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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88화 (88/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88화

“단주님, 저곳이 제갈세가입니다.”

서문호가 손가락을 가리킨 곳을 보았다.

저잣거리에 한참은 떨어진 외곽, 어느 야산 밑에 제갈세가가 있었다.

‘이곳을 이렇게 와 볼 줄이야.’

사실 전생에서도 이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을 수도 있다.

소림사 다음 목표가 제갈세가였으니.

내가 남궁도의 검에 쓰러지지만 않았어도 이곳 역시 활활 불타올랐을 것이다.

“남궁세가보다는 규모가 작네요. 조용하기도 하고요.”

제갈세가는 무공도 무공이지만, 기관진식과 진법으로 유명하다.

머리가 좋은 집안인 거지.

남궁정혁의 시선이 주살검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이것을 비양도에 숨겨 놓은 사람도 제갈세가 사람이었다.

‘제갈헌, 그 사람은 아직 살아 있을까?’

스스로 생각하고도 말이 되지 않는 듯, 남궁정혁은 고개를 저었다.

오십 년 전, 정천맹의 군사였으니 그때 이미 중년은 훌쩍 넘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백 살 가까이 되었다는 것이고.

무병장수에 집착하는 천수마의,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 빼고는 그렇게 오래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단주님, 우리가 너무 일찍 온 거 아닐까요?”

방금 말한 사람은 양일남이다.

이곳, 제갈세가에는 서문호와 양일남, 두 사람만 데리고 왔다.

마음 같아서는 정학우도 함께 오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이제는 남수단도 어느 정도 체계도 잡힌 조직.

단주인 내가 자리를 비웠으니 누군가는 그 빈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그 사람이 부단주인 정학우이고.

남궁건에게 옆에서 잘 보필하라 일러뒀으니, 두 사람이 알아서 잘 남수단을 잘 보듬고 있겠지.

“오룡회는 아직 삼 일이나 남았습니다.”

“설마 제갈세가에서 우리가 일찍 도착했다고 쫓아내기야 하겠냐.”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괜히 마음 한구석이 초조하다.

그래서 좀 서둘렀더니 예상된 날짜보다 이른 시일에 도착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제갈세가 정문에 도착하자, 그곳을 지키는 무인이 물었다.

“저희는 남궁세가에서 왔습니다.”

서문호의 말에 무인이 의아하다는 눈빛을 띠었다.

하지만 그 의아함을 충분히 이해한다.

‘옷이 어색하다 이건가?’

우리는 지금, 얼마 전 새로 맞춘 남수단 전용 의복을 입고 있었다.

그것이 이상하겠지, 남궁세가 소속임을 자처하는 자들이 빨간색 옷을 입고 있으니.

게다가 소속을 나타내는 문양도 없고.

하지만 서문호가 남궁세가의 일원임을 증명하는 패를 내밀자, 무인이 고개를 숙였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   *   *

“아가씨, 아가씨.”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제갈소현은 문 뒤에서 고개를 쑥 내밀었다.

“왜?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을 ᄄᅠᆯ어?”

“왔습니다. 아가씨께서 오매불망 기다리시던 남궁세가 무인들이 왔다고요.”

“벌써?”

자신을 섬기는 춘실이가 왜 저리 급하게 방으로 뛰어들어오나 했더니 과연 그럴 만한 일이로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벌써 도착했다니.

헤벌쭉 벌어지는 입을 황급히 다문 그녀가 도도하게 말했다.

“오매불망 기다린 건 아니야.”

“……네?”

“그냥 이곳까지 무사히 올까, 조금 걱정한 거지, 막 엄청 기다린 건 아니라고.”

춘실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루에도 수 번씩 남궁세가 공자님 얘기를 했으면서 인제 와서 내숭은.

“남궁세가 무인은 누가 왔다고 하더냐? 강혁 오라버니도 당연히 왔겠지?”

“글쎄요,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창궁검제 어르신의 아들이 왔다고는 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강혁 오라버니야.”

정천맹에서 남궁강혁이 누누이 밝히지 않았던가.

자신은 아버지의 외동아들이라고.

더구나 이번 일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그가 오는 게 당연하지.

“지금 어디 있냐? 당장 만나러 가야겠다.”

“아가씨, 잠시만요.”

“왜에?”

한시라도 빨리 남궁강혁을 만나 보고 싶은데 왜 잡는 거야.

“머리부터 단정히 묶으시죠. 입술 옆에 말라붙은 침 자국도 닦으시고요.”

점심 먹고 잠이 쏟아져 눈을 잠시 붙였더니 겉모습이 흐트러졌나 보다.

큰일 날 뻔했네.

그녀가 동경을 보면서 외모를 가다듬었다.

“이제 괜찮아?”

“이쁘십니다.”

제갈세가의 천방지축 말괄량이, 제갈소현이 남궁세가의 숙소가 있는 별채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서 뜻밖의 광경을 보게 되는데.

‘어머.’

놀란 제갈소현이 나무 뒤로 황급히 몸을 숨겼다.

“그것밖에 못 하냐? 팔뚝에 힘을 주고 더욱 힘차게 검을 내리그어라.”

“단주님, 이곳에 방금 도착했는데 좀 쉬면 안 될까요? 갑자기 웬 수련입니까?”

“너희들은 이제 남수단 조장이다. 그에 걸맞은 실력을 지녀야 한다. 자기 아랫사람보다 못한 실력이 부끄럽지도 않냐?”

남궁세가 무인들이 숙소 앞에서 수련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날씨가 더운지 윗옷까지 벗고.

그러니 꽃다운 처녀, 제갈소현은 부끄러울 수밖에.

“…….”

손으로 눈을 가렸던 그녀의 손가락이 슬며시 벌어졌다.

‘……강혁 오라버니가 살이 빠졌나?’

왠지 예전보다 호리호리해진 것 같은데.

사실 그녀도 원래는 정천의용대 소속이었다.

남궁강혁과 함께 활동했었다.

임무를 수행하다 다쳤기 때문에 지금은 그만뒀지만.

별로 큰 부상도 아니었지만, 제갈세가주인 아버지는 난리가 쳤다.

당장 정천의용대를 그만두라고 성화를 냈다.

뒤늦게 얻은 늦둥이 딸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제갈소현은 그만두지 않겠다고 버텼다.

집으로 돌아오라는 서신을 몇 차례 씹자 아버지가 그녀를 직접 잡으러 정천맹까지 왔다.

“무림의 평화를 지키게 해 주세요.”

그녀가 울부짖었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결국, 뒷덜미가 잡힌 그녀는 집으로 질질 끌려 올 수밖에 없었다.

그게 벌써 육 개월 전의 일.

그러니 남궁강혁을 남몰래 흠모하는 그녀가 그가 얼마나 보고 싶었겠는가.

‘이런 식으로 다시 재회하게 될 줄을 몰랐지만.’

몸은 참 좋네.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한 게 보기 참 좋아.

제갈소현이 손가락 틈 사이로 남궁강혁(?)의 옆모습을 열심히 훔쳐보고 있을 때였다.

‘……응?’

남궁강혁(?)이 돌연 몸을 틀어 검기를 촤악 펼쳤다.

그 방향이 자신이 있는 곳.

제갈소현이 몸을 숨긴 나무가 반으로 갈라졌다.

그녀도 재빨리 허리를 숙이지 않았다면 저 나무처럼 반 토막 났을 것이다.

“쥐새끼치곤 너무 크군.”

현재의 상황을 만든 이가 제갈소현에게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

……강혁 오라버니가 아닌가.

제갈소현이 눈을 끔벅끔벅 떴다.

지금까지 자신이 착각한 것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누구세요?”

“그러는 넌 누구냐? 왜 남의 수련을 몰래 훔쳐본 것이냐?”

다짜고짜 검기를 날린 데 이어, 초면에 반말?

너무 무례하잖아.

제갈소현이 발끈했다.

“갑자기 공격하면 어떡해? 죽을 뻔했잖아!”

“죽으라고 한 것이다. 피할 줄 알았으면 좀 더 세게 할 걸 그랬군.”

“뭐야?”

“염탐질하려거든 그만한 각오는 했어야지.”

“이…….”

발끈하려던 제갈소현이 말을 멈추고 남궁정혁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대체 이 사람은 누군데 남궁강혁과 이렇게 닮은 걸까?

“강혁 오라버니와는 무슨 관계냐?”

“강혁 오라버니? 그놈과 아는 사이냐?”

“그놈? 지금 강혁 오라버니를 욕한 것이냐?”

제갈소현이 또다시 발끈하려는 찰나, 서문호가 둘 사이에 섰다.

싸움을 말리기 위해서였다.

“이분은 남궁세가 막내아들, 남궁정혁 님이십니다. 남궁강혁 님의 동생입니다.”

동생?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

분명 강혁 오라버니가 그러지 않았는가.

자신은 외동아들이라고.

‘그렇다고 저 얘기를 부정할 순 없단 말이야.’

그렇지 않다면 두 사람의 외모가 저렇게 비슷할 리 없다.

다만 분위기는 완전 달랐다.

남궁강혁이 단정하고 반듯한 모범 무인이라면 지금 눈앞에 있는 사내는 표정이나 말투가 불량스럽다.

꼭 뒷골목 한량처럼.

형제라면서 두 사람의 기질이 어찌 저리 다를 수 있을까?

“강혁 오라버니는 안 오는 것이냐?”

“그분이 바빠서 저희 단주님이 대신 온 겁니다.”

남궁정혁이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제갈소현을 추궁했다.

“그러는 넌 누구냐니깐.”

“나는 제갈소현이다. 제갈세가 막내딸이지.”

대답한 제갈소현이 빙글 몸을 돌렸다.

남궁강혁이 여기 없다는 걸 안 이상 더는 머무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경공까지 펼쳐 온 길을 되돌아갔다.

‘흥, 동생이라는 놈이 형 반의반도 못하군.’

저렇게 건방진 사내는 딱 질색이야.

남궁정혁에 대한 제갈소현의 첫인상은 최악이었다.

“본인이 잘못해 놓고 사과 한마디 없이 내빼다니, 버르장머리가 없군.”

그것은 남궁정혁 또한 마찬가지였다.

*   *   *

제갈세가를 출발하기 전, 남궁도에게 물어보았다.

이십 년 전, 소림사에서 천마를 죽인 후, 그 시체를 어떻게 했냐고.

- 그곳에 내버려 두고 소림사에서 내려왔다.

별일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그의 담담한 어투가 내 신경을 건드렸지만, 너그러운 내가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다.

사실 적이었던 그가 내 시체를 꼭 챙길 의무도 아니니.

‘그럼 내 시체를 따로 챙긴 사람이 있단 말인데.’

그게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천마총은 천마의 무덤이니 그 안에 당연히 나의 시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 나와 함께 소림사로 갔던 부하들도 모두 남궁도의 검에 죽었을 터인데.

그랬기 때문에 소림사 가장 안쪽에 있던 나와 남궁도가 대결할 수 있었다.

“오대세가의 후기지수들은 가주실로 오라 합니다.”

지금 천마총의 위치를 밝힐 다섯 무인이 드디어 다 모였다.

제일 늦게 온 사천당가를 마지막으로 오대세가의 다섯 후기지수가 모두 제갈세가에 도착했다.

그들이 제갈세가 가주실에서 만났다.

“이제야 지도를 맞춰 볼 수 있겠군. 자넨 천마총의 위치가 어딘지 궁금하지 않나?”

지금 나에게 말을 건넨 사내는 하북팽가 둘째 아들, 팽세호다.

그는 나를 처음 봤을 때부터 친근한 척 다가왔었다.

자기 형이 정천의용대 부대주, 팽세웅이라나.

그래서 우리는 인연이 있단다.

형들끼리 친분이 있으니 우리도 친하게 지내자고.

근데 내가 또 그런 건 싫어하거든.

괜히 친한 척하면서 옆에서 들러붙는 거.

“저리 떨어져라. 네가 옆에 있으니 덥다.”

팽세호는 덩치가 아주 크다.

남궁정혁이 싸늘한 말투로 말했지만, 팽세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되받아쳤다.

“내가 옆에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오늘 날씨가 더운 걸세.”

긍정적인 건지, 무신경한 건지.

고개를 절레절레 젖던 남궁정혁이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흥!”

제갈소현이 코웃음 치더니 고개를 휙, 돌렸다.

아니, 쟤는 또 왜 저래?

내가 자기한테 무슨 잘못을 했다고?

삼 일 전에 검기 날린 일로 아직도 삐쳤나?

‘그건 당신이 잘못한 거잖아.’

남의 수련을 몰래 훔쳐보는 건 무림에서 금기시되는 일이다.

근데 아직도 자기 잘못을 모르고 있다니.

저리 뻔뻔한 여자를 누가 데려갈까?

“다섯 명이 다 모였으니 지도를 맞춰 봅시다.”

황보세가의 황보인욱이 제안했다.

그와는 따로 대화를 길게 나눠 보진 않았다.

어제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은 게 다였다.

그에 대한 첫인상은 순하고 착한 사람?

남궁세가 숙소로 먼저 찾아와 인사를 건넨 걸 보면 기본 예절이 뛰어난 사람 같다.

“뭣들 하시오, 지도를 꺼내 탁자 위로 올리시오.”

가장 늦게 온 주제에 가장 목소리가 큰 사람은 사천당가의 당병우였다.

사천당가 첫째 아들이란다.

‘당원우, 그 머저리는 오지 않았네.’

사실 궁금했다.

사천당가에서는 누가 올지?

혹시나 당원우와의 재회가 성사되지는 않을까 기대했지만, 다른 사람이 왔다.

당병우가 남궁정혁을 보며 말했다.

“뭐 하시오? 지도를 꺼내라니까.”

근데 영 말투가 곱지 못하다.

말꼬리를 올리는 게 시비조다.

게다가 눈빛은 또 어떻고.

눈을 부라리는 게,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아마 동생한테서 복주에서 있었던 일을 들은 모양인데…… 너도 당원우처럼 뒤지게 맞고 싶냐?

“하하하. 오대세가를 이끌어 갈 인재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을 보니 내 맘이 다 뿌듯하다.”

남궁정혁과 당병우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오고 가자, 제갈세가 가주 제갈황이 중재에 나섰다.

“젊다는 것은 좋은 것이야. 이리도 의욕이 넘치다니 말이야.”

그는 내 생각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다.

허연 머리로 볼 때 아마 환갑도 넘지 않았을까?

아직은 젊은 제갈소현 때문에 그가 남궁도와 비슷한 연배이지 않을까 추측했었는데 아니다.

제갈소현을 늦게 낳았나 보군.

“자, 각자 가지고 온 지도를 꺼내 보게.”

오대세가의 후기지수들이 각자의 품에서 천마총의 지도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직선으로 반듯하게 잘린 지도는 아니었다.

어떤 건 사선으로, 어떤 건 둥글게 잘린 것도 있었다.

제갈황이 신중한 표정으로 그것들은 하나로 맞추었다.

“……이곳이군.”

지도의 정중앙, 그곳에 무덤 표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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