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의 유일한 기억이 되었더니-68화 (68/144)

#68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그래 봤자 결과는 같았다.

그렇다면 여기가 정말로…….

‘……정말 마법이랑 연관이 있는 곳인가?’

계속 찾아 헤매던 곳을 발견했음에도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오히려 미궁 속에 빠진 느낌이었다.

‘여기서 더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어 보이는데.’

이제부터 뭘 어떻게 더 해야 하는 거지.

멍한 얼굴로 가만히 있자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지 에녹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왜 그래요? 뭐 이상한 거라도 있어요?”

“이상한 건 아닌데……. 아니지. 이상하다고 하는 게 맞구나.”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에녹, 여기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요?”

“안이 너무 깨끗하잖아요. 집 밖도 그렇고.”

내 말에 에녹이 고개를 돌려 집 안을 쭉 훑어보았다.

그 시선에 맞춰 같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어쩐지 긴장되는 마음에 몇 마디 덧붙였다.

“아무리 쓸어도 먼지 하나 묻어나지 않아요. 산사태가 일어나서 방치된 집이었는데 이게 가능할까요?”

“좀 이상하긴 하지만……. 어쩌면 방치된 게 아니라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서 깨끗한 걸지도 모르죠.”

“관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이상해요. 산사태가 난 이후로는 산 안에 들어간 사람이 없었단 말이에요. 우리가 처음이라고요. 에녹도 그때 산지기한테 이야기 들었잖아요.”

“산지기 몰래 들어온 사람이 있을 수도 있죠. 이곳이 걱정되어서 들렀다가 정리하고 간 것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먼지 하나 없는 게 가능할까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먼지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래.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이 집 안에 있는 물건들 봤어요? 전부 오래된 것들뿐인데 모두 새것처럼 깨끗하고 멀쩡하다고요.”

거듭되는 말에 다소 흥분한 듯 목소리가 높게 나갔다.

에녹은 그런 나를 진정시키려는 듯 내 어깨에 손을 얹더니 나긋나긋한 어조로 말했다.

“그냥 오래된 디자인의 새 상품이겠죠. 시간이 멈춘 것도 아니고 그게 가능하겠어요?”

“…….”

“누가 마법을 부린 것도 아닌데.”

농담조로 마지막 말을 덧붙인 에녹이 나를 보며 웃다가 서서히 미소를 입가에서 거뒀다.

잔뜩 심각해진 내 얼굴을 본 탓이었다.

“설마 당신…….”

“…….”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그렇다고 한다면요?”

당당하게 말했으나 솔직히 떨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에녹이 뭐라고 답할지 무서웠다.

어쩌면 미친 사람 취급할지도 몰랐다.

이 세계에서 마법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기도 했고, 또 이미 나는 전에 들렀던 책방에서 ‘마법’이라는 단어를 언급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한지 보았으니까.

그러니 에녹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더라도 내가 감내해야 한다고.

하지만 에녹의 반응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왜 하필 마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묻는 말끝이 조금 떨렸다. 어떻게든 태연한 척하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으나 내 눈에는 선명하게 보였다.

에녹은 지금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에녹.”

“…….”

“혹시 뭔가 알고 있는 거 있어요?”

생각보다 직설적이었는지 에녹이 움찔 몸을 떨었다. 하지만 곧바로 입을 열지는 않았다.

평소 같으면 에녹이 마음을 진정시킬 때까지 기다려주었겠으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나는 조급한 마음에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번에 나한테 말했던 ‘마법이 존재하던 시대의 물건’과 연관이 있는 거예요?”

“그건…….”

그 말에 잠시 고개를 돌린 에녹과 내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흔들림이 없는 내 눈을 마주하던 에녹이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무언가를 고민하는가 싶던 에녹이 다시 입을 뗀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좀 지난 뒤였다.

“……사실 나도 뭘 확실하게 알고 있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저는 지금 뭐라도 좋거든요. 그만큼 단서가 절실해요.”

의자에서 일어날 듯 몸을 움직이자 에녹이 나를 만류하며 큼지막한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만큼 나에게 말해 주기 곤란한 일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에녹의 말을 들은 순간, 나 역시 그 생각에 동의했다.

“아버지께서…… 마법과 관련된 무언가를 찾고 계십니다.”

“아…….”

“저에게 말해 주신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엿듣게 되었어요. 데프론 공작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귀한 보물이라고 하더군요.”

“어떤 물건인지 혹시 아나요?”

“그건 모르지만…….”

길게 심호흡하며 말을 끊은 에녹이 입술을 파르르 떨다가 내 눈을 피했다.

도저히 내 눈을 볼 수가 없는 것처럼.

“……앞으로 어떻게 쓰실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집 안에 정적이 찾아왔다. 그 침묵 속에서 에녹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잘게 떨리는 은색 속눈썹. 그에 못지않게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는 녹색 눈동자.

그리고 불안한 듯 좀처럼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손.

그것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예상했던 바가 맞음을 확실히 깨달았다.

‘아, 날 죽이는 데 쓰려는 거구나.’

에녹 역시 내가 알아차렸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아까보다 더 어두워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마치 자신이 죄라도 지은 것 같은 행동에 나는 살짝 웃어주었다.

“고개 들어요, 에녹.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하하…….”

안심하라고 한 말이었는데 에녹이 허탈한 듯 실소했다.

메마른 소리가 다소 축축한 공기와 뒤섞여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안도와 원망이 뒤섞인 묘한 감정이었다.

그 색채가 다른 명확한 감정들을 한 번에 내보인 에녹이 다시 한번 작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내가 말한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면서.”

“에녹.”

“당신이 이러니까 내가 자꾸…….”

“…….”

“자꾸 욕심을 내게 되잖아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에녹은 차마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나에게 닿으려는 듯 뻗어진 손이 허공에서 배회하다가 밑으로 내려졌다.

밖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메리가 도와줄 사람들을 데려온 모양이었다.

“……이제 나가봐야 할 것 같네요.”

에녹이 한쪽 무릎을 꿇고 등을 보이며 앉았다.

“업혀요.”

“……저 못 걷는 거 아닌데.”

묘한 분위기에 잠시 멈칫하자 에녹이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업혀요. 괜히 무리해서 걷다가 더 안 좋아지면 어떡해요. 어떻게든 빨리 낫게 해야 할 거 아닙니까.”

“평소 걷는 속도로 걸으면 괜찮을……. 알겠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보지 좀 마요.”

왜 당신이 다친 것도 아닌데 울 것 같은 얼굴을 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에녹의 등에 업혔다.

그러자 그가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확 높아진 시야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와아, 키 큰 사람들이 보는 세상은 이렇군요.”

“……푸흡.”

내 말이 우스웠는지 에녹이 살짝 허리를 굽히며 웃다가 헛기침을 했다.

나는 조금은 밝아진 분위기에 안도하며 장난스레 입을 열었다.

“너무한 거 아니에요? 에녹도 처음부터 크지는 않았잖아요.”

“그래도 로레이나보다는 컸죠.”

“……그래 봤자 한 마디도 차이 안 났거든요? 아멜리오 백작가에서 사과 딸 때 에녹도 고생했던 거 기억한다고요.”

살짝 입을 삐쭉이며 말하자 에녹이 다시금 작게 웃었다.

그사이에 메리가 데려온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다가왔고 출입구 쪽으로 안내했다.

소나기였던 듯 어느새 비는 그친 상태였다.

“맞아요. 그랬었죠. 그때 저희 중에 아무도 키가 닿는 사람이 없어서 모두 고생 엄청 했었는데.”

“길버트가 따주겠다고 했는데 우리 셋 다 직접 딸 거라고 고집부렸잖아요. 길버트가 엄청 고생했을 거예요. 어린애들 셋 돌보느라.”

물론 레오나드는 그 당시 몸만 작았지, 어린애는 아니었지만.

“다 그렇게 작았는데 지금은 이렇게 큰 게 뭔가 신기해요.”

아무리 4년이 지났다고 해도 그렇지 레오나드나 에녹이나 어마어마한 성장 속도였다.

뭐, 레오나드는 예외라고 치더라도.

“확실히 성장기가 무섭긴 하네요.”

“하긴. 황제 폐하께서도 키가 크신 편이죠.”

“네, 둘 다 평균 훨씬 이상…….”

신나서 말을 잇던 나는 무언가 이상한 기분에 말끝을 흐렸다.

잠시 에녹과 나 사이에 짙은 침묵이 흘렀다.

‘젠이 레오나드라는 것을 에녹이 어떻게 알고 있지?’

혼란스러운 마음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내가 몸이 굳어진 것을 느꼈는지 에녹이 걸음 속도를 좀 더 늦추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긴장하라고 한 소리는 아니니까 힘 풀어요. 다리에 무리가 갈지도 모르니까.”

그 와중에도 내 다리를 걱정한 에녹이 나를 고쳐 업으며 읊조렸다. 하지만 나는 좀처럼 진정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무의식중에 말을 흘리기라도 했나? 아니야.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복잡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자 에녹이 달래듯이 말을 이었다.

“누가 말해 줘서 알고 있었던 게 아니니 걱정하지 말아요. 그냥 내가 눈치챈 것뿐이니까.”

“……어떻게, 아니 언제 알았어요?”

여기서 부정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 묻자 에녹이 바로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완전한 봄이 온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이제는 따뜻해진 바람이 볼을 간지럽혔다.

에녹이 다시 입을 열었던 것은 꽤 시간이 지난 후였다.

“언제 알았는지는 나도 모르겠어요. 그냥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

“아, 그 아이가 저분이었구나 하고.”

에녹의 목소리는 매우 담담했다.

나를 업고 있는 넓은 등이 미세하게 떨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평소와 같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고개를 빼 에녹의 얼굴이 어떤지 살피고 싶었으나 그만두었다.

이 이상은 에녹에게도 나에게도 상처였다.

어차피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면 아예 여지도 주지 않는 것이 맞았다. 이미 지금도 충분히 주지 않았는가.

“사실 알 수밖에 없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내 눈에는 딱 보였거든요.”

“……뭐가요?”

“그분이 당신을 보는 눈빛이 어떤지.”

거기까지 말한 에녹이 제자리에 우뚝 섰다. 곧 무언가를 참는 듯 잔뜩 억눌러진 숨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듯한 느낌에 나는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에녹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나에게 있어 에녹은 늘 봄 같은 사람이었다. 싱그럽고 변함없이 따뜻한 느낌을 주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지금껏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이 변한 적은 없었기에 잠시 잊고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봄이 있으면 여름이 있는 것이 당연하고 그 후에는 가을이, 그리고 겨울이 온다는 당연한 사실을.

“마치 거울이라도 보는 듯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당신을 보는데 모를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

“덕분에 많이 바뀌셨음에도 같은 사람이라는 걸 한눈에 알겠더군요.”

태연한 척 본심을 숨기고 있던 목소리 끝이 잘게 떨렸다.

에녹 역시 이를 눈치챘던지 잠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여전히 파르르 떨리는 등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직이 입을 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제 끝을 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저, 에녹. 이제 내려줘도 괜찮아요. 거의 다 왔으니까 나 혼자 걸어서 갈게요.”

“…….”

“에녹.”

연이어 부른 이름에도 에녹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것처럼 묵묵히 걸었다.

그 상태로 산을 벗어나고 여관에 들어가 계단을 올랐다.

굳게 닫혀 있던 입은 내 방에 들어가 침대 앞에 나를 데려다준 후에야 열렸다.

“이제 푹 쉬어요.”

에녹은 말을 마치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내가 이제부터 할 말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기라도 한 사람처럼.

이대로 바스러질 것처럼 위태로운 뒷모습에 잠시 멈칫했지만 나는 곧 마음을 굳혔다.

“……에녹, 이제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

“내일부터 와주지 않아도 돼요.”

나직한 말에 방 밖으로 서둘러 나서려던 발걸음이 땅에 뿌리라도 내린 것처럼 멈춰 섰다.

여지없는 명백한 거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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