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82화
마차를 출발시킨 남궁건의 귀로 하오문 대장의 전음이 또다시 들려왔다.
- 오래 버틸 순 없을 것이오. 그동안 최대한 멀리 도망가시오.
그가 힐끔 뒤돌아보았다.
“크으윽.”
“아아아악!”
초반의 우위는 잠시, 하오문 무사들이 속속 쓰러지고 있었다.
하오문과 사천당가 무인들의 실력 차이는 컸기 때문이다.
“당황하지 말고 침착히 대응하라.”
전력을 재정비한 사천당가의 반격에 하오문 무사들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하모문 대장의 말대로 진짜 오래 버티진 못할 것 같다.
‘혹시라도 살아남으면 꼭 좋은 술 한 잔 사리다.’
남수단 단원들이 더욱 빠르게 마차를 몰았다.
목숨 걸고 사천당가의 발목을 잡는 하오문 무사들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도망치기 일각쯤 됐을까?
선택의 순간이 왔다.
그들 앞에는 세 갈래 길이 있었다.
“어느 길로 갈까요? 세 곳 모두 복주로 통합니다.”
석두의 말에 잠시 고민한 남궁건이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세 방향으로 찢어진다.”
뜻밖의 말에 한 단원이 반발했다.
“전력을 분산하면 더 위험해지는 것 아닙니까?”
“지금은 싸우는 게 아니다, 도주하는 거지. 하나로 뭉쳐 있으면 한 번에 잡힐 수 있다.”
남궁건이 자신의 이러한 생각을 정학우와 백진현 부부에게 말했다.
“좋은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시죠.”
정학우는 기꺼이 승낙했고.
“그럼 아이들과도 헤어져야 하나요? 같이 갈 수 없 수는 없나요?”
진백현 부부는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최악의 상황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살아야죠.”
지금의 긴급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내키진 않지만 결국 수락했다.
이에 남궁건은 미리 생각한 대로 남수단을 세 개 조를 나눴다.
“첫째 가영이가 가는 조가 일 조, 둘째 나영이와 가는 조가 2조, 셋째 다영이와 가는 조가 3조다.”
인원은 각각 열 명씩.
1조에는 당하연, 2조에는 진백현, 3조에는 남궁정혁과 정학우가 함께 가기로 했다.
“복주 어디에서 만나면 됩니까?”
당하연의 물음에 석두가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이곳으로 오시면 됩니다.”
“……이곳은?”
그가 가리킨 곳은 뜻밖의 장소.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수군 요새 아닌가요?”
“맞습니다. 여기서 밀항선을 탑니다.”
“수군이 밀항선을 직접 운항하는 건 아닌데…… 하여튼 이곳으로 오시면 됩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일일이 설명할 시간이 없다.
이곳에 직접 오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
“몸조심하게.”
“복주에서 꼭 다시 만나요.”
서로의 안부를 걱정해 줄 시간마저 부족하다.
아마 지금쯤이면 하오문 무사들을 물리친 사천당가가 쫓아오고 있을 것이다.
남수단원은 세 갈래 방향으로 훑어졌다.
* * *
“뒤처지지 마라. 뒤처지는 놈은 버리고 간다.”
서문호가 속한 남수단 1조에서 무공이 가장 강한 사람은 문수였다.
절정고수이기도 한 그는 남수단에 가장 늦게 들어온 8인회 중 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가장 빨리 복주에 도착해야 한다.”
그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자신이 1조의 조장이라도 되는 양.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런 걸 따지지 않았다.
그럴 상황도 아니거니와 모두 아는 것이다.
그의 무공이 가장 강한걸.
그런 문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젠장. 이렇게 운이 없다니.”
언제 이렇게 된 것일까?
산사태라도 난 듯, 산에서 내려온 흙과 나무가 길을 막았다.
이러면 말이 지나갈 수도, 마차가 지나갈 수는 더더욱 없다.
“말에서 내려 뛰어간다.”
남수단 1조와 제 딸을 품에 안은 당하연이 경공을 펼쳤다.
하지만 곳곳에 함정처럼 자리 잡은 나무와 돌 때문에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문수, 이쪽으로 가는 것이 맞는가?”
흙이 길을 완전히 덮어, 복주로 가는 방향이 헷갈린다는 거다.
이럴 땐 석두라도 있으면 도움이 되련만, 그는 3조와 함께 갔다.
“문수, 무슨 말이라도 해 보게, 정말 이쪽이 맞아?”
그걸 자신이라고 어찌 알겠는가.
태어나서 이 지방은 처음 와 봤는데.
그래도 여태껏 친 큰소리가 있다.
인제 와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지.
“나만 믿고 따라와라.”
문수는 자신이 짐작한 방향으로 남수단 1조를 이끌었다.
그것이 아주 큰 실수였지만.
“……저, 저기.”
자신의 뒤에 있던 사람이 가리킨 곳을 본 곳 문수는 굳었다.
“그리 멀리 도망치지는 못했구나.”
사천당가의 무인들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그들도 남수단이 찢어진 것을 알고 일행을 나눠 추격 중이었다.
문수는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복주로 간다는 것이 그만 길을 헷갈려 돌아갔나?
“도, 도망쳐라.”
이어진 필사의 도주.
하지만 사천당가의 추격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다.
“지옥 끝까지 쫓아가마.”
당천우가 맨 앞에서 암기를 던지며 악착같이 쫓아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에게는 아이를 품에 안은 당하연까지 있지 않은가.
헉헉헉, 그녀는 거친 숨을 헐떡이며 점점 뒤로 쳐졌다.
그럴수록 사천당가 무인들과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고.
“이놈들 거의 다 잡았다.”
조급한 마음 탓일까?
당천우의 음성이 바로 등 뒤에서 느껴지는 듯했다.
“크아악.”
결국, 남수단 1조원 중 한 명이 바닥에 쓰러졌다.
보니 그의 등에 암기가 박혀 있었다.
게다가 더욱 절망스러운 건.
“……앞이 막혔다.”
큰 절벽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는 거다.
“문수, 이제 어쩌나?”
“아, 아니 그게…….”
“정신 차리게.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 줘야 할 것 아닌가?”
알아야 알려 주지.
앞을 절벽이고, 뒤에선 사천당가가 쫓아오는데 피할 곳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정신이 혼란한 그가 절벽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저쪽으로 가지.”
그곳에 움푹 파인 공간이 보였기 때문이다.
남수단 1조원들이 황급히 그곳으로 갔다.
1조에서 나이가 가장 어린 서문호는 바닥에 쓰러진 동료를 둘러업은 채, 맨 나중에 갔고.
“일단 입구를 메우세.”
입구는 좁았지만, 그 안에는 꽤 넓은 공간이 있었다.
남수단 1조가 돌을 쌓아 황급히 입구를 막았다.
이러면 사천당가 무인들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오래 버티진 못하겠지만.
“겨우 도망친 곳이 여기더냐? 구석으로 몰린 것이 쥐새끼들이 따로 없구나.”
밖에서 당천우가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분한 것은 그의 말을 부정할 수도, 대항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뒤는 막혔어, 더 도망갈 곳이 없어.”
진짜 독 안에 든 신세였다.
“우린 이제 어떡해야 하나?”
“…….”
“문수, 뭐라고 말 좀 해 봐.”
동료의 재촉에 문수가 버럭 화를 냈다.
“왜 자꾸 나한테 그러나? 스스로 생각해 보게, 우리가 어떡해야 하는지.”
“자네가 조장인 것처럼 앞장설 땐 언제고 인제 와서 이러면 어쩌냐, 그럼 처음부터 나서질 말든가.”
제기랄, 뭐라고 반박하고 싶지만,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러게 왜 괜히 나서 가지고 지금의 위기를 자초했는지.
문수가 자책할 때 밖에 있던 당천우가 소리쳤다.
“당하연과 그 자식만 내주면 된다.”
“…….”
“난 그들만 있으면 돼. 그럼 너희는 그냥 보내 주마.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 때문에 괜히 목숨 걸지 마라.”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았다.
더는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
둘 중 하나였다.
서천당가와 싸우다 죽느냐?
아니면 정말로 당하연과 그 딸을 포기하느냐?
“…….”
“…….”
남수단 1조원들이 서로 눈치를 살폈다.
누구 먼저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정답은 정해져 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것이다.
그때였다.
“……!”
“……!”
입구에 쌓아 둔 돌 틈 사이로 붉은 연기가 스며들었다.
“독무다, 한 모금만 들이마셔도 폐가 손상되는 치명적이 독이다.”
흡, 남수단 1조원들이 호흡을 멈추고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 모습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천당가 무인들이 비웃음을 흘렸다.
“푸하하하, 진짜로 나왔네.”
“멍청한 놈들, 그건 그냥 연기다. 색깔만 넣은 거다.”
저 새끼들이.
농락당한 1조원들이 주먹을 꽉 쥐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들보다 훨씬 수가 많은 사천당가 무인들이 암기를 겨누고 있는 상황.
맨 앞에 선 당천우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맺혔다.
“가라.”
“……?”
“솔직히 너희들도 그냥 가고 싶잖냐, 내숭 떨 거 없어. 그냥 가라고.”
“…….”
잠시 고민한 1조원들의 어깨가 축 쳐졌다.
문수를 시작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정의는 살아 있다.”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서문호였다.
“나 살겠다고, 어찌 위기에 처한 사람을 버리겠는가.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
풋, 그것을 허세라 생각한 당천우가 비웃음을 흘렸다.
“다른 사람 때문에 네가 죽겠다고?”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정의다.”
당하연 앞에 선 서문호가 검을 꺼냈다.
“내가 죽기 전까지는 이들 모녀에게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한다.”
그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갈 사람은 가시오, 간다 해도 그대들 탓은 하지 않을 터이니.”
“자네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일이네. 저들을 지킬 수 없다고.”
“제 신념은 지킬 수 있겠죠.”
검을 고쳐 쥔 서문호가 당당히 외쳤다.
“여기서 신념을 꺾으면,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닙니다.”
무모한 객기다.
세상 물정 모르는 막내의 허세.
남수단 1조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동자를 보니 그의 의지만은 진심이었다.
“……젠장.”
문수가 서문호 옆에 서서 검을 꺼냈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두고 갈 수는 없지, 쪽팔려서라도.”
그것이 시작이었다.
남수단 1조원 모두가 당하연 앞에 나란히 섰다.
“그래, 한번 해 보자.”
“죽을 땐 죽더라도 네놈들 팔 한쪽씩은 떼어 주마.”
그 모습에 당천우는 기가 찼지만.
눈 한 번 딱 감고 넘어가면 될 일에, 왜 목숨까지 건단 말인가.
슥, 손을 들어 올린 그가 부하들에게 공격 신호를 내리려던 때였다.
“이제 됐어요.”
당하연이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껏 저를 위해 수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걸 포기한 듯한 그녀의 발언에 서문호가 물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설마 저들에게 순순히 잡혀갈 건 아니시겠죠?”
“그건 아니에요.”
그녀가 자신의 품에 안긴 딸을 꼭 안았다.
“……우린 자결할 겁니다.”
“부인! 어찌 그런 말씀을…….”
“저들에게 잡혀가 봤자, 죽는 것만 못한 고문을 당할 게 뻔합니다. 여기서 차라리 제 손으로 죽는 게 더 나을 거예요.”
……딸 아이에게는 너무 미안하지만.
“저 때문에 여러분까지 목숨을 버릴 필요는 없어요. 꼭 살아서 돌아가세요.”
그녀의 비장한 태도에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느꼈다.
저 말은 진심이라고.
그건 당천우 또한 마찬가지.
“헛소리 마라, 네년은 내 손으로 잡아 가문으로 끌고 갈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받은 모욕을 그대로 돌려줄 것이다.
“…….”
“…….”
독기에 가득 찬 그의 눈을 당하연이 바라보았다.
“왜 그리 변한 것이냐? 예전엔 참 착한 아이였는데.”
“닥쳐라, 가문을 버린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큰 곤욕을 치렀는지 아느냐?”
“그래서 날 원망했느냐? 미워했느냐?”
“…….”
“미안하다.”
그 말을 끝으로 당하연의 손이 제 딸 머리 위로 갔다.
미안하다 아가, 나도 곧 뒤따라 가마…….
“그만!!”
그 모습에 당천우가 절규하듯 소리쳤다.
“……그만하란 말이다.”
분명 미웠는데, 반드시 내 손으로 복수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당하연이 스스로 죽으려는 모습을 보니 가슴 한구석이 왜 이리 아프단 말인가.
“……왜 혼자 갔느냐?”
“…….”
“가문을 떠날 때 왜 혼자 갔느냐 말이다. 함께 갈 수도 있었잖아.”
출신이 비천하다는 이유만으로 가문 내에서 천대받아 온 그들이었다.
그래서 서로를 더 의지하면서 자랐다.
당하연이 가문을 떠나기 전까진.
“그 남자와 지내는데, 내가 방해될 것 같더냐? 너희의 사이를 질투할 것 같더냐? 그래서 날 버려두고 간 것이냐?”
“……나도 너와 함께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왜? 무슨 이유 때문에?”
“집 근처에 낯선 이가 나타나도,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척을 해도 마음 졸이며 살 필요가 없으니까. 불안에 떨며 사느니 그래도 가문에 남아 있는 것이 낫다 생각했다. 그래서 같이 가자, 말할 수 없었다.”
“지금 그걸 핑계라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미웠지만.
가문에 남느니, 차라리 가슴 졸이며 함께 사는 것이 더 나았을 텐데
왜 혼자서 모든 걸 결정하냔 말이다.
게다가.
“……누나의 어릴 적 모습과 똑같구나.”
당하연의 품에 있는 조카를 보니,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떡 하나도 반으로 나눠 먹던 그 시절의 추억이
“…….”
당원우의 말대로 자신은 멍청한 놈인가 보다.
뜻한 것을 제대로 이룬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니.
당천우가 몸을 옆으로 틀었다.
“가라.”
“…….”
내 맘 변하기 전에 모두 꺼지란 말이다.”
그의 말에 여기까지 함께 온 사천당가 무인들이 반발했다.
“그럴 순 없습니다. 최소한 당하연이라도 잡아야 합니다.”
“내 말 못 들었느냐? 저들은 그냥 보내 준다.”
“당원우 도련님의 명령을 어기실 셈입니까?”
“당원우의 명령만 명령이고, 내 명령은 명령도 아니란 말이냐. 너희들도 날 무시하는 것이냐?”
“……이 일은 당원우 도련님께 꼭 보고하겠습니다.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실 겁니다.”
저들의 대화를 들은 남수단 1조원들이 서문호에게로 몰렸다.
“이틈에 빨리 가야 하는 것 아닐까요?”
“어느 방향으로 깔까요?”
어리둥절한 서문호가 되물었다.
“그걸 왜 저한테 묻습니까? 갑자기 존댓말은 왜 쓰고요?”
“이제부턴 당신이 남수단 1조 조장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