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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유일한 기억이 되었더니-95화 (95/144)

#95화

짧게 끝날 줄 알았던 입맞춤은 꽤 오래 이어졌다.

젖은 소리가 방안을 작게 울리고 호흡이 제법 거칠어질 때까지.

이런 것을 생각한 건 아니었기에 처음에는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레오나드를 두고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내 정신은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내가 레오나드를 좋아하지만 않았더라면, 외롭기 그지없던 이전 세계로 돌아가는 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일 밤 숨죽이며 울던, 그 차가운 방구석으로 말이다.

그리고 레오나드를 밀어내려던 손이 위로 올라가 그의 목을 감쌌던 건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시원해.’

목을 타고 넘어온 생명력이 열로 들끓는 몸을 진정시키는 것이 느껴졌다.

끓고 있는 물에 누군가가 계속해서 얼음을 넣어주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열이 워낙 많이 나서인지 얼음이 녹는 속도는 평소보다 빨랐다.

갖고 있던 것을 잃어버린 몸이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몸을 더 움직였다.

‘조금 더…….’

목을 안은 팔에 힘을 주자 레오나드가 더 가까이 내려왔다.

침대에 무게감이 더해지자 끼이익-하는 특유의 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물론 그 상황이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내 체력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흐아. 레, 레오나드.”

“…….”

“레오나드, 잠깐만요!”

간신히 떨어진 입술에 고개를 돌렸으나 레오나드가 금세 따라왔다.

아, 더는 못할 거 같은데.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숨을 쉴 수 있도록 해 주긴 했지만 그럼에도 모자랐다.

애초에 레오나드와 내 체력은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결국 나는 더 참지 못하고 숨이 차서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났음에도 입술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으니까.

‘뭐지?’

뭔가 이상해 슬쩍 눈을 뜨자 그런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레오나드와 눈이 마주쳤다.

아무런 말이 없는 모습에 나 역시 입을 다물고 있자 그가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대고는 떨어졌다.

“어때?”

“……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가 어떠냐는 거지?

설마 자기 키스 실력이 어땠는지를 묻는 건가?

너무 어이없고 부끄러운 질문이었지만 이 상황에 그것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지 않은가.

나는 볼이 달아오른 것을 느끼며 입을 벌렸다.

“조, 좋았어요.”

“응?”

“……왜 말귀를 한 번에 못 알아들어요? 좋았다니까요.”

“……어?”

레오나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에 내 얼굴은 점점 붉게 물들어 갔다.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지? 나 놀려 먹으려고?’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까지 저러고 싶을까.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숨기지 않은 채 레오나드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그제야 무언가 깨달았는지 그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아.”

“…….”

“아아.”

한숨 섞인 신음을 뱉은 레오나드가 내 얼굴을 잡고 있던 손을 빼더니 자신을 얼굴을 가렸다.

아무래도 웃고 있는 것을 숨기려는 모양이었다.

레오나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분위기상 내가 무언가 잘못 말한 것이 분명했으니까.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 좀 잘못했다고 웃어?’

놀림당했다는 생각에 괘씸함까지 겹치자 이번에는 얼굴이 다른 의미로 붉어졌다.

내가 씩씩거리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레오나드는 여전히 제 얼굴을 가린 채였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웃긴 지 나도 좀 알자.’

미간을 찌푸리며 레오나드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얼굴을 가린 손에 닿기 전에 멈추었다.

내 얼굴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붉게 물든 귀를 본 탓이었다.

나는 그제야 레오나드의 몸이 웃는 사람치고는 너무 경직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않는 상황에 아까까지 화내던 것은 어디 가고 덜컥 걱정이 일었다.

“레오나드.”

“…….”

“레오나드, 괜찮아요?”

연이어 부른 이름에 담긴 조급함을 읽은 탓인지 레오나드가 손을 느릿느릿 떼어냈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얼굴은 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안 괜찮아.”

터질듯한 얼굴을 한 채로 레오나드가 작게 속삭였다.

“너무 그렇게 쳐다보지 마. 네가 갑자기 그런 말 하니까 당황해서 그렇잖아.”

“저야말로 갑자기 그런 말을 해서 놀랐거든요?”

“……나는 몸 상태가 어떤지 물어본 거였어. 최대한 빨리 치유하려고 노력했으니까.”

……뭐라고? 착각했다는 것에 민망해할 새도 없이 레오나드가 다시금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이마를 짚었다.

무언가를 가늠하듯 그 채로 가만히 있던 레오나드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뭐, 뭐가요?”

“치유했는데도 나아진 게 하나도 없잖아. 못 느꼈어?”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갑자기 머릿속이 빙글 돌았다.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평소대로라면 입맞춤하자마자 나았어야 했는데. 게다가 레오나드와 나는 밤새 같이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아직도 몸이 이런 거지?’

어젯밤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열도 어제보다 조금 내렸을 뿐이지 별 차이 없는 것 같았고.

내가 멍하니 있자 낮은 한숨과 함께 레오나드가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이제 내가 왜 안 데리고 가려는지 알겠지?”

“…….”

“그러니까 그냥 여기 있어. 필요한 일 생기면 꼭 부를 테니까.”

나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나드의 치유로도 몸이 나아지지 않는데 이 상태에서 산을 오르는 것은 무리였다.

괜히 따라서 올라갔다가 다른 사람들한테 민폐가 될지도 모르는데 그건 싫었으니까.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건…….

“왜 몸이 낫지 않는 걸까요?”

독으로 인해 망가진 입술도 입맞춤 한 번으로 나았던 치유력이었다.

아무리 감기가 심하다고 한들 이렇게까지 낫지 않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불안한 기색이 드러났던 탓일까, 연신 내 머리를 매만지던 손이 내 뒤통수를 감쌌다.

그리고는 그대로 힘주어 당겨 나를 제 품에 안았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연구원들한테 물어봤어.”

“연구원들이요? 산에서 내려온 거예요?”

“응. 아무래도 이야기한 후에 같이 올라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어제 기사들과 같이 내려오라고 했거든.”

기다란 손가락이 구불구불한 머리카락 사이를 부드럽게 유영했다.

그 느낌이 포근해서 잘못하다가는 이대로 다시 잠이 들 것 같았다.

“아무튼, 그래서 연구원한테 이야기를 들었고. 결론은 괜찮을 거래.”

“왜 이러는지 알던가요?”

“몸이 너무 허약해지면 아주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고. 요즘 너 일이 많았잖아.”

“그래도 신의 능력인데…….”

“드래곤의 치유력도 생각해 보면 효과가 강력한 약이나 마찬가지니까. 몸이 안 받는 날이 있을 수도 있지.”

“……그렇구나.”

그렇다면 좀 안심이었다. 이리저리 날뛰며 요동치던 마음이 좀 진정이 되는 것이 느껴졌다.

‘난 또 레오나드의 저주 때문에 내 몸까지 문제가 생긴 줄 알았잖아.’

로브를 쓴 여자가 했던 말은 아직도 내 불안감을 자극했다. 어쩌면 이대로 죽는 건 아닐까, 하고.

‘에이. 설마 그러겠어.’

아무리 내가 운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레오나드의 기억력도 온전치 않은 상황에 그렇게까지 되는 건 너무 잔인하잖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다시 어지러워져서 나는 더 상상하는 것을 관두고 레오나드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연구원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뭐. 그런 경우가 있었다고도 했고.

한참이나 나를 부드럽게 안고 있던 레오나드가 천천히 내 몸을 떼어냈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잡고 촘촘하게 입을 맞추었다.

평소와는 달리 담백한 몸짓에 나는 확신했다. 이제 출발할 때가 된 것이라는 걸.

“다녀올게. 다이아나한테 부탁해놨으니까 약 꼭 챙겨 먹고.”

“알겠어요.”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말고 푹 쉬고 있어. 돌아왔을 때 몸 상태 보면 다 알아.”

“뭘 그렇게까지 걱정해요? 내가 어린아이도 아니고.”

“어린아이보다 자기 몸 못 챙기니까 하는 말이잖아.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어.”

다시금 고개를 내린 레오나드가 내 이마에 입술을 내렸다.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지는 감촉이 어쩐지 아쉬웠다.

“누워서 쉬고 있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그래서일 것이다. 이대로 가면 꼭 오래 못 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레오나드.”

생각할 겨를도 없이 튀어 나간 손이 멀어지는 레오나드의 옷소매를 잡았다.

레오나드가 다시금 뒤를 돌고 눈이 마주친 순간 나도 모르게 말할 뻔했다.

가지 말라고. 안 가면 안 되냐고. 조금만 더 내 곁에 있어 달라…….

“로레이나?”

상념을 가르고 불쑥 들린 목소리에 나는 입꼬리를 빼 당겼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생각에 혼란스러워했던 것은 찰나였다.

“오두막 조사하는 거 끝나면, 우리 뭐 할까요.”

“음. 우선 황궁으로 돌아가야지. 가서 밀린 업무도 처리하고.”

거기까지 말한 레오나드가 부드럽게 눈꼬리를 휘었다.

“못했던 네 생일 파티도 하고.”

“좋아요.”

당신이 나와의 기억을 잊어가는 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굳이 그 말은 묻지 않았다.

당사자들도 모르는 사이에 정해진 우리만의 규칙 같은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스며든 암묵적인 약속.

“다녀와요. 몸조심하고요.”

“응. 금방 갔다 올게. 빨리 나아.”

걱정하지 말라는 듯 다시 한번 싱긋 웃어 보인 레오나드가 몸을 돌렸다.

그렇게 몇 걸음 걷던 레오나드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잊어버린 것이 생각이 났다는 듯.

“다녀오면 못한 데이트 하자.”

그래. 일단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어차피 오두막은 가야 하니 레오나드가 돌아오면 그때 이야기해도 되겠지.

이런 상황 정도는 금방 해결될 것이라는 미소에 나 역시 마주 웃어주자 그대로 레오나드가 방을 나섰다.

쿵,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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