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103화 (103/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103화

“밖에서 보던 것보다 안에 들어오니 훨씬 넓네요.”

북해빙궁으로 들어온 정학우가 감탄했다.

그가 앞으로 걷는 와중에도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가며 북해빙궁 곳곳을 구경했다.

“도련님, 저기 눈을 모아 사람 형상으로 만든 것도 있습니다.”

남궁정혁은 어린아이처럼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정학우의 호들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모습이 마치 대도시에 처음 놀러 온 시골 촌놈 같았기 때문이다.

중원인의 자존심이 있지, 저리 경망을 떨어서야 되겠는가.

그래서 남궁정혁은 고개를 천천히 돌려 점잖게 북해빙궁을 구경했다.

어차피 이곳에 처음으로 온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부지만 놓고 보면 남궁세가보다 넓나?’

북해빙궁은 반듯한 평지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다만 건물의 수는 남궁세가보다 적은 것 같았다.

남궁세가가 넓은 대지 위에 건물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면, 북해빙궁은 광활한 대지에 건물들이 여유롭게 서 있었다.

“바로 가주실로 모시겠습니다.”

사연호는 아까부터 이랬다.

남궁정혁이 진혁호를 치료해 준다고 했을 때부터 계속 존댓말을 썼다.

나이도 그가 더 많은 것 같은데 말이다.

스승을 위하는 마음만은 진짜 같다.

“그 전에 소단이한테 먼저 가자.”

진혁호의 병이 하루 이틀 된 것도 아니고, 인제 와서 조금 더 늦게 치료한다고 뭔가 크게 달라질 것이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 소단이는 지금도 차디찬 감옥에 갇혀 있다고.

남궁정혁은 그것이 마음 아픈…… 것까지는 아닌데 그래도 남의 집 환자보다는 내 부하가 우선이지.

남궁정혁의 말에 사연호가 냉큼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우선 그부터 풀어 주죠.”

그가 남궁정혁 일행을 북해빙궁의 감옥으로 안내했다.

“소단아, 우리 왔다.”

명상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감옥 한복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그가 눈을 번쩍 떴다.

“단주님!”

그가 감옥의 쇠창살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지?”

“고생은 무슨, 그것보다 음한보신갑을 구하신 겁니까?”

다급하게 말하는 왕소단을 보며 남궁정혁이 씨익 웃었다.

“내가 여기 온 것 보면 모르겠냐?”

“단주님…….”

이 추운 날씨에 발가벗고 바이칼 호수를 휘젓고 다닌 보람을 느낀다.

소단이가 존경을 넘어 아련하기까지 한 시선으로 날 보는 것 보니 말이다.

천금전장의 돈 중 절반은 이미 나의 것이 된 느낌이랄까.

“…….”

감옥 안에서 나온 왕소단을 보니 목 뒤가 움푹 들어갔다.

그렇다고 걱정하지는 마라.

아픈 것은 아니니.

아마 혈도를 점해 놓은 것 같다.

그가 붙잡혀 있을 때 무공을 쓰지 못하도록.

“이리 와 봐.”

남궁정혁이 왕소단의 목을 향해 손을 뻗을 때, 사연호가 말했다.

“수법을 보니 스승님께서 직접 혈도를 점한 것 같습니다. 잘못 건드리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스승님께 직접 풀어 달라고 하시죠.”

사람마다 각자의 무공이 다르듯이 점혈하는 방법도 다르다.

그러니 당연히 푸는 방법도 다르다.

사연호의 말대로 잘못 건드리면 자칫 기혈이 꼬여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지만…… 됐다.

“풀었다.”

내가 누군가.

전직 천마지존 아닌가.

점혈 푸는 것쯤이야, 누워서 떡 먹기지.

“……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남궁정혁이 놀라 두 눈을 부릅뜬 사연호에게 말했다.

“이제 가주실로 가자.”

네 스승의 병을 치료해야지.

감옥 밖으로 나와 가주실로 향하던 남궁정혁 일행이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한 인물과 마주쳤다.

“사형.”

“궁으로 언제 돌아왔느냐?”

진혁호의 첫째 제자, 원재식이었다.

“지금 막 왔습니다.”

“음한보신갑은 찾은 것…….”

그가 사연호의 등 뒤에 서 있는 남궁정혁을 보고 으르렁거렸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네놈이 들어온 것이냐?”

“사형, 진정하십시오. 저분을 이곳에 데리고 온 사람은 접니다.”

“……저분?”

자신을 납치한 사람을 보고 저분이라고?

이놈이 납치당한 충격으로 정신이 나갔나?

혼란스러워하는 원재식에게 사연호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었냐면…….”

음한보신갑을 찾은 것은 물론이요, 그들의 스승, 진혁호를 치료할 방법까지 있다는 것, 모두다.

“뭐? 스승님을 치료할 내단이 있다고?”

“사형도 기쁜가 봅니다. 그렇게 놀라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

대답하지 않은 원재식이 주먹을 살며시 쥐었다.

여기서 이렇게 일이 꼬일 줄이야.

양기섭의 설득으로 거사를 치르기로 결심한 그다.

그런데 인제 와서 스승의 병을 치료한다?

안 되지, 그럼 안 돼.

다행히 아직 만회할 기회는 있다.

차라리 저들을 여기서 만난 것이 다행이다.

“그래서 지금 스승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사형은 어디 가는 것입니까?”

“나도 스승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잘됐군요. 같이 가면 될 터이니.”

다시 걸음을 재촉하는 사연호에게 원재식이 말했다.

“스승님은 지금 가주실에 안 계신다.”

“그럼 어디 계시는데요?”

“날 따라와라.”

그가 사연호와 남궁정혁 일행을 북행빙궁 외곽에 있는 어느 큰 창고로 데려갔다.

“스승님이 진짜 여기에 계신다고요?”

“저 안쪽에 계신다.”

달빛이 조금도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공간.

사연호와 남궁정혁 일행은 그 어둠으로 들어갔다.

“사형, 스승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말을 하던 사연호가 멈칫했다.

창고 입구에서 원재식이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놈도 참 운이 없구나. 차라리 하루만 늦게 돌아왔었다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을 것을.”

“그게 무슨 말…….”

사연호는 자기가 하려던 말을 다 끝맺지 못했다.

덜컹.

원재식이 한쪽 벽면을 누르자 창고 바닥이 푹 꺼졌기 때문이다.

“으아아아.”

사연호와 남궁정혁이 그곳으로 떨어졌다.

원재식이 이제껏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자들을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저들도 저곳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지금껏 저 지하 감옥에 갇힌 모든 자가 그러하듯이.

*   *   *

“답답하구나.”

침대에 누웠던 진혁호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란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휘잉, 북방의 차가운 바람이 그의 전신을 스치고 지나갔다.

사실 찬 바람은 그의 몸에 좋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라도 숨 막힐 듯 갑갑한 자신의 마음을 달래야지.

‘북해빙궁의 미래는 어찌 될 것인가.’

철혈궁의 마수가 북해빙궁의 혼을 점점 갉아먹고 있었다.

거기에 대항해 북행빙궁을 지켜야 할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밖에 없었다.

북해빙궁의 궁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쿨럭.

그가 다시 기침했다.

그 누구보다 북해빙궁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과는 달리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도 없는 일.

첫째 제자, 원재식은 무공보다는 세속적인 이득에 더 관심이 많다.

북해빙궁의 부활이라는 막중한 사명을 맡기에는 성격과 자질, 모든 것이 부족하다.

그나마 둘째 제자, 사연호에게는 기대를 걸어 볼 법도 한데…….

‘아직 어려.’

강해지고하는 자는 열의도 강하고 올곧은 성정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의 호감도 얻고 있다.

다만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다.

그에게는 조금 더 성장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까지 내 몸이 버틸 수 있을까?’

햐아, 그가 긴 탄식을 내뱉을 때였다.

“스승님.”

웬일이지?

원재식이 이 늦은 밤, 무슨 일로 자신을 찾아왔단 말인가?

“스승님께서 오늘 저녁에 있었던 일로 상심이 클 것 같아 왔습니다.”

그가 자신의 손에 들린 흰색 다기를 내밀어 보였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고삼차입니다.”

의외다.

특별한 볼일이 아니라면 가주실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던 그가 차까지 챙겨 자신을 찾아오다니.

“이것을 마시면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 마음이 제법 기특하고도 하고.

원재식이 어긋난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관계가 소원해진 두 사람이었다.

진혁호는 자신의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못하는 제자를 다그치기만 했고, 원재식의 그런 스승의 잔소리가 듣기 싫었다.

자연히 둘 사이에는 냉랭한 한기만이 감돌았다.

“스승님, 한잔 드십시오.”

그래도 제자는 제자라 이건가.

자신이 이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할 걸 알고, 이런 것까지 준비한 것을 보면 말이다.

진혁호가 제자에게서 찻잔을 건네받았다.

“……향이 좋구나.”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향을 맡은 진혁호가 뜨거운 차를 조금씩 홀짝였다.

구수한 향에 비해 끝 맛이 조금 쓴 게 차를 너무 우렸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생각하는 제자의 마음 아니겠는가.

“스승님, 한잔 더 드시지요.”

찻잔이 비워질 때마다 원재식은 차를 따라 주었다.

그렇게 진혁호가 오래간만에 원재식에게 흡족함을 느낄 때였다.

“궁주님, 아직 주무시지 않으셨군요.”

문이 열리며 또 다른 사람이 그를 찾았다.

이번엔 명백한 불청객.

자신의 허락도 받지 않고 가주실로 들어온 양기섭 때문에 진혁호의 팔자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자네는 또 무슨 일인가?”

“궁주님이 밤잠을 못 이루실 것 같아 왔습니다.”

“왜? 자네가 재워 주려고?”

“물론이죠. 제가 궁주님을 재워 드리겠습니다.”

잠시 말을 끊은 양기섭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영원히 말입니다.”

“……네 이놈, 한 번 아량을 베풀었다고 그다음이 있을 줄 알았더냐?”

진혁호가 그의 손에 들린 찻잔을 양기섭에게 던졌다.

쐐앵, 매서운 파공음을 내며 날아간 그것이 양기섭의 이마에 부딪히기 직전이었다.

턱, 그의 뒤에 서 있는 민머리 사내가 찻잔을 가볍게 받았다.

“믿는 구석은 있었구나.”

내공을 담아 전력으로 던진 찻잔이었다.

그것을 저리 쉽게 받아 내는 거로 보아 저자도 제법 만만찮은 실력을 지닌 것 같다.

분노한 진혁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희들의 목을 잘라 철혈궁에 직접 항의할 것이다. 날 모욕한 죄를 말이다.”

그가 내공을 끌어올려 빙백신공을 펼치려 할 때였다.

콜록.

왜 하필 이때 기침이 다시 시작된 것인가……?

크으윽, 오른쪽 옆구리에서 심한 격통을 느낀 진혁호가 그 자리에 다시 주저앉았다.

칼로 그곳을 후벼 파는 듯한 통증 때문에 제대로 숨도 쉬기 힘들 정도였다.

“약효가 제법 듣나 보오?”

“……약효?”

“궁주님이 그 질긴 목숨 계속 유지하시길래, 제가 명줄을 끊어 줄 좋은 약을 보냈거든요.”

양기섭이 고개를 돌려 원재식을 보았다.

“궁주님이 그렇게 고통스러워하시는 걸 보니 제자가 약을 아주 정성껏 탔나 봅니다.”

“……뭣이라?!”

원재식이 자신을 쳐다보는 진혁호의 충격 어린 시선을 외면했다.

제 손으로 고삼차에 스승의 병을 악화시키는 독을 넣었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네 이놈!”

진혁호가 그런 그의 멱살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막히고 말았다.

민머리 사내, 현광호가 그의 팔목을 잡아 벽 한쪽으로 던졌다.

크으윽, 신음을 내며 겨우 일어서던 진혁호가 또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쿨럭, 기침과 함께 이번에는 피까지 토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꽤 많은 양이다.

진혁호의 흰색 옷이 벌겋게 물들었다.

“……네, 네가 어떻게 나한테 독을.”

“날 제자로 삼은 걸 후회한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았소?”

그러게 잔소리도 작작 좀 했어야지.

원재식이 양기섭을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최대한 조용히 처리해 주시오.”

아무리 스승이 밉다 하나 그의 허무한 최후까지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지는 않다.

그가 가주실을 나가려고 할 때였다.

‘……응?’

문으로 손을 뻗을 때, 밖에서 문이 먼저 열렸다.

이런 제길.

하필 이럴 때 목격자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 들어오다니.

원재식이 반쯤 열린 문틈으로 살수를 날렸다.

강기가 맺힌 그의 손이 상대의 목을 찌르려는 순간.

“너 이 새끼, 잘 만났다.”

문이 활짝 열리고 맞은편에 있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궁정혁이었다.

그가 원재식의 손을 잡아 그대로 뒤로 꺾었다.

“끄아악!”

“안 그래도 네놈을 어떻게 잡아서 족쳐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여기 있었구나.”

상대의 거친 완력에 어깨가 탈골되는 것은 고통을 느낀 그가 무릎 꿇었다.

그런 원재식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서렸다.

“어, 어떻게 지하 감옥에서 탈출한 것이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