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90화
당병우 앞에 선 남궁정혁이 말했다.
“나도 최소한의 염치는 있는 사람인데 괜히 미안해지려고 하네.”
“무슨 말이냐?”
“아무리 그래도 형제를 모두 패는 건 그렇지 않나. 부모님이 엄청 속상하실 거 아냐, 한 사람한테 맞고 돌아다니면.”
“원우한테 얘기는 잘 전해 들었다. 다 된 일에 네놈이 끼어들어서 망쳐 놓았다고.”
슥, 그가 채찍을 장검처럼 앞으로 뻗었다.
“사천당가는 원한을 잊지 않는다.”
“곧 잊게 될 거야.”
사람이 머리를 많이 맞으면 기억력이 흐려지더라고.
남궁정혁이 주살검을 뽑았다.
“간다.”
그가 단 한걸음만으로 당병우 코앞에 섰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매우 속도.
헉! 경악한 당병우를 향해 남궁정혁이 씨익, 웃었다.
“채찍 같은 원거리 무기를 사용할 땐 이렇게 빠짝 붙는 상대를 조심해야 해. 상성상 불리하거든.”
남궁정혁의 가르치는 듯한 말투에 당병우가 발끈했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알고 있으니 대비책도 있고.
당병우가 왼손 손을 뻗자,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비도가 튀어나왔다.
“후후, 이건 몰랐지?”
“아니, 나도 알고 있었어.”
당병우가 제가 쓰는 무기의 장단점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머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엔 무공이 꽤 세더라고.
당연히 어떤 대책을 마련해 놨겠지.
사천당가의 특성을 생각하면 그것은 당연히 암기일 것이고.
턱, 남궁정혁이 맨손을 비도를 잡아 부러뜨렸다.
“강도가 약하네? 그러게 무기는 좋을 걸 써야지.”
회심의 일격이 무산된 당병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놈이 언제까지 여유를…….”
남궁정혁이 그의 멱살을 잡아 염무장 반대편으로 던졌다.
“자, 이제 네가 가장 자신 있는 거로 해 봐.”
“……뭐?”
“방금 한 방에 끝낼 수 있었지만, 한 번 더 기회를 줄게.”
“감히 날 농락하는 것이냐?”
“순식간에 지면 결과에 승복 못 하는 인간들이 있더라고. 방심해서 졌다는 둥,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졌다는 둥 비겁한 핑계를 대면서.”
너도 딱 그런 유형의 인간 같고.
“그래서 너한테 기회를 주는 거야,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기회.”
당병우가 짝다리까지 짚고 건들거리며 말하는 남궁정혁에 분노했다.
“후회할 것이다.”
촤악, 당병우가 채찍으로 바닥을 세게 내리쳤다.
전신 공력을 채찍에 다 실었는지, 연무장의 회색 대리석에 부서졌다.
저거 물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남의 집에 와서 주인 허락도 없이 물건을 망가뜨렸으니.
“각오해라.”
정작 당병우는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그의 채찍이 하늘을 나는 뱀처럼 남궁정혁을 덮쳤다.
싹둑.
남궁정혁이 검을 휘두르자, 채찍의 앞부분이 잘렸다.
“……어, 어?”
당병우가 당황했다.
내공으로 감싼 채찍을 어찌 저리 쉽게 자를 수 있단 말인가.
‘……채찍을 너무 오래 썼나?’
채찍의 재질은 가죽.
오래 쓰면 낡아서 끊어질 수도 있지.
암, 분명 그런 걸 거야.
그것이 아니라면 저자가 자신의 채찍을 어찌 자를 수 있었겠는가.
“운이 좋구나.”
당병우가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어, 어?”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자신의 검과 남궁정혁의 검이 닿을 때마다 채찍이 잘려 나갔다.
이제는 본래 길이의 절반도 남지 않은 상황.
“그러게 무기는 돈을 들여서라도 좋은 걸 사라니까.”
이게 가장 좋은 거야.
호랑이 가죽을 손질해서 만든 거라고.
당병우는 이렇게 항변하고 싶었지만, 그는 깨달았다.
남궁정혁의 실력이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곳에 있다는 걸.
아마 자신과 동생, 당원우가 함께 덤벼도 이길 수 없지 않을까.
“내가 졌…….”
“잠깐, 아직 포기하지 마.”
남궁정혁이 당병우의 말을 황급히 막았다.
“나는 아직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못 해 봤는데 이대로 끝나면 너무 시시하잖아.”
척, 남궁정혁이 머리 위로 검을 치켜들자, 당병우가 경악했다.
“……헉!”
밝게 빛나는 태양 아래, 그보다 빛나는 검기가 남궁정혁의 검에서 넘실거렸기 때문이다.
애초에 내공 자체가 자신과는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컸다.
‘저거에 맞으면 난 죽는다.’
남궁정혁이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당병우를 달래 줬다.
“괜찮아, 안 죽여.”
남궁정혁이 검을 아래로 긋자, 폭풍이라는 듯 친 거친 바람이 연무장을 감쌌다.
쏴아아악, 검의 압력이 당병우를 스치고 지나갔다.
“……!”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 한 그가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순간 몸에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그가 두 눈이 부릅떴다.
땅바닥에는 갈기갈기 조각난 자신의 옷이 떨어져 있었다.
바람의 칼날이 자신의 옷을 모두 벗겨 낸 것이다.
그런데 정작 피부에는 작은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았다.
대체, 검기를 얼마나 세밀하게 다룰 수 있어야 이런 신기를 부릴 수 있을까?
발가벗겨진 당병우가 수치심도 잊은 체, 남궁정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제갈세가주, 제갈황을 비롯해 오대세가 후기지수들이 모두 경악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거 쑥스럽구먼.’
애송이들 앞에서 힘자랑한 것 같아서.
흠흠, 헛기침한 남궁정혁이 제갈소현에게 말했다.
“연무장 안으로 들어오시오, 오룡회주를 가려야지. 결승전 합시다.”
그 말에 제갈소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녀도 아는 것이다.
자신이 남궁정혁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음을.
“……당신이 오룡회주예요.”
저 정도면 강혁 오라버니보다 강하지 않을까.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제갈소현이 자신의 입을 막았다.
‘아니야, 방금 한 말은 취소.’
강혁 오라버니가 얼마나 강한데 설마 동생한테 지겠는가.
하지만 이 자리에서 가장 놀란 사람은 따로 있었다.
‘초절정의 경지에 들어섰군.’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
그래서 제갈황은 남궁정혁의 수준을 정확히 알아보았다.
본인이 초절정 고수였기 때문이다.
그가 남궁정혁과 겨룬다 하더라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
‘남궁도가 괴물을 키워 냈군.’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
왜 그가 단 세 명의 무인만 보냈는지.
한 손가락이 열 손가락 못 당해 낸다고는 하지만, 무림에선 그런 일이 가끔 일어난다.
한 손가락이 열 손가락을 밟아 버리는 일이.
“하하하, 젊은이들의 패기 어린 모습을 보니 나까지 젊어지는 것 같구먼.”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 그가 후기지수들에게 말했다.
“다들 땀 흘려서 갈증이 날 테니 간단하게 목이나 축이세.”
그의 제안에 남궁정혁을 비롯한 후기지수들이 자리를 옮겨 술을 마셨다.
‘꽤 괜찮군.’
남궁정혁이 술잔에 든 술을 단번에 비웠다.
제갈세가에서 준비한 술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음식도 그렇고 술도 그렇고 미식가 집안이구먼.
남궁정혁이 빈 술잔을 스스로 채우려 할 때, 제갈황이 다가왔다.
“내가 한 잔 따라 주지.”
그가 자신이 들고 온 술병으로 남궁정혁의 잔을 채웠다.
“우리 소현이 좀 잘 부탁하네.”
“……?”
“자네가 오룡회주 아닌가, 그래서 잘 부탁한다고. 내가 마흔이 넘어 얻은 딸이라 다른 자식들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구먼.”
“아, 네.”
“한잔 쭉 들이켜게. 자네를 위해서 특별히 가져온 것이니.”
제갈황의 재촉이 남궁정혁이 술을 마셨다.
‘……응?’
술이 지금껏 마셨던 술과는 다르다.
방금 제갈황이 따라 준 술은 다른 술이었다.
‘……여아홍?’
여아홍은 여자가 시집갈 때 손님들을 대접하는 술이다.
최근에 제갈세가에서 누가 시집갔나?
“어떻나? 입맛에 맞나?”
“……향이 좋군요.”
“소현이가 태어난 날, 내 손으로 직접 담근 술이네.”
제갈황은 아예 남궁정혁 옆에 앉아 연신 술을 따라 주었다.
“마시게, 여아홍은 아직도 많이 남았으니 말이야.”
남궁정혁은 그런 제갈황이 부담스러웠다.
아니, 술이 그렇게 많으면 다른 사람들한테도 나눠 주지, 왜 나한테만 주냐고요?
* * *
천마총의 위치는 어딜까?
이것에 대해서 나 혼자 추측해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소림사가 있는 하남성 인근이 아닐까?’
내가 죽었을 당시는 정파와 마교가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내 시신을 수습한 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그것을 들고 멀리 이동하지는 못했을 터.
그런 이유로 천마총이 하남성 근처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나의 막연한 추측이 정말로 맞을 줄이야.
- 지도에 표시된 위치는 하남성 용삼현이네. 이곳의 지리와 지도에 그려진 지형이 딱 일치해.
제강황은 그가 호언장담한 대로 지도에 표시된 위치를 단 하루 만에 찾아냈다.
오룡회가 지금 막 용삼현에 도착한 이유였다.
“단주님, 천마총은 저깁니다.”
지도를 든 서문호가 눈앞에 있는 거대한 산을 가리켰다.
“입구부터 찾아야겠습니다.”
지도에는 무덤 표시 옆에 반으로 부서진 비석이 그려져 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천마총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가리키는 것 같다.
남궁정혁이 오룡회주로서 오대세가의 후기지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 인원은 흩어져서 붉은 비석을 찾아라.”
그의 말에 오룡회원들이 산속으로 들어갔다.
참고로 말하자면 천성이 착한 황보인욱의 황보세가가 1조.
쾌활하지만 사람 귀찮게 하는 팽세호의 하북팽가가 2조.
나만 보면 축농증에 걸리는 제갈소현의 제갈세가가 3조.
밉상 맞은 당병우의 사천당가가 4조다.
“우리는 같이 안 찾아도 됩니까?”
남궁정혁이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있자, 양일남이 물었다.
“대장이 그런 거 직접 찾는 거 봤냐? 원래 가장 높은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하면 되는 거야.”
내가 이 땡볕에서 고생할 거면 오룡회주가 안 됐다는 말이지.
“너희들도 내 옆에 앉아, 산이 커서 찾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으니.”
남궁정혁이 나무 그늘 밑에서 부채질 한지, 한 시진쯤 되었을까?
삐익~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산속에 울려 퍼졌다.
“단주님, 찾았나 봅니다.”
남궁정혁이 소리를 쫓아 일직선으로 달려갔다.
나뭇가지와 바위 등이 그의 앞길을 막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내 무덤이 저기 있다는데.
남궁정혁은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뒤따라 오는 서문호와 양일남이 쫓아오기 버거워할 정도로.
“회주님, 여깁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자, 작은 무덤 앞에 후기지수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여기 비석이 있습니다.”
당병우가 가리킨 곳에는 정말로 부러진 비석이 있었고, 그 비석에는 천마신교의 상징 화(火)가 새겨져 있었다.
“회주님, 이 비석은 제가 찾은 것입니다.”
남궁정혁이 그것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당병우가 허리를 굽실거리며 말했다.
어제 대련한 후부터 변한 그의 태도였다.
당병우는 남궁정혁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인지 아첨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이 남궁정혁의 마음에는 더 들지 않았지만.
간신배 같은 놈.
“이것을 밀면 되나?”
비석을 만져 보니 그것이 살짝 흔들렸다.
남궁정혁이 힘을 줘서 비석을 뒤로 밀었다.
쿠쿠쿠쿵.
무덤이 반으로 달라지면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타났다.
남궁정혁이 그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오룡회원들도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