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83화
“오른쪽으로 가야 하네.”
“왼쪽으로 가야 해.”
남수단 2조에서 무공이 가장 강한 사람은 두 명이었다.
한 사람은 전인구.
다른 사람은 유석.
전인구는 현무단 5조 소속이었고, 유석은 늦게 들어온 8인회 중 한 명이었다.
그들은 복주로 가는 와중에 나온 갈림길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오른쪽으로 가야 복주로 통하네.”
“왼쪽으로 가도 상관없어.”
사실 어느 길로 가도 상관은 없었다.
둘 다 복주로 통하였으니.
석두가 그러지 않았나.
어느 방향이든 앞으로만 쭉 달리라고.
그러면 복주에 도착할 것이라고.
하지만 두 사람은 자신이 정한 곳으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른쪽 길이 내리막길이야. 이쪽으로 가면 더 빨리 갈 수 있어.”
“그 내리막이 우리에게만 내리막인가, 사천당가에게도 내리막이지.”
실력이 비슷한 그들은 서로가 2조의 조장이라도 되는 양, 목소리를 높였다.
한 산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살 수 없듯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자네는 앞을 내다보는 눈이 부족했다.”
전인구의 도발에 유석도 참지 않았다.
“그러는 자네야말로 뭣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건 여전하군.”
사실 두 사람이 이렇게 다투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예전 회식 때, 술을 마시다 사소한 일로 언쟁이 붙어 얼굴 붉힌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앙금이 남아 있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지기 싫을 수밖에.
그러니 그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속이 타들어 가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사천당가의 무인들을 뒤에서 자신들을 열심히 쫓아오고 있을 텐데.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오, 어느 쪽으로 갈지 빨리 결정해 주시오.”
“오른쪽이지.”
“왼쪽이오.”
아, 씨팔.
진짜 답답하네.
두 사람의 의미 없는 힘겨루기에 짜증이 폭발한 사람이 있었다.
“걍 오른쪽으로 가.”
성격이 다혈질인 양일남이었다.
“싸울 거면 사천당가 놈들이랑 싸우지, 왜 우리 편끼리 싸우고 지랄이야. 아니면 두 사람 다 버리고 간다.”
그의 말에 전인구와 우석, 두 사람이 발끈했다.
“뭐야? 나이도 어린놈이 어디서 반말이냐?”
“여기서 가장 나이가 어리면 예의를 지켜라,”
“그 말은 단주님한테 해 보시든가. 나이로 따지면 단주님이 제일 어린데.”
“네가 단주님이랑 같냐?”
“예의 없는 걸 보니 부모님께 가정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모양이다.”
“뭐야?”
저 새끼가 어린 적 돌아가신 부모님까지 욕해?
양일남의 분노가 더욱 폭발하려는 순간이었다.
“이놈들, 거기 서서 뭐 하냐? 우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냐?”
남수단 2조가 왔던 길, 저쪽에서 사천당가 무인들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빠, 빨리 가세.”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
“지금 그게 중요한가, 아무 때로나 가.”
백진현과 그의 딸 나영이가 탄 마차가 다시 출발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늦은걸.
사천당가 무인들은 목표를 두 번 놓칠 만큼 어수룩하지 않았다.
그들의 악착같은 추격에 남수단 2조와 사천당가 무인들의 사이는 서서히 좁혀졌다.
“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는다.”
양일남이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처음엔 흐릿하게 보이던 그들의 얼굴이 이제는 선명히 보인다.
그만큼 거리가 가까워진 것이다.
“저 다리를 건너라.”
길을 따라 도망치다 보니 큰 강을 지나는 다리가 보였다.
“우리가 먼저 지난 다음, 이 다리를 부수세. 그럼 놈들이 더는 쫓아오지 못할 거야.”
“좋은 생각이지만, 돌다리를 어떻게 부순단 말인가?”
양일남이 다리를 건너는 중에 쿵, 바닥을 찍어 보았다.
“…….”
아무런 진동도 느껴지지 않는다.
필요 이상으로 튼튼한 것이다.
이 정도 다리를 부수려면 폭약이나, 검강으로 잘라야 할 것 같다.
참고로 남수단 2조에서 검강을 쓸 수 있는 고수는 없다.
최소 화경급 이상의 고수는 되어야 검강 발현이 가능하다.
‘……씨펄, 어쩔 수 없나?’
스승님이 쓸데없이 나대지 말라고 하셨는데.
남수단 2조, 맨 앞에서 말을 타고 달리던 그가 훌쩍 뛰어내렸다.
“자네, 뭐 하는가? 왜 말에서 내려?”
“먼저 가. 여긴 내가 막고 있을 테니.”
양일남이 자신의 일행이 다 지나가길 기다린 후, 다리 한복판에 섰다.
“자네 혼자서 막을 수 있는 전력이 아냐. 다시 말에 타라.”
“타면? 다 같이 잡히자고?”
누군 이러고 싶어서 이러나.
누군가는 해야 하니 이러는 거지.
더구나 익힌 무공을 생각하면 자신에게 맞는 일이고.
“빨리 가. 내 맘 바뀌기 전에 빨리 가라고.”
남수단 2조원에게 외친 그가 등에 멘 활을 꺼내 전방을 겨눴다.
피슝, 직선으로 화살이 막 다리 위로 올라선 사천당가 무인의 허벅지에 꽂혔다.
또다시, 한 방.
이번엔 처음 맞았던 무인 뒷사람에게로 날아갔다.
역시나 명중.
화살이 어깨에 꽂혔다.
그 모습에 사천당가 무인들이 머뭇거리며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다리 위로 올라선 순간 화살이 날아올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암기를 던지자니 다리 사이의 거리가 멀어 닿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사천당가의 무인이라니. 비켜라.”
그런 부하들의 모습이 답답했을까?
추격대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사천당가 갈독당의 당주, 당운이었다.
“얼마든지 쏴 보아라. 내가 막아 줄 테니.”
피슝, 경공을 펼치며 빠르게 다가오는 당운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첫 방은 실패.
그가 단검으로 가슴 한복판을 겨눈 화살을 쳐 냈다.
두 번째도 실패.
이번엔 머리를 노렸더니 역시 쳐 냈다.
그렇게 세 번, 네 번 연속해서 활을 쐈지만, 당운은 계속 방어했다.
“내 손이 너의 목에 닿는 순간, 넌 죽는다.”
그는 어느새 다리의 절반까지 건넌 상황.
활을 겨눈 양일남을 보고 크크크, 비웃음을 흘렸다.
“소용없다니까, 너희 활은 나에게 통하지 않는다.”
피융, 또다시 화살이 날아왔다.
그는 팔을 휘둘러 그것을 쳐 냈다.
“거봐라, 통하지…….”
크윽, 당운이 황급히 몸을 틀었다.
쳐 낸 화살 뒤에 또 다른 화살이 있었던 것이다.
속사였다.
양일남은 두 개의 화살을 연속해서 쏘았다.
“네놈이 감히…….”
당운의 어깨에 피가 흘렀다.
황급히 피했기에 관통상을 겨우 면했지만 스치고 지나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갈기갈기 찢어 죽여 주마!”
분노한 당운이 고함과 함께 달려왔다.
양일남의 손도 쉬지 않고 연신 움직였다.
피슝피슝.
하지만 전력을 다한 당운의 방어의 모두 튕겨져 나갔다.
이제는 그가 일장 앞까지 도착한 상황.
“…….”
꾸욱, 양일남이 시위를 메긴 화살 끝을 비틀었다.
“회전시라는 것이다. 이것도 막아 봐라.”
비록 사정거리는 일반 화살보다 짧지만, 더욱 강한 파괴력을 발휘하는.
피슈웅, 화살이 빠르게 회전하며 당운의 미간을 노리며 날아갔다.
“헉!”
그가 깜짝 놀랐다.
거의 다 잡은 상대라고 생각해서 방심하고 있었더니, 갑자기 이런 활을 쏠 줄이야.
지금 화살은 그 어느 화살보다 빠르고 강해 보였다.
“잔재주가 뛰어나구나.”
노련한 당운은 알고 있었다.
지금 화살을 피하기엔 늦었다는 걸.
그렇다고 미간에 화살을 맞고 죽을 수는 없는 노릇.
그가 왼손을 앞으로 쫙 뻗었다.
“크으윽.”
화살이 손바닥을 관통했지만, 그뿐이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으니.
무공을 펼치는 데도 지장 없고.
“드디어 잡았구나.”
양일남의 얼굴 위로 당운의 단검이 떨어지려고 할 때였다.
팅!!
누군가가 검을 휘둘러 그 공격을 막았다.
양일남이 고개를 돌려보니.
“왜 다시 온 것이오?”
복주로 간 줄 알았던 전인구였다.
“한 손보다는 두 손이 막기 쉽지.”
“두 손보다는 세 손이 낫고.”
게다가 유석까지 왔다.
“아니, 가다 보니 미안하더라고.”
“우리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됐는데 자네만 혼자 두고 도망간다는 것이.”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나 보오?”
“하여튼 저 싸가지, 말 좀 이쁘게 하면 어디 덧나나?”
“자네 혼날 줄 알아…… 물론 여기서 살아남았을 때 얘기지만.”
세 사람이 전방을 주시했다.
당운의 등 뒤로 사천당가의 무사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우와아아아.”
“네놈들은 다 죽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최소한 동료들이 복주까지 무사히 도착할 시간을 벌어야 할 텐데.
양일남이 그런 결심을 할 때였다.
‘……응? 뭐지?’
등 뒤에서 마차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복주로 가야 할 남수단 2조가 다시 되돌아오고 있었다.
‘……설마.’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복주로 향하는 길을 사천당가 무인들이 막고 있나?
그래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나?
“……?”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저들의 여유 있는 표정이다.
왜 다들 웃고 있지?
궁지에 몰려 단체로 미쳤나?
“이보게, 인제 그만 싸워도 되네.”
음…… 확실히 미친 것 같다.
당장 눈앞에서 적들이 무기를 들고 달려오는데 싸우지 말라니……!
‘……저 사람은?’
양일남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남수단 2조 뒤로 정천맹 옷을 입은 사람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맨 앞에는.
‘남궁강혁?’
분명 그다.
예전에 비양도에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지?
“팽 부대주.”
남궁강혁이 눈짓하자 정천의용대의 부단주인 팽세웅이 소리쳤다.
“모두 싸움을 멈춰라.”
그는 덩치가 큰 만큼, 목소리도 컸다.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에 모두가 한순간 그 움직임을 멈출 만큼.
“지금부터 무기를 드는 자는 정천의용대의 적으로 간주하겠다.”
천하의 사천당가라도 정천의용대의 이름을 무시할 순 없다.
그곳은 중원 최고의 후기지수들만 모아 놓은 정천맹의 주력 전투부대 중 한 곳 아닌가.
더구나 저곳의 대주는 남궁세가 소속.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눈치챈 당운이 남궁강혁 앞에 섰다.
“저는 사천당가 갈독당의 당주, 당운입니다.”
“남궁강혁이오.”
“저희가 이곳에 온 이유는…….”
“아, 그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소. 여기에 오는 동안 들었으니.”
남궁강혁은 근처에서 임무를 마치고 정천맹으로 복귀 중이었다.
그러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남수단 2조와 우연히 마주쳤고.
표국 옷을 입은 사람들이 황급히 도망치고 있기에 웬 산적들한테 쫓기고 있나 했더니, 본가의 무사였다.
그래서 남궁강혁도 놀랐지만.
남궁세가의 무사가 신분까지 위장하며 할 일이 대체 뭔가 싶어서.
“들었다니 아시겠군요.”
“뭘 말이오?”
“명분은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당운의 시선이 마차에 꽂혔다.
“저자들은 본 세가의 죄인들입니다. 조용히 데려가게 해 주십시오.”
“명분이라…….”
무림에서는 명분이 중요하긴 하다.
그것이 일의 정당성을 확보해 주니까.
“데려가게.”
남궁강혁의 말에 남수단 2조원들이 반발했다.
“공자님, 어찌 저들을 버리려 하십니까?”
“이대로 끌려가면 저들은 가혹한 고문을 당할 것입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당운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정천의용대의 대주가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 다행이군.
그가 마차로 다가가려고 할 때였다.
“근데…….”
남궁강혁이 당운 앞으로 손을 내렸다.
“듣자 하니 내 동생, 아니 남궁정혁이 많이 다쳤다고?”
“……네?”
“그것 때문에 내 가슴이 아주, 아니 조금 아파. 당원우인지 뭔지 하고 싸우다가 쓰려졌다고. 내 말이 맞나?”
“……저희 도련님하고 싸우다 쓰러진 게 아니라 혼자서 쓰러졌습니다.”
“어쨌든 정혁이가 쓰러진 건 사실이라는 거네.”
“그게 저희 잘못도 아니고…….”
“애초에 당원우가 쫓아오지만 않았으면 정혁이하고 만난 일도 없었을 거 아닌가.”
그렇게 따지면 남궁정혁이 도망가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쫓아갈 일도 없었겠지요.
당운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분노로 이글이글 불타는 남궁강혁의 눈을 보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검까지 뽑아 드는.
“자신 있으면 데려가.”
“……네?”
“날 이길 자신이 있으면 저들을 데려가라고.”
“아니, 명분은 저희에게 있는데…….”
“나도 명분은 있다.”
“무슨 명분이요?”
“내 친구야, 진백현이 내 친구라고.”
이런 얘기는 처음 듣는다.
한낱 악공인 진백현이 어찌 남궁세가 첫째 아들을 안단 말인가.
“방금 처음 만났지만, 친구 맺기로 했어, 그러니 친구 맞다. 강호의 도리가 살아 있는 한 친구의 어려움을 모른 척할 순 없고.”
“아니, 그런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내 인간관계까지 너한테 허락 맡아야 하냐? 어? 그래야 하냐고.”
그 모습을 보면서 양일남은 생각했다.
생긴 것도 닮았지만, 하는 짓은 더 닮았다고.
형제가 어찌 그리 똑같은지.
가주님 걱정이 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