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93화
천수마의, 저 영감탱이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마교 교주가 되기 십 오 년 전이었다.
그때 마교에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돌았다.
수많은 사람이 그 병에 걸려 고통받았다.
그중 한 사람이 나고.
증상은 고열을 동반한 구토와 설사.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먹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토해 냈기 때문이다.
‘그때 참 끔찍했지.’
에휴, 말도 마라.
발병 원인을 모르니 제대로 된 치료 방법이 있었겠는가.
별다른 대책이 없는 마교는 환자들을 격리 수용했다.
전염성이 매우 강한 질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말만 격리 수용이지 사실상 방치였다.
야외에 딸랑 천막 하나 쳐 놓고, 그곳에 환자들은 몰아넣었다.
옆에서 콜록콜록 기침하던 사람이 다음 날 보면 죽어 있었다.
비참한 죽음이기도 했다.
차라리 적과 싸우다 칼에 찔려 죽는 게 낫지, 무림인이 병으로 죽다니.
그런 끔찍한 상황에서 나타난 사람이 천수마의였다.
그는 천으로 코와 입만 겨우 막은 채 환자들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그때는 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오해했지.
살아 있는 부처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강림하셨다고.
천수마의는 환자들의 증상을 살피고 약을 줬다.
실제로 약효가 있어 약을 먹은 환자들은 병이 나았다.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제 발로 천막에서 걸어나갔단 말이다.
그 모습을 본 다른 환자들은 천수마의에게 애원했다.
제발 자신에게도 약을 달라고.
“허허허, 약학당 의원들이 지금도 열심히 약을 만들고 있으니 곧 모두에게 한 알씩 돌아갈 걸세.”
그렇게 말하는 천수마의가 얼마나 믿음직스럽고 고맙던지.
하마터면 그의 열렬한 추종자가 될 뻔했다.
천수마의의 실체를 알기 전에는 말이다.
‘하늘이 도우셨지.’
그 약을 안 먹은 건 말이다.
타고난 재능과 체력이 워낙 좋아서 그런지, 나는 그냥 병이 나았다.
한 십 일간 고열과 설사로 고생했지만, 어느 순간 증상이 싹 사라지더라고.
그 병에 걸린 환자 중 유일한 사례이기도 했다.
다른 이들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받으며 내 발로 당당히 천막을 나선 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약을 먹은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고?’
증상의 개선은 일시적인 것일 뿐, 천수마의가 준 약을 먹은 사람은 모두 피를 토하고 죽었단다.
약의 부작용이었다.
뭐, 다 좋다.
사람이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실수도 할 수 있고, 약을 급하게 만들다 보면 의도치 않은 부작용도 생길 수 있지.
여기서 내가 어이가 없는 건 천수마의의 태도였다.
“의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
자신이 만든 약으로 사람을 죽여 놓고는 어찌나 당당하던지.
천막에서 환자들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그 뻔뻔한 모습이 얼마나 얄밉던지, 천수마의의 아가리를 억지로 벌려 그 약을 탈탈 털어 넣어 주고 싶었다.
당시는 내가 그리 높은 위치가 아니라 실행으로 옮기진 못했지만.
그러다 내가 마교 교주가 됐네?
내가 공사의 구분만큼이나 철저한 게 은혜와 원한의 구분이다.
그때 나는 나의 교주 등극을 반대한 놈들과 함께 천수마의도 싹 쓸어버리려고 했다.
근데 내 측근들이 반대했다.
비록 그의 기행이 사람에게 피해를 주긴 했지만, 도움 된 게 더 크다고.
천하를 뒤져도 천수마의만큼 의술이 뛰어난 사람도 거의 없다고.
그래서 내 손으로 직접 목을 뎅강 자르려고 하다가 살려 뒀다.
지금은 후회하지만.
“천마의 무덤을 밟은 죄, 너희의 목숨으로 갚아라.”
지금 내 눈앞에서 소리치는 저자는 분명 천수마의가 맞다.
내가 저놈의 짜증 나는 목소리를 어찌 잊으리.
가장 확실한 건 저 복면을 벗겨서 얼굴을 확인하는 거지만.
“오대세가 놈들을 모두 죽여라.”
천수마의 명령에 적들이 서서히 다가왔다.
마환단에 때문에 내공이 폭증해서인지, 아까와는 기도 자체가 달라졌다.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저들은 왜 제 손으로 마환단을 먹었을까?’
그것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마약.
혹시 천수마의가 또 사기를 쳤나?
마환단의 부작용은 쏙 빼고, 이것을 먹으면 강해질 수 있는 천고의 영약이라고.
저 빌어먹을 영감탱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천수마의가 가장 잘하는 것이 의술이라면 두 번째로 잘하는 것은 혓바닥을 놀리는 거다.
그는 어떻게든 사람을 구워삶아서 자신이 만든 약을 사람들에게 먹였다.
인체 실험의 희생양으로 쓴 거지.
저들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그리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제야 너희들에게 복수하는구나.”
“난 오대세가 때문에 모든 걸 잃었다.”
“이 자리에서 너희들을 죽이고 나도 죽을 것이다.”
위선적인 정파 놈들이 또 업보를 쌓았나 보다.
그 업보의 칼날이 자식들에게 향하는 것이고.
“어떡합니까? 이상한 약을 먹은 후부터 저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숫자도 우리보다 훨씬 많아 감당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당황한 오대세가의 후기지수들이 남궁정혁에게로 모였다.
그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남궁정혁이라면 지금의 위험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비침 있냐?”
물론 남궁정혁은 그들의 기대를 외면할 만큼 매몰차지 않았다.
이 위험을 극복할 만한 능력도 있고.
남궁정혁의 말에 당병우가 품속에서 길이가 짧은 침을 꺼냈다.
“이것을 어떻게 쓰려고요?”
이렇게 쓰려고.
남궁정혁이 손을 쫙 뻗어 비침을 적들에게 뿌렸다.
그것이 직선으로 날아가 맨 앞에서 다가오던 몇몇 적들의 목 옆에 박혔다.
“컥컥.”
“커어억.”
크기가 작은 만큼 살상력도 약한 비침이건만, 효과는 극적이었다.
비침을 맞은 사람들이 경련하듯 몸을 떨더니 그 자리에서 죽었다.
“인영혈이다. 그곳을 노려라.”
적들의 약점은 저곳이었다.
마환단을 먹으면 갑자기 증가한 내공 때문에 몇몇 혈도들이 부풀어 오른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잘 보이는 것이 목에 있는 인영혈.
그곳을 찌르면 기의 순환이 순식간에 꼬여 죽게 되는 것이다.
“회주님의 말을 따라라.”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
적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일까.
오룡회의 사기가 순식간에 올랐다.
그들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 적들에게 돌격했다.
“자, 잠깐만.”
“마환단에 이런 부작용이 있다는 건 얘기하지 않았잖아요!”
반대로 적들의 사기가 쑥 내려갔다.
복수를 위해 기껏 죽음까지 감수했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라는 거지.
그들은 황급히 목을 감쌌지만, 그게 무슨 소용 있겠는가.
어차피 한쪽 팔로는 제대로 싸울 수가 없는걸.
적들의 결말은 둘 중 하나였다.
두 손으로 당당히 싸우다 인영혈을 찔려 죽거나, 아니면 끝까지 목을 보호하려다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죽거나.
뜻밖의 상황전개에 놀란 천수마의가 두 눈을 부릅떴다.
“……어, 어떻게, 마환단의 약점을.”
알고 있냐고?
그거야 네가 나한테 말해 줬으니 그렇지.
전생의 어느 날, 천수마의가 내 방으로 찾아와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공을 비약적으로 증폭시키는 영약을 개발했으니 마교 무사들에게 먹이자고.
그런 그에게 내가 말했다.
- 너부터 먹어 봐.
그랬더니 천수마의가 우물쭈물하더라고.
그 모습을 보고 딱 알았지.
저 인간이 또 마교 무사들을 대상으로 신약 실험을 하려 했구나.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할 겸해서 전신을 가볍게 주물러 줬더니 그제야 마환단을 약점을 털어놓았다.
그걸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을 나도 몰랐지만.
‘도망치려는 건가?’
부하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자 천수마의가 뒷걸음질 쳤다.
예상된 행동이기도 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목숨은 장난처럼 가지고 놀면서 자신의 목숨은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다.
그런 그가 지금의 불리한 상황에서 도망치는 것은 당연지사.
자신의 약을 먹은 부하들이 죽어 나가는 건 남의 일이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전황이 매우 유리하니 자신이 잠시 자리를 비워도 별일 없겠지.
그리 판단한 남궁정혁이 몸을 돌려 본격적으로 도망치는 천수마의 뒤를 쫓았다.
‘아직도 경공만은 빠르군.’
천수마의가 무공은 그리 강하지 않지만, 경공 하나만큼은 일품이었다.
그도 아는 것이다.
자신이 여기저기 벌여 놓은 일 때문에 원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래서 언제, 어느 때라도 신속히 도망갈 수 있도록 경공만은 부지런히 연습했다.
지금 남궁정혁이 전속력으로 쫓아가고 있음에도 그 차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잘못하면 놓치겠는데.’
천수마의가 어느 방으로 들어가자 천장에서 석문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아직 남궁정혁과 그 방 사이에는 꽤 많은 거리가 남아 있는 상황.
“쫓아와 봤자 아무 소용 없다. 넌 날 잡을 수 없으니.”
크크큭, 문 뒤에서 천수마의가 비웃음을 흘렸다.
발바닥에 땀 차가며 열심히 뛰어오는 자신을 보고 말이다.
저게 진짜 뒈지고 싶어 환장한 모양이다.
휘리릭.
남궁정혁이 주살검을 던졌다.
그렇다고 천수마의에게 직접 던진 건 아니고.
빙글빙글 돌아간 검이 석문이 내려오는 땅바닥에 바로 밑에 푹 꽂혔다.
그 모습을 본 천수마의가 또다시 푸하하하, 비웃었다.
“검을 버팀목 삼으려는 것이냐? 석문이 얼마나 무거운데 이 검이 버틸 수나 있을……?”
천수마의의 기대와 달리 버틸 수 있었다.
내구성이 워낙 좋기에 급한 마음에 던져 본 것인데, 주살검에 막힌 석문이 더는 내려오지 못했다.
몸을 던진 남궁정혁이 미끄러지듯 방 안으로 들어갔다.
중간에 주살검을 회수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헉!”
그 모습에 놀란 천수마의가 맞은편 문으로 도망가려 했지만, 남궁정혁이 그 꼴을 가만히 두고 보겠는가.
그가 천수마의의 뒷덜미를 잡아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내가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참 많아.”
이 천마총은 누가 만들었는지, 이 안에 진짜로 내 시신이 있는지 등등 말이다.
하지만 그전에.
“너는 일단 좀 맞자.”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
흡정괴마 때부터 시작해서 시약산의 강시까지.
살 만큼 산 영감이 왜 그리 돌아다니면서 세상에 민폐를 끼친 거냐고.
고개를 이리저리 까닥한 남궁정혁이 손가락 마디까지 풀 때, 천수마의가 일어섰다.
그것도 옆구리에 차고 있던 단도까지 꺼내서.
어쭈, 덤비시게?
“순순히 당하지는 않는다.”
그러시겠지요.
자기 몸을 얼마나 끔찍이 위하는 양반인데 남한테 순순히 맞을까요.
그래서 더 고맙기도 하지만.
“나도 일방적으로 때리는 건 재미없어.”
적당히 반항하고 발악해야 밟는 재미가 있지.
음식에 적당한 향신료를 첨가해야 더 맛있는 것처럼 말이다.
“날 우습게 보지 마라……!”
천수마의가 단도를 휙, 휘둘렀지만 영 재미가 없다.
약해도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상대해 봐야 흥도 안 난다.
남궁정혁이 천수마의의 손목을 잡아 뒤로 비튼 다음, 그의 복면을 벗겼다.
“답답하지도 않냐? 실내에서 복면은 왜 쓰고 있는 거야……?”
남궁정혁이 깜짝 놀랐다.
그가 생각한 사람이 아닌 것…… 이 아닌가?
처음엔 천수마의가 아닌 줄 알았다.
그의 얼굴이 너무나 젊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비슷한 또래로 보였으니.
“…….”
다시 찬찬히 훑어보니 천수마의, 엄신이 맞다.
피부가 팽팽해지고, 검은 머리에 윤기가 흘렀지만, 이목구비가 분명 그다.
‘대체 무슨 수를 쓰면 이렇게 젊어질 수가 있을까?’
남궁정혁과 엄신의 시선이 마주쳤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그의 눈빛을 보며 남궁정혁이 씨익, 웃어 주었다.
“고마워.”
“뭐가요?”
이렇게 젊어져서.
내가 엄신한테 아무리 맺힌 게 많다, 그래도 백 살 넘은 노인을 패면 양심의 가책을 받을 수 있잖냐.
근데 이렇게 푸릇푸릇한 모습이라니.
마음 놓고 패도 되겠다.
“이 꽉 깨물어라.”
나는 주먹을 꽉 쥘게.
남궁정혁의 주먹이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