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79화
다섯 번째 길로 들어선 남궁정혁 일행의 얼굴은 어두웠다.
이제는 그들도 아는 것이다.
적들의 습격이 우연이 아님을.
자신들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세 번째 길에서는 또 살수들이 습격했다.
이번에도 그들의 정체를 알아챈 남궁정혁의 눈치 덕분에 다행히 수월히 막을 수 있었다.
네 번째 습격은 조금 힘들었다.
이번에 붉은색 옷을 입은 적호문의 무인들이 직접 공격해 왔으니까.
꽤 고강한 자들이었다.
남수단원들이 일대일 대결에서 버거워할 만큼.
숫자도 더 많았고.
다행히 남궁정혁의 대활약 덕분에 그들을 물리칠 수 있었지만.
큰 부상자가 없는 게 다행이다.
“…….”
언제, 어디서 들이닥칠지 모르는 적보다 더욱 힘든 건, 적들이 자신들의 이동 경로를 어떻게 알고 있냐는 거다.
대체 그들이 무슨 수를 썼기에 남수단이 가는 곳마다 귀신처럼 나타날까?
“도련님, 아무래도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
“도련님, 적들의 추격을 뿌리칠 방도를 마련해야…….”
“아, 좀. 옆에서 되게 시끄럽네.”
안 그래도 그 생각 때문에 머리 아파 죽겠는데.
남궁정혁이 인상을 썼다.
‘젠장, 나도 같은 편을 의심하기는 싫다.’
하지만 상황이 명확하잖아.
놈들이 무슨 요상한 신기가 내려 앞을 내다보는 게 아닌 이상, 우리가 가는 길을 대체 어떻게 알고 쫓아오겠는가.
‘누가 알려 준 거지.’
현재 상황에는 합리적인 추론이다.
그럼 누가 알려 주느냐인데.
누굴까, 감히 누가 나의 자원봉사를 방해할까?
남궁정혁 일행은 총 서른여덟 명.
남수단이 서른두 명에 백진현 부부와 아이가 다섯 명.
게다가 하오문에서 붙여진 길잡이가 한 명.
‘진백현 부부가 스스로 위험을 자초할 리 없으니 빼고.’
남은 사람은 서른 세 명.
이 중에 적호문의 첩자가 있다는 건데…… 응?
‘……잠깐만.’
그 첩자가 꼭 사람이 아닐 수도 있잖아.
지금 남궁정혁 일행은 말을 멈추고 잠시 쉬고 있다.
낮에 말을 타고 너무 달려서 피곤한 것도 있거니와, 지금은 저녁 식사 시간.
체력도 보충하고 밥도 먹을 겸, 어느 야산 능선에서 말을 멈췄다.
그때 얼마 전 봤던 모습이 보였다.
‘……냄새?’
온종일 마차 안에만 있어 답답한 것일까?
마차에서 내린 진백현이 상의를 반쯤 내리자 당하연이 옆에서 희멀건 액체를 발라 주었다.
피부병 약이라는 그 액체.
근데 그 냄새가 아주 특이하다.
남궁정혁도 살면서 이런 냄새는 처음 맡는다.
청아하기도 하기도, 코를 훅 찌르는 강렬함이 있다.
아마도 여러 액체를 섞어서 그런 듯한데.
“…….”
남궁정혁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약 좀 봐도 될까요?”
거친 손길.
남궁정혁이 당하연의 손에서 그 약병을 빼듯이 건네받았다.
다소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행동.
“…….”
하지만 남궁정혁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걸 눈치챘는데 그들은 뭐라 하지는 않았다.
남궁정혁이 묻기 전까진.
“이 약이 어디서 났다고요?”
“제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출신이 출신인 만큼 제가 약초에 대해 잘 알거든요.”
하긴 무림 세가 중 사천당가만큼 약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곳은 드물 것이다.
독초를 더 잘 알긴 하지만.
‘……직접 만들었다면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짐작한 그 물건일 리 없다.
남궁정혁이 확인차 하나 더 물었다.
“약초는 직접 채취한 것이오?”
“제가 산과 들로 다니며 캐긴 했죠…….”
당하연이 말끝을 흘렸다.
그녀가 지금은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아이들 낳고 살고 있지만, 한땐 무림인 아니었는가.
그곳의 사정을 잘 아는.
남궁정혁이 이런 질문을 한 의도를 파악한 것이다.
“이것이 천리추종향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천리추총향은 그 향기가 천 리까지 이어진다는 액체를 말한다.
여기서 천 리는 상징적인 의미일 뿐, 물건의 성능에 따라 천 리보다 향이 더 많이 날아갈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 잔향을 새끼 때부터 훈련한 개나 담비 등, 후각이 예민한 동물을 이용해서 추적하는 것이고.
그래서 혹시나 해서 물어봤더니…… 약초까지 직접 캤다면 아니겠지.
“지금은 모든 게 의심스러워 확인 차 물어봤습니다…….”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당하연의 몸이 굳었다.
“왜 그러시오? 뭔가 짚이는 게 있으시오?”
“……아닌데, 정말 아닌데.”
거참, 답답하네.
뻐꾸기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지 말고 뭐가 아닌지 말 좀 해 보라고.
그렇다고 남의 부인을 채근할 수도 없는 일.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본 진백현이 직접 나섰다.
“부인, 무엇이 아니란 말이오?”
“이 약에 들어가는 약초 중에 육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좀처럼 구하기 힘든 희귀한 약초지요.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뭐?
이후, 그녀의 얘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당하연이 무림에서 활동하던 때 친분을 맺은 지인이 있단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그 사람과 친한 것도 잘 모른다고.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문에서 나온 뒤로는 따로 연락하지 않았단다.
행여 있을 불미스러운 일은 예방하기 위해.
그런 그녀에게 연락한 건 삼 주전.
당하연이 아무리 애써도 육각을 구할 수 없었기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적호문이 당신네 집에 쳐들어온 게 언제요?”
남궁정혁의 물음에 그녀가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이 약을 완성한 지 삼 일째였습니다.”
쯧쯧, 첩자가 여기 있었네.
괜히 같은 편을 의심했잖아.
그제야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은 진백현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희들 때문에 애써 주시는데 위험에 빠뜨렸군요.”
“지금 그걸 따질 상황이 아닙니다. 우선은 약부터 씻으시오.”
아까 이곳을 올라오면서 보니까 냇물이 흐르는 작은 시내가 있었다.
“밑에 내려가서 빡빡 문질러 씻으세요. 향기가 모두 날아가도록.”
양잿물로 씻으면 더욱 좋은데, 혹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나?
남궁정혁이 부하들에게 그렇게 물어보려 할 때였다.
“찍…… 찍…….”
뜬금없이 담비 한 마리가 나타났다.
어찌 생각하면 특별한 것도 없는 일이다.
이곳은 산 한복판이니, 주로 산에 사는 담비가 출몰할 수도 있지.
저 담비를 본 사람들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했지만.
“제기랄.”
남궁정혁은 욕까지 했다.
왜냐고?
“저 담비로 우릴 여기까지 추격했군.”
담비 목에 목줄이 메여 있었거든.
분명 주인이 있는 담비였다.
“이곳에서 어서 빨리 탈출…….”
쾅!
마치 폭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
한쪽에 있던 나무들이 우수수 넘어지더니, 그 흩날리는 먼지 사이로 일단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자들이기도 했다.
묵직한 존재감으로 보아하니 한 가닥 할 것 같은데.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건, 맨 앞에 서 있는 자였다.
‘……땅딸보?’
그는 키가 매우 작았다.
한 열 살 먹은 사내아이와 비슷할 정도?
눈가에 주름이 자글한 얼굴은 폭삭 삭았지만.
대충 봐도 오 십은 훌쩍 넘어 보인다.
‘취향 한번 특이하군.’
게다가 옷은 또 얼마나 화려한지.
그는 금색 바탕에 빨간색으로 수를 놓은 옷은 입고 있었다.
척 봐도 비쌀 것 같긴 한데…… 그리 잘 어울리지는 않았다
인물이 별로니 뭘 입어도 잘 어울리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있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고.
근데 저 사람을 당하연이 아는 듯했다.
저자를 본 순간 그녀의 입술이 시퍼래지더니,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의 저런 반응을 볼 때 아마도…….
“……하문탁, 저자가 직접 올 줄이야.”
오호라, 이번 사건의 원흉이 드디어 나타나셨구먼.
그렇다고 반가운 건 아니고.
오히려 곤혹스럽다.
‘……젠장.’
적호문의 정예병력을 끌고 왔나?
하문탁의 뒤에 서 있는 자들은 대략 오십 명.
아무리 봐도 남수단원들조차도 일대일 대결에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게다가 숫자까지 더 많으니.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으흐흐흐, 음침한 웃음을 지은 하문탁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섰다.
“당하연, 드디어 만났구나.”
으, 소름.
마치 삼십 년 만에 재회한 첫사랑 대하듯 애틋한 그의 말투를 들으니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옆에서 나도 듣는 그런데 당사자는 어떻겠는가.
그녀가 남편의 품에 쏙 안겼다.
내 남자는 여기 있다 이거지.
그 모습에 하문탁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놈 때문에 날 버리고 도망간 것이냐?”
글쎄, 꼭 백진현이 아니더라도 당신하고는 안 됐다니깐.
별로 일 거로 생각했지만, 직접 보니 더 별로네.
“내가 그놈보다 부족한 게 뭐란 말이냐.”
모든 게 다 부족하지만, 특히 자기 주제를 모르는 그 염치 아닐까?
더는 듣기 괴로운 남궁정혁도 앞으로 나섰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면 그 값을 해야지, 너무 양심 없는 거 아니냐?”
“네놈은 누구냐?”
“……나?”
그러고 보니 내가 누구지?
하도 많이 옷을 갈아입어서 나도 내가 누군지 헷갈리네.
고개를 숙이니 가슴팍에 주(酒)라 새겨진 글자가 보인다.
“주화표국주. 저들을 호위하고 있지.”
“곧 죽을 놈이란 소리군.”
“하나만 물어보자.”
“곧 죽을 놈에게 해 줄 말은 없다.”
저게 진짜 뒤지고 싶나?
내 검에는 노인 공경 따윈 없는데 말이야.
“당하연에게 그리 집착하는 이유가 뭐냐?”
자기 싫다고 도망갔으면 그냥 잊고 비슷한 나이 또래의 할머니나 만날 것이지, 왜 이리 쫓아다니는 거냐고.
“네놈이 사랑을 아냐? 상처받은 남자의 마음을 아냐고?”
또다시 온몸에 닭살이 돋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하문탁의 마음은 진심인 듯했다.
저렇게 울부짖는 걸 보니.
그래서 더 꼴 보기 싫지만.
남궁정혁이 뒤에 있는 정학우에게 살짝 물었다.
“적호문은 사도련 육대 문파 중에 하나라고 안 했나?”
“맞습니다.”
“근데 문주 상태가 왜 저런 거야? 머저리들 집단인가?”
“적호문은 출발은 상인연합체입니다. 자신들의 돈을 뜯어 가는 악덕 무인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합쳤죠. 그것이 점점 커지고 커져 현재의 적호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련 내에서는…….”
“가장 돈이 많다?”
“적호문이 사도련 육대 문파가 된 것은 무력이 강해서라기보다는 돈이 많아서입니다. 저들은 매년 사도련에 거액의 금액을 기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력이 아니라 금력을 휘두른다는 거군.
“그렇다고 저들의 무력을 얕볼 수도 없습니다. 사도련 육대 문파 내에서 약하다는 것이지, 힘이 부족한 곳은 절대 아닙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속닥일 때였다.
“지금이라도 나한테 오면 널 살려 주겠다.”
하문탁이 이렇게 말했지만, 당하연이 받아들일 리가 있나.
“네놈과 같이 사느니 차라리 죽어 버리겠다.”
그녀의 당연한 거절에, 하문탁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네년은 내가 직접 죽여 주겠다. 네년의 가족과 함께.”
가지지 못하면 부숴 버리겠다, 뭐 이런 건가.
하문탁이 검을 뽑으며 진백현 부부에게 다가가자, 남궁정혁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동작 그만, 내가 말 안 했던가. 저들을 호위하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안 보이겠지만, 내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
“비켜라, 지금 당장 저년의 몸을 갈기갈기 베고 싶으니…… 헉!”
깜짝 놀란 하문탁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허공에 흩날렸다.
남궁정혁이 다짜고짜 공격했기 때문이다.
‘……피했네.’
기습으로 목을 베려 했지만, 그런 요행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네놈이 정말 죽고 싶은가 보구나?”
“아니면 살려 주려고?”
“……뭐?”
“우리가 살려 주세요, 하고 빌면 살려 줄 거야?”
“…….”
“아니잖아. 그러면 최선을 다해 싸워야지.”
“주둥아리만 살았구나. 네놈부터 죽여 주마.”
하문탁이 검을 고쳐 쥐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볼품없는 외모와 달리 그 기세는 매우 날카로웠다.
그의 전신에서 퍼지는 살기에 섬뜩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괜히 적호문주가 된 건 아닌가.’
대충 상대해서는 이길 수 없는 자다.
남궁정혁의 검에서 파란색 검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