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70화
통쾌하다, 짜릿하다.
‘더, 더 때려라.’
자신에게도 이런 감정이 있었을 줄이야.
비록 도덕군자라 자부하지는 못할지언정, 나름 바르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면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측은지심도 있었고.
근데 사람이 두드려 맞는 걸 보는 게 왜 이리 즐거운 것일까.
살면서 이런 기분 처음이다.
더구나 지금 일방적으로 처맞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윗사람인데도 말이다.
‘이런 날 무정하다 원망치 마시오.’
남궁남호, 그대의 업보이니.
그러게 평소에 남에게 덕을 베풀지는 못할망정, 원한을 쌓지는 말아야지요.
그것도 가까운 사이라면 더더욱.
‘저 인간이 제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이번 기회에 본때를 보여 주시오.’
남궁건은 남궁정혁을 마음속으로 열심히 응원했고, 그는 기대에 부응했다.
“좀 더 힘을 써 봐, 그렇게 비리비리하면 아버지가 실망하지 않겠어?”
“우리 둘 사이의 일에 자꾸 아버지를 언급하지 마라!”
얼씨구, 효자 나셨네.
휘익, 남궁정혁이 검을 휘두르자, 남궁남호가 겨우 막았다.
그런데 한쪽 무릎을 자신도 모르게 꿇었다.
몸매도 호리호리한 그의 검에 실린 기운이 어찌 이리 무겁단 말인가.
그렇다고 속도가 느린 것도 아니다.
“……!”
남궁남호가 황급히 고개를 뒤로 젖혔다.
고작 눈 한 번 깜박였을 뿐인데 남궁정혁의 검이 어느새 그의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라락, 허공을 가른 남궁정혁의 검 끝에서 잘린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남궁정혁, 네 이놈, 아무리 그래도 같은 가문 사람끼리 살수를 펼치다니…….”
말을 마칠 새도 없다.
이번에는 남궁정혁의 검이 횡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저거 못 막으면 몸통이 두 동강이 나서 죽는다.
남궁남호가 황급히 바닥을 굴렸다.
순간 피어오른 먼지가 눈과 입으로 들어왔지만,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다.
우선은 살고 봐야지.
‘다음에는 어딜, 어떻게 공격할까……?’
후속 공격을 기다리는데 잠잠하다?
슬쩍, 고개를 드니.
“……!”
남궁정혁이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날 농락하려는 것인가?’
수치스럽다.
남궁정혁의 공격을 너무 필사적으로 피한 거 같아서.
그에 비해 남궁정혁의 눈은 너무 평온하다.
마치, 심심풀이 대련이라도 하듯이.
그런 그를 향해 남궁정혁이 비아냥거렸다.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셨어? 난 현무단주님씩이나 되면 그 정도는 쉽게 피할 줄 알았지.”
검을 쥔 손목을 까닥이며 남궁정혁이 계속 말했다.
“지금이라도 그만해?”
“감히…….”
진짜로 그만하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계속하자고 도발하는 것이다.
설사 저 말이 진심이라 하더라도 자존심이 상해 그만둘 수는 없고.
자신이 누구던가?
‘나는 남궁세가의 가주가 될 남자이다.’
그런 자신이 여기서 이런 굴욕을 당하고도 순순히 물러설 수 없다.
더구나.
“남호 단주님이 정혁 단주님한테 상대도 안 되는군.”
“같은 단주라도 격이 달라.”
지금의 대결의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그것도 자신의 직속 수하들이.
현무단 5조원들이 속닥이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정혁 단주님은 언제 저렇게 강졌지? 한땐 남궁세가의 수치라 불릴 정도로 망나니 아니었는가.”
그건 자신도 의문이긴 하다.
분명 예전의 남궁정혁은 가문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한심한 인간이었는데.
듣기는 했다.
절벽에서 떨어진 후, 다른 사람이라도 된 양, 인격이 바뀌었다는.
그래 봤자 구제 불능 망나니에서 이제야 겨우 한 사람의 몫을 하는 무인이 될 줄 알았더니 이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나?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아니다, 아니야.’
남궁정혁이 강해진 이유가 궁금하긴 하지만, 그래서 그 비결이 뭔지 살짝 물어보고 싶기도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자칫했다간 부하들 앞에서 개망신당하게 생겼다.
물어본다고 가르쳐 줄 리도 없고.
지금은 잡생각 따윈 버리고 어떻게든 남궁정혁을 이겨야만 했다.
자신과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다짐한 남궁남호가 분연히 일어섰다.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지금부터 전력으로 상대하마.”
옷에 묻은 흙이나 털고 그런 얘길 하든가.
땅바닥까지 빙글빙글 굴러가며 내 공격을 피할 땐 언제고 인제 와서 웬 여유?
그래도 남궁정혁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와라.”
한 인간으로서의 예의랄까.
남궁남호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기 때문이다.
진심에는 진심으로 응답해 줘야지.
그리고 그것은 남궁남호에게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고.
나도 지금부터 전력을 다할 거거든.
“이제부터 내 검에 자비란 없다.”
목청 하나만큼은 천하 십대 고수 부럽지 않은 남궁남호가 돌격했다.
목표의 남궁정혁의 왼쪽 가슴.
기세도 좋았고.
뒤를 생각하지 않은 일격필살의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상대의 실력을 알아보는 것도 능력이다.”
아무 소용 없었지만.
남궁정혁은 달려오는 남궁남호의 검의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주 상대했다.
팟, 남궁정혁도 검을 앞으로 뻗었다.
남궁정혁의 검 끝과 남궁남호의 검 끝이 부딪쳤고…… 두 개의 검 중 하나의 검이 유리처럼 산산조각 났다.
“으아아악!”
검이 부서진 사람은 남궁남호였다.
그뿐만 아니라, 오른쪽 어깨가 축 처진 거로 보아 어깨뼈까지 탈골된 것 같았다.
식은땀까지 흘리며 신음하는 걸 보니 많이 아픈가.
남궁정혁은 그런 남궁남호를 내버려 두고 자신의 검을 내려다봤다.
‘내구성 하나만큼은 좋단 말이야.’
검기를 품은 검끼리 정면에서 부딪쳤으니, 누가 이겼는지를 떠나 검날이 상할 수는 있다.
아니, 검에 흠집이 생기는 게 당연하지.
근데 주살검은 매끈하다.
상처 하나 없이 말이다.
‘단단해서 전설의 검인가?’
설마, 그럴 리가.
물론 내구성이 좋다는 것도 검의 큰 장점 중 하나이지만, 그것만으로 주살검의 모든 비밀이 설명되지 않는다.
더구나 맨 처음 이것을 썼을 땐 절삭력이 스스로 변하지 않았는가.
오늘은 그런 일이 없었지만.
‘무언가 특정 조건이 맞아야만 변하는 건가?’
하여튼 까탈스러운 녀석이다.
휙휙, 남궁정혁이 주살검을 휘둘러보았다.
계속 쓰다 보면 그 비밀이 뭔지 알겠지.
몰라도 상관없고.
넌, 날 천하제일고수로만 만들어 주면 된다.
그려러고 널 가졌으니.
“끄으으윽.”
남궁남호의 신음에 남궁정혁이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 일을 벌였으면 확실히 마무리 지어야지.
그가 남궁남호 앞에 섰다.
“우리 동생, 많이 아파?”
“네가 이겼다고 해서 날 농락할 권리는 없다.”
얘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아직도 큰소리를 치는 걸 보니.
남궁정혁이 검으로 남궁남호의 어깨를 꾹꾹 찔렀다.
“탈골에는 이렇게 안마해 주는 게 좋아, 어때, 더 아프지?”
“끄아아악!”
비명을 지른 남궁남호가 남궁정혁을 노려보았다.
“그, 그만하지 않으면 아버지께 이 일을 말하겠다.”
뭐라는 거야?
얘 혹시 아빠한테 뭐든 말하는 병, 뭐 그런 거 있나?
나이가 몇 살인데 아빠 타령?
“아이고, 무서워라~”
남궁정혁은 남궁남호의 어깨를 계속 찔렀다.
고통에 이기지 못한 남궁남호가, 형님 제발 그만 하세요, 하고 빌 때까지.
오죽하면 그를 싫어하는 오조원들 마저 인상을 찌푸렸을까.
* * *
삼서현에 의외의 업종이 호황을 맞았다.
그것은 바로 의원.
- 삼서현에 있는 모든 의원은 마을 입구, 잣나무 아래로 모이세요.
팔십 명의 긴급 환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나 좀 치료해 주시오. 곧 죽을 것 같소.”
“무슨 소리, 나부터 치료해 주시오, 내 부상이 더 심하오.”
상처 입은 현무단원들이 자기 먼저 치료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당장 고통이 너무 심하니 동료애고 뭐고 자기부터 살고 봐야겠다는 거지.
이해는 한다.
그만큼 저들의 부상은 심했으니.
다들 혈강시의 손톱에 피부가 찢기고, 살점이 뜯겨나갔다.
겨우 치료한다 해도 끔찍한 흉터는 평생 남겠지.
“도련님, 그래도 다행입니다. 죽는 사람은 없겠군요.”
정학우의 말대로다.
하돈이 현무단원들을 살려 두었을 줄이야.
그것도 강시로 만들기 위해.
나도 거기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동굴 속에서 그의 목을 똑 따 버리기도 했고.
굳이 살려 줄 이유가 없었으니까.
근데 하돈이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하더라고.
- 다른 현무단원들은 살아 있습니다. 그러니 저도 살려 주십시오.
그의 의도는 잠시나마 성공했다.
복잡한 동굴속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현무단원들을 찾기 위해선 하돈의 지리적 능력이 필요했으니.
참 힘든 작업이었지.
막상 찾고 보니 그들이 피를 너무 많이 흘렸더라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 급박한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금창약과 지혈제는 충분하다는 것 정도?
현무단이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전투부대이니만큼 각자의 품속에 비상약은 있었다.
다만 그걸 바를 정신이 없었을 뿐.
그래서 5조원들이 수고를 많이 했다.
상처 입은 동료의 몸에 약을 바르고 뿌리고.
내가 옆에서 봤는데 그런 일에 능숙한 듯 잘하더라고.
그렇게 겨우 목숨만 붙여 놓은 후에는 동굴 밖으로 다 끌고 나왔다.
사실 현무단원들이 죽든 말든, 나랑은 큰 상관은 없는데 5조원들이 땀 뻘뻘 흘리며 애쓰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다.
동료를 살리려는 모습이 가상하기도 하고.
- 내가 마을에 갔다 오지.
마을로 내려가 부상자들을 호송할 수레들을 가지고 온 사람도 나였다.
딱히 나서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내 성격 알잖냐.
아예 안 하면 몰라도 일단 한 번 하면 확실히 마무리 지어야 하는걸.
개중에 내 경공이 가장 빠른 것 같았다.
더구나 이들이 나 때문에 다치기도 했으니 최소한의 도움은 줘야 하지 않겠는가.
나도 사람인데 최소한의 양심은 있다.
아, 참고로 얘기하자면 이때쯤 하돈은 죽었다.
굳이 살려 둘 가치가 없는 인간이었으니 별 신경은 안 썼다.
이로써 태을문의 모든 혈육은 이 세상에서 살아진 셈이다.
“휴, 이제 내가 할 일은 다 했고, 좀 쉬어 볼까?”
내가 현무단원들을 직접 치료할 것도 아니고, 객잔에 가서 술이나 한잔할까 하는데 날 졸졸졸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한테 뭔 볼일 있어?”
현무단 5조원들이었다.
조장인 남궁건이 앞으로 나섰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저희끼리 상의해 봤는데 저희를 남수단 단원으로 받아 주십쇼.”
……응? 이건 또 예상치 못한 소린데.
그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간다만.
“왜? 남궁남호한테 실망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현무단에 계속 남았다간 그 인간이 무슨 해코지를 할 줄 모릅니다. 대놓고 반항했으니까요.”
“그런 이유라면 남궁세가를 떠나는 방법도 있을 텐데.”
“그 방법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닌데 남궁세가를 떠나기도 그리 쉽지는 않더라고요.”
“왜?”
몇몇 세가는 떠나고 싶어도 마음대로 떠나지 못하는 제약이 있는 거로 안다.
이곳에서 배운 무공은 내놓고 가라는.
그래서 다시는 무공을 쓰지 못하게 단전을 파훼한다.
남궁세가는 그런 제약이 없는 거로 알지만.
그만두면 싶을 때 자유롭게 보내 준다.
“적절한 복지, 높은 봉급. 이곳만큼 무사를 잘 대우해 주는 곳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남궁세가 무사라면 어딜 가서든 대접도 받고요.”
“그래서 남수단으로 오고 싶다?”
“가장 큰 이유는 단주님의 헌신적인 모습에 감탄했습니다.”
“……?”
“현무단원들을 구하기 위해 직접 마을까지 갔다 오셨잖아요.”
아니, 그건 나 때문에 다쳐서 미안해서 그런 거고.
“그 모습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최소한 부하들을 버릴 사람은 아니라고요.”
그건 그렇지.
내가 같이 죽었으면 죽었지, 내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
안 그래도 남수단 단원들을 모집 중이었는데 저들을 받아?
경력직 신입단원이 들어오면 나야 좋지.
처음부터 안 가르쳐도 되고.
더구나 동굴속에서 저들의 실력은 이미 확인하지 않았던가.
‘……제법 쓸 만하던데.’
근데 같은 세가 내에서 소속을 옮길 수 있나?
설마 이것도 남궁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