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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108화 (108/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108화

조양구의 나이는 마흔이다.

그는 불혹의 나이 동안 꽤 험난한 인생을 살며 남들이 겪지 못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는 오늘 처음으로 한 의문을 느꼈다.

‘사람이 저렇게 가벼운 것이었나?’

……아니다.

사람은 그렇게 가볍지 않다.

지금 그도 곡자운을 한 손으로 번쩍 들긴 했지만, 그건 자신이 그동안 무공을 꾸준히 수련해서가 아닌가.

그러고도 한쪽 어째가 뻐근하다.

육십 넘은 노인도 이런데 신체 건장한 사내는 말할 것도 없다.

분명 사람은 무겁다.

‘그럼 지금 저 광경은 뭐지?’

앳된 모습을 보면 이제 겨우 이십 대 초반쯤 됐을까?

그가 아무렇게나 휘두른 팔에 자신의 부하들이 펑펑 튕겨 나갔다.

“으아아아아!”

분명 손끝에 살살 맞은 것 같은데 자신의 부하들이 비명을 지르며 다리 밑에 흐르는 냇가에 빠졌단 말인다.

어제 마신 술이 안 깼나?

기묘한 광경에 조양구는 자신의 눈을 비볐다.

숙취로 헛것이 보이나 싶어서.

하지만 다시 봐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휙 휙, 귀찮은 파리 내쫓듯 휘두른 청년의 손에 자신의 부하들이 모두 허공을 날았다.

그렇게 다리 위에 있던 북두파의 무인들이 정리되고 이제는 조양구밖에 남지 않은 상황.

난데없이 등장한 청년의 묘기 같은 행동에 조양구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거 놓지.”

“……?”

“무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능력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 최소한의 장유유서는 지키자.”

“그게 무슨 말이냐?”

조양구가 소리치자, 청년이 곁눈질로 그의 손을 가리켰다.

“그 멱살 놓으라고. 나이 먹은 노인네 멱살을 대놓고 잡고 있으면 주위에서 보기 불편하지 않겠냐?”

아, 하도 어이없는 상황에 잠깐 깜박했다.

자신이 곡자운의 멱살을 잡고 있단 걸.

청년이 자신의 옆에 있는 사내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당신 아버지라고요?”

“그렇습니다.”

그 사내는 조양구도 잘 알고 있는 인물, 곡자운의 아들 곡진홍이었다.

최근 상주현에서 보이지 않는다 싶더니, 어딜 갔다가 이제 돌아온 건가?

‘……느낌이 좋지 않다.’

그와 함께 있는 저 청년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인상을 찌푸리는 조양구를 향해 곡진홍이 외쳤다.

“아버지를 순순히 내려놓아라.”

“그래? 정말 순순히 놔둬?”

슥, 조양구가 손을 뻗어 곡자운의 몸을 다리 밖으로 내었다.

곡자운의 다리가 허공에서 달랑달랑 흔들렸다.

자칫 아버지마저 다리 밑으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

그 위태로운 모습에 곡진홍은 속이 탔다.

“남궁 대협, 저희 아버지 좀 구해 주십시오.”

그가 그렇게 부탁한 사람은 당연히 남궁정혁이었다.

그는 곡진홍의 안내를 받아 지금 막 상주현에 도착한 참이다.

“이곳까지 오면서 대충 사정은 들었다. 상주현을 먹고 싶으시다고?”

무림에선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일이다.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중원이 아무리 드넓다 하나 무림 문파가 없는 곳은 거의 없었다.

없는 곳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든가 하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 새롭게 문을 연 문파는 기존에 터를 잡은 문파와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상주현처럼 급격히 성장한 지역은 그 분쟁의 여지가 더욱 크다.

원래 시골의 작은 문파였던 호정문은 누가 봐도 만만한 상대였으니.

“네놈은 누구냐? 누구길래 우릴 공격한 것이냐?”

계속 볼 사이도 아니고,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인연 같기에, 남궁정혁은 굳이 자기소개할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옆에 서 있던 곡진홍이 대신 말해 줬다.

“이분은 남궁세가의 남궁신검, 남궁정혁 님이시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당당했다.

자신이 남궁정혁과 함께 있다는 것이 퍽 자랑스러운 것 같았다.

곡진홍의 말에 조양구 미간에 더욱 깊은 주름이 졌다.

‘……저자가 남궁신검이라고?’

그는 곡진홍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부하들을 손가락 끝으로만 날려 버린 저자의 무위를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던가.

다만 궁금할 뿐이다.

‘대체 어떻게?’

왜 남궁세가의 인물이 호정문을 돕는 것일까.

호정문 같은 작은 문파가 남궁세가와는 무슨 인연이 있다고?

인상까지 찌푸리며 궁리하는 그에게 남궁정혁이 말했다.

“내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곰곰이 생각해 봤어. 호정문의 부탁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해서. 원래라면 그냥 싹 다 쓸어버리는 게 내가 이런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거든.”

조양구에게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간 그가 말을 이었다.

“근데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 좀 피곤해. 그래서 이번엔 평화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볼까 해.”

“……평화?”

“그래. 좋게 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거지.”

흥, 조양구가 콧방귀 뀌었다.

“조금 전, 당신이 내 부하들을 다리 밖으로 던져 버리지 않았소? 그런데 인제 와서 평화? 지금 그 말을 내가 믿으라는 거요?”

“그건 네 부하가 너무 약해서 그런 거고. 그냥 길만 비키라고 슬쩍 밀었는데 그렇게 튕겨 나갈 줄 나라고 알았나?”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하는 남궁정혁을 보며 조양구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이건 호정문과 북두파 사이의 일이요? 남궁세가가 왜 간섭한단 말입니까?”

“그건 당신이 알 필요 없고, 네가 알아야 할 건 단 한 가지다.”

“그게 뭐요?”

“내가 지금 좋게 말할 때 그 노인을 다리 위에 순순히 내려놓는 거.”

뚝뚝, 남궁정혁이 손가락 관절을 풀었다.

“뒤지게 맞고 싶지 않으면 말이다.”

“그러면 내가 겁먹을 줄 알았소?”

“맞고 싶다는 거구나.”

무림인들은 왜 이렇게 말이 안 통하는지.

남궁정혁이 바닥을 박차고 돌진했다.

순간 그의 신형이 앞으로 길게 늘어진 듯한 환영이 보일 만큼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그 모습에 기겁한 조양구가 곡자운의 멱살을 잡은 오른손을 놓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크으으윽.”

어느새 다가온 남궁정혁이 그의 손을 꽉 쥐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양구는 곡자운의 멱살을 쥔 손을 풀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손가락이 바스러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이제야 좀 후회가 되냐? 좋게 말로 할 때 듣지 않은 걸.”

“아직 끝나지 않았소.”

조양구가 왼손으로 남궁정혁을 공격했다.

그의 주먹이 남궁정혁의 관자놀이를 노렸다.

아무 소용 없었지만.

턱, 남궁정혁이 그의 왼손마저 붙잡았다.

조양구의 두 손이 모두 그에게 붙잡힌 것이다.

아드득, 어금니가 부서지도록 입을 꽉 다문 조양구가 양팔에 힘을 줬다.

남궁정혁에게 잡힌 자신의 팔을 빼내기 위해.

하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일단 노인네부터 풀어 주고 다시 시작하자.”

오히려 남궁정혁이 이끄는 대로 그의 팔이 움직였다.

다리 밖으로 뻗었던 그의 손이 다시 다리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런 그의 의도는 뻔했다.

곡자운을 다리 위로 무사하게 풀어 주기 위해서였다.

남궁정혁이 손을 놓자, 조양구의 손도 자동으로 풀렸다.

손가락 관절이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에 곡자운의 멱살을 더는 쥐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괜찮으십니까!?”

남궁정혁이 아버지를 부축하려는 곡진홍에게 물었다.

“이자가 북두파의 우두머리입니까?”

“아닙니다. 그자는 북두파의 장문인, 문두철의 하수인일 뿐입니다.”

그래요? 그럼 괜히 힘쓸 필요 없잖아.

밑에 놈 패 봐야 뭐 하겠는가.

어차피 위에 놈이 다 시켜서 하는 짓일 텐데.

이번엔 남궁정혁이 조양구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그가 하려던 짓을 남궁정혁이 해 주었다.

풍덩.

남궁정혁이 조양구를 다리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가 냇가에 거꾸로 처박혔다.

“어이, 넌 가서 너희 장문인한테 내 말이나 전해. 내가 조만간 찾아간다고 말이야.”

푸왁,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조양구가 고래고래 소릴 질렀다.

“북두파에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느냐?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리 한쪽에 서 있던 정학우는 고갤 갸우뚱했다.

‘남궁세가의 이름값에 기죽지 않았다?’

어지간한 대문파가 아닌 이상, 남궁세가의 이름 앞에 고개를 숙인 법도 하건만, 조양구란 자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학우는 그것이 의문이었다.

*   *   *

퍼억, 뒷짐 지고 선 조양구의 이마에 찻잔이 날아왔다.

“그래서 제대로 된 대항 한 번 못해 보고 그냥 돌아왔다고?”

오늘 낮에 있었던 남궁정혁과의 일을 듣고 분노한 북두파 장문인, 문두철이 던진 것이었다.

“그자의 능력은 제 능력 밖이었습니다.”

“남궁신검이라, 재밌는 놈이 왔구나.”

“무림의 젊은 고수 중 가장 명성을 날리는 자입니다. 쉽게 생각하시면 안 될 것입니다.”

“원래 소문이란 사람의 입과 귀를 거치면서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그놈 하나 상대하지 못할 것 같으냐?”

“신중히 처리하자는 것입니다.”

조양구가 조심스레 아뢰었다.

“차라리 그분께 말씀드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퍼억, 이번에는 벼루가 날아왔다.

조양구의 이마가 찢어져 피가 흘렀다.

“내가 고작 이런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어찌 그분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느냐? 이번 일은 나 혼자 처리할 것이다.”

문두철이 큰소리칠 때였다.

“……한데 이게 무슨 소리냐?”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웠다.

챙챙챙,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까지 났다.

“제가 나가서 알아보겠습니다.”

조양구가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었다.

장문인 실 문이 벌컥 열리며 부하가 들어와 보고했기 때문이다.

“적이 쳐들어왔습니다!”

다 늦은 저녁에 갑자기 적이라니.

“몇 명이나 쳐들어왔느냐?”

“한 명, 단 한 명입니다.”

*   *   *

몇 번을 고민했다.

남궁은원보를 사용할지에 대하여.

그것은 단 한 번뿐인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도록 아껴 두고 싶었을 것만.’

북두파의 거친 행패 앞에 더는 버틸 도리가 없었다.

곡자운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다행히 지금은 그 결단에 대한 보상을 받는 느낌이다.

“남궁 대협, 많이 드십시오.”

“남의 집에 와서 저만 먹으려니 미안하군요. 문주님도 드십시오.”

“아닙니다. 저는 대협이 드시는 모습만 봐도 배부른 것 같으니 어서 드십시오.”

남궁신검이라니.

남궁세가가 신의를 지킬 것은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가주의 아들이 직접 올 줄은 몰랐다.

그가 자신의 옆에 있는 아들, 곡진홍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궁세가가 오대문파의 수장으로 추앙받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 같은 작은 문파에 일에까지 이렇게 신경 써 주다니 말이다. 그렇지 않으냐?”

“…….”

예,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남궁정혁, 저자는 제사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곡진홍은 입을 꾹 다물었다.

오랜만에 기뻐하는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꺼억, 잘 먹었다.”

호정문이 준비한 저녁밥을 다 먹은 남궁정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북두파가 어디에 있습니까?”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십니까?”

의자 옆에 비스듬히 세워둔 주살검을 짚으며 남궁정혁이 말했다.

“그곳이 어딘지 알아야 찾아갈 것 아닙니까?”

“오늘 오셨는데 벌써 찾아가시려고요?”

“제가 아예 안 하면 몰라도, 한 번 마음먹은 건 미뤄 두지 못하는 성격이라서요.”

“그렇게 해 주시면 저희야 감사하긴 한데…….”

곡자운이 노령의 몸을 이끌고 남궁정혁을 직접 북두파로 안내했다.

그간 쌓인 게 많은 그가 북두파에 따질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남궁정혁과 함께 그곳으로 가던 정학우가 물었다.

“도련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뭐가?”

“북두파를 어떻게 처리하실 거냐고요?”

“아까 내가 말했잖아. 평화적인 방식으로 처리한다고.”

“설마 그 평화라는 게 ‘호정문하고 사이좋게 지내세요.’ 이렇게 말씀하시려는 건 아니겠죠?”

“이게 애들 소꿉장난이냐, 그렇게 말을 하게.”

“그럼 뭐라고 하시려고요?”

“이곳에서 일주일 안에 꺼져라. 그렇게 말해야지.”

“……도련님의 소망은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데요.”

“뭐 어쩌겠냐? 평화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몰라 주면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지.”

그렇게 두런두런 얘기하던 남궁정혁과 정학우가 발길을 멈췄다.

앞서가던 곡자운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기 때문이다.

“저기가 북두파입니다만…….”

그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살짝 떨리는 것이 많이 놀란 것 같다.

“……!”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을 본 남궁정혁도 놀랐다.

북두파의 정문에서부터 쓰러져 죽은 사람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일…….”

그때였다.

“으아아악.”

북두파의 정문에서 소리를 지르며 한 사내가 뛰쳐나왔다.

그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남궁정혁 일행에게 다가가 그 뒤에 섰다.

“나, 나 좀 살려 주시오.”

북두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남궁정혁이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곡자운의 말이 더 빨랐다.

“그자가 북두파 장문인, 문두철입니다.”

더욱 궁금해진다.

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장문인까지 이렇게 도망쳐 나온 걸까?

“문두철 빼고 다 죽인 줄 알았더니 아직 살아 있는 자가 있었군.”

북두파의 정문에서 한 남자가 당당히 걸어 나왔다.

얼굴은 물론이요, 발끝까지 피에 젖은 모습을 보니 사신이 따로 없었다.

그를 본 남궁정혁의 얼굴이 굳었다.

직감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결코, 나의 아래가 아니다.’

아니, 내가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이길 수 없는 초고수다.

피어오르는 기세로 봐선 화경의 벽을 뚫은 것 같다.

“네놈들도 모두 죽여 주마.”

상대가 다가오자, 남궁정혁이 급히 말했다.

“학우야, 내가 저자의 발목을 잡고 있을 테니 일행을 데리고 최대한 멀리 도망쳐라.”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 남궁정혁이 주살검을 뽑을 때였다.

“응? 잠깐, 자네 정혁이 아닌가?”

누구지? 저자가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하하하, 이렇게 다시 만나서 반갑구먼.”

게다가 친한 척까지.

남궁정혁은 고갤 갸웃했다.

얼굴에 피 칠갑을 한 저자는 누구이길래 나를 아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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