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89화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사람 중에 천마총의 위치가 가장 궁금한 사람은 누구일까?
당연히 남궁정혁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본인의 무덤이니.
그래서일까.
남궁정혁은 고개를 앞으로 쑥 빼, 지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곳이 어딘지 찾을 수 있겠습니까?”
지도에는 구체적인 지명까진 적혀 있지 않았다.
단지 무덤을 중심으로 주변의 길과 산 등, 지형이 그려져 있을 뿐.
그의 물음에 제갈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말게, 제갈세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라도 이곳이 어딘지 찾아낼 테니까. 다들 알고 있지 않나, 우리 집안이 머리 하나만큼은 오대세가 제일인걸.”
제갈소현을 보면 예외가 있는 것도 같지만, 어쨌든 제갈세가가 명석한 두뇌로 이름 높은 가문인 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하루 이틀이면 이곳이 어딘지 금방 찾을 수 있을 걸세.”
호언장담한 제갈황이 제안했다.
“이렇게 한자리에 다 모인 것도 처음이니 같이 식사나 할까?”
무림에서 제갈세가주의 말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것도 제갈세가 한복판에서.
오대세가 후기지수들은 제갈황의 말대로 식사를 하기 위해 가주실 근처에 있는 연회장으로 이동했다.
그건 남궁정혁 역시도 마찬가지.
지난 삼 일간 이곳 밥을 먹어 봤는데 제법 입맛에 맞더라고.
음식 맛만 보면 남궁세가보다 훨씬 더 나았다.
그리고 그건 남궁정혁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여기 밥이 정말 맛있습니다. 숙수의 실력이 좋은가 봅니다.”
머리 좋은 놈들이 요리도 잘하는 것일까?
팽세호도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 오물거렸다.
황보인욱도 음식이 입에 맞는지 접시에 코를 대고 먹었다.
하지만 단 한 명, 당병우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입도 대지 않았다.
그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밥맛 떨어지게.
그런 그의 삐딱한 마음을 제갈황이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었다.
“자네,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가?”
“우리가 지금 이렇게 밥이나 먹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식사 시간에 밥 안 먹고 뭘 해야 하는가?”
“저희는 곧 천마총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곳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인 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가 오대세가 후기지수들을 한 명, 한 명 훑어보았다.
남궁정혁을 볼 때는 그 시선이 좀 더 오래 머물렀다.
“오룡회주를 뽑아야 합니다.”
“……오룡회주?”
“서로 다른 다섯 세력이 동시에 천마총에 들어가면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무리를 이끌 대장이 필요합니다.”
“좋은 생각이네.”
당원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제갈황이 다른 후기지수들을 보았다.
“이 생각에 동의하는가?”
“좋습니다. 대장이 있어야 조직의 기강이 바로 서는 법이죠.”
“효율적인 움직임을 위해서라도 대장은 필요합니다.”
“그럼 대장을 뽑는 방식을 정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제갈황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궁정혁을 제외한 세 명의 후기지수들마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거야 이미 정해져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대련이죠. 가장 강한 자가 오룡회주입니다.”
그들의 눈에 자기가 반드시 오룡회주가 되어야겠다는 호승심이 번들거렸다.
“말 나온 김에 지금 당장 회주를 뽑죠.”
팽세웅의 말을 제갈소현이 받았다.
“본가에서 가장 큰 연무장이 중앙석탑 옆에 있어요. 그리로 가죠.”
서로의 눈을 쳐다본 그들은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연회장 밖을 나갔다.
“…….”
남궁정혁은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음식을 먹을 뿐이지만.
그런 그에게 제갈황이 물었다.
“자넨 안 가나?”
“아직 밥을 다 먹지 못했습니다.”
애송이들 사이에서 대장 되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밥까지 굶겠는가.
남궁정혁은 느긋하게 식사에 집중했다.
“…….”
제갈황은 그런 그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한창 끓어오르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할 젊은 나이에 식탐을 부리다니.
저 나이 때는 밥 먹는 것이나 자는 것보다 싸우는 것을 더 좋아할 때 아닌가.
방금 이곳을 뛰쳐나간 후기지수들처럼 말이다.
심지어는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남궁세가주가 이번 일을 쉽게 생각하나?’
사안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당연히 남궁세가 첫째 아들, 남궁강혁이 왔었어야 한다.
그런데 막내아들이라니.
남궁세가와 제갈세가 사이의 거리가 제법 멀지만, 그에 대한 악명은 얼핏 들은 적이 있다.
가문의 명예를 좀먹는 칠푼이라는.
게다가 다른 세가들은 모두 열 명의 무인들 딱 맞춰 보냈는데 남궁세가는 딸랑 세 명만 보내지 않았나.
‘그렇게 안 봤는데 남궁도, 경솔한 면이 있어.’
……아니면 저기 혼자서 꾸역꾸역 음식을 넘기는 자식을 그만큼 믿든지.
과연 어느 쪽일까?
“천천히 먹고 오게.”
제갈황도 후기지수들의 대련을 보기 위해 연회장 밖을 나갔다.
한 식경 후.
꺼억, 남궁정혁이 만족스러운 포만감을 느끼며 자신의 아랫배를 두드렸다.
‘나도 이제 가 볼까?’
음식이 맛있어서 과식했다.
소화하는 데는 식후 대련 만한 것도 없지.
남궁정혁도 중앙석탑 옆에 있다는 연무장으로 가려고 했다.
“…….”
근데 거기가 어디야?
남궁세가만큼은 아니지만 제갈세가도 그 명성에 부끄럽지 않게 부지가 매우 넓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약도라도 그려 달라고 할 걸 그랬나?
발길 닿는 대로 갔다가 길을 잃고 헤맬 수도.
근처를 둘러보니 다행히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화초를 다듬는 걸 보니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인가 보다.
남궁정혁이 그 노인에게 다가갔다.
“중앙석탑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에구구, 허리 편 노인이 남궁정혁의 빤히 쳐다보았다.
“누구슈?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얼굴에 검버섯이 가득한 노인에게 남궁정혁이 답했다.
“남궁세가의 온 남궁정혁입니다. 오룡회 참석차 왔습니다.”
“이 길을 따라 저쪽으로 가 보슈. 그러면 찾는 곳이 나올 거요.”
“감사합니다.”
남궁정혁은 노인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쭉 걸어갔다.
노인이 자신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본다는 것도 모른 체.
“……주살검이 주인을 다시 만났구나.”
그가 낮게 읊조릴 때였다.
노인을 본 한 남자가 송구스럽다는 듯 황급히 다가왔다.
“대가주님, 이런 일은 저희에게 맡기시라니까요. 왜 직접 하십니까?”
“허허허, 방에만 있기 심심해 소일거리 삼아 하는 것이니 신경 쓸 필요 없네.”
제갈세가의 전대 가주, 제갈헌은 남궁정혁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남궁세가라, 또 한 마리의 이무기가 웅크리고 있었구나.’
과연 용이 될 수 있을 것인가.
* * *
중앙연못 옆에 있는 연무장에 도착하니 팽세호의 커다란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남궁정혁을 본 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졌어.”
“……?”
“제갈소현한테 졌다고.”
그의 말에 따르면 네 명의 후기지수들이 제비뽑기를 했단다.
그렇게 결정된 비무 상대가 팽세호와 제갈소현, 당병우와 황보인욱이라고.
“그동안 열심히 수련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직 부족한가 봐.”
언제나 쾌활하던 팽세호가 기죽은 모습을 보니 낯설다.
그렇다고 위로해 주고 싶진 않지만.
내가 거의 모든 영역에 재능을 타고 났지만, 그쪽 방면은 별로 재주가 없어서.
이 기회에 팽세호의 말수가 좀 줄어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것이고.
그나저나 제갈소현의 무공 실력이 예상보다 훨씬 더 뛰어난가 보다.
제 몸집보다 두 배는 큰 팽세호를 이긴 것을 보면.
남궁정혁이 고개 돌리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흥!”
이번에도 역시 그녀가 콧방귀를 뀌었다.
콧구멍이 작아서 숨쉬기 힘드냐?
내가 코 평수 좀 넓혀 줘?
“황보세가의 무공이 이것 밖에 안 되느냐?”
“이제부터 제대로 보여 줄 테니 각오하시오.”
연무장에서는 당병우와 황보인욱의 대결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바닥을 박차고 도약한 황보인권이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황보세가는 권의 명가, 그의 주먹에는 강맹한 기운이 실려 있었다.
“황보세가의 자랑, 벽력신권이오.”
황보인욱의 공격에 당병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고개를 옆으로 눕혀 주먹을 피한 후, 반격을 시작했다.
촤악, 그가 손목을 흔들자 채찍이 뱀처럼 움직였다.
땅바닥을 기어간 채찍이 황보인욱 앞에서 뛰어올랐다.
헛, 자신의 턱을 노리는 상대의 공격에 그가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당병우의 공격은 집요했다.
그의 채찍이 독사의 독니처럼 황보인욱을 쫓았다.
그가 황급히 보법을 펼쳐 채찍으로부터 도망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당병우는 그의 팔을 길게 연장한 것처럼 채찍을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그 길이도, 그 속도도 매우 위협적이었다.
곧 황보인욱의 옷 이곳저곳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
그가 분한 마음에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자신도 아는 것이다.
지금 농락당하고 있다는 것을.
채찍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눈으로 좇기 어려울 만큼.
당병우가 진심으로 했다면 지금 찢어진 것은 옷이 아니라 피부였을 것이다.
슥, 굳은 표정의 황보인욱이 주먹을 내리자, 당병우의 공격도 멈췄다.
“……제가 졌습니다.”
고개를 숙인 황보인욱을 앞에 두고 당병우의 한쪽 입술이 올라갔다.
마치 지금의 승리가 예정된 승리라도 되는 듯한 표정이다.
“이제 결승전이군요.”
제갈소현이 연무장으로 들어서려고 할 때였다.
“아직 한 사람 더 있지 않소?”
당병우가 내공을 주입하자 채찍이 일자로 쭉 퍼졌다.
그가 그것으로 남궁정혁을 가리켰다.
“당신도 오룡회주가 되고 싶지 않나?”
“별로.”
“……뭐?”
“그딴 얘들 장난 같은 자리에는 관심 없다고.”
“그럼 여기는 왜 온 것이냐?”
“심기가 불편해질 것 같아서. 내가 또 누가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지시 내리는 건 못 참거든. 그래서 본의 아니게 오룡회주가 돼야겠어.”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말이야.
남궁정혁의 발언을 제갈소현이 반박했다.
“인제 와서 그런 소리 해 봤자 무슨 소용이에요? 오룡회주가 되고 싶었으면 아까 같이 왔었어야죠.”
“그래서 난 참가 자격이 없다?”
“그래요. 당신은 이미 실격이에요.”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거 같다.
제갈소현이 저런 억지를 쓰는 걸 보니 말이다.
“당신 혼자만 그리 생각하는 것 같은데.”
“뭐야!?”
어깨를 으쓱한 남궁정혁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즉흥적으로 결정한 비무에 뭔 참가 자격이 필요하겠소? 오대세가 소속의 후기지수면 다 자격이 있는 거지. 무엇보다…….”
남궁정혁이 당병우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자가 나와 꼭 싸우고 싶어 하잖소. 그 소원을 들어 드려야지.”
“제갈 낭자, 이번엔 저자의 말이 많소. 남궁정혁을 먼저 상대한 후에, 제갈 낭자를 상대해 드리리라.”
당병우가 이번에도 자신의 승리가 확정된 것처럼 얘기했다.
그것이 남궁정혁의 신경을 제대로 건드린 줄도 모르고.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오.”
연무장 안으로 들어간 남궁정혁이 당병우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