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80화 (80/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80화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에 실패하면 위축된다.

자존심도 잃고.

그런데 누군가 그 일에 대해 비난을 한다면?

“고작 그런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느냐?”

게다가 조롱까지 하네?

“하긴 네놈 주제에 뭘 똑바로 할 수 있겠냐.”

하물며 지금 핍박당하는 이는 무림인이다.

사천당가의 당천우.

이전에 옥화루에서 난동을 피웠던 사천당가 막내아들.

“왜? 불만 있냐? 눈빛이 불손하다.”

무림인은 자존심이 생명이건만.

상대의 모욕적인 발언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개를 숙였다.

감히 자신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상대였기 때문이다.

……아직은.

“그래도 네 주제는 아는구나.”

그 모습에 사천당가 둘째 아들, 단원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하찮은 놈은 하찮은 놈답게 살아야지.

애초에 당천우와 함께 합비에 온 그였다.

자신이 직접 나서 당하연을 잡으려고 했는데 당천우가 부탁했다.

자기에게 맡겨 달라고, 이 일은 자기가 하고 싶다고.

‘멍청한 놈, 하도 간곡히 요청하기에 맡겨 놨더니 실패를 해?’

그러니 부아가 치밀 수밖에.

당천우는 물론, 가문에서 도망친 당하연에게도.

“은혜도 모르는 년. 아버지가 자식이라고 받아 줬더니 감히 도망을 치다니.”

이래서 천한 것들은 안 돼.

사천당가의 가주, 당군악에게는 모두 네 명의 부인이 있었다.

모두 명문 무림 세가나 사천 호족의 딸들이었다.

하지만 당하연의 어머니는 그 네 명의 부인에 속하지 않았다.

당군악이 하룻밤 인연의 기녀에게서 낳은 딸이기 때문이다.

저기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당천우도.

둘은 쌍둥이였다.

외모는 닮지 않은 이란성 쌍둥이.

“너의 친누나라서 일부러 잡지 않은 것 아니냐?”

“그건 절대 아닙니다.”

당천우가 고개를 벌떡 들었다.

“당하연은 제 누나가 아닙니다.”

그녀가 가문을 떠난 후, 자신이 얼마나 큰 곤혹을 치렀는가.

기녀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가뜩이나 가문 내에서 입지가 좁은 그였다.

푸대접당했단 말이다.

당하연이 떠난 뒤에는 더욱 심해졌다.

가문 사람들이 자신의 등 뒤에다 대고 손가락질했다.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떠난 건 그녀인데 왜 자신이 그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가.

당하연에 대한 당천우의 원한은 깊어져만 갔다.

“제 손으로 꼭 당하연을 잡을 것입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십시오.”

“됐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나설 것이다.”

당원우가 벽 쪽으로 다가갔다.

“으으으으.”

거기에는 한 사람이 벽에 매달려 있었다.

손과 발에 단검이 꽂혀.

그보다 더욱 끔찍한 것은 그의 가슴이었다.

벗겨진 그의 가슴에는 작은 바늘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당원우의 짓이었다.

고문한 것이다.

그가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복주라…….”

벽에 매달린 사람은 하오문 소속이었다.

옥화루와 연결된 작은 장원의 주인.

그곳에서 남수단과 백진현 부부가 출발하지 않았던가.

“아는 것을 말해 주었으니 고통 없이 죽여 주마.”

백진현의 누나가 하오문 소속인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백진현 부부를 쫓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된 정보이기도 했다.

“표국으로 위장했다?”

당원우는 합비에 오자마자 부하들을 풀어 하오문과 관련된 장소부터 찾았다.

분명 그곳 어딘가에 백진현 부부가 숨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 장원을 알게 됐고.

“놈들은 추적을 피하고자 둘러가느라 늦게 올 것이다. 우리가 먼저 복주로 가서 기다린다.”

남궁정혁이 하문탁을 만나기 이틀 전의 일이었다.

*   *   *

오십이 넘도록 여자 손 한 번 못 잡아 봤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여자한테 아예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일을 우선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보다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한 야망을 품다 보니 여자를 접할 시간이 없었다.

자신의 큰 꿈을 아는지 여자들도 먼저 접근하지는 않더라고.

먼저 고백했으면 받아 줄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성공을 위해서 살다 보니 어느새 그렇게 바라던 적호문주가 되었다.

“…….”

그런데 뭘까?

이 헛헛한 마음은.

적호문주만 되면 세상 모든 것 다 가진 듯 행복할 줄 알았는데.

왜 마음 한구석이 휑하지?

우연히 당하연을 본 순간 깨달았다.

자신의 인생에서 부족한 게 무엇인지.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였어.”

바로 사천당가에 서신을 보냈다.

당하연과 결혼하고 싶다는 내용의.

미리 알아봤더니 사천당가 가주가 자식들을 정략결혼을 시키더라고.

그러면 자신은 자격이 충분하지.

적호문주로서의 풍부한 재력과 경륜이 있으니까.

나이 차이가 좀 많이 나긴 하지만 그게 대순가.

무림에 나만큼 큰 권력과 재산을 가진 신랑감이 어디 있겠는가.

사천당가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알아봤다.

결혼도 기꺼이 수락했다.

정과 사의 대통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사천당가가 가주가 결혼지참금으로 많은 돈을 요구하기는 했지만, 기꺼이 드려야지.

이제는 장인어른인데.

……나이는 비슷하지만.

그녀와 여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믿었는데

“뭐? 당하연이 도망쳤다고?”

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 후, 그녀를 오 년간 찾아다녔다.

부하들은 그녀를 잊고 다른 여자 만나라고 했지만 그게 쉽나.

자신의 영혼을 이미 그녀에게 바쳤는데.

그래서 겨우겨우 그녀를 다시 만났더니 뭐? 뭐라고?

“너랑 같이 사느니 차라리 죽어 버리겠다.”

그래, 죽여 주마.

날 두고 도망친 너희 한 쌍의 목을 베여 내 방에 둘 것이다.

상처받은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하여.

근데 한 놈이 아까부터 자꾸 막아선다.

사람 귀찮게.

게다가 일개 표국주 주제에 제법 세다.

벌써 자신의 공격을 수십 번 막았으니.

그것도 이제 곧 끝날 것 같긴 하지만.

“저리 비켜라.”

쾅, 벼락처럼 떨어진 하문탁의 검을 남궁정혁이 겨우 막았다.

“……젠장.”

뒤로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작은 몸집과는 상관없이 하문탁의 힘이 그만큼 뛰어났으니.

남궁정혁이 발바닥에 힘을 주고 버티려 했지만, 내공의 차이가 크다.

흥, 하문탁이 힘을 더 주자 남궁정혁이 순식간에 튕겨 나가 뒤에 있는 나무에 부딪혔다.

크으으윽.

남궁정혁이 당당히 일어서려 했지만, 몸 안에 남은 충격이 컸다.

그가 비틀거렸다.

‘생각보다 강적이다.’

벌써 하문탁과 백여 수 넘게 주고받았나?

남궁정혁의 명확한 열세였다.

버겁다 느껴질 만큼.

그동안은 내공이 부족해도 전직 천마로서의 능력과 경험으로 그 부족함을 메웠는데 그것이 통할 상대가 아니다.

하문탁도 죽음의 문턱을 여러 번 넘은 실전 경험이 풍부한 것 같다.

“……도련님.”

“……국주님.”

아, 쪽팔리네.

남수단원들의 걱정 어린 태도가 자신이 수세에 몰렸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아서.

“목숨 줄 한번 질기구나.”

하문탁이 연이어 공격했다.

그의 검이 흔들리며 현란한 움직임을 만들었다.

대충 생긴 것과 달리 무공은 정교하다.

남궁정혁이 보법을 밟으며 자신의 전신 사혈을 노리는 공격을 피하려 했지만, 쉽지 않다.

하문탁의 검은 끈질기고 집요했기 때문이다.

무공을 펼치는 주인의 성격을 증명이라도 하듯

‘징그러운 놈.’

결국, 남궁정혁의 몸에서 피가 튀었다.

급히 몸을 틀었지만, 하문탁의 검이 그의 몸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

열 받네.

그러고 보니 처음 아닌가.

환생 후, 이런 상처를 입은 건.

이거 흉터 남으면 지워지지도 않잖아.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어떻게 하면 널 잡아 족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남궁정혁이 대답에 하문탁이 햐, 비웃었다.

기막히다는 거지.

이제껏 수비만 하다 상처까지 입은 놈이 입만 살아 있다는 것이.

“멍청한 놈, 죽기 전에 이 몸이 한 말씀 해 주시지. 이 세상의 일은 의지만으로 될 수 없어. 네가 나를 아무리 이기고 싶다고 생각해도 이길 수 없다고.”

“아니, 있어.”

“……뭐?”

“이기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이길 수 있지.”

약간의 위험 부담은 감수해야겠지만.

‘설마 여기서 도박을 하게 될 줄은 몰랐네.’

남궁정혁이 자신의 단전을 매만졌다.

정확히 말하면 단전 옆에 있는 정기 덩어리를.

그곳에는 흡정괴마에게서 뺏은 정기 중 아직 흡수하지 못한 삼 할의 정기가 남아 있었다.

이것만 흡수한다면…….

‘넌 뒤지는 거지.’

되도록 무리하고 않고 살살 흡수하려고 했건만.

어쩔 수가 없나.

저기서 자신의 승리를 바라는 부하들의 기대를 외면할 순 없잖냐.

“이번엔 내가 공격하지. 그렇게 자신이 있으면 막아 봐라.”

풋, 비웃음 흘리는 하문탁에게 남궁정혁이 검을 앞으로 뻗었다

그렇다고 진짜 공격할 것 아니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공을 합칠 시간.

“…….”

남궁정혁이 내공이 전신 혈도를 달렸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멈추지 않는 말처럼 달리던 내공이 정기 덩어리를 꽝 때렸다.

‘…….’

부족하다.

아직은 단단한 껍데기가 깨어지지 않는다.

다시 한번 더.

이번에 더욱 강하게 때리자, 두 조각 난 정기 덩어리에서 정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저 기운들을 단전에 잘 갈무리하지 못한다면 자신은 전신이 터져 죽는다.

‘…….’

남궁정혁이 말 안 듣는 얘들 달래듯, 정기를 단전으로 유인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불과 눈 몇 번 뜨고 감을 정도의 순식간.

‘……오지 마라, 공격하지 마라.’

남궁정혁의 허세가 통한 것일까?

하문탁은 제자리에 서서 그의 공격을 기다릴 뿐, 별다른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뭐 하는 거냐? 왜 공격 안 해?”

하지만 상대도 최소한의 눈치는 있었다.

검을 뻗은 남궁정혁이 그 자리에서 미동도 안 그제야 이상함을 느꼈다.

“쫀 거냐? 그 자세 그대로 목만 날려 줘?”

“…….”

그래도 대답이 없네.

남궁정혁에게 다가간 하문탁이 그의 목덜미에 검을 날리는 순간.

“고맙다.”

“……?”

“기다려 줘서.”

하문탁이 순간 눈을 감았다.

남궁정혁의 검에서 눈부실 만큼의 검기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대체 이게 무슨…….”

순간적으로 뒤로 몸을 날렸지만, 남궁정혁의 검이 더 빨랐다.

하문탁의 몸에서도 피가 튀었다.

남궁정혁이 상처 입은 곳과 같은 자리였다.

“많이 놀랐어?”

“이, 이게 어떻게…….”

“내가 말했잖아, 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다고.”

검을 고쳐 쥔 남궁정혁이 돌진했다.

황당한 하문탁의 눈앞에서 뛰어올랐다.

쾅!

검기는 물론이거니와 체중까지 싫어 전력으로 내려치자 하문탁의 발목이 흙 속으로 쑥 박혔다.

바닥에 착지한 남궁정혁이 이번엔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크윽, 하문탁이 이번 공격도 황급히 막았지만, 몸이 옆으로 쓸려 나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땅바닥에 쓰러진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남궁정혁을 올려다보았다.

“……실력을 숨긴 것이더냐?”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갑자기 강해질 수 없다.

최소한 자신이 아는 무공 상식은 그랬다.

“그냥 그렇다고 생각해. 사실을 들어야 봐야 더 속상할 테니깐.”

쾅, 남궁정혁이 검을 내려찍자, 하문탁이 열심히 몸을 굴려 피했다.

그가 피한 자리에 먼지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살 만큼 살 양반이 더 살고는 싶은가 봐?”

“……네놈의 여유도 이젠 끝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하문탁의 검 끝에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검기가 맺혔다.

전력을 다하려는가 보다.

그리고 그건 남궁정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는 시간을 끌 수 없다.’

그의 전신 공력을 주살검에 집중시켰다.

“…….”

“…….”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노려본 두 사람이 돌격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콰쾅!!

남궁정혁은 서 있었다.

그의 발밑에는 하문탁이 쓰러져 있었고.

검풍에 베인 것일까?

그의 전신에 난 작은 상처에서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문주님! 괜찮으십니까?”

“정신 차리십시오!”

하문탁의 패배에 분노한 적호문들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고 달려왔다.

하지만 남궁정혁이 누군가.

검을 치켜드는 것만으로 그들의 진격을 막았다.

“지금이라면 살릴 수 있다.”

“……?”

“하문탁 말이다. 조금만 더 늦으면 몸속의 피가 모두 빠져나가 모두 죽을걸.”

“…….”

남궁정혁이 하문탁의 전신에 상처를 낸 이유였다.

“그래도 덤비고 싶다면…….”

꽝, 남궁정혁이 땅바닥을 치자, 흙이 한 움큼 파여 그 속의 돌들이 파편처럼 튀었다.

“모두 죽여 주마.”

남궁정혁의 그런 기세에 겁먹은 것일까, 아니면 문주의 목숨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오늘의 일을 잊지 않으마.”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적호문도들이 하문택을 둘러업고 서둘러 산에서 내려갔다.

남궁정혁은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고고히 서 있을 뿐이다.

“도련님, 해내실 줄 알았습니다.”

정학우가 다가와, 그의 어깨를 탁 치자.

주르륵.

남궁정혁의 입에서 한 줄기 핏물이 흘렀다.

“도련님, 왜 이러신 겁니까? 내상을 입을 겁니까?”

내가 이래서 무리 안 하려고 했는데.

내공과 정기를 억지로 합쳐 놓았더니 두 개의 기운이 충돌하여 단전이 찢어질 것 같다.

“도련님, 정신 차리세요. 제가 빨리 의원에게 모셔다드릴게요.”

적들이 모두 사라진 걸 확인한 남궁정혁이 그제야 눈을 감았다.

“……의원은 됐고 복주로, 꼭 복주로 가야 한다.”

정학우가 쓰러진 남궁정혁을 품에 안고 절규했다.

“그것이 도련님의 유언이라면 꼭 따르겠습니다.”

“…….”

나 아직 안 죽었어.

그리고 작게 말해.

네 목소리 듣고 적들이 다시 오면 어떡해.

이 생각을 마지막으로 남궁정혁은 정신을 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