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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102화 (102/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102화

“이것은 소화어룡의 내단입니다.”

“소화어룡?”

“은색 몸통에 아가리 주위로는 긴 수염이 달려 있다고 하셨죠? 소화어룡이 그렇게 생겼습니다. 차가운 물 속에서 서식하는 녀석이죠.”

남궁정혁이 방금 자신이 엄신우에게 건넨 소화어룡의 내단을 보면서 물었다.

“그거 먹으면 몸에 좋나? 보통 그런 게 내공 증진에 도움이 되잖아.”

“영물이 오랜 세월 살면서 그 기운을 축적한 내단이 내공 증진에 도움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남궁정혁의 기대 어린 눈빛을 외면한 엄신우가 고개를 저었다.

“이건 단주님한테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왜?”

“소화어룡의 내단은 지독한 냉기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주님의 체질하고는 맞지 않죠.”

흐음, 남궁정혁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엄신우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의 의미를 엄신우라고 모를 리 없다.

“제가 지금 거짓말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이것을 빼돌리려고요?”

저 인간의 인성으로 봤을 땐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그러게 의심받기 싫으면 평소 행동을 똑바로 했었어야지.

“이리 줘 봐.”

남궁정혁이 엄신우에게서 내단을 다시 건네받았다.

‘차긴 차군.’

얼음을 쥔 것보다 더욱 싸늘한 냉기에 손바닥 전체가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다.

겉으로 만져도 이런데 이걸 직접 식도로 넘긴다?

딱히 몸에 좋을 건 같진 않다.

하여간 이놈의 동네는 뭐든지 다 차가워.

“그럼 이건 누구한테 도움이 되지?”

“당연히 차가운 빙공을 익힌 자들이죠. 그것을 먹으면 무공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꿀꺽, 어디선가 군침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사연호였다.

방구석 한쪽에 앉아 있는 그가 소화어룡의 내단을 뚫어질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거 필요 없으시면 저한테 주시면 안 될까요?”

갑자기 웬 존칭?

그는 북해빙궁주의 제자, 당연히 천하에서 가장 차가운 무공 빙백신공을 익히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내단이 어지간히 탐나는 모양이다.

“어차피 버리실 거면 저한테 버리시죠.”

“버리긴 왜 버려,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겠지.”

안 그런가?

천하제일명의 양반.

남궁정혁의 눈빛에서 그 뜻을 짐작한 엄신우가 말했다.

“단주님의 말이 맞습니다. 영물의 내단이 필요한 사람이 어디 무인뿐이겠습니까, 이것은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약재로 쓰일 수도 있습니다. 가령…….”

잠시 뜸을 들인 그가 말을 이었다.

“폐병에 걸린 북해빙궁주 같은 사람 말입니다.”

그 말에 의문을 느낀 남궁정혁이 물었다.

“진혁호는 체내 음양의 조화가 깨져 병이 생겼다면서, 음기가 강한 사람한테는 그 영단이 도리어 독 아닌가?”

“보통은 그렇지만, 때론 지독한 독이 약이 될 수도 있는 법이죠.”

“이한치한? 음기를 음기로 몰아낸다는 말인가?”

“맞습니다.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재주는 아니고…….”

에헴, 엄신우가 어깨를 으쓱대며 말했다.

“저 정도 되니깐 할 수 있는 겁니다.”

남궁정혁과 그의 눈빛이 마주쳤다.

“……그렇군.”

“그렇습니다.”

홧김에 음한보신갑을 뺏은 건 살짝 미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의 병세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겠는가.

엄신우, 저 인간이야 원래부터 남의 목숨 따위에는 관심 없었고.

하지만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연호는 달랐다.

“스승님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요?”

귀를 쫑긋 세운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떨리는 눈빛으로 소화어룡의 내단으로 손을 뻗었다.

짝, 남궁정혁이 그 손길을 뿌리치긴 했지만.

“남의 물건을 주인의 허락도 없이 함부러 만지면 안 되지.”

그러자 사연호가 다른 것을 잡았다.

남궁정혁의 손이었다.

“스승님의 병을 꼭 좀 치료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그의 간절한 태도로 보니 스승의 병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나 보다.

그래도 착한 제자네.

스승을 저리 생각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내가 왜?

네 스승의 병을 치료해 준다고 해서 나한테 무슨 이득이 있다고?

“북해빙궁주의 병을 치료해 줄 만큼 우리 사이가 돈독하지는 않을 텐데.”

“지금부터 돈독해지면 되지요. 스승님의 병만 치료해 주시면 당신은, 아니 귀인은 본 궁의 은인이십니다.”

사연호가 간곡한 말투로 사정했다.

“스승님도 자신의 병을 치료해 줄 은인을 나몰라라 할 만큼 염치없는 분은 아닙니다.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은혜를 갚을 것입니다.”

저렇게까지 말하니 고민되긴 하네.

나한테 필요 없는 물건으로 북해빙궁에 빚을 지워 두는 것도 나쁘진 않은 선택 같긴 한데.

정학우도 옆에서 한마디 보탰다.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일단 살리고 봐야지, 굳이 외면할 필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럴까?

오래간만에 좋은 일 한번 해 봐?

그것이 나중에 어떤 복으로 돌아올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좋다. 지금 당장 북해빙궁으로 가자.”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미룰 필요가 없다.

음한보신갑을 찾았으니 왕소단도 데려와야 하고.

남궁정혁 일행이 북해빙궁으로 출발했다.

*   *   *

한편 그 시각, 북행빙궁에서는…….

“제 술 한잔 받으십시오.”

“내가 먼저 왔네, 순서를 지키게.”

북행빙궁의 연회장에서 환송회가 열렸다.

이곳을 방문을 철혈궁의 사자가 내일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린 환송회에는 북해빙궁의 주요관계자들이 모두 참석했다.

기다란 탁자 한가운데 앉은 중년 사내가 철혈궁의 사자, 양기섭이었다.

“하하하, 여러분들이 주는 술을 모두 받을 터이니 싸우지들 마십시오.”

너털웃음 짓는 그의 주변으로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내일 떠나는 그에게 한 번이라도 더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였다.

“잠깐의 인연이었지만, 얼굴을 뵐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먼 길 조심히 가십시오.”

그런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양기섭 앞에 길게 줄까지 설 지경이었다.

그러니 그 광경을 보니 진혁호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양기섭 맞은편에 앉은 그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굳어 있었다.

‘이십 년의 세월이 북해빙궁의 혼까지 잠식했구나.’

그가 소궁주이던 시절에는 철혈궁에 반감을 가진 북해빙궁도가 대부분이었다.

그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타도 철혈궁을 외쳤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적대감은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희미해져만 갔다.

그뿐이면 그나마 다행이련만.

이제는 철혈궁에 잘 보이려 하는 자가 그렇지 않은 자보다 더욱 많다.

지금 양기섭 앞에 줄 서 있는 자들이 그 증거였다.

심지어 저들 중에는 북해빙궁의 핵심 요직을 맡은 자도 있었다.

진혁호의 속이 타들어 가는 이유였다.

‘힘으로 굴복한 건 힘을 키워 극복하면 된다.’

그렇다면 정신은?

정신이 무너진 것은 어찌 바로 세워야 한단 말인가.

양기섭이라고 진혁호의 그런 마음을 모를 리 없다.

눈치와 상황 파악이 빨라 사자로 파견된 그가 저렇게 대놓고 인상을 찌푸린 진혁호의 불만을 어찌 모를까.

양기섭이 술잔을 연거푸 비우는 진혁호에게 말했다.

“목이 많이 마르셨나 봅니다.”

묘한 어투, 진짜로 목이 마른지 묻는 게 아니다.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를 묻는 것이지.

진혁호도 그 의중을 모를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다.

그것이 애써 억눌러 놓았던 그의 분노를 자극했다.

“한낱 사자 주제에 본좌를 능멸하려는 것이냐?”

쾅, 그가 주먹을 내려치자 탁자가 반으로 부서지며 그 위에 있던 음식이 땅바닥을 뒹굴었다.

동시에 싸늘한 어색함이 연회장을 감쌌다.

깜짝 놀란 사람들이 눈알을 굴려 진혁호와 양기섭,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제가 술에 취해 말이 헛나왔나 봅니다.”

양기섭이 고개를 숙였지만, 진혁호의 분노는 풀리지 않았다.

자신을 슬며시 올려다보는 양기섭의 눈빛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눈초리를 옆으로 가늘게 뜬 것이 오히려 상대를 깔보는 자의 오만한 눈빛이었다.

“철혈궁의 이름값이 네 목숨을 지켜 줄 줄 알았더냐?”

진혁호의 손에 새하얀 빙기가 맺히자 양기섭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 빈자리를 채운 건 그와 함께 온 부하였다.

양기섭 옆에 앉아 있던 민머리 사내가 양기섭 앞에 섰다.

“건방 떤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차가운 냉기가 양기섭을 덮치려 할 때였다.

쿨럭.

진혁호의 기침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과도한 분노와 술의 영향 때문일까.

쿨럭쿨럭, 한 번 시작된 기침은 좀처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궁주님, 괜찮으십니까?”

겨우 기침을 멈춘 진혁호가 자신의 주위로 몰려든 사람들을 뿌리쳤다.

아랫사람들 앞에서 이 무슨 추태란 말인가.

조금 전의 분노는 어느새 사그라지고, 자신의 몸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그 위를 덮었다.

“운이 좋았구나.”

진혁호가 양기섭을 잠시 노려보다 연회장 밖으로 나갔다.

‘……곧 죽을 인간이 끝까지 자존심은.’

그런 그의 등 뒤를 주시하는 양기섭는 눈빛은 스산하기만 했다.

*   *   *

연회는 곧 끝났다.

진혁호와 양기섭의 충돌로 흥이 식었기 때문이다.

그 아쉬움에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따로 술을 마시러 갔다.

그건 진혁호의 첫째 제자, 원재식도 마찬가지.

다만 그 상대는 의외였다.

“제가 한 제안을 생각해 봤습니까?”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양기섭의 말에 원재식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

“저 내일이면 떠납니다. 아직도 결정하지 못하면 어떡합니까?”

“아무리 그래도 사부님을 어떻게…….”

말끝을 흐리는 그를 보며 양기섭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독하지 않으면 사내대장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절호의 기회를 놓칠 셈이오?”

“…….”

“제가 들어 본 바에 따르면 진 궁주가 당신보다 둘째 제자를 더 편애한다고 하더군요. 설마 사제에게 궁주 자리를 빼앗길 건 아니겠죠?”

“당연하죠, 북해빙궁의 다음 궁주는 접니다.”

“그 시간을 좀 더 앞당기는 것뿐입니다. 이제 결단을 내리시죠.”

“철혈궁에서도 이번 일을 알고 있습니까?”

“당연하죠. 위의 허락을 받지 않고 제가 감히 이런 일을 어찌 벌이려고 하겠습니까.”

목이 칼칼한 그가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본 궁에서도 진혁호, 그자를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평화스러운 동맹 관계에 해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동방도존 단사천, 그분도 이번 일을 알고 계시는 것입니까?”

뜻밖에도 양기섭은 고개를 저었다.

“그분의 관심사는 오직 무공뿐입니다. 그분이 그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정치’하는 것이 저 같은 문관들의 역할이지요.”

“아무리 스승님이 아프다고 해도 북해빙궁의 최고수입니다. 제가 감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당신은 그저 우리가 준 약물을 진혁호에게 먹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자를 죽이는 건 저희가 직접 할 테니.”

양기섭이 원재식에게 한 제안이 바로 이것이었다.

진혁호 암살.

그가 철혈궁에 반발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관인 당신이 어떻게요?”

양기섭이 슬쩍, 뒤를 돌아보자 민머리의 사내가 서 있었다.

조금 전 연회 때 양기섭을 보호하려 했던 바로 그 남자였다.

양기섭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고개를 숙이자, 민머리 사내가 자리에 앉았다.

“……?”

원재식이 그 모습에 의문을 느낄 때였다.

양기섭이 말했다.

“인사하게, 본 궁의 팔두신 중 한 분인 현광호 님이시라네.”

“팔두신이라면……?”

“본 궁의 장로직을 맡고 계시지.”

현광호가 느긋하게 의자 뒤로 몸을 기대며 말했다.

“비밀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기에 이렇게 신분을 숨길 수밖에 없었네.”

음모가 무르익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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