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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77화 (77/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77화

합비 외곽의 조그만 장원.

평소 노부부와 몇몇 하인들만이 지낼 뿐인 그곳에 모처럼 활기가 돌았다.

“이 짐은 거기 실어.”

“잠깐, 그 짐은 거기가 아냐, 세 번째 마차에 실어.”

진한표국?

가슴 한편에 진이라 새겨진 옷을 입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몰려와 짐을 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호기심에 물으니 이 집 아들 부부가 먼 곳으로 이사 가기에 이렇게 분주하다는 답을 들었다.

“단주, 아니 국주님. 표사 옷도 제법 잘 어울리십니다.”

“제법이 아니라 아주 많이 어울리는 것이다.”

진한표국 사람들은 사실 남궁정혁과 남수단이었다.

지금부터 하려는 일은 사천당가와 적호문, 두 거대 문파의 눈길을 어떻게든 피해야 하는 상황.

그래서 본래의 정체를 숨기고 표사로 둔갑했다.

옷은 묘화가 미리 준비해 둔 것이고.

옥화루와 지하로 연결된 이 장원도 하오문의 비밀 거점 중 한 곳이다.

혹시나 어제의 일 때문에 사천당가의 감시가 붙었을까 싶어, 그 길을 타고 이리로 나왔다.

정학우가 눈앞에 있는 세 대의 마차를 보고 말했다.

“근데 마차가 너무 화려한 것 같은데요.”

그는 염려스러웠다.

되도록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 마차는 너무 크고 장식이 너무 많은 거 아닐까?

그러면 사람들의 눈에 띌 텐데.

“차라리 작고 수수한 편이 좋지 않을까요?”

“아니야, 적당해.”

하지만 남궁정혁은 고개를 저었다.

“서른 명의 표사가 호위하는 행렬이다. 고용주가 재물이 넉넉한 자란 소리지.”

그런데 그런 자가 타고 다니는 마차가 수수하다?

오히려 의심받을 일이다.

“묘화가 적절한 마차를 구해 왔어.”

그녀가 얼마나 꼼꼼한데 이런 실수를 하겠는가.

동생네 부부가 먼 길, 되도록 편히 가라는 배려도 담겨 있을 것이고.

“루주님, 짐 다 실었습니다.”

장원의 주인 행세를 하는 노인이 묘화에게 보고했다.

“이제 출발하면 됩니다.”

묘화가 마차 앞에 선 동생네 부부에게 다가갔다.

“……백현아.”

“……누나.”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까?

이들이 떠나는 곳은 너무나 먼 곳인데.

유일한 혈육이 그곳으로 가면 혼자 남은 자신은 외로워서 어떡하라고.

‘…….’

그런 누나의 마음을 잘 알기에 진백현은 마차에 쉽게 오르지 못한다.

마치 땅바닥에서 누군가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처럼.

“잘 살아야 한다.”

“……누나도.”

할 말도, 해 주고 싶은 말도 너무나 많지만, 야속하게도 그럴 상황이 아니다.

살아 있으면 다시 볼 날이 한 번쯤은 있겠지.

……아마도.

“힘들겠지만, 잘 견뎌야 한다.”

올케와 조카들을 차례로 품에 안아 준 묘화가 손을 내저었다.

“어서 마차에 타거라, 어서.”

어차피 헤어질 운명.

그동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별의 순간이 길수록, 그 아픔도 오래간다는 것을.

“누나…….”

그녀의 성화에 진백현이 연신 뒤를 돌아보면서 마차에 올랐다.

탁, 마차의 문까지 직접 닫은 묘화가 남궁정혁에 다가갔다.

“도련님, 잘 부탁드립니다.”

말은 단순했지만, 그 속에 담긴 뜻까지 어찌 단순할까.

그 마음을 모르지 않기에 남궁정혁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 누구도 저들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할 테니까 안심해.”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세 대의 마차 중, 맨 앞에 탄 정학우가 말의 고삐를 직접 쥐었다.

“출발합니다.”

묘화는 마차가 언덕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고정된 듯 움직일 줄 몰랐다.

그녀의 시선 또한 그곳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   *   *

“지금 속도로 가면 일주일 뒤에는 복주에 도착할 것입니다.”

묘화가 붙여 준 길잡이가 말했다.

이름이 석두라고 했던가.

그는 하오문 소속 무인이었다.

예전에 실제로 표사로 일했기에 이런 일에 능숙하다고.

“최단 거리로 가라.”

남궁정혁의 명령이었다.

남자는 직진, 그것이 남궁정혁이 인생을 살아온 기본 원칙 중 하나 아니겠는가.

괜히 위험 회피한다고 이리저리 돌아갔다가는 시간만 더 걸린다.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은 뜻하지 않은 돌발 상황에 휘말린 확률이 높다는 것이고.

그래서 남궁정혁 일행은 다소의 위험을 감수하고 가장 빠른 길을 선택했다.

“조금만 더 가면 대호채입니다.”

합비를 출발한 지, 삼 일.

지금 첫 번째 위험을 마주치려 했다.

일단 마차를 세운 남궁정혁이 진백현이 타고 있는 마차로 다가갔다.

세 대의 마차 중 가운데 마차였다.

앞뒤로 보호받는 그곳이 가장 안전하니까.

“지금부터 마차에서 절대 나오지…….”

문을 벌컥 연 남궁정혁이 멈칫했다.

……이게 무슨 냄새지?

상의를 젖힌 진백현의 몸에 당하연이 희멀건 액체를 바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제가 피부병이 있어 약을 바르고 있었습니다.”

남궁정혁이 자세히 보니 진백현의 상체 곳곳이 갈라지고, 하얀 각질이 일어나 있었다.

심지어 피딱지가 붙은 곳도 있었다.

간지러워서 긁은 것일까?

“어려서부터 앓은 지병인데 최근 급박한 일이 연이어 일어나서 그런지 증세가 더 심해졌습니다.”

“가가, 그래도 이 약을 바르면 좀 괜찮아지잖아요. 곧 나을 것입니다.”

“이게 다 당신 덕분이요. 약초에 능한 당신 덕분에 내 병이 많이 나았소.”

이 상황에서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는 애정이 가득하다.

“어쨌든 밖으로 나오지 마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지도 말고.”

“무슨 일 있나요……?”

“이제 곧 산적들과 맞닥뜨릴 거예요.”

대호채는 녹림칠십이채에 속한 산적이란다.

그쪽 바닥에서는 나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놈들인 거지.

그놈들은 남수단이 대호산을 가로지르는 길 중간쯤에 갔을 때 나타났다.

“이놈들, 거기 섯거라!”

길 양쪽 비탈에서 내려온 산적들이 아주 빠르고 능숙한 동작으로 순식간에 길을 막았다.

예상된 등장이기도 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예상했으니 그 대비책도 당연히 마련되어 있고.

앞으로 나선 석두가 대호채의 산적들을 향해 외쳤다.

“산중호걸들에게 인사 올리겠습니다. 저는 진한표국의 석두라고 합니다.”

“……진한표국? 그런 곳이 있었나? 처음 듣는데.”

수십 명이 넘는 산적 중 가장 묵직한 존재감을 지닌 자가 앞으로 나왔다.

“혹시, 대호채의 채주 우원식 님이십니까?”

“나를 아느냐?”

“저희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생 표국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협력하게 될 분들을 조금 조사해 봤죠.”

석두가 미리 준비한 말을 하자 우원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겠구나.”

“물론이죠.”

석두가 미리 준비한 그것을 꺼내 우원식에게 건넸다.

“주머니가 두둑한 걸 보니 예의가 있는 놈들이로다. 사업이 아주 많이 흥하겠어.”

푸하하하, 호탕한 척 크게 웃는 우원식을 보는 남궁정혁의 눈빛이 곱지 못하다.

‘꼭 돈까지 갖다 바쳐야 하나?’

비굴하게?

그 낌새를 눈치챘기 때문일까?

정학우가 낮게 속삭였다.

“이게 관행이라잖아요.”

산적과 표국 사이에 암묵적인 규칙이란다.

산채가 있는 산을 지날 때는 표국에서 최소한의 성의 표시를 한다고.

그러면 그 성의 표시에 감동한 산적들이 표사들이 무사히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 준다고.

일종의 통행세인 거지.

‘사람 앞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더니 이게 정말 색다른 경험이군.’

전생엔 내가 오히려 녹림한테서 돈을 받았다.

그것도 녹림의 대채주한테서.

자기들 좀 잘 봐달라고, 돈과 함께 이것저것 챙겨 매년 꼬박꼬박 보내더라고.

나야 공짜로 주는 것 거절할 필요 있나?

공물을 보내면 잘 받았다고, 서찰 한 통 써 줬지.

그 서찰을 전해 준 부하에 따르면 대채주가 그렇게 감동했다나.

천마께서 친히 글을 쓴 서찰을 보내 주셨다고.

‘…….’

근데 그거 내가 직접 쓴 거 아냐.

내가 일일이 답하기 귀찮아서 아랫사람들에게 맡긴 거였어.

아무튼, 내가 그런 사람인데 고작 일개 채주한테 돈을 갖다 바치는 신세가 되다니.

물론 내 돈은 아니지만.

저 돈은 이렇게 쓰라고 묘화가 준 거였다.

정학우가 남궁정혁에게 계속 속삭였다.

“돈으로 이곳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이득 아닐까요?”

그래서 참는다.

지금은 그 무엇보다 진백현 부부의 안전이 최우선이니.

그런데…….

“마차 문을 열어 봐라, 안을 확인하자.”

우원식이 대뜸 말했다.

그의 예상치 못한 말에 석두가 놀랐다.

“예? 통행료는 드렸잖습니다.”

“아, 걱정할 필요 없다, 너희들의 무사 통과는 보장할 테니, 단…….”

그가 뒤를 힐끔 돌아보자, 부하 중 한 명이 종이 두 장을 들고 다가왔다.

“우리도 확인해야 할 것이 있어서.”

근데 그 종이에 진백현과 당하연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네?

대체 왜?

우원식이 대체 왜, 저들의 초상화를 가지고 있을까?

석두가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물었다.

“그,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원식은 초상화 속 얼굴을 살피느라 석두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위에서 서신이 내려왔다. 우리 대채주님하고 적호문의 문주님이 친하거든. 그래서 특별히 부탁하셨다, 혹시 이 두 사람을 발견하면 잡으라고.”

……지랄한다.

사파에 무슨 의리가 있다고 서신까지 보내 업무 협조냐.

“덕분에 나도 귀찮아 죽겠다.”

그 말에 희망을 보았음일까?

석두가 다급히 말했다.

“녹림의 영웅께선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는 그런 사람 모릅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적호문주가 큰 현상금을 걸었거든.”

“……현, 현상금이요?”

“금자 백 냥. 그래서 지금 온 녹림이 들썩인다. 제발 이 두 사람이 자기 산채로 지나가 달라고.”

아주 징하다 징해.

어이, 주무탁 아저씨.

남자가 여자한테 그리 집착하면 인기 없어요.

무림 대방파의 문주이면서도 아직 장가를 못 간 이유를 알겠네.

“뭐 해? 마차 문 열라니까.”

“그, 그게…….”

잠시 망설인 석두가 허리춤의 전낭을 열었다.

“저희가 하는 일은 기한이 매우 촉박한 일입니다. 늦으면 손해가 크거든요. 그러니 이것 받으시고 저희를 그냥 보내 주십시오.”

저런, 어설프기는.

남궁정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단순히 마차 안만 확인하자고 했는데 돈을 더 준다니.

누군들 의심스럽지 않을까?

우원식도 마찬가지고.

챙, 그가 도를 꺼냈다.

“네 이놈, 마차 안에 무엇을 숨긴 것이냐? 정녕, 저 안에 내가 찾는 두 사람이 타기라도 한 것이냐?”

그제야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깨달은 석두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가 고개를 돌려 남궁정혁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떡하냐고?

“괜찮아,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지.”

내 직속 부하가 그런 짓을 했으면 내일 떠오르는 태양을 보지 못했겠지만, 남의 부하를 탓하긴 그렇다.

그럴 만한 상황도 아니고.

더구나 이번 일을 맡겠다고 했을 때부터 각오하지 않았던가.

이런 돌발 상황이 발생할 것쯤은.

그가 우원식에게 물었다.

“꼭 확인해야겠어?”

“……뭐?”

“마차에 누가 탔는지 꼭 확인해야겠냐고? 우리가 지금 아주 바쁘거든.”

“네놈은 누구냐? 누구길래 그리 건방진 것이냐?”

“나? 진한표국 국주.”

비록 임시 신분이지만.

“감히 일개 표국주 주제에 건방지다. 네놈이 정말 표국주가 맞느냐?”

“우린 할 만큼 했다. 죄 없어.”

“……뭐?”

돈까지 주고 얌전히 지나갈 줄랬더니 감히 내 앞을 막아?

“녹림의 대채주라도 그럴 순 없지.”

쏴악,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답답한 날씨.

순간 부는 바람에 모두의 머리가 흩날렸다.

“……!”

남궁정혁이 검을 뽑아 휘둘렀기 때문이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제대로 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지만.

“무슨 개수작을…….”

우원식은 자기가 하고자 했던 말을 끝맺지 못했다.

스르륵, 목 위에서 미끄러진 그의 머리가 땅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방금 남궁정혁의 쾌검에 잘린 검이다.

“얘들아, 여기 산적들을 싹 쓸어버려라.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 남궁정혁이 가장 먼저 앞서서 산적들에게 달려갔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선빵을 날려라.

이것 또한 남궁정혁의 인생 원칙 중 하나였다.

이러면 승률이 높아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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