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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72화 (72/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72화

다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괜한 기대를 품었다가 실망한 적이.

그 기대가 크면 클수록 실망도 큰 법이다.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욱 많이 떨어지는 것처럼.

지금 딱 남궁수가 그렇다.

한껏 부풀었던 기대감이 쾅, 터져서 그런지 얼굴이 한없이 일그러졌다.

그러니 내가 어찌 신이 나지 않으리오.

내가 말을 하면 할수록 남궁수의 표정이 더욱 안 좋아지는데.

남궁정혁은 시약산에서 있었던 일을 열심히 말했다.

어떻게 강시를 찾았고, 어떻게 하돈, 하식 형제를 잡았는지.

아, 물론 현무단을 일부러 동굴로 유인한 건 쏙 뺐다.

현무단은 영환술사를 잡으러 제 발로 동굴에 간 거고, 난 그들의 발자국을 보고 동굴로 간 거로 각색했다.

“……근데 제가 동굴 속에 가 보니 남궁남호와 현무단원들이 싸우고 있더군요.”

나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을 줄이야.

내가 변사처럼 얘기를 잘하는가 보다.

청중들이 저리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하는 걸 보니 말이다.

“그래서 제가 물었죠, 너희들 왜 싸우냐?”

이야기는 슬슬 절정으로 치달았다.

남궁남호가 저 혼자 살겠다고 부하들을 버리려던 얘길 했더니 청중들이 햐, 탄식했다.

너무했다는 거지.

딱 봐도 실망한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한 분위기에 남궁수는 몸까지 부들부들 떨었다.

“거짓말하지 마라, 내 아들이 그랬을 리가 없다!”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는 나한테 따지지 말고 당신 아들한테 직접 묻지 그래요?”

왜 나한테 소릴 지르고 그래.

잘못은 당신 아들이 했는데.

남궁수가 남궁남호를 보았다.

“아니지? 그러지 않았지? 저 악독한 놈이 거짓말로 널 모욕하는 걸 거야, 그렇지?”

하지만 한 번 내려간 남궁남호의 고개는 다시 올라올 낌새도 없었고, 이제는 귀까지 빨개진 거로 보아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것 같다.

누구와 달리 말이다.

“아들을 탓할 일은 아니지요, 다 제 아비에게 배운 것 아니겠습니까?”

“뭐라?”

“기억 안 나세요? 대장로님도 정마대전 때 부하들을 버리고 도망갔잖아요.”

“네 이놈, 이제는 나까지 모욕 주려는 것이냐?”

저 봐라.

자기는 끝까지 그런 적 없다고 부인하는걸.

사건 당사자가 여기 이렇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말이다.

‘정마대전 썰까지 한번 풀어 줘?’

그때 이야기까지 하려다 일단은 참는다.

시약산에서 있었던 일이 아직도 많이 남아서 말이지.

“아무튼, 제가 대립하고 있던 남궁남호와 현무단원 사이를 중재하려고 할 때였습니다…….”

“됐다, 그만해라.”

남궁수가 남궁정혁의 말을 끊었다.

그만하긴 뭘 그만해?

혈강시와 싸운 것부터 시작해 당신 아들이 나보고 ‘형님, 제발 그만하십시오’ 하고 빈 것까지 다 얘기해야 하는데.

더구나 청중들도 더 듣고 싶어 하는 눈치고.

그들의 기대를 외면할 수 없었던 남궁정혁이 계속 얘길하려는데 또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대장로님, 약속 지키시죠.”

모단수였다.

화가 복이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정혁 도련님이 내기에서 이길 줄이야.

남궁수와는 정반대의 심경을 가진 그가, 남궁수를 추궁했다.

“아까 가주님께 그러셨죠. 결과에 승복하라고. 그 말 그대로 돌려 드리고 싶습니다.”

“…….”

젠장, 실수다.

금방 제 입으로 뱉은 말을 부정할 수 없다.

인제 와서 내기를 물릴 수는 더더욱 없고.

마음 같아서는 혀를 꽉 깨물고 죽고 싶다.

남궁수를 형이라고 부르느니, 차라리 그게 덜 치욕적인 것 같다.

그런 그의 마음을 모단수가 어찌 모르리.

대답하지 않고 꾸물대는 남궁수를 더욱 몰아붙였다.

“언제 가주님을 형이라고 부르시겠습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지금 당장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마침 보는 사람도 많고 말이죠.

모단수가 속으로 쾌재를 부를 때 남궁도가 나섰다.

“그만하게.”

툭툭, 진정하라는 의미로 모단수의 어깨를 두드려 준 그가 남궁수에게 말했다.

“그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죠.”

“……?”

“저에게 형이라 부르지 않아도 된단 말입니다.”

“……!”

뜻밖의 말.

이에 모단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가주님,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밉상, 남궁수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기회를 왜 스스로 걷어차 버린단 말입니까?

“대장로님이 이겼으면 가주님께 기어코 형 소리를 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이렇게 많은 사람도 모은 거고요.

하지만 남궁도의 뜻은 확고했다.

“됐네, 대장로에게 형 소리를 들어 봤자 서로에게 민망한 일. 이쯤에서 그만하지.”

가주께서 저리 말하는데 더 반박하기도 뭐 하다.

여기서 더 토를 달면 자칫 불충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건 자신에게도, 자신이 모시는 주인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다.

가주님의 결정이 마음이 들지 않지만 이쯤에서 물러설 수밖에.

모단수는 힐끔, 남궁수를 보았다.

‘운이 좋았소, 당신 동생의 인격 절반만 닮으시오.’

정작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남궁수가 내기를 물러 줬다고 해서 그는 다행이라고 생각할까?

전혀, 오히려 반대였다.

남궁수는 지금 모욕감을 느끼고 있었다.

인생 대부분을 남의 위에만 서 있던 그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궁도, 네가 감히 나에게 관용을 베풀어?’

관용이란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내리는 특권이라고.

그러니 남궁도의 호의가 순수한 뜻으로 여겨지지 않고, 오히려 굴욕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남궁도가 지금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있으니.

“역시 가주님은 배포가 커.”

“남궁세가 가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지, 암.”

저 봐라, 사람들이 실제로 남궁도에게 칭찬 일색이다.

저놈은 저걸 노린 거지.

운 좋게 금수저 물고 태어나 평생 남에게 뭘 받아만 왔지, 먼저 베푼 적은 없었던 남궁수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니 속이 얼마나 부글부글 끓겠는가.

이 화를 풀 상대가 필요하다.

‘못난 놈.’

그 상대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남궁수가 남궁남호를 매서운 눈길로 노려보았다.

“따라와라.”

칭찬이 마냥 능사는 아니다.

이럴 땐 따끔하게 혼도 내줘야지.

더불어.

“너희들도 따라와라.”

불똥이 현무단에게도 튀었다.

저들이 단주를 잘 보좌했으면 애초에 이런 일이 없었을 것 아닌가.

단주가 부하들은 버린 일?

그건 전략상 후퇴였을 뿐이다.

이십여 년 전, 정마대전 때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니 일단 물러났다가 전열을 재정비하려고 했을 뿐이란 말이다.

아니, 설사 도망쳤다고 치자.

그게 나쁜가?

사람의 목숨값이 다 동일하지 않은데.

남궁남호는 남궁세가의 적장자, 자신의 아들이니 무림 전체를 뒤져도 그 목숨값이 가장 비싼 사람이다.

현무단 백 명의 목숨값을 다 더해도 훨씬 더 귀하다고.

‘후, 간만에 흥분해서 그런가.’

뒷골이 땅기네.

목 뒷덜미에 손을 얹은 남궁수가 세가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저것들은 왜 가만히 있어?’

남궁남호와 수레에 탄 현무단원들은 세가 안으로 털레털레 들어오는데.

‘……5조였지?’

남궁정혁 뒤에 서 있는 현무단 5조는 요지부동,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저것들만 왜 멀쩡한 거야?

1조부터 4조까지는 삼서현에서 여기까지 온 게 용하다 싶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저들만 상처 하나 없다

‘더욱 따끔히 혼내야겠구나.’

필시 게으름을 피운 게 분명해.

위험에 처한 동료들은 외면하고 자신들만 살자고 도망쳤구나.

제 아들 허물은 안 보여도 남의 자식 허물은 크게 보는 남궁수가 버럭, 소리쳤다.

“뭐 하나? 현무단은 당장 세가 안으로 들어오라니까.”

“…….”

그들이 멀뚱멀뚱 서 있자, 남궁수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지금 내 말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냐?! 이 자리에서 대장로의 권한으로 너희를 처벌…….”

“이 사람들 현무단 아니에요. 남수단원이에요.”

“……뭐?”

남궁정혁의 말에 남궁수가 눈을 비볐다.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노안이 왔나 싶어서.

“…….”

아닌데, 분명 맞는데.

조장 남궁건을 비롯해 5조원들 맞잖아.

“네놈까지 날 놀리는 것이냐?”

“이제는 현무단원 아니라고요.”

“……?”

“이제는 남궁단원이에요. 얼마 전 이직했죠.”

……뭐? 저들이 소속을 옮겼다고.

남궁수의 고개가 자연스레 남궁남호에게 돌아갔다.

그 시선은 묻고 있었다.

저 말이 정녕 사실인지.

“…….”

아니라고 말해 주길 바랐는지만, 자신의 아들은 이번에도 답이 없다.

‘……못난 놈, 내기에서 진 것뿐만 아니라 부하까지 뺏겼더냐.’

남궁수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전 5조원들에게 삿대질했다.

“네놈들에게는 충성심이란 것도 없냐? 어찌 섬기던 윗사람을 버릴 수 있단 말이냐!?”

그 말에 전 5조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라 할 수가 없으니까.

상대는 어찌 됐든 세가의 큰 어른, 대장로 아닌가.

남궁정혁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윗사람이 먼저 버렸는데 아랫사람은 버리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답니까?”

충성심은 개뿔.

먼저 모범을 보여야 아랫사람이 따르지.

남궁정혁이 반박에 남궁수의 손이 부들부들 더 떨렸다.

“그건 버린 게 아니라 전략상 후퇴…… 어억.”

버럭, 큰소리치던 그가 돌연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대장로님!!”

“괜찮으십니까? 대장로님!”

주위 사람이 놀라 그에게 몰려갔지만, 그러든가 말든가.

남궁정혁은 실신한 그를 힐끔 본 후, 세가 안으로 들어갔다.

‘……고혈압인가?’

어찌 배가 많이 튀어나왔더라.

아무리 무공을 잃었어도 그렇지.

명색이 무림세가의 대장로인데 똥배는 아니지.

*   *   *

남궁세가로 돌아온 남궁정혁은 자신이 가장 하기 싫은 일부터 해야 했다.

그것은 바로…….

“나한테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이냐?”

남궁수와 독대.

그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던 남궁정혁이 먼저 청해 만들어진 자리이기도 했다.

남궁도와는 면상도 맞대기 싫어하는 남궁정혁 입장에선 큰 용기를 낸 거지.

“남수단의 신입 단원 말입니다. 전 현무단 5조요.”

“그들이 왜?”

“괜찮죠? 아무 상관 없죠?”

“…….”

내가 마교 같으면 이런 건 신경도 안 쓰는데, 고리타분한 정파라.

그놈들은 워낙에 이거 하면 안 된다, 저것 하면 안 된다 하는 이상한 규정이 많아서.

음…… 잠시 생각해 본 남궁도가 대답했다.

“이런 일이 전례가 없긴 하지만 금지하는 규정이 없긴 하다.”

“다행이군요.”

행여 이상한 규정이 발목 잡으면 골치 아플 뻔했더니.

“그럼 이만.”

원하는 대답을 들은 남궁정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남궁도와는 조금이라도 더 멀리 있고 싶거든.

“벌써 가는 것이냐?”

“왜요? 나한테 할 말 있어요?”

하지만 남궁도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럼 전 가요.”

가주실을 나가려는 남궁정혁의 등 뒤에 대고 남궁도가 말했다.

“잘했다.”

“……?”

“이번 일 말이다. 남궁남호를 이겨서 잘했다고.”

“네.”

시큰둥하게 대답한 남궁정혁은 곧바로 문을 열고 나갔다.

“…….”

남궁도를 그 문을 한참이나 바라보았고.

‘오랜만에 둘만이 있는 자리였는데…….’

좀 더 머물면서 얘기 상대나 해 주지 않고.

……무심한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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