겼네?”
“뭐?”
“지금 내가 하돈을 잡았고, 하식은 벌써 잡았어.”
“…….”
“왜? 못 믿겠어? 내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
“흠, 흠…….”
뭐지?
저 인간이 왜 나하고 눈을 안 마주치고 딴청 부리는 거야?
“설마, 인제 와서 약속을 지키지 않을 건 아니겠지?”
“지킨다. 난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남자다.”
“그럼 해 봐, 나한테 형이라고 해 보라고.”
“나중에 할 거다.”
“……뭐?”
“내기 할 때 형이라고 부른다고만 했지, 언제 부를지는 정하지 않았잖냐?”
오호, 이것 참 흥미로운 소린데.
내가 또 이건 생각 못 했네.
아주 얍삽하기가 지 아비 판박이다.
내가 그랬잖아, 너 네 아버지 닮았다고.
“그래서 언제 부를 거냐?”
“내가 하고 싶을 때.”
“그때가 언젠데.”
“그건 나도 모르지, 혹시 아냐, 네 무덤에 대고는 하고 싶을지.”
그러니까 결국, 약속 지키기 싫다는 거잖아.
남궁정혁이 몸이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가 짝다리를 짚었기 때문이다.
“괜찮아, 사실 나도 약속 지킬 자신이 없었어.”
“거봐라, 네놈도 애초에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잖냐. 그러니 내기는 처음부터 없었던 걸로…….”
“아니, 그거 말고.”
너한테 형 소리 듣는 것만으론 나도 내 성에 안 찰 것 같았거든.
그래서 손이 근질근질한 걸 어찌 참나 했더니, 네놈이 먼저 명분을 주네?
차암 고맙게도 말이야.
주살검을 꽉 쥔 남궁정혁이 남궁건한테 말했다.
“이것도 보고서에 꼭 적어라. 지금부터 벌어지는 일은 남궁남호가 약속을 안 지켜서 생긴 징계라고.”
나도 위약금은 받아야지.
돈보다 더 좋은 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