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104화 (104/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104화

“젠장, 실수다.”

남궁정혁이 욕설을 내뱉었다.

놈의 장단에 맞춰 잠시 놀아 준다는 것이 이런 화를 불러올 줄이야.

그는 원재식이 뭔가 꿍꿍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진즉에 눈치채고 있었다.

스승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에 깜짝 놀라는 그의 표정이 수상했다.

내가 눈치가 좀 빠르냐.

분명 입꼬리가 양쪽으로 올라가긴 올라갔는데, 그 끝이 살짝 떨렸다. 마치 억지로 웃는 듯한 모습.

동시에 의문도 생겼다.

‘저 인간은 왜 진혁호의 완쾌를 바라지 않을까?’

사제지간에 불화가 있나?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가장 빠르게 얻는 방법은 원재식의 척추를 살짝 늘려 주는 것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호기심 해결을 위해서 사람을 고문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더구나 여기서 또 사고를 치면 소단이를 고칠 수 없을 텐데.

내가 그 정도 양심은 있다.

그래서 원재식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가 줬다.

진혁호가 가주실에 없다는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우릴 데려가려고 하는 곳이 어딜까 하고.

그것이 실수였지만.

‘기관 장치가 있었을 줄이야.’

갑자기 바닥이 푹 꺼지는데 나라고 피할 방법이 있나.

게다가 깊이도 얼마나 깊은지 바닥에서 우리가 추락한 곳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류무사 정도 수준이면 떨어졌을 때 죽었을 거다.

“으아아아악!”

갑자기 정학우가 소리를 질렀다.

그가 뭔가를 보고 기겁해서는 뒤로 깡충 뛰었다.

“왜? 뭐가 있는데?”

“……저, 저기요.”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시체가 누워 있었다.

그것도 한 구가 아니라 여러 구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원재식의 계락에 빠진 사람들 같았다.

지금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인 점은 시체 썩는 악취가 나지 않는다는 점 정도?

날씨가 추워 시체들의 보존 상태는 좋았다.

남궁정혁이 사연호를 보았다.

“진혁호와 원재식의 사이가 안 좋았나? 이런 짓을 벌인 이유가 뭐야?”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형이 스승님과 냉랭한 관계이긴 했지만, 왜 이런 짓까지 벌였을까요?”

대답하는 사연호의 태도를 보아 그도 자세히 아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럼 상황은 명확하다.

“여기서 탈출해서 원재식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겠군.”

대답하지 않으면 그의 척추뼈 개수도 늘려 주고 말이다.

이런 일을 당했으니 그 정도쯤은 해도 되는 정당성은 확보했다.

문제는 여기서 탈출하는 방법이다.

남궁정혁이 지금 자신들이 있는 공간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막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고립된 곳이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나갈 방법은 자신들이 떨어진 천장밖에 없을까?

남궁정혁의 시선이 위로 향하자 정학우가 말했다.

“벽면이 얼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벽에 손을 대 보았다.

단단한 질감이 느껴졌다.

많이 미끄러울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기어 올라가지?

주살검을 박아서 올라가면 되나, 고민하는 남궁정혁에게 왕소단이 다가왔다.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십니까?”

“여기서 탈출할 방법.”

“참나, 그게 뭐 그리 어려운 방법이라고 인상까지 써 가며 생각하십니까?”

“……?”

“출구는 저기 있잖아요.”

……응? 저기가 출구라고?

왕소단이 가리킨 곳은 그들이 서 있는 곳의 오른쪽 벽이었다.

그곳 벽면에 금이 가서 벌어진 틈이 있었다.

그 간격은 매우 좁았다.

성인 남자의 발 크기 정도쯤은 될까?

“저기로 나가자고?”

“예.”

왕소단의 너무도 태연한 대답에 남궁정혁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아, 사람은 저렇게 좁은 틈으로 지나갈 수도 있구나…… 하고.

‘아니지, 잠깐.’

하도 어이없는 상황을 마주쳐서 깜빡했는데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던가.

천하제일대도, 귀영신투의 단 하나뿐인 제자 아닌가.

남궁정혁이 희망을 품고 물었다.

“너는 저곳을 지나갈 수 있는 걸 거야, 그래서 나한테 그렇게 말했지?”

어둠 속에서 그의 하얀 치아가 빛났다.

웃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밖으로 나가 위에서 문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인체의 신비를 보았다.

우두둑, 왕소단의 관절이 요상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더니, 그가 좁은 틈 사이로 쏙 들어갔다.

마치 그의 몸이 연기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저 정도 재주는 있어야 남의 집을 털어먹을 수 있는 거구나.’

그렇게 왕소단이 나간 지 한 다경쯤 되었을까?

끼이익, 천장에서 기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밧줄 하나가 쑥 내려왔다.

“어서 올라오십시오.”

목소리의 주인은 왕소단이었다.

*   *   *

“대, 대체 어떻게 지하 감옥에서 탈출한 것이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외치는 원재식의 팔을 남궁정혁이 더욱 세게 비틀면서 대답해 줬다.

“인체의 신비다.”

“……이, 인체의 신비?”

“그런 게 있어, 말해도 넌 몰라.”

자기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는 신기한 재주거든.

“이제는 내가 물어보자, 넌 대체 우리한테 왜 그런 거냐? 우리가 너한테 무슨 잘못을 했다……?”

말을 하던 남궁정혁이 멈칫했다.

그제야 가주실 풍경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진혁호는 왜 저렇게 피를 흘리고 있어? 그 앞에 선 자들은 누구고?’

남궁정혁이 고갤 갸웃할 때, 그의 곁을 지나쳐 가주실 안쪽으로 달려간 사람이 있었다.

“스승님!”

사연호였다.

그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진혁호를 부축했다.

“왜 이렇게 되신 겁니까? 병세가 악화되신 겁니까?”

허탈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은 그가 손가락으로 원재식을 가리켰다.

“네 사형이 나에게 독을 먹였다. 내 병세가 악화하는 독.”

“네에?! 뭐라고요?”

사연호가 깜짝 놀랄 때, 남궁정혁은 그의 의문이 풀렸다.

‘이야, 생각보다 더 대단한 놈이었군.’

진혁호의 완쾌를 탐탁지 않아 하는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그의 무병장수를 바라지는 않는구나 하고.

근데 거기서 더 나아가 제 손으로 스승에게 독을 먹이다니.

남궁정혁도 여기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이거 완전 인간 말종이구먼.’

남궁정혁이 잡고 있던 원재식의 팔을 쭉 당겼다.

그리고 그대로 어깨뼈를 탈골시켰다.

“크아아아악!”

나쁜 놈들이 또 목청은 좋아요.

남궁정혁이 소리치는 원재식을 걷어찼다.

“시끄러워.”

목청이 좋아서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다.

누운 자세 그대로 붕 날아간 그가 벽에 부딪혀 바닥에 뚝 떨어졌다.

더는 고함을 지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기절한 것 같다.

남궁정혁이 명치를 제대로 걷어차 줬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향해 양기섭이 외쳤다.

“너는 누구냐?”

“내가 누군지 알고 싶으면, 너부터 자기소개하는 게 예의 아닐까?”

“네놈이 죽고 싶은가 보구나.”

“내가 누군지 말하면 살려 줄 것처럼 말하네?”

남궁정혁이 그의 옆에 서 있는 현광호를 턱 끝으로 가리켰다.

“거기 대머리 말이야, 저렇게 살기를 노골적으로 풍기는데 아무리 봐도 자기소개 한다고 살려 줄 것 같진 않단 말이지.”

그의 말에 현광호가 남궁정혁에게로 몸을 틀었다.

“재밌는 놈이로군.”

“그러는 당신은 머리털이 없는 놈이고.”

현광호의 이마에 핏대가 불끈 솟았다.

대머리라 그런지 뛰어나온 혈관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그런 그에게 남궁정혁이 계속 말했다.

“사부 시해라는 대담한 짓을 원재식 혼자 계획했을 리는 없고, 당신들이 부추긴 건가?”

딱 봐도 상황이 그런 것 같은데.

내가 촉이 좀 좋거든.

남궁정혁이 그렇게 추측할 때, 진혁호가 말했다.

“저자들은 철혈궁에서 온 인물들이다.”

오호, 이거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이 나왔다.

남궁세가와 함께 마교를 멸망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철혈궁 사람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얼마나 반가운지 나도 모르게 주먹이 꽉 쥐어 쥘 정도다.

“철혈궁에서 나오신 분들이 왜 북해빙궁주를 시해하려고 할까?”

“그건 네놈이 알 바 없다. 네가 알아야 할 건 단 하나다.”

“……?”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누구도 살아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해빙궁주를 죽이려 한 일의 목격자가 있으면 안 되니까?”

“그래도 죽는 이유를 잘 아는구나.”

현광호의 기도가 순식간에 변했다.

하압, 짧은 기합 소리와 함께 그가 남궁정혁에게 돌진했다.

그가 다가가는 압력으로 남궁정혁의 머리가 흩날릴 정도였다.

‘권을 쓰는 자인가?’

현광호가 불끈 쥔 두 주먹을 남궁정혁에 휘둘렀다.

그가 주먹을 찌를 때마다 남궁정혁의 볼이 움푹 들어갔다.

그렇다고 그가 상대의 공격에 가격당한 건 아니다.

다만 현광호의 주먹이 그만큼 강했다.

그가 공격할 때마다 그의 주먹을 중심으로 거친 바람이 불었다.

남궁정혁도 이렇게 강맹한 공격은 오랜만이다.

아마 환생 후, 지금껏 맞서 싸운 자 중에는 이자가 강한 것 같다.

‘과연 철혈성이라 이건가.’

하긴 이 정도쯤은 되니깐 마교가 무너졌겠지.

그래서 오히려 더 기꺼운 마음이 들었다.

오랜 갈증 후에 마시는 물이 그 어느 때보다 시원한 것처럼, 복수의 대상도 너무 시시하면 재미가 없다.

최소 이 정도쯤은 되어야 제대로 할 마음이 생긴단 말이다.

‘고맙다, 제대로 된 상대여서.’

촤악, 주살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상대가 저렇게 열심히 주먹을 휘두르는데 자신도 그에 걸맞게 상대해 줘야지.

몸을 웅크린 남궁정혁이 반원 모양을 그리며 아래에서부터 위로 검을 쳐올렸다.

그의 검 끝에서도 강렬한 검압이 발생하여 상대를 덮쳤다.

그러자 현광호의 머리…… 는 아니고, 옷이 펄럭였다.

“싸울 때 아무래도 유리하겠어.”

“무슨 말이냐?”

“머리카락이 흩날려 시야를 가릴 일은 없으니.”

“그래서 일부러 밀었다.”

진짜?

아무래도 거짓말 같은데.

잡념을 가질 새가 없다.

상대의 주먹이 아까보다 더욱 강력하게 그를 덮쳤기 때문이다.

‘……거짓말 맞네.’

발끈해서 젖먹던 힘까지 다하는 걸 보니 거짓말 맞다.

거짓말하는 나쁜 어른은 그에 걸맞은 벌을 받아야 하지.

현광호의 주먹을 피하기만 하던 남궁정혁의 눈이 빛났다.

상대의 공격에서 빈틈을 찾기 위해서였다.

‘직선적이고 강력하지만, 변화는 적다. 게다가…….’

남궁정혁이 발끝에 힘을 주고 현광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양 주먹을 휘두르고 난 후, 다음 공격을 하기까지 아주 찰나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헉!”

자신의 가슴팍에서 갑자기 나타난 남궁정혁 때문에 현광호가 기겁했다.

깜짝 놀란 그가 손바닥을 펼쳐 장으로 남궁정혁을 밀어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남궁정혁의 검이 그의 몸을 갈랐다.

푸왁, 현광호의 가슴팍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다.

“그러게 거짓말을 하면 안 되지.”

바닥에 쓰러진 그가 거친 숨을 헐떡였다.

“혀, 현광호 님!”

믿었던 그의 패배에 양기섭은 경악했다.

현광호를 믿고 거사를 벌였거늘, 그가 저리도 허무하게 패배하다니.

양기섭이 떨리는 눈동자로 남궁정혁을 바라보았다.

‘철혈성 팔두신을 한 방에 보내 버린 저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남궁정혁이 현광호의 피가 묻은 검으로 그를 겨눴다.

“이번엔 네 차례야.”

“사, 살려 주십시오. 저는 무공을 모르는 문관입니다.”

그래?

그럼 일이 수월하게 끝나겠군.

남궁정혁이 양기섭의 뒷덜미를 잡아 창문 밖으로 휙 던졌다.

“으아아아아.”

북해빙궁의 궁주실은 오 층에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