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84화
“머저리 같은 놈들. 그걸 놓쳐, 단 한 명도 잡지 못하고 모두 다?”
분노한 당원우의 호통에 사천당가 무인들은 고개를 숙였다.
명령을 완수하지 못한 자신들의 잘못을 알고 때문이다.
그렇다고 불만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 사람들은 속으로 당원우를 욕했다.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잘못부터 돌아보세요.’
‘자기도 못 잡았으면 왜 우리만 탓하냐?’
사실 당원우도 목표를 놓쳤다.
그는 남수단 3조를 쫓아갔지만, 남궁건의 수완이 어찌 좋은지 뒤꽁무니도 구경하지 못했다.
그러니 일방적으로 욕먹는 사천당가의 무인들은 억울할 수밖에.
하지만 어쩌겠나.
당원우는 사천당가의 둘째 아들.
향후 가문을 이끌어 갈 미래 권력이다.
사천당가에서 계속 녹봉을 받아먹고 살려면 치사하고 더러워도 참아야지.
이런 마음을 들켰다간 무슨 행패를 당하려고.
저 봐라.
당원우에게 거역한 자의 비참한 말로를.
“으으으으…….”
“네놈만 아니었어도, 당하연은 잡았을 거 아니냐?”
퍽퍽, 당원우가 바닥에 쓰러진 자의 옆구리를 세게 찼다.
당천우였다.
그는 당원우의 폭력에서 기절한 후, 막 깨어난 참이었다.
또다시 기절할 것 같지만.
“애초에 네놈을 믿는 것이 아니었거늘. 내 앞에서 한 행동은 거짓이었느냐?”
“…….”
당천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몸을 동그랗게 말고 당원우의 거친 발길질을 감내할 뿐.
이 정도는 이미 예상하지 않았던가.
당원우가 이렇게 나오리란 걸.
됐다. 나 혼자 견디면, 누나의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다.
그 의연한 모습이 더욱 당원우를 화나게 했지만.
“어떠한 핑계조차 댈 생각이 없는 것이냐? 이곳에서 정말 죽고 싶냐.”
분노한 당원우의 폭력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당천우가 다시 기절할 때까지.
그러고도 화가 다 풀리지 않았는지 당원우는 씩씩거렸다.
“이제 어떡합니까? 이대로 저들은 순순히 보내 주실 겁니까?”
남궁강혁의 억지 위협에 순순히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당운이 조심스레 묻자, 당원우가 답했다.
“그들은 반드시 잡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놓친 그들은 어찌 잡을 것입니까? 방도가 있습니까?”
있지, 있고말고.
혹시나 해 대비해 놓았더니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이야.
이래서 사람은 꼼꼼해야 해.
스스로 감탄한 당원우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 *
남수단원은 간절히 바랐다.
자신들이 무사히 복주에 닿길.
동료들이 무사히 복주에 도착하길.
근데 지금 그 소망이 이루어졌다.
방금 수군 기지로 들어온 남수단 1조를 마지막으로 남수단 세 개가 모두 복주에 도착했다.
세 개로 나뉘었던 남수단이 다시 하나로 뭉친 것이다.
“팔다리 멀쩡한 걸 보니 안 다쳤나 봐.”
“왠지 실망한 것 같다? 내가 무사해서 불만이냐?”
그것도 이리 시시한 농담을 던질 만큼 상처 하나 없이.
아, 다친 사람이 한 명 있긴 하지.
그 사람 때문에 여기까지 온 남궁강혁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정혁이는 어디 있나? 보이지 않는데.”
그는 정천의용대를 먼저 보내고 남수단 2조와 함께 이곳까지 왔다.
“단주님이 그렇게 걱정되십니까?”
양일남의 물음에 그가 황급히 변명했다.
“걱, 걱정은 무슨, 내가 왜 그놈을 걱정한단 말이냐.”
“그럼 여기까지는 왜 쫓아 온 것입니까? 정천의용대와 같이 가던 길 계속 가시지 않고.”
“흠흠, 그 녀석이 또 무슨 사고를 치지 않을까 염려되어서 그렇다.”
“…….”
흐음, 양일남이 자신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자 남궁강혁의 말이 더욱 빨라졌다.
“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뭐? 자원봉사? 정혁이가 쓸데없이 나서 일을 만들지 않았냐. 모르는 사람 일에 지가 나서긴 왜 나서.”
“뭐, 대주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별로 믿음은 안 가지만 말이죠.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수군 기지 구석에 있는 큰 창고였다.
석두가 미리 알려 준 암호를 쪽문 지키던 병사에게 말하니 이리로 안내해 줬다.
그들의 능숙한 모습을 볼 때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
“이 각 후입니다.”
수군 기지에 도착한 이후, 어딘가로 사라졌던 석두가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밀항선은 이 각 후에 출발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 남궁건이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진짜 이곳에서 밀항선이 출발한단 말인가? 어떻게?”
밀항은 불법적인 일.
병사들이 지키는 군사 시설에 어찌 밀항선이 출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이것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석우의 말에 따르면 밀항선을 운항하는 조직의 우두머리가 전직 수군이란다.
그곳도 꽤 높은 자리에 있던.
그가 자신의 돈과 인맥으로 이곳 수군들을 구워삶았다나.
그래서 수군도 밀항선이 오고 가는 것을 모른 척해 준단다.
“등잔 밑이 가장 어두운 법입니다, 수군 기지에서 밀항이 이루어질지 그 누가 예상이나 하겠습니까.”
참 이 나라도 썩긴 썩었군.
조정의 군사들이 불법적인 일에 가담하다니.
남궁건이 고개를 흔들 때였다.
“저기 오는군요. 저 사람들이 진백현 부부를 보내 줄…….”
석두가 굳은 표정으로 말을 멈췄다.
창고 안으로 들어온 밀항선 조직의 우두머리 뒤로 무기를 든 병사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석두가 그동안 여러 번 이곳을 방문했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다.
하하하, 애써 표정 관리를 한 그가 밀항선 조직의 우두머리, 조만식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
사람이 물었으면 그에 대한 대답이 있어야 하건만, 조만식을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이자들이네, 이자들을 포위하게.”
그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명령까지 내렸다.
일반 백성일 뿐일 그의 말을 지휘관이 진짜로 따랐다.
“저자들은 포위하라.”
척척척척, 병사들이 남수단을 가운데 두고 둥글게 섰다.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뜻밖의 상황 전개에 당황한 석두가 항의하자 조만식이 오히려 큰소리쳤다.
“그러는 자네야말로 왜 그랬나?”
“뭘 말입니까?”
“왜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을 적으로 만들어서 날 모진 사람으로 만드냐고.”
“그게 무슨…….”
석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푸하하하하, 병사들 뒤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근데 목소리가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네?
결코, 반갑지 않은 목소리이기도 하고.
“길을 터라.”
양쪽으로 갈라진 병사들 사이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등장했다.
당원우와 사천당가의 무인들이었다.
“다시 만나게 되는군.”
지가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줄 아는 양, 당원우가 한껏 오만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게 이곳에 일찍 왔어야지. 나처럼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한테 시간을 주면 되나.”
진백현 부부가 복주로 향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당원우는 의문을 느꼈다.
이 넓은 중원에서 왜 하필 복주일까 하고.
그가 직접 고문한 장원 주인도 그 사실만은 모르더라고.
그래서 복주에 도착하자마자 일부 부하들을 풀어 조사해 봤다.
이곳에 대체 무엇이 있기에 진백현 부부가 오고 있는지.
그러다 알게 된 뜻밖의 사실.
‘이곳에 밀항선이 있을 줄이야.’
그것도 수군 기지에서 출발하는.
동시에 모든 의문이 풀렸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았고.
그는 밀항선 조직의 우두머리, 조만식을 바로 찾아갔다.
의외로 얘기가 잘 통하는 사람이라더라고.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여기서 기다릴 걸 그랬다.”
당천우의 사악한 눈빛에 몸서리친 석두가 조만식에게 항의했다.
“우릴 배신한 것이오?”
“무슨 소리인가? 난 배신한 적 없어.”
“이게 배신이 아니면…….”
“내가 믿는 건 오직 돈이야, 돈 많이 주는 편이 내 편이지.”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시오?”
이를 꽉 깨문 석두가 계속 소리쳤다.
“당신 사업도 이제 끝이오, 내가 밖으로 나가면 지금의 일을 꼭 다 까발리겠소. 그럼 누가 당신의 배를 타겠소.”
“아니, 자네와 자네 동료는 여기서 나갈 수 없네.”
“……뭐요?”
“무단 침입죄로 이곳 감옥에 갇힐 거거든.”
조만식이 당원우에게 말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 주었으니, 약조한 돈은 꼭 주시오.”
당천우가 조만식에게 요구한 건 간단했다.
진백현 부부가 오면 그들을 배에 태우지 말고 붙잡아 두라고.
그러면 큰돈을 주겠다고.
돈 때문에 수군을 그만두고 불법적인 일을 하는 조만식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지.
당장에 수락했다.
“그러게 좋은 말로 했을 때 들었으면 좋았잖아, 진백현 부부만 내놓았어도 감옥에 갈 일은 없었을 것을.”
으흐흐흐, 자신이 이번 분쟁의 최종승자라도 된 듯, 득의 만만한 웃음을 흘리는 그를 보고 남궁건은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대체 이 일을 어찌 해결해야 할까 싶어서.
순간 어떤 생각이 떠오른 그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돈을 원한다면 더 주겠소.”
남궁건이 조만식에게 제의했다.
“우리가 당원우, 저자가 준다고 한 돈보다 더 주겠다고.”
돈이라면 이쪽도 만만찮게 있다.
아니, 오히려 더 많지.
남수단에는 든든한 돈줄, 왕소단이 있으니.
하지만 조만식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돈을 좋아하긴 하지만, 최소한의 분간은 할 줄 알지.”
“……?”
“이번 일은 밖으로 퍼져 나가선 안 돼. 내가 하는 일은 신용도가 생명이라.”
젠장, 주먹을 꽉 쥔 그가 남궁강혁 옆으로 다가갔다.
혹시 그라면 현재 상황을 타개할 어떤 해결책이 있나 싶어서.
“공자님, 어떡해야 할까요?”
“글쎄…….”
난감하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남궁정혁 얼굴이나 보려고 따라왔더니 이런 일에 휘말릴 줄이야.
음…… 눈앞의 당원우와 사천당가 무인들을 쓸어버리는 건 일도 아닌데 병사들이 문제다.
‘저들을 건드리면 일이 복잡해진단 말이야.’
그도 조정과 직접 충돌하는 것만은 꺼려진다.
자칫 가문에도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저들은 내가 직접 잡아 주겠소.”
당원우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려고 할 때였다.
“시끄러워 죽겠네.”
쾅, 마차 문이 부서질 듯 세차게 열렸다.
남궁정혁이 발로 찼기 때문이다.
“좀 조용히 하면 안 돼? 시끄러워서 운기 조식에 집중할 수가 없잖아.”
마차에서 내린 그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가뜩이나 몸도 안 좋은데 이러다 주화입마에라도 빠지면 너희가 책임질 거야? 책임질 거냐고?”
남궁정혁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지휘관이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놈부터 잡아라, 너무 시끄럽다.”
병사들이 다가오자, 남궁정혁의 한쪽 눈썹 끝이 올라갔다.
“날 잡겠다고? 내가 누군 줄 알고.”
“네놈이 누군데?”
“네가 함부로 잡을 수 없는 사람.”
남궁정혁도 마차 안에서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다 들었다.
그래도 자신의 상황이 더 급하기에 웬만해선 관여 안 하려고 했더니.
“이놈, 순순히 오랏줄을 받아라.”
남궁정혁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병사의 멱살을 잡아 지휘관에게 던졌다.
“헉!”
겨우 피한 지휘관이 모든 병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감히 병사에게 손을 대다니, 저놈을 잡아라, 가장 먼저 옥에 잡아넣어야 할 놈이다.”
그 말에 남궁정혁을 더욱 광분하게 했지만.
“이것들이 진짜 뒤지고 싶나.”
그가 자신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병사들을 때려눕혔다.
한방에 한 명.
남궁정혁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병사들이 쓰러졌다.
그 광경에 남궁강혁이 다급히 외쳤다.
“병사들을 때려선 안 된다.”
“나는 때려도 돼.”
“……뭐?”
“나는 때려도 된다고.”
저 위에 어느 높으신 분이 그랬거든.
내가 때리면 그놈이 탐관오리라고.
* * *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느냐?”
복주 수군기지의 총사령관 양보석은 자기도 모르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부하의 보고가 어이없었기 때문이다.
“뭐? 누가 뭘 하고 있다고?”
“무림인이 기지 내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에게 맞아 기절한 병사가 벌써 백 명이 넘습니다.”
“근데 그자가 뭐라고 한다고?”
대답하기 민망한 듯한 부하가 망설이다 말했다.
“이곳에서 가장 높은 사람 빨리 나오라고 합니다…… 뒈지기 싫으면.”
양보석이 군에 입문한 지 벌써 삼십 년.
군사 기지 내에서 무림인이 난동을 피운단 얘기는 처음 듣는다.
근데 그런 미친놈이 왜 하필 오늘 나타났다는 말인가.
올 거면 어제나, 차라리 내일 올 것이지.
그럼 전군을 동원해서라도 본때를 보여 줬을 텐데.
“왜, 무슨 일이 있는가?”
맞은편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양보석의 고개가 절로 내려갔다.
상대는 그만큼 높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대감.”
왜 하필 병조판서, 유학성 대감이 기지를 방문한 날 온 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