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101화
북해빙궁에게 있어 음한보신갑이 귀하긴 귀한 물건인가 보다.
한랭구절초의 꽃잎과 그것을 교환하자는 말에 북해빙궁주, 진혁호가 이곳으로 당장에 달려온 걸 보면 말이다.
그 탓에 바이칼 호수의 매서운 바람을 좀 더 맞아야 했지만 어쩌겠는가.
왕소단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쯤은 참아야지.
지금까지 그에게 받은 돈이 얼만데.
앞으로 더 많이 받아 낼 것이고.
“음한보신갑을 준다고 한 사람이 자넨가?”
진혁호도 나이를 많이 먹었구나.
처음 봤을 때 검은 머리에 피부가 팽팽했던 청년이 어느새 귀밑머리가 허연 장년이 되어 있었다.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얼굴을 멀뚱히 바라보는 상대에게 진혁호가 다시 말했다.
“자네가 음한보신갑을 준다고 했나?”
“그러는 저야말로 묻고 싶군요. 음한보신갑을 주면 한랭구절초의 꽃잎을 주시겠습니까? 더도 말고 딱 한 장만 있으면 됩니다.”
남궁정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스승님, 저자의 말을 믿는 건 아니시겠죠? 저자는 한랭구절초를 훔치려던 도둑과 한패입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게 분명합니다.”
원재식, 저놈은 처음부터 저랬다.
음한보신갑을 준다고 하는 남궁정혁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궁주님께 말이나 전해 보자는 다른 이들이 없었다면 진혁호가 여기까지 오는 일도 없었겠지.
“스승님, 저자는 믿을 수 없는 자입니다.”
다만 문제는 진혁호 역시도 남궁정혁을 미심쩍은 눈빛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원재식의 말이 틀린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궁정혁이 저들을 설득할 의무는 없지만, 할 생각은 더더욱 없지만 말이다.
그가 원재식에게 말했다.
“안 믿으면 어쩔 건데?”
“……뭐?”
“너희들이 그걸 찾을 방법은 있고? 그럴 능력이 있으면 알아서 찾든가.”
“인질범 주제에 어디서 큰 소리냐.”
원재식의 목소리가 높아지려 하자 진혁호가 나섰다.
“그만해라.”
그가 차분한 눈길로 남궁정혁을 바라보았다.
“자네가 누구든, 어떤 신분이든 그건 상관하지 않겠네. 음한보신갑만 찾아 주게. 그러면 한랭구절초의 꽃잎은 주지.”
“스승님, 저자의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믿고 싶구나.”
자신의 잘못으로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 북해빙궁의 신물이다.
그 죄책감과 후회로 늘 북해신궁에 빚진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러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저자의 말을 믿고 싶었다.
진혁호가 회한에 찬 모습을 보면서 남궁정혁은 괜히 미안함을 느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돌려줄 걸 그랬나?’
이십여 년 전, 음한보신갑을 보는 순간 남궁정혁은 직감했다.
이건 귀한 거다. 비싼 거다.
반짝반짝 빛나는 게 범상치 않은 물건 같더라고.
내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지는 진혁호를 보면서 확신도 얻었다.
그래서 좋다고 들고 갔다.
결국, 버리기는 했지만.
‘그럼 나는 음한보신갑을 저 바이칼 호수에 왜 던졌나?’
그 해답은 간단하다.
나한텐 전혀 맞지 않는 물건이니까.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음한보신갑은 갑옷 형태의 옷이다.
맨 처음, 진혁호가 겉옷 안에 그것을 입고 있는 걸 보고 오해했다.
방어력이 좋은 기물인가 보다 하고.
막상 입어 보니 전혀 아니었다.
그것은 특이한 효능을 지닌 옷이었다.
‘빙백신공을 익힌 자에게는 그것이 영약이나 다름없지.’
왜냐?
음한보신갑이 극음의 한기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가운 성질의 음공, 빙백신공을 익힌 자에게는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공을 상승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반대로 천마신공은 용암처럼 뜨거운 기운을 담고 있는 양공.
그런 나에게 있어 음한보신갑은 독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바이칼 호수에 그것을 던져 버린 이유였다.
“자, 이제 인질 교환을 할까요?”
남궁정혁이 저 멀리 자작나무 밑에 있는 그의 일행에게 손짓하려고 할 때였다.
“잠깐!”
저 인간은 왜 또 나서는 거냐?
사람 짜증 나게.
남궁정혁의 미간에 주름이 생길 때, 원재식이 그의 스승에게 말했다.
“이렇게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뭘 말이냐?”
“인질 교환은 조금 더 미루는 것 어떨까요?”
“무슨 이유로?”
“아직 저들의 정체조차 모르는 상황입니다. 저자가 음한보신갑을 가지고 온다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진혁호도 잠시 고민하다 남궁정혁에게 말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인 듯한데 자네의 의견은 어떤가?”
내 생각이 중요한가.
잡혀 있는 사람, 생각이 중요하지.
“소단아, 내 생각은 어떠냐?”
“저는 괜찮습니다. 며칠 더 고생해서 한랭구절초의 꽃잎을 얻을 수 있다면 충분히 감내하겠습니다.”
죽은 생선의 눈알처럼 퀭했던 그의 눈빛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
우리 소단이를 위해서라도 음한보신갑은 꼭 찾아야겠는걸.
남궁정혁이 고개를 돌려 바이칼 호수를 보았다.
바다처럼 드넓은 그곳에 푸른 물이 넘실거렸다.
‘……너무 넓나?’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작은 호수에 버릴 걸 그랬다.
* * *
일행에게 돌아간 남궁정혁이 방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이런 이유로 인질 교환이 미뤄졌다고 말이다.
정학우가 이번에도 역시 의문을 드러냈다.
“도련님이 음한보신갑을 어떻게 찾는다는 겁니까?”
“자알, 열심히, 노력해서.”
“지금 말장난하실 때가 아닙니다.”
“그러는 넌 너무 진지해, 그러면 여자한테 매력 없다.”
저 인간은 또 왜 저래?
정학우를 타박한 남궁정혁이 고갤 갸웃했다.
엄신우의 시선이 저쪽으로 떠나는 북해빙궁의 사람들에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뭐 신기한 거라도 봤나?
“뭔 재밌는 구경거리가 있길래 그렇게 열심히 보냐?”
“저 흰옷을 입은 사람이 북해빙궁주라고요?”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사람은 진혁우가 맞았다.
“왜? 뭔 문제 있어?”
“큰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요.”
“……응?”
“거리가 멀어서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진혁우를 한참 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자는 피부가 유달리 희면서도 눈 밑은 거뭇합니다. 게다가 관자놀이는 밑으로 푹 꺼졌군요. 혹시 그가 기침하지는 않던가요?”
“맞아, 나와 대화하면서 가끔 기침했어.”
쯧쯧, 엄신우가 나직이 혀를 찼다.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무공을 익혔군요.”
“……?”
“북해빙궁주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폐가 약합니다. 음양의 조화가 깨져 음의 기운을 타고난 자들이 그렇죠.”
여기까지만 들어만 엄신우의 말이 무슨 말인 줄 알겠다.
“빙백신공으로 음의 기운이 더욱 강해졌다는 거군.”
“예. 그러면 몸이 버티지 못합니다.”
“북해빙궁에는 한랭구절초가 있잖아, 그거론 치료 못 하나?”
“사람이 각자 타고난 재능이 다르듯이 약초도 각자 지닌 효능이 다릅니다. 그의 병은 한랭구절초로 치료할 수 없습니다.”
“그럼 치료 방법이 없나?”
“아예 없는 건 아닌데 가장 쉬운 방법이 있긴 하죠. 가장 어려운 방법이기도 하고요.”
“그게 뭔데?”
“간단합니다. 스스로 무공을 폐하면 됩니다.”
“차라리 죽고 말지.”
무인에게 있어 목숨만큼 중요한 것이 무공이다.
그런데 스스로 무공을 폐한다?
최소한 남궁정혁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숙소로 돌아가자.”
여기서 그가 말한 숙소는 바이칼 호수 인근에 있는 폐가를 말했다.
남궁정혁은 사연호를 납치한 후 그곳에서 쭉 지내 왔다.
* * *
으, 춥다.
물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옷을 다 벗으니 북방의 차가운 바람이 칼날처럼 남궁정혁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더 큰 문제는 진짜 추위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는 거지만.
‘……괜히 한다고 그랬나?’
남궁정혁이 발끝을 세워 바이칼 호 표면에 살짝 대보았다.
“……!”
내 업보를 이렇게 돌려받나?
몸 일부만 닿았을 뿐인데 그 차가움에 온몸의 신경이 얼어붙는 것 같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미 약속한 일인걸.
후아, 후아.
큰 숨을 몰아쉰 남궁정혁이 바이칼 호수로 풍덩 뛰어들었다.
그가 잠영하여 바이칼 호수의 바닥으로 내려갔다.
‘음한보신갑이 어디 있을까?’
처음부터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바이칼 호수가 좀 넓나?
중원에서 가장 큰 동정호만큼은 아니지만, 여기도 광대한 크기를 자랑했다.
거기도 또 수심은 어떻고.
깊이도 얼마나 깊은지 한참을 내려간 끝에 겨우 바닥에 닿았다.
그가 두 눈을 부릅뜨고 바닥을 한참 동안 훑었다.
‘……추워서 안 되겠다.’
내공을 전신으로 돌려서 체온을 높여도 바이칼 호수의 냉기를 견디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어, 몸이 깨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호흡도 슬슬 가빠 왔다.
푸왁, 남궁정혁이 호수 밖으로 나오자 한쪽에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다.
“도련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차가운 물속에서 고생하는 남궁정혁을 위해 정학우가 피워 둔 것이었다.
역시 날 생각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구나.
“아, 살 것 같다.”
몸을 녹인 그가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는 첫날에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둘째 날, 셋째 날에도 말이다.
그리고 그가 옷을 발가벗고 바이칼 호수에 몸을 던지지 나흘째 되는 날.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
그동안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아직 바이칼 호수 바닥을 절반도 훑어보지 못했다.
차가운 물의 온도와 호흡 때문에 수색 시간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다른 사람이 주워 간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이렇게 차가운 물 속을 누가 바닥까지 들어오겠어…… 응?
남궁정혁의 눈에 이채가 맺혔다.
뭔가 부자연스러운 광경을 봤기 때문이다.
‘……저기만 새우가 없네.’
바이칼 호수 바닥에는 별다른 생명체가 살지 않았다
물고기도 잘 보이지 않는 그곳에 사는 생명체는 오직 하나.
몸통이 투명한 작은 새우들이 바닥을 기어 다닐 뿐이었다.
이제껏 돌아본 모든 바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녀석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저쪽에 있는 큰 구멍 주위로는 새우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저곳에 접근하기라도 안 되는 것처럼.
그러니 남궁정혁이라도 가 줘야지.
저곳에 뭔가 이상한 것이 있어 새우들이 안 가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인지…… 헉!
잠영하던 남궁정혁이 기겁했다.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려 물속에서 기포가 뽀르르 만들어질 정도였다.
‘저게 뭐지?’
구멍 속에서 기다란 뱀처럼 생긴 괴생명체가 갑자기 튀어나와 남궁정혁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순순히 당할 그가 아니었지만.
그가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그의 손끝에서 발생한 기포가 매우 속도로 날아가 괴생명체의 몸통을 두들겼다.
‘단단하네.’
뱀도 아니고, 그렇다고 물고기는 더더욱 아닌 것처럼 보이는 괴생명체는 기포를 맞을 때마다 움찔거리긴 했지만, 그 타격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화가 났다는 듯이 아가리를 더욱 크게 벌리며 남궁정혁을 물려고 했다.
‘한낱 미물이 어디서 감히.’
남궁정혁이 두 손으로 괴생명체의 아가리를 잡고 힘을 주었다.
단번에 쫙 찢어 버리려고 했더니 안 된다.
웬만한 철보다 괴생명체의 몸통이 더 단단했기 때문이다.
“카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괴생명체가 자신이 나온 굴속으로 도망갔다.
그래도 최소한의 지능은 있는지, 건드려서 안 될 상대를 건드렸다는 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상대는 이대로 순순히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놓칠 줄 알고.’
남궁정혁이 구멍 속으로 막 대가리를 집어 놓은 괴생명체의 꼬리를 잡고 흔들었다.
“카아아악.”
괴생명체의 대가리가 구멍 입구에 있는 돌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 탓에 구멍이 점점 넓어졌다.
단단한 괴생명체의 대가리를 돌이 감당하지 못하고 부서졌기 때문이다.
물론 괴생명체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머리에 수많은 생채기가 난 괴생명체는 힘이 빠졌는지, 몸을 축 늘어뜨렸다.
‘그러게 사람도 가려 가면 덤벼야…… 응?’
남궁정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괴생명체가 나온 구멍 속을 들여다봤다.
그곳에 뭔가 인위적인 색을 지닌 물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궁정혁이 손을 뻗어 그것을 집었다.
이건.
‘……음한보신갑이 맞구나.’
과연 북해빙궁의 신물이로다.
그것은 이십 년 동안 물속에 있었음에도 이끼 하나 끼지 않았다.
‘……살려 줄까?’
음한보신갑을 찾은 기념으로 괴생명체는 그냥 놓아 줄까 했는데, 그것의 눈이 돌아갔다.
“까아아아악.”
남궁정혁의 손에 들린 음한보신갑을 보더니 괴생명체가 다시 돌격해 왔다.
그것의 주인은 자신이라고 주장이라도 하듯이.
남궁정혁은 그 소유권 주장을 인정해 줄 생각이 전혀 없지만.
손끝에 내공을 집중시킨 그가 수강을 휘둘러 괴생명체의 몸통을 반 토막 냈다.
잘린 몸통에서 꼬불꼬불한 내장들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내단?’
남궁정혁의 눈앞으로 괴생명체의 몸통에서 나온 동그란 구슬이 둥둥 떠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