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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76화 (76/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76화

묘화를 처음 만난 건 내가 환생한 직후였다.

당시 자살한 줄 알았던 이 몸의 원래 주인이 타살당한 걸 알고, 조사차 옥화루를 방문했을 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녀에 대한 첫인상도 좋지 않았고.

아무래도 당시엔 모든 게 의심스러웠으니까.

속에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 그녀를 보고 범인이 아닐까 의심까지 했었지.

‘그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쭉 인연을 이어 나갈 줄은 몰랐지.’

아마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그녀가 자기 신상에 관해 얘기하는 건.

그 답답한 속을 조금이라도 풀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곤란한 상황에서 자신을 구해 준 고마움 때문일까?

묘화가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저에게 동생이 한 명 있습니다. 모진 운명을 타고난 저와 달리 착하고 반듯한 동생이죠.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마지막으로 남은 혈육이기도 합니다.”

묘화의 동생, 진백현은 비파를 켜는 악공이었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동생이 어릴 적부터 재능을 보여 묘화가 지원해 주었다고.

너라도 하고 싶은 거, 맘껏 하고 살라고.

그 기대와 지원이 헛되지 않았는지 진백현의 비파 실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가 비파를 품에 안고 손가락을 흔들면, 그 고아한 선율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한다.

“제가 들어도 동생의 실력은 뛰어났습니다.”

눈을 감고 그 소리를 들으면 마음속 응어리가 잠시나마 풀릴 정도만큼.

“백현이의 관심은 자연스레 전악서로 향했습니다.”

“……전악서?”

그게 뭔데?

“황립음악기관입니다. 중원에서 뛰어난 실력은 지닌 악공들은 그곳에 다 모여 있습니다. 그만큼 들어가기도 어렵고요.”

일 년에 한 번 있는 전악서 입단시험.

진백현은 그 시험을 치르기 위해 수도, 남경으로 가다 뜻밖의 고난에 처했다.

어느 산을 넘다 산적을 만났다고.

얘기를 들어 보니 녹림칠십이채에 속하는 족보 있는 조직은 아니다.

걔들도 자존심이 있지, 한낱 백면서생의 돈을 탐하진 않는다.

한 상단이나 표국 등의 재물을 노리지.

“동생이 가진 것을 다 주었는데도 그들은 동생을 죽이려 했답니다. 자신들의 얼굴을 봤다면서.”

후, 가벼운 한숨과 함께 묘화가 말을 이었다.

“그때 제 동생을 구해 준 사람이 당하연입니다.”

그곳을 우연히 지나다가 곤경에 처한 진백현을 구해 주었다고.

“그들은 그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하더군요.”

잘생긴 남자와 이쁜 여자.

게다가 한창 피 끓는 청춘.

두 사람은 첫 만남에 서로에게 반했단다.

사랑에 빠진 거지.

“모두가 반대하는 사랑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그랬겠지.

기녀 누나를 둔 가난한 악공.

명문세가의 직계 자손인 무인.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정작 당사자들은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지만.

“특히 사천당가에서 둘의 만남을 결사반대했습니다. 단순한 신분의 차이? 그런 단순한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

그럼 뭔가 더 큰 이유가 있나?

“당시 당하연에게는 약혼자가 있었습니다. 상대는 적호문의 문주, 무려 스무 살 차이였죠.”

대충 뭔가 감이 온다.

나이 차이도 그렇고, 약혼자를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난 것도 그렇고, 아마도…….

남궁정혁의 짐작을 묘화가 확인시켜 줬다.

“맞습니다. 정략결혼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스무 살이나 차이 나다니. 너무 심한 거 아냐?”

“사천당가의 가주, 당군악은 다섯 명의 부인에게서 열 명이 넘는 자식을 뒀습니다.”

와우, 그 아저씨 대단한 정력가구먼.

“게다가 야심도 크고요, 당하연뿐만 아니라 다른 자식들도 모두 정략결혼 시켰습니다. 그에게 자식은 세력 확장을 위한 도구였을 뿐이죠.”

이거 알고 보니 사랑이 불타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구먼.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신분의 차이, 정략결혼.

마치 자신들이 비극적인 운명의 주인공처럼 여겨졌을 테니.

그만큼 서로를 더 애틋하게 생각했을 거고.

여기서 남궁정혁은 궁금한 걸 물었다.

“말투를 들어 보니 루주도 둘의 만남이 그리 탐탁지는 않았나 봐?”

“동생이라도 평범한 삶을 살기 원했으니까요, 무림이랑은 상관없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기왕지사 맺어졌으니 둘의 행복을 바라야죠.”

……맺어져?

사천당가의 방해를 뚫고?

“당하연이 가문과 연을 끊고 집에서 도망쳤습니다. 그게 벌써 오 년 전의 일입니다.”

쉽지 않은 선택을 했군.

사천당가의 특성을 생각하면 더더욱.

‘애초에 그놈들이 왜 정파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사용하는 무공 하며, 지나치게 엄격한 가풍 하며, 차라리 정파보단 사파에 더 가까운 집단인데 말이야.

“사랑을 찾아 가출한 딸의 의사를 존중해 줄 만큼 사천당가가 너그럽진 않을 텐데.”

남궁정혁이 알기론 그랬다.

그들은 자신들을 거스른 사람을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설사, 그것이 가족이라 하더라도.

“잡히면 근골을 잘라 버리는 것은 물론 단전까지 폐하겠지요. 게다가 남은 평생을 햇볕 하나 들지 않는 감옥에서 보내야 할 겁니다.”

더 말하지 않았지만 묘화도 알 것이다.

당하연뿐만 아니라, 진백현 역시 그리되리란 걸.

그러고 보면 사랑의 힘이 참 위대하긴 해.

저 모든 위험을 감수하게 하다니.

“…….”

잠깐, 그럼 단천우가 오늘 이곳에서 그 난리를 친 이유가……?

“그들이 여기 있나?”

“…….”

“말하기 싫으면 답하지 않아도 되네.”

자기 집안 사정을 남에게 꼭 이야기할 필욘 없으니.

“……새벽에 급습했다고 합니다. 자고 있는데 갑자기 들이닥쳐 옷만 입고 겨우 여기로 도망쳐 왔습니다.”

사천당가 놈들도 집요하다, 집요해.

오 년이나 지났으면 그만 잊어 줄 법도 하건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남궁정혁에게 묘화가 추가로 설명했다.

“그들은 사천당가가 아니었습니다.”

“……?”

그럼 누가?

“적호문에서 쳐들어왔다는군요.”

“당하연에게 버림받았다는 그 약혼자?”

스무 살 넘게 차이 나는 아저씨?

“적호문은 사도련 육대 문파 중의 하나입니다. 당천악이 괜히 딸을 시집보내려고 했던 게 아니죠.”

사도련이라면 예전 심유도에 갔을 땐 들은 적이 있다.

사파 연합 연맹체로 그곳을 이루는 여섯 개의 주축 가문이 있다고.

그나저나, 장패 그 아저씨도 잘 지내고 있나 모르겠네?

복수는 잘하고 있나?

“적호문의 문주인 하문탁도 악착같고 집요하기로 무림에서 그 악명이 높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옛 약혼녀를 찾아다닌다?”

“그들이 여기로 도망친 것을 사천당가에 알려 준 것도 그자인 듯싶습니다. 아무래도 사파가 남궁세가의 앞마당에서 대놓고 설치기는 부담이 있으니까요.”

꽤 골치 아픈 상황이군.

오대세가의 사천당가와 사도련 적호문.

중원에서 가장 큰 세력 중 두 곳이 동시에 쫓아다니다니.

“그래서 방법은 있어? 동생네 부부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저들이 눈치챘으니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을 텐데.”

“아무리 중원을 뒤져 봐도 두 문파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은 없더군요. 그래서 외국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외국 어디?

이민 간다는 건가?

“다른 나라로 도망친다고 해도 글과 말이 달라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최소한 생명의 위협은 없겠죠. 다만…….”

자신 있게 말하던 묘화가 말끝을 흐렸다.

“저들의 추적을 피해 복주까지 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복주?”

“그곳에 새외무림으로 가는 밀항선이 있습니다. 하오문과도 연이 닿은 곳이죠.”

“그럼 복주까지만 가면 동생의 가족은 무사하다는 건가?”

“지금 하오문을 통해 그들을 그곳까지 데려다줄 믿을 만한 무사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음…… 잠시 고민한 남궁정혁이 결심했다.

그 결심을 묘화에게 말했고.

“그거 내가 해 줄게.”

“……네?”

“나와 남수단이 동생네 부부를 보주까지 데려다준다고.”

“……도련님이요?”

“왜? 나 못 믿어? 내가 그들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

“그게 아니라, 사천당가까지 개입된 일입니다. 혹여 도련님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건 이미 말하지 않았나?”

아까 당천우와 싸울 때.

난 남궁세가의 대외 관계 따윈 상관없다고.

“정말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

“내가 그동안 묘화한테 받아먹은 공짜 술이 얼만데 이 정도는 당연히 해 줘야지.”

여러 도움을 받기도 했고.

최근엔 그녀가 섭외해 준 지관 덕분에 시약산에서 강시도 찾지 않았는가.

나도 은혜와 원한의 구분이 철저한 사람이라.

“…….”

근데 걱정되긴 하네.

내가 지금까지 누굴 패거나 썰어 본 적은 있어도 지켜 본 적은 없어서.

……잘할 수 있겠지?

*   *   *

“인사드려라. 이분이 너희를 복주까지 데려다주실 남궁정혁 도련님이다.”

옥화루에 이런 공간이 있었던가.

지하로 내려간 묘화가 벽면의 한 곳을 누르자 맞은편 벽이 스르륵, 열렸다.

그곳에 진백현, 당하연 부부가 있었다.

애써 침착한 듯했지만, 눈빛은 불안에 젖은 채로.

이곳에서 방금 전의 소란을 들었나 보다.

“사천당가의 무인들은 갔습니까?”

“그들도 이분이 쫓아내셨다.”

남궁정혁이 옥화루 일 층으로 내려왔을 땐 당천우가 이미 부하들을 데리고 떠난 뒤였다.

정학우에게 들으니 이번 일을 정식으로 항의하겠다고 큰소리까지 쳤다고.

그놈이 아직 덜 처맞아서 그래.

합비까지 온 기념으로 제대로 대접해서 돌려보냈어야 하는 건데.

‘영 아쉽네.’

뒷간 갔다가 밑 못 닦은 것처럼.

그가 그렇게 떠나간 당천우를 그리워할 때 묘화가 백진현 부부에게 자신들이 했던 대화를 알려 주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절로 허리가 숙여질 수밖에.

자칫하면 가문 내에서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데 자신들을 돕겠다고 나섰으니.

그런 부부의 품 안에는 세 명의 여자아이가 안겨 있었다.

두 부부를 적절히 섞은 듯한 외모가 무척이나 귀여운.

“너희들도 인사드려야지, 우리를 도와줄 아저씨야.”

……아저씨?

나 아직 스무 살인데?

그 말에 감정이 상할 뻔했지만, 참았다.

뭐, 이 속에 자리 잡은 영혼은 어찌 됐든 마흔이니까.

처음 보는 남궁정혁이 불편한지 쭈뼛거리는 아이들 대신 진백현이 말했다.

“오른쪽부터 가영, 나영, 다영입니다. 다섯 살, 네 살, 세 살이죠.”

허허허, 부부 금술이 참으셨나 보오.

쫓기는 와중에도 할 건 다 하셨네.

그렇게 연년생으로 쭈욱 낳은 걸 보니.

하긴 전쟁통에도 얘는 태어나니까.

남궁정혁이 묘화를 보았다.

“언제쯤 복주로 출발하면 될까?”

“저희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도련님께선 언제쯤이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 그럼 내일 당장 출발하지. 오늘은 이미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그래 주시면 저희야 감사하죠.”

그렇게 남궁정혁이 위기에 빠진 부부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으려 하는데…….

“뭐? 뭐라고?”

감히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다.

정학우였다,

“도련님의 마음은 알지만, 이번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왜에?”

지금은 회식 중, 그가 입안에 든 음식을 오물거리면 말했다.

“아시다시피 남수단이 출동하려면…….”

“……가주의 허락이 필요하다?”

그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시약산에 갈 때 보기 싫은 남궁도와 얼굴을 맞댔으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은 가주님이 절대로 허락해 주시지 않을 겁니다. 그 이유도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천당가와 관련된 일이라서?”

“가주님 입장에선 대외 관계도 중요합니다. 이번 일이 사천당가와의 불미스러운 충돌을 감안하면서까지 할 일은 아니라고 판단하실 겁니다.”

나도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내가 설마 그것도 모르고 이 일을 하겠다고 나섰을까?

“그래서 내일부터 남수단은 휴가다.”

“……예에?”

“휴가 정도는 내 맘대로 줄 수 있지? 그 기간에 뭘 하는지도 자유고?”

“그건 그렇긴 한데…….”

방금까지 남수단은 복주까지 간다더니 갑자기 웬 휴가?

뭔가 의심스러운데.

정학우가 그런 생각을 할 때 남궁정혁이 탁자 위에 놓인 사과 하나를 짚었다.

“내일부터 나 자원봉사할 거야, 복주까지 갈 거거든. 혹시 같이할 사람? 아니…….”

싱긋, 웃은 그가 손아귀에 힘을 주자, 사과가 터지며 과즙이 그의 팔뚝을 타고 흘렀다.

“안 할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

“…….”

다행이다.

남수단에 눈치 없는 사람은 없어서.

남수단의 첫 공식 임무가 방금 정해졌다.

그것은 자원봉사.

바로 내일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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