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92화
세 번째 방에 있는 건 연못이었다.
커다란 방 한복판에 둥근 연못이 있었다.
그것을 본 서문호가 의문을 표했다.
“저 연못의 용도는 뭘까요?”
“글쎄.”
확실한 건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하셨으니 물놀이라도 하라고 저 연못을 만들었을 리는 없다는 거다.
연못에서 시선을 뗀 서문호가 방 내부를 살펴보았다.
“이곳은 나가는 문이 없습니다.”
“저기 있잖아.”
남궁정혁이 손으로 연못 표면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둥근 물방울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어디선가 공기가 유입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맞은편이 뚫려 있나 보군요. 헤엄쳐서 가야 하나 봅니다.”
그런 건 같긴 한데…… 여기까지 온 과정을 볼 때 저 연못에도 뭔가 수상한 함정이 있음은 분명하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남궁정혁은 세 번째 방 입구에 적혀 있던 글귀를 떠올려 보았다.
- 심연의 밑바닥에서 재앙을 극복하라.
심연은 저 연못을 말하는 건 같고 재앙?
그게 뭘까?
‘……대충 짐작은 간단 말이야.’
첫 번째, 두 번째 방을 거치면서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이곳이 정말 나의 무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을 만든 자는 마교의 인물이 분명하다.
그러니 탈망공환서곡과 혈강시가 연이어 나오지.
“이리 와 봐.”
연못가에서 선 남궁정혁의 손짓에 서문호가 다가왔다.
“손을 앞으로 쭉 뻗어 봐.”
“이렇게요?”
남궁정혁이 손톱을 세워 서문호의 손등을 찌르자 그곳에 몽글몽글 피가 맺혔다.
“아얏,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피를 연못에 뿌려 봐.”
서문호는 이해할 순 없단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촤악, 그가 팔을 흔들자 피 몇 방울이 연못 위로 떨어졌다.
부글부글.
곧 연못 표면이 흔들린다 싶더니 물속에서 커다란 이빨을 가진 물고기들이 뛰쳐 나았다.
손을 뻗은 남궁정혁이 그중 한 마리를 잡았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
난데없이 등장한 괴생명체의 등장에 놀란 서문호가 눈을 치켜떴다.
“그렇게 징그럽게 생긴 물고기는 처음 봅니다. 이빨이 꼭 사람 송곳니처럼 생겼군요.”
“혈식어라는 것이다.”
혈식어는 십만대산 깊은 계곡에 서식하는 육식성 어종이다.
물고기 주제에 고기를 먹는단 말이다.
성격이 무척 난폭하여 물속에 들어오는 건 일단 물고 보는 고약한 녀석들이기도 하고.
방금 봤다시피 피라면 아주 환장을 한다.
‘이런 혈식어가 우글거리는 물속을 지나가야 한단 말인데.’
서문호를 비롯해 오룡회원들의 표정이 굳었다.
혐오스럽게 생긴 혈식어를 보니 물속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특히 제갈소현의 표정이 특히 어두웠다.
“저는 수영 못해요. 어릴 적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이후로 물은 근처에도 안 가요.”
“수영할 수 있으면 저기를 지날 수는 있고?”
남궁정혁이 자신의 손아귀에서 펄떡이는 혈식어를 내밀자 그녀가 인상을 더욱 찌푸렸다.
“……그냥 돌아가면 안 되겠죠?”
당연히 안 되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그냥 돌아가겠는가.
에휴, 한숨 쉰 남궁정혁이 윗옷을 벗었다.
“너희는 회주 잘 만난 줄 알아라.”
귀찮은 일은 아랫사람들에게 맡기고 싶은데 그럴 상황이 아니다.
내가 물속에 들어가서 혈식어를 직접 잡는 수밖에.
‘혈식어 사냥은 오랜만이네.’
천마이던 시절 간간이 혈식어를 잡아먹었다.
밥맛 떨어지게 생긴 외모와 달리 직접 먹어 보면 육질이 탱글탱글한 게 맛이 참 좋거든.
풍덩, 남궁정혁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바로 반응이 오는군.’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했음에 분노한 것일까.
물속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던 혈식어들이 남궁정혁에게 곧바로 돌격했다.
최소 백 마리는 넘는 숫자였다.
한데 뭉쳐 있는 녀석들은 보니 제아무리 무서운 게 없는 남궁정혁이라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침도 살짝 고이고.
이런 상황만 아니라면 바로 불을 피워서 직화구이 해 먹는 건데 말이다.
피슝, 피슝.
손가락을 튕긴 남궁정혁이 물속에 생긴 기포를 쐈다.
그것이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가 혈식어의 몸을 꿰뚫었다.
예전 그가 혈식어를 사냥했던 방식이다.
근데 오늘은 수가 좀 많긴 하다.
남궁정혁의 손가락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가만히 있어도 자기들이 먼저 덤비는 건 편하네.’
손가락이 마디가 뻐근할 정도로 기포를 쏘다 보니 살아 있는 혈식어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푸왁, 그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몸통에 구멍 난 혈식어가 연못 표면에 가득 메우고 있었다.
“들어와, 물속에서 보니 저쪽에 밝은 빛이 보여. 거기가 출구인 것 같다.”
남궁정혁의 말에 오룡회원들이 차례로 물속에 뛰어들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제갈소현.
“뭐 해? 들어오라니깐.”
“수영 못하다고요.”
“내가 잡아줄 테니깐 넌 숨만 참고 있어.”
그래도 그녀는 망설였다.
쉽사리 물속으로 뛰어들지 못했다.
“정말로 혼자 돌아갈래?”
두 눈을 딱 감은 제갈소현이 연못에 몸을 던졌다.
* * *
“오대세가의 무인들이 세 번째 관문에 이어 네 번째 관문까지 통과했습니다.”
부하의 보고에 장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가만히 앉아 있기에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그가 맞은편에 앉은 상대를 노려보았다.
“엄 선생, 이제 어쩔 것이오? 놈들이 이미 우리 턱밑까지 왔소.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소?”
장주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엄 선생의 반응은 한없이 여유로웠다.
“네 번째 관문까지 통과했으니 놈들도 무사하지 못할 거요.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소.”
장주와 엄 선생, 둘 사이에서 눈치 보던 부하가 조심스레 말했다.
“저…… 그것이 오대세가 무인들은 상처 하나 없습니다.”
“……뭐라고?”
“제가 벽 뒤로 난 구멍으로 봤는데 오대세가의 무인 중에 다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
엄 선생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그럴 리가.
이토록 빨리 네 개의 관문을 통과하고도 부상자가 한 명도 없을 수가 있나.
“오대세가의 가주 중 한 명이 직접 온 것이냐?”
그렇다면 납득할 수도 있으련만, 부하의 계속된 보고에 엄 선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는 젊은 사내였습니다.”
엄 선생이 주먹을 꽉 쥐었다.
“안 되겠다. 내가 직접 나서야겠다.”
“본인이 직접 나선다고 엄 선생이 저들을 처리할 수 있겠소?”
장주의 비아냥 섞인 말에 엄 선생이 발끈했다.
“지금 내 책임을 묻겠다는 거요?”
“상황이 그렇지 않소, 엄 선생이 모든 계획을 짰지만 제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잖소.”
“이번엔 꼭 내 손으로 저들을 없앨 것이오.”
그리고 그다음은…….
공통의 적을 두고 잠시 손을 잡은 두 사람이다.
서로에 대한 믿음 따위는 없다.
“내 부하들로 적들을 모두 죽일 테니 기대하시오.”
엄 선생이 문을 박차고 나갔다.
* * *
“단주님, 근데 그건 어떻게 아신 겁니까?”
“뭐가?”
“네 번째 방을 통과할 때 말입니다. 무기가 발사되지 않는 길을 어찌 아신 거냐고요.”
네 번째 방은 기관진식을 이용한 함정이 설치된 곳이었다.
좁고 기다란 길바닥에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져 있더라고.
처음에 보는 순간 딱 알았지.
마교의 대표적인 진법 중 하나인 아수라환원진이라는 것을.
잘못된 길로 가면 벽면에서 쇠뇌나 표창 같은 무기가 쏟아졌다.
전 마교 교주인 내가 잘못된 길로 갈 리 없지만.
- 내가 발 딛는 곳을 잘 보고 따라와라.
남궁정혁 덕분에 오룡회원들은 산책하듯 여유롭게 네 번째 문을 통과했다.
가장 쉽게 통과한 곳이기도 했다.
“그냥 감이야, 내가 신기를 타고 났거든. 딱 보면 이게 살길인지, 죽을 길인지 보여.”
남궁정혁이 대충 둘러댔지만, 서문호는 추가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도 아는 것이다.
여기서 더 귀찮게 했다가는 처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함정을 모두 돌파한 것일까요? 방이 나오지 않습니다.”
한참을 걸어갔지만, 서문호의 말대로 함정이 설치된 방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다른 것이 나왔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천마총에서 처음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났다.
별로 반갑지는 않지만.
“네놈들의 시신으로 죽은 천마의 혼을 달래겠다.”
다짜고짜 죽인다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내 시신으로 내 혼을 달래?’
훗, 살짝 코웃음 친 남궁정혁이 자신의 앞을 막아선 자들을 보았다.
대략 백 명이 넘나?
사방이 탁 트인 넓은 공간에 붉은색 옷에 맞춰 입은 사내들이 백 명도 넘게 서 있었다.
오룡회원들에 비해 두 배도 넘는 숫자.
하지만 그런 것치곤 전혀 위협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오룡회원들도 전혀 겁먹지 않았고.
그들도 아는 것이다.
지금 자신들의 눈앞에 서 있는 자들이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을.
“크크큭, 천마의 보물을 탐해 여기까지 온 것이냐?”
저들의 뒤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한 사람을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천마신교의 상징(火)이 새겨진 복면을 쓰고 있었다.
“어리석은 놈들, 탐욕 때문에 죽음을 재촉하다니.”
저자의 오만한 말에 남궁정혁은 고갤 갸우뚱했다.
저 자신감의 근거는 뭘까?
자신들의 전력과 상대의 전력 차이를 알아채지도 못할 만큼 저자의 실력이 형편없는 걸까?
‘……풍기는 기도로 볼 때 무공이 그리 강한 것 같진 않군.’
그것이 더 의문이긴 하지만.
천마총의 규모로 볼 때 이곳에 수많은 인력과 자금이 투입되었음은 자명한 일.
그래서 남궁정혁은 추측했다.
이곳을 만든 사람이 마교의 고위급 인사가 아닐까 하는.
하지만 그러기엔 저자는 무공이 너무 약하다.
과거 마교의 일개 조장 정도?
더구나 목소리로 추측건대 나이도 젊은 것 같다.
아마도 이곳에서 가장 높은 자가 부하를 내려보낸 모양이다.
“애송이와 대화할 시간 따윈 없으니 여기 우두머리를 불러와라.”
남궁정혁의 말에 상대가 당당히 대답했다.
“내가 여기 최고 책임자다.”
“……뭐?”
“너희들한테 지도를 보낸 사람이 나라고.”
이게 장난하나, 너 같은 애송이가 여기 두목이라고?
짜증이 난 남궁정혁이 상대의 목을 단번에 날려 버리려다 순간 멈칫했다.
왠지 상대의 목소리가 낯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
어디서 들어 봤더라, 내가 아는 누군가와 목소리가 비슷하긴 한 것 같은데.
그때, 복면 사내가 큰소리로 외쳤다.
“모두 마환단을 삼켜라.”
그의 말에 적들이 검은색 알약을 입안에 넣었다.
“……!”
그 모습을 본 남궁정혁은 놀랐다.
여기서 마환단을 볼 줄이야.
그것은 내공을 일시적으로 증폭시키는 약이었다.
마환단을 먹으면 일류 고수는 절정고수가, 절정고수는 초절정고수가 될 수 있었다.
‘그만큼 부작용도 심하지만.’
약의 기운으로 내공을 억지로 증폭했으니 몸이 어찌 되겠는가.
당연히 버티지 못한다.
마환단의 약효가 지속하는 시간을 약 일각.
그 후에는 단전이 파괴되어 죽는다.
마환단은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마약이었다.
그리고 그 약을 개발한 사람은…….
‘천수마의, 엄신.’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아니면 그런 약을 만들 사람이 없지.
“너희들은 단 한 명도 여기서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푸하하하, 파안대소하는 복면 사내를 보며 남궁정혁은 확신했다.
저자는 천수마의다.
목소리가 예전보다 앳되긴 했지만, 분명 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