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이사벨이 여행이라고 일컬은 일정은 꽤 평탄하게 흘러갔다.
‘결국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고.’
나들이를 나오면서도 표정이 안 좋던 엘레노아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안심한 얼굴이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아픈 것은 코코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로레이나, 즉 내 영혼이니까.
엘레노아의 긴장이 풀어지자 어딘가 움츠려져 있던 칼리드와 이사벨의 낯 역시 활기가 돌았다.
이사벨을 제외한 둘은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로브의 후드까지 푹 눌러썼지만, 지금 날씨에 그리 이상한 옷차림도 아니었으니 문제없었고.
군침이 돌 정도로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꼬치 요리를 든 이사벨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참 화목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네. 이렇게 끝날 거였으면 나한테 보여주지 않았을 텐데.’
굳이 여기서 멈춘 이유가 있는 거 아니었어? 그냥 정말 건너뛰기만 해준 거였나?
그런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갑작스레 새장이 조금 흔들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이사벨의 손에 들려있었다.
“……너네는 정말 끝도 없이 먹는구나.”
기겁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엘레노아가 품 안에서 두둑한 주머니를 꺼내었다. 음식값을 계산하기 위해 잠깐 나를 맡긴 모양이었다.
이사벨은 엘레노아의 옆에서 하나 더 먹어도 되냐고 묻는 칼리드를 빤히 보다가 잠깐 고개를 돌렸다.
꼬치 구이집 건너편에 있던 장신구가 눈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종종거리는 발걸음이 곧 그쪽을 향했다.
그래. 바로 그게 문제였다.
“엇?”
짧은 외침과 함께 작은 몸이 균형을 잃고 흔들렸다. 무언가를 피하기라도 하는 듯 사람들이 하나같이 빠르게 움직인 탓이었다.
그대로 인파에 휩쓸린 이사벨이 꼬치 구이집이 겨우 보일 만큼 밀려났다. 그 반동을 그대로 느낀 나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마차가 들어와서 그런 것 같은데.
‘누가 이 좁은 길에 마차를 끌고 들어와?’
안 좋아진 몸 상태에 욱해서 고개를 번쩍 든 순간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바닥에 엎어져 있느라 한층 낮아진 시야에 커다란 마차가 들어왔다.
아니, 정확히는 마차에 그려진 익숙한 문양이.
‘분명 저거 어디선가…….’
잠시 눈을 깜빡이며 기억을 더듬던 나는 곧바로 저 문양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해냈다.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날개를 펼친 독수리.
데프론 공작가의 문양이었다.
* * *
‘갑자기 데프론 공작가라니?’
설마 300년 전 데프론 공작가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터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잠깐의 방황 뒤에는 아이작 데프론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찾아온 그때의 무력감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물론 지금 앵무새의 몸에 들어왔기도 하고, 300년 전 과거의 인물이 나를 알아볼 일은 없겠지만.
‘그나저나 여기에는 무슨 일이지?’
수도 한복판에 있는 상점가이긴 하지만 이곳은 주로 평민들이 찾는 시장에 가까웠다.
혹여 정체가 밝혀지기라도 할까, 본래라면 밖으로 나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칼리드가 이곳에는 온 이유였다.
귀족들이 아예 찾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국의 유일한 공작가가 발걸음할 곳은 아닌데.
‘그리고 굳이 이 좁은 골목에 마차를 끌고 들어올 건 뭐야.’
이사벨이 바닥에 넘어지는 탓에 덩달아 바닥에 나뒹굴게 된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새장에 갇혀있는 탓에 혼자 일어설 수도 없고. 어떻게 이렇게 되는 일이 없담.
‘빨리 나 좀 일으켜줘!’
그런 의미를 담아 삐비빅 소리를 낸 순간이었다. 살짝 고개를 돌린 시야에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이사벨이 들어왔다.
많이 놀란 듯 여전히 앞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나는 다시 한번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아무리 옆에서 불러도, 녹색 눈은 한 번도 이쪽을 향하지 않았다. 그것에 의아함을 느끼자, 그제야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가령 걷잡을 수 없이 떨리는 몸이라든가, 하얗게 질린 얼굴이라든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따위에 긁히는 줄도 모르고 힘없이 허우적대는 다리라든가.
“……마, 말도 안 돼.”
이사벨의 입에서 옅은 신음이 터졌다. 심한 두통을 느끼는 듯 그녀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고, 숨을 쉬기가 버거운지 헛구역질을 했다.
지켜보는 나조차 덩달아 숨이 가빠오는 기분이었다.
“왜……왜 여기에?”
무언가의 잔영에 괴로운 듯 이사벨의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렸다.
혹시라도 근처에 칼리드나 엘레노아가 있을까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그런 요행을 기대하기에는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아주 잠깐 사이에 이사벨의 상태는 더 악화되었다.
“으으……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연달아 그렇게 중얼거린 이사벨이 별안간 손을 들어 제 손톱을 거칠게 물어뜯었다.
손톱 옆의 살을 잘못 물어뜯어 피가 송골송골 맺히는 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럴 겨를이 없어 보였다.
마차에 새겨진 커다란 문양을 보며 잠시 텅 빈 눈동자로 앉아있던 이사벨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번뜩 고개를 들었다.
“도, 도망. ……도망가야 해.”
그것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말투였다. 불안한 듯 제 앞에 있는 마차를 살피던 이사벨이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마치 새장이 동아줄이라도 되는 양 힘주어 잡고 뛰었다.
제 몸을 숨길 수 있는 골목의 저 깊은, 심연보다 더 아득한 어둠 속으로.
* * *
이사벨은 달렸다.
숨이 벅차올라 점점 호흡이 거칠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달리고 또 달렸다. 어느새 차오르기 시작한 눈물에 시야가 흐트러졌음에도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한 가지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절대, 절대 잡혀서는 안 돼.
텅 빈 골목에 제 발소리 외에도 다른 이의 것이 울리는 환청이 들렸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착각이 아닐지도 몰랐다.
언제나 저를 쫓아오던 악몽이 이번에도 그녀를 찾아내고야 만 것이다.
턱 끝까지 치미는 불안감에 이사벨은 당장이라도 뒤를 돌아 그녀를 좀먹던 어둠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수많은 생각에도, 이사벨은 도무지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그 또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사벨.
아니, 데프론 공작가의 사생아. 더러운 잡종. 불행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아이.
그것이 항상 그녀를 따라다니는 이름이었다.
고작 10살쯤 된, 또래보다도 왜소한 체격의 아이에게 붙기는 잔인하기 짝이 없는 말들이었지만 실상이 그러했다.
애초부터 그녀에게 붙여진 이름은 없었다. 최근에 근사한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자만했다. 남들처럼 살 수 있다고 착각했다.
이렇게 다시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벌벌 떨고 도망치는 것밖에 할 줄 모르면서.
‘그래, 이사벨로 하자. 네 이름은 오늘부터 이사벨인 거야.’
난생처음 받던 따뜻한 시선. 거칠기 짝이 없는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던 다정한 손길.
거짓으로 점철된. 그러나 한없이 사랑받던 삶을 떠올리자 다시금 눈물이 왈칵 치밀었다.
제 힘을 들키고도 웃어주었던 것은 그들뿐이라, 이사벨은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잘못 도망쳐 온 것은 아닐까? 방향을 틀린 것은 아닐까?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하나?
“돌아가야……할…… 곳.”
빠르게 내딛던 걸음이 작은 읊조림과 함께 점점 느려졌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인 것이 당연하고 익숙했던 그녀에게 ‘돌아갈 곳’이라는 건 퍽 생소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스스로 그곳을 돌아갈 곳이라고 칭한 것이다. 아직 그들과 함께 지낸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꽤 소중해진 얼굴들을 떠올리고 나니 걱정이 일었다.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닐까? 그들이 저를 찾으러 와줄까? 이대로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면?
“지금이라도 다시 가야…….”
점차 보폭이 줄어들던 걸음이 잠시 우뚝 멈추었다.
그리고 그 잠깐의 망설임이 불러온 대가는 꽤 컸다.
“잘도 도망가네.”
등 뒤로 들린 낮은 음성과 함께 얼굴이 확 뒤로 젖혀졌다. 머리칼이 당겨지는 아픔에 이사벨은 옅은 신음을 흘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어떻게든 아픔을 최소화하려 손을 뻗어 머리를 감싸 쥔 탓에 들고 있던 새장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또각또각.
짧은 구두 소리 끝에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 소년이었다. 이사벨보다 머리 하나는 차이 나는 건장한 체격이 시선을 끌었다.
마치 꼭 맞추기라도 한 양 누군가와 닮은 녹색 눈과 풍편에 흔들리는 은색 머리카락도.
“뭐 그렇게 사색이 돼서 도망가고 그래? 꼭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
“진짜 괴물이 누군데 말이야.”
말이 끝남과 동시에 머리카락을 잡고 있던 손이 빠르게 떨어져 나갔다. 한결 자유로워진 몸에 이사벨이 미약한 신음을 흘리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바닥에 쓸려 생긴 상처와 아픔은 신경 쓰지 않은, 일종의 본능에 기인한 행동이었다.
순간적으로 내리쬔 햇빛에 이사벨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눈꺼풀 사이로 보인 것은 예상대로 꽤 익숙한 낯이었다.
피르안 데프론.
저와 달리 언제나 사랑받던, 데프론 공작가의 귀하디귀한 도련님.
늘 제게로 향하던 싸늘한 눈동자를 떠올린 이사벨의 몸이 자연스레 움츠러들었다.
그사이 피르안은 미간을 찌푸리며 제 손을 털어내었다. 꼭 불결한 것이라도 묻었다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사벨의 손을 떠난 새장에서 앵무새가 지저귀었다.
숨이 가빠올 정도로 우는 것이, 단순히 새의 울음소리라고 보기에는 어색한 부분이 많아 보였다. 무언가 위험을 감지한 건지 누군가에게 구조 요청이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방금 막 재미난 장난감을 발견한 피르안에게는 그런 것 따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제 귀에 거슬리는 것을 치우려는 듯 새장을 한번 거세게 찬 그의 입매가 빳빳하게 굳었다.
격한 흔들림에도 한참이나 들리던 소리는 피르안이 스무 번에 가까운 발길질을 했을 때쯤에야 멈춰졌다.
지친 모양인지 새액-하는 소리만 내뱉는 새를 보던 피르안이 볼일을 다 봤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자리했다.
얼굴에 만연한 미소는 덜덜 떨며 저를 올려다보는 여자아이를 마주한 순간 더 짙어졌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한지 피르안이 고개를 기울이며 소리를 내어 웃었다.
하하하하하.
인적이 드문 골목에 난데없이 울려 퍼진 소리에 이사벨이 조금 더 몸을 웅크렸다.
불시에 떠오른 과거의 기억이 다시금 그녀를 좀먹었다.
잠깐이나마 행복했던 기억이, 다 없던 일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