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75화
합비에서 가장 화려한 곳은 옥화루였다.
오죽하면 낮보다 밤이 더 밝았으니.
그러면 옥화루의 루주실은 어떨까?
옥화루의 모든 것은 관장하는 루주가 지내는 곳이니만큼 그곳은 얼마나 화려할까?
성인 남자 다섯 명이 들어가면 꽉 찰 것 같은 작은 공간.
있는 가구라고는 작은 침상에, 그보다 더 작은 서랍장과 탁자가 다다.
옥화루주의 방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소박한 공간.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참 많이도 권유했었다.
다른 방으로 옮기시라고.
크고 넓은 방 놔두고 왜 하필 그렇게 작은 방에서 지내시냐고
그럴 때마다 묘화는 항상 말했다.
“지금 지내는 곳이 마음 편해.”
작은 공간을 좋아하는 건 마음에 상처가 있어서라던데.
옥화루 내에서 그 누구 묘화의 고집을 꺾을 수 있겠는가.
원래는 잡동사니를 쌓아 두었던 천장의 작은 창고는 그렇게 루주실이 되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루주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민망했던 것이다.
옥화루의 최고 책임자가 그렇게 누추한 곳에서 지낸다는 것이.
그런 루주실에 오랜만에 손님이 왔다.
묘화가 방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한마디로 불청객이란 말이다.
“그들은 어디 있나?”
불청객, 당천우가 남의 방에 마음대로 들어온 것도 모자라 고함까지 질렀다.
예의 없게.
쾅, 그가 주먹으로 내려치자 탁자의 다리가 부러졌다.
“…….”
불청객의 무례한 행동에 화가 날 법도 하건만, 묘화는 늘 그렇듯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말도 없고.
그것이 되려 단천우의 심기를 더욱 건드렸지만.
“언제까지 입 다물고 있을 것이냐?”
촤악, 그가 거친 손길로 묘화의 얼굴을 가린 면사를 뜯어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얼굴을 가로지른 검상도.
“공자님.”
당천우와 마주한 후, 처음으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러면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습니다.”
“……뭐?”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는 하나, 여인이 걸치고 있는 것을 벗길 때는 상대방의 의사를 먼저 물어봐야 합니다. 여인들은 예의 있는 남자를 좋아한답니다.”
어린아이 가르치듯 차분한 말투가 단천우를 더욱 자극했다.
그가 이를 꽉 깨물었다.
“말장난을 하는 걸 보니 아직 여유가 있구나.”
좋다, 해 보자.
네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그가 품속에 있던 작은 유리병들을 꺼내 묘화 앞에 놓았다.
“선택해라, 무엇이냐?”
“…….”
“온몸을 가렵게 하는 신경독부터 한 모금만 마셔도 죽는 극독까지 있다.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
“…….”
묘화가 당천우를 빤히 쳐다봤다.
그의 나이, 이제 겨우 이십대 초중반쯤 되었을까?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에 성공했다면 저만한 자식이 있었을 것을.
후, 가벼운 한숨과 함께 묘화가 말했다.
“저는 그들이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모르는 것을 어찌 대답하겠습니까?”
“그래, 가장 약한 것부터 천천히 해 보자.”
당천우가 빨간색 유리병을 짚었다.
“하지독이란 것이다.”
이 독은 사람을 죽이는 독은 아니다.
다만 죽고 싶을 만큼 괴롭지.
몸속에 개미 수백 마리가 동시에 기어 다니는 느낌 때문에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단천우가 묘화의 머리채를 잡아 뒤로 당겼다.
“마지막 기회다, 그들은 어디 있느냐?”
“모릅니다.”
독한 것, 후회하게 해 주마.
당천우가 억지로 벌린 묘화의 입에 하지독을 부으려고 할 때였다.
‘……뭐지?’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아니, 애초에 시끄럽긴 했다.
자신의 부하들이 손님들을 내쫓는다고.
그런데 더 시끄러워졌다.
고함은 물론이거니와, 이제는 우당탕거리는 것으로 볼 때.
‘……싸우나?’
무모하고 겁대가리 없는 자들이로다.
감히 사천당가의 행사를 방해하다니.
단천우가 그들을 비웃을 때였다.
뚜벅뚜벅.
누군가 밑에서 루주실로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방문이 확 열렸다.
벌컥!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남자.
그런 그에게 당천우가 물었다.
“넌 누구냐?”
“남궁세가 막내아들.”
* * *
마음에 들지 않는 자로군.
당천우가 방금 루주실로 들어온 사내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왠지 기분이 나빠.’
그 이유는?
단지 상대가 자신보다 잘생겼기 때문에?
아니야.
한창 외모에 집착하는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잘생긴 얼굴을 왜 질투한단 말인가.
더구나 저자만큼은 아니지만, 자신도 한 외모 했다.
‘혼자서 생글생글 웃는 저 표정이 마음에 안 드는군.’
그가 이곳, 옥화루에 무슨 일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것이다.
근데 상황에 맞지 않는 저 싱그러운 웃음은 뭐란 말인가.
마치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게다가 여기까지는 어찌 왔고.
분명 부하들이 막았을 것인데.
‘날 아래로 여기는 것 같구나.’
실제로도 내려다보고 있다.
당천우는 앉아 있고, 남궁정혁은 서 있으니.
“묘화, 괜찮아?”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
그녀의 방에 두 명의 손님의 손님이 동시에 찾아온 건.
물론 두 명 다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명은 반가웠다.
“저는 괜찮습니다. 아직까지는요…….”
말끝을 흐린 그녀의 시선이 바닥에 놓인 유리병에 닿았다.
“앞으로도 쭉 괜찮을 거야.”
내가 왔으니까.
남궁정혁이 당천우에게 대뜸 말했다.
“돈 내놔.”
“……?”
“남의 영업장에서 와서 방해를 했으니 피해 보상을 해야지.”
“……?”
저자가 자기 입으로 방금 그러지 않았나?
남궁세가 소속이라고.
근데 웬 피해 보상?
그런 건 옥화루 관계자나 신경 쓸 일 아닌가?
‘그런데 왜 저자가 나서지?’
옥화루에 지분이 있나?
투자라도 했냐고?
그러다 문득 의심이 들었다.
“네놈, 감히 남궁세가를 사칭한 것이냐?”
그러면 자신이 순순히 물러날 줄 알고.
당천우의 말을 묘화가 반박했다.
“저분은 남궁세가 소속이 맞습니다. 창궁검제 대협의 막내아들입니다.”
“진짜 남궁세가가 맞다 하더라도 본가의 일을 방해할 순 없다.”
오대세가는 각자의 지위와 권리를 인정해 주었다
서로의 일에도 간섭하지 않고.
이곳이 남궁세가의 앞마당인 합비라 해도 말이다.
물론 이것은 당천우 혼자만의 생각이었고, 남궁정혁의 생각은 달랐다.
“내가 남궁세가 소속이라서 여기에 온 것 같냐?”
난 그냥 여기에 오고 싶어서 온 것뿐이야.
내 자유 의지로.
지금은 이렇게 하고 싶고.
슥, 남궁정혁이 손가락을 오므려 앞으로 뻗자, 당천우가 황급히 그 손길을 피했다.
“무슨 짓이오?”
제법 하네.
뒷목을 잡아 방 밖으로 던져 버리랬더니.
“정말 해 보자는 것이오? 이러면 남궁세가와 사천당가의 사이도 안 좋아…….”
그러니까 내가 그걸 왜 신경 쓰냐고.
내부의 적만 해도 얼마나 많은데.
“남궁세가의 대외 관계 따윈 내 알 바 아니고 하나만 묻자.”
“뭘 말이오?”
“너희들 여기서 이러는 이유가 대체 뭐냐?”
“내가 그걸 당신에게 말할 이유는 없소.”
그렇지, 네가 꼭 말할 이유는 없지.
내가 지금부터 하고 싶은 걸 참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남궁정혁이 주살검을 꺼냈다.
“좀 처맞다 보면 말해야 할 이유가 생각날 거야.”
“네놈의 입만큼이나 실력도 있는지 보자.”
분노한 당천우가 소매 끝에서 단검이 튀어나왔다.
그가 손을 앞으로 뻗자, 그것이 남궁정혁을 향해 날아갔다.
“남궁세가와의 관계를 생각해서 죽이지는 않으마.”
팔다리 중 하나는 내놔야 하겠지만.
당천우가 손가락을 까닥이자 직선으로 날아가던 단검이 밑으로 뚝 떨어졌다.
“……!”
남궁정혁의 두 눈이 조금 커졌다.
……손끝으로 검을 조종하다니.
설마 이기어검술?
이기어검술은 내공으로 검의 움직임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이다.
직접 손에 닿지도 않고 말이다.
당연히 아무나 할 수 없고, 무림에서 손꼽는 경지의 고수들만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심유도에서 만났던 장패 정도?
최소한 화경급 고수나 되어야 시전이 가능한 기술이란 말이다.
‘……이상하네.’
근데 그런 경지의 고수는 단검이 실린 기운이 그렇게 세 보이지는 않단 말이야.
속도도 느리고.
남궁정혁이 주살검을 휘둘러 자신의 어깨 위로 떨어지는 단검을 쳐 냈다.
챙!
그러면 그렇지.
당천우, 네놈이 잔기술을 부리는구나.
‘비검이었군.’
눈앞에서 보니 단검 끝에 투명한 실이 매달려 있었다.
이거로 검을 조종했나 보다.
지금도 하고 있고.
“제법 실력은 있구나.”
당천우가 재차 손가락을 움직이자 바닥에 떨어진 단검이 솟구쳐 올라 남궁정혁의 가랑이 사이로 쇄도했다.
“……!”
이 새끼가 감히.
아직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한 걸 훼손하려 해?
애초에 용서할 생각도 없었지만, 이제는 더욱 용서할 수 없다.
주살검으로 비검을 다시 튕겨 낸 남궁정혁이 반격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주살검이 당천우의 하복부를 노렸다.
크기의 차이가 있음에도 비검보다 훨씬 빠른 공격 속도.
비검을 황급히 회수한 당천우가 검을 막았다.
“크윽.”
실력의 차이가 생각보다 훨씬 더 컸다.
잘 막았다 생각했는데 아니다.
자신의 검과 남궁정혁의 검이 맞닿는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내장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흔들린 것처럼.
‘…….’
속에서 역한 것이 올라왔지만 겨우 참았다.
“이제야 이곳에 온 이유를 말할 생각이 드나?”
당천우가 고개를 들자 남궁정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제자리에 가만히 있길래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정리하는 중인 줄 알았지.”
비아냥거리는 상대가 얄밉다.
세상 살면서 이토록 자신의 신경을 건드린 자는 별로 없다.
그의 이복형제들 말고는.
당천우가 왼손을 품 안에 넣어 암기를 집었다.
“죽어랏!”
아니, 이보시오.
아까는 안 죽인다며.
갑자기 말을 바꾸면 어떡해?
내가 더 화나면 어쩌려고.
감당할 수 있겠어?
남궁정혁이 손가락을 엇갈리게 해 주살검을 풍차처럼 빙빙 돌렸다.
타닥탁탁.
암기가 동그란 방패막을 뚫지 못하고 모두 다 바닥에 떨어졌다.
“……젠장.”
그 허무한 광경에 당천우가 턱을 꽉 다물었다.
“끝까지 해 보자.”
그가 바닥에 놓인 유리병을 집으려는 순간, 남궁정혁이 경고했다.
“그거 잡으면 넌 죽는다.”
여기까지는 얘들 장난삼아 놀아준 거로 할 수 있는데 선은 넘지 마.
진짜 죽고 싶지 않으면.
남궁정혁의 말이 허튼 말이 아니라는 걸 직감한 것일까.
“……이이익.”
당천우가 남궁정혁을 노려봤지만, 감히 유리병을 잡진 못했다.
“잘했어.”
자존심보단 그래도 목숨이 더 소중하지.
남궁정혁이 당천우의 현명한 선택에 고개를 끄덕여 줄 때였다.
“도련님.”
밑에서 정학우가 올라왔다.
“다 정리됐습니다.”
남수단이 사천당가의 무인들을 제압했나 보다.
“생각보다 빨리했네.”
“아무래도 목적 의식이 있으니까요. 지금 당장 술과 요리를 내어놓으라고 난리입니다.”
아니, 남궁세가 소속 무사들이면 그래도 제법 여유 있는 생활이 가능했을 텐데 왜 그리 식탐에 집착하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남궁정혁이 당천우를 보았다.
“들었지?”
“뭘 말이냐?”
“네 부하들도 다 졌다고.”
젠장, 어느 정도 짐작은 했다.
자신의 싸움에 몰두하느라 몰랐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래층에서 들리던 싸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게 남의 앞마당에 와서 함부로 설치면 안 되지.”
고개는 까닥까닥, 손목은 우두둑.
남궁정혁이 당천우를 본격적으로 조지기 위해 다가가 때였다.
“남궁 도련님.”
그를 말리는 사람이 있었다.
“이제 그만하시지요.”
묘화였다.
“왜? 저놈이 여기서 왜 이런 행패를 부리는지는 들어야지.”
묘화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당천우를 힐끔 본 후 말했다.
“그건 제가 말씀드릴 테니 저자는 그냥 보내 주시지요.”
이제부터 재밌어지려고 하는데 뭔가 좀 아쉽긴 하네.
그래도 가장 큰 피해자인 묘화가 저리 말하는데 그 뜻은 존중해 줘야지.
“여기서 당장 꺼져라. 내 맘이 변하기 전에.”
당천우는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루주실을 나갔다.
묘화가 면사를 다시 쓰며, 그녀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냐면…….”
흐음…… 묘화가 사천당가와 또 그런 인연이 있는 줄을 몰랐네.
아니, 악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