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78화
대호채 산적들을 처리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제대로 하기로 맘먹은 남궁정혁을 그들이 어찌 감당하리.
남궁정혁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산적들의 목이 공중으로 솟았다
그뿐인가.
위기에 처한 부부를 돕기 위해 남수단원들도 맹렬히 검을 휘둘렀다.
“저기 한 놈이 도망간다, 잡아라!”
전 현무단 5조원들의 실력은 이미 검증된 것이고.
“그러게 간다고 할 때 순순히 보내 주지, 왜 스스로 명을 단축하냐.”
자신감과 패기 하나만큼은 천하제일인 남수단의 초창기 단원, 정학우와 서문호, 양일남.
“능력을 인정받을 기회다. 모두 앞으로 나서라.”
게다가 기존 단원들에게 뒤처지기 싫은 나머지 8인회까지.
총 32명의 남수단은 산적들을 모두 죽였다.
일방적인 학살이기도 했다.
그들이 제아무리 족보 있는 산적이면 뭐 하나.
“우린 남수단이다.”
남궁세가에서, 아니 천하제일의 전투부대가 될 남수단이라고.
남궁정혁이 바닥에 쓰러진 산적들을 보았다.
“어차피 살아 있어 봤자 이 세상에 도움이 안 되는 자들이니.”
뜻하게 않게 땀을 흘렸지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세상의 평화에 조금은 기여했다고.
쫙, 검에 묻은 피를 뿌리려 검을 내리치는 그의 곁으로 정학우가 다가왔다.
“도련님, 계획 수정이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겠지.”
이만한 흔적을 남겼으니.
출발하기 전 지도에 일직선으로 쭉 줄을 그었다.
합비에서 복주까지.
최단 거리를 계산하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아무 소용 없게 됐지만.
“원래 계획대로라면 두 개의 산채를 더 지나야 하나?”
“그들이 현상금 때문이라도 눈이 벌게져서 진백현 부부를 찾고 있을 테니 다른 길로 둘러 가야죠.”
쳇, 하문탁 그 인간 얼굴 한번 보고 싶네.
지가 뭔 청순가련한 순애보 사랑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줄 아나?
오 년 전에 도망간 약혼자를 왜 아직도 찾는 거냐고.
그것도 돈까지 걸어서.
무림은 넓고 또라이는 많다지만, 이런 유형의 또라이는 또 처음 본다. 보통 이렇게 집착이 강한 자들은 어릴 때 사랑을 못 받고 자라서 그렇다던데 너도 고아냐?
엄마 젖 못 먹고 컸냐고.
괜히 짜증이 난 남궁정혁이 석두를 찾았다.
“이보게.”
그렇다고 인제 와서 그의 실수를 탓하는 것은 아니고.
첫 번째 계획, 최단 거리 주파가 무산됐으니 두 번째 계획을 실행해야 한다.
다소 둘러가지만.
“이 길로 가면 오 일은 더 가야 합니다.”
시일이 더 걸린다는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쩌겠나.
그렇게 가면 최소한 산적은 만나지 않는다는데.
“바로 출발하지.”
그들이 다시 길을 떠났다.
* * *
“도련님, 이거 입으십시오.”
대호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옷을 갈아입었다.
단순히 피 묻은 옷을 새 옷으로 갈아입은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옷으로.
남궁정혁이 서문호가 내민 옷을 내려다봤다.
정확히 말하면 옷 한편에 적힌 글씨를.
“……문?”
“이번엔 문원표국입니다.”
진한표국의 옷은 버렸다.
이제는 그 신분은 쓸 수가 없다.
노출되었으니.
대호채 산적들을 다 죽였다고는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이다.
혹시라도 도망친 산적이 있을 줄 모른다.
아니면 먼 곳에서 숨어서 지켜본 자가 있을 수도 있고.
그래서 다른 신분으로 위장했다.
“이런 상황까지 생각하다니, 옥화루주가 참 치밀합니다.”
세 번째 마차엔 필요할 때마다 갈아입으라고 이렇게 다른 옷이 한가득이다.
모두 묘화가 준비한 것, 아마 열 번쯤은 소속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남수단이 문원표국으로 신분을 위장한 지, 삼일.
“저곳에서 간단히 요기하고 가시죠.”
자는 시간까지 아껴 가며 길을 재촉한 그들은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손님이 많군.’
그 마을에 있는 유일한 객잔으로 들어가니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많다.
지금은 점심 식사 시간을 한참 지난 늦은 오후임에도.
음식 맛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맛있는 곳인가?
“삼일 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겠군요.”
“그러게, 난 이제 육포 진짜 질렸어.”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다.
음식을 조리하는 시간도 아까우니 말 위에서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음식만으로 겨우 허기만 면했다.
지금 이 객잔에 들른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이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가끔은 이렇게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도 먹어 줘야지.
안 그러면 식탐에 진심인 부하들이 항의하지 않을까?
자원봉사 하는데 밥도 제대로 안 준다고.
“자리가 없네요.”
“그러네.”
그렇다고 우리가 앉은 자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니고.
다만 우리가 원한 자리가 없었다.
“구석이 편한데.”
아무래도 백진현 부부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다 보니 맨 구석진 자리가 좋다.
고립된 곳이라 지키기도 쉽고 잘 보이지도 않으니.
근데 그 자리는 먼저 온 손님들이 다 자리를 잡고 있다.
“어쩔 수 없지. 저기 앉자.”
남궁정혁 일행이 객잔 한가운데 있는 식탁에 자리 잡았다.
“여기 류삼사.”
“난 계초면.”
언제 또 객잔에 들를지 모르니 먹고 싶은 거 마음껏 시키라고 했더니 진짜 마음껏 시켰다.
한 사람에 최소한 한 개씩 이상 요리를 시킨 것 같은데.
“너희들 그거 다 먹을 수 있겠냐?”
“배 속에 꽉꽉 눌러 담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진짜 저것들은 배 속에 식충이가 들었나.
먹는 거에 왜 그리 집착할까.
절레절레 고개 흔든, 남궁정혁의 눈에 백진현 부부의 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엄마, 아빠의 품에 조용히 안겨 있었다.
‘……잘 참네.’
이제 고작 다섯 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이다.
힘들다고 칭얼대거나 마차를 너무 오래 타고 있어서 심심하다고 할 만한 나이.
하지만 남궁정혁은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지금처럼 엄마, 아빠의 품에 착 달라붙어서 그저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며 작은 장난을 칠 뿐.
그렇다고 아직 어린 저들이 지금은 위급한 상황을 알 리도 없고 말이다.
‘……이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한 건가?’
남궁정혁이 그런 생각을 할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객잔으로 들어왔다.
그런 그들은 향해 점소이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빈자리가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애초에 그리 크지 않은 객잔에 서른 명이 넘는 단체 손님이 왔기 때문이다.
바로 남수단.
“다음에 오시면 맛있는 요리로 보답하겠습니다.”
양해를 구하는 그의 말에 사람들이 호쾌하게 대답했다.
“늦게 온 우리 잘못이지.”
“음식이 그렇게 맛있나? 담에 꼭 다시 오지.”
근데 뭘까?
느긋하게 말하는 저들의 태도에서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은.
“……!”
눈빛.
눈빛이다.
분명 웃고 있는데 눈은 웃고 있지 않다.
독사의 그것처럼 차갑다.
한 줄기 불순한 기운이 남궁정혁의 감각을 건드렸다.
그렇다면 저자들은…….
- 아무렇지도 않은 척, 표정 관리하고 내 말 잘 들어라.
남궁정혁이 남수단원들에게 전음을 날렸다.
그것도 서른 명이 단원들에게 전부 다.
참고로 말하면 이것도 전직 천마쯤 되니깐 할 수 있었던 거다.
내공을 미세하게 조종하여 말을 전달하는 전음을 이렇게 한꺼번에 날리는 것은 쉽지 않은 기술이다.
나 정도의 내공 응용력을 갖고 있지…… 아, 됐다.
지금 내 자랑이나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지.
- 방금 들어온 자들, 살수다.
남궁정혁의 직감이 말했다.
저들은 사람의 목숨을 전문적으로 노리는 살수라고.
“시킨 음식이 빨리 안 나오나?”
“우리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시켰으니 천천히 나올 것입니다.”
역시, 남궁건.
경험이 많다.
그가 능청스럽게 말하자 다른 단원들이 자연스럽게 받았다.
덕분에 여유가 생겼다.
오감을 동원에 이 식당 안에 저들의 다른 동료가 없는지 탐색할.
‘……!’
살수가 확실한 자가 넷, 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자가 여섯.
절대 아닐 것 같은 자가 한 명이다.
‘목표는…….’
백진현인가?
그들의 미세한 살기가 그에게로 향했다.
이쯤 되니 누가 청부했는지는 답 나오지.
‘이제는 살수까지 고용한 것인가?’
백진현이 밉기는 하겠지.
자신의 약혼녀를 채 갔으니.
그래도 하문탁 아저씨, 당신은 아니야.
당신이 하는 짓을 보니 꼭 백진현 아니더라도 당하연은 어떻게든 당신이랑은 결혼 안 했을 거라고.
“꺼억, 취하는구먼.”
대낮부터 술을 마신 듯 남궁정혁 맞은편, 탁자에 앉아 있던 남자 넷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지 자로 걷는 모습이 위태해 보인다 싶더니, 그들 중 한 명의 발이 꼬여 옆으로 넘어졌다.
“미안합니다…….”
그것이 신호였다.
방금 객잔에 들어온 자들과 남궁정혁이 살수로 짐작한 자들이 각자의 품속에서 철침을 꺼내 백진현에게 던졌다.
“호위대상부터 보호하라!”
“우리가 하겠소!”
하지만 통할 리가 있나.
저들이 살수인 것을 미리 부하들에게 알려 줬는데.
전 현무단 5조원들은 몸을 날려 백진현 부부를 보호했고, 나머지는 살수들을 공격했다.
이것 또한 남궁정혁이 사전에 지시한 거였다.
챙챙챙챙!
남수단원들의 검과 살수들의 무기가 부딪쳤다.
남수단원들이 유리한 싸움이기도 했고.
‘나에게 정체를 들킨 시점에서 이미 싸움은 끝났다.’
살수들이 무서운 이유는 무방비 상태에서 허를 찌르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하는 사이 순식간에 죽이지.
하지만 지금처럼 미리 알고 있었다면?
“커억.”
“크아아악!”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살수는 정면 대결에 약하거든.
그래서 기습을 하지.
그게 통하지 않으면…….
삐익!
“이번 작전은 실패다, 후퇴하라!”
저렇게 도망가고.
살수들이 죽은 동료의 시체는 버려두고 자기들끼리 도망쳤다.
남궁정혁은 그 뒤를 쫓지 않았고.
원래 성격대로라면 어떻게든 쫓아가서 작살을 내겠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으니까.
‘누구를 보호한다는 게 영 적성에는 맞지 않아.’
이거 은근히 답답한 일이었구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못 하니.
“가가, 괜찮으세요?”
설마, 다쳤나?
당하연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백진현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괜찮소, 내 피가 아니야.”
다행이다.
다른 사람이 흘린 피가 그의 얼굴에 튀었나 보다.
“이걸로 닦으십시오.”
뜻밖의 상황에 놀라 한쪽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던 점소이가, 흰 수건을 가져다 백진현에게 건네려 했다.
“속았구나.”
갑자기 그의 표정이 변했다.
조금 전까지의 순박했던 얼굴은 온데간데없다.
사악하게 변한 그가 흰 수건 밑에 있는 철침으로 백진현의 목을 찌르려 했다.
“……헉!”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린 남수단원들이 그런 그를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점소이의 철침은 어느새 백진현의 목에 거의 맞닿아 있었다.
“끄아아악!”
철저한 비명이 객잔에 울렸다.
하지만 백진현의 비명은 아니었다.
점소이가 짧아진 제 손을 부여잡고 지른 것이다.
남궁정혁이 그의 손목을 잘랐기 때문이다.
‘설마 했더니.’
이 객잔에서 가장 살수가 아닌 것 같은 자가 점소이었다.
객잔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으니.
그래서 더욱 조심했지.
뒤통수 맞지 않도록.
제 뒤통수는 소중히 여기는 남궁정혁이 점소이의 뒷머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우릴 기다린 것이냐? 여길 지날 줄 어떻게 알고.”
남궁정혁은 그것이 궁금했다.
살수가 객잔의 점소이로 위장까지 한 걸 보니 분명, 자신들이 이곳을 지날 걸 예측하고 있었다.
어떻게 알고?
하지만…….
주르르륵.
점소이의 입안에서 피가 흘렀다.
피 색깔이 유달리 붉은 걸 보니 입안에 숨겨 둔 독단을 삼킨 것 같다.
‘이번에도 하문탁이 돈 많이 썼겠는데.’
스스로 자결하는 걸 보니 살수로서 제대로 훈련받은 자들이다.
이런 자들을 고용하는 데는 비싸다.
“도련님, 아무래도 우리의 동선이 또 노출된 것 같습니다.”
“세 번째 길로 가자.”
살수들의 습격에 밥도 먹지 못하고 객잔을 떠났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 마을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세 번째 길에서도 습격당했다.
곧이어 바꾼 네 번째 길에서도.
대체 자신들이 향하는 방향을 어떻게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