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그거 들었나?”
“어떤 거?”
“수도에서 난리가 났다는데.”
카일룸 제국의 제일 남단.
바다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항구의 작은 도시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남자는 손님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옆 왕궁에서 얻은 진귀한 물건을 팔러 수도에 다녀온 상인이 제법 흥미로운 소식을 물고 온 탓이었다.
매번 이곳에 박혀있는 여관 주인은 이런 손님의 이야깃거리가 재미였던 터라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왜? 어떤 난리가 났는데 그러나?”
“자네 혹시 엘프 혼혈 아가씨 아는가? 왜, 엄청 예쁘다고 유명했던!”
“아아. 얼마 전에 백작이 되신 분? 황제 폐하의 비서관이던가.”
“아, 맞다. 그랬었지. 아무튼, 내가 수도에 갔다가 엄청난 소식을 들었는데…….”
“황제 폐하와 결혼이라도 하시는가? 두 분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니, 그게 아니라네.”
잘 이야기하던 상인이 갑작스레 몸을 낮추더니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비밀 이야기라도 하려는 모양새라 여관 주인은 저도 모르게 그를 따라 덩달아 몸을 숙였다.
물론 그래 봤자 상인의 목청이 꽤 컸던 탓에 별 소용은 없었지만.
“글쎄. 그 백작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군.”
“뭐? 백작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인가?”
놀란 여관 주인이 목소리를 키웠다.
그에 상인의 뒤쪽에 앉아있던 남자가 몸을 움찔 떨었으나, 워낙 엄청난 소식이었던 탓에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설마 누군가에게 암살이라도 당하신 건가? 이종족은 신의 축복이 있으니 병에 걸려 죽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아직 나온 것은 없지만, 아마 그런 모양이야. 그래서 지금 귀족분들이 난리가 났네. 황제 폐하께서 화가 단단히 나셨다더군.”
“아이고, 어쩌다가…….”
“게다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주 고생을 하신 모양이야. 장례식에 조문을 간 사람들이 보았는데, 마지막 모습이 아주 마르셨다고 하더라고. 성한 곳이 별로 없으셨다는데.”
안타까움에 주변에서 탄식이 흘러나온 순간이었다. 상인의 뒤에 있던 남자가 다소 큰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쾅-.
“어우, 깜짝이야.”
“……미안하네.”
상인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이 남자는 그에게 사과를 건네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머리까지 눌러쓴 로브를 여미며 걷는 뒷모습이 꽤 다급해 보였다. 어디 도망이라도 치는 것처럼.
상인은 그 모습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고 빤히 바라보았다.
“자네, 왜 그러는가? 저 손님 때문에?”
“손님?”
“얼마 전부터 계속 머물고 있던 손님이거든. 얼굴은 제대로 못 봤는데 내는 돈이나 행색을 보니 아주 귀한 분이신 모양이야.”
“아아. 그랬군.”
“자네가 보기에도 그렇게 생각하지? 귀티가 좀 나지 않나.”
“아니, 그게 아니라…….”
이미 남자가 사라지고 없는데도 그가 있던 쪽을 빤히 바라보던 상인이 머리를 긁적였다.
곧 별일 아니라는 듯 금방 웃음을 짓기는 했지만.
“난데없이 우시지 뭔가. 그래서 백작님과 아는 사이기라도 한가, 했지.”
* * *
쿵.
다소 큰 소리를 내면서 문이 닫혔다. 남자는 문에 기대어 가만히 야트막한 숨을 토해냈다.
로브의 후드가 살짝 흘러내리며 그의 머리칼이 드러났다. 창밖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받은 은발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반짝였다.
남자, 에녹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상태로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로레이나가…….’
로레이나가 죽었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간단명료한 설명이었다. 그게 끝이었다. 결국 그렇게 되고야 말았다.
이미 예상했으면서, 에녹은 마치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처럼 울음을 토해냈다.
이 슬픔을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었다. 로레이나가 죽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 때문이었으니까.
‘나 좀, 살려……다오.’
‘제, 제발 나 좀 살려줘!’
낯선 곳에서 아버지를 마주한 그 날, 에녹은 잠깐 정신을 놓았다.
눈앞에서 아버지가 피를 토하고, 발작을 일으키며 몸을 긁었다. 아프다며 비명을 내질렀다.
살려달라며 제게 빌었다. 일평생 황제로 살았고, 그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도 한 번도 누군가에게 머리를 숙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저의 발치에서 목숨을 구걸하며 애원하는 것 자체가 에녹에는 몹시 충격이었다.
정신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눈을 뜨고 보니 이미 제 아버지의 입에 아브로고를 으깨어 넣은 뒤였다.
만약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아니야, 그만하자. 에녹 데프론.’
에녹은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자신을 꽤 잘 알았다. 아무리 고민을 했다고 한들 눈앞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버지를 두고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꽃은 본래 주인이 있었던 것인데도. 그 주인이 그가 사랑하는 여자였음에도.
자신은 딱 그 정도였던 거다.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아버지의 말을 따라 황궁에서 먼 이 남쪽의 도시까지 내려온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걸 인정하는 것과 가슴을 찌르는 이 통증을 상쇄하는 것을 별개라, 에녹은 계속 신음하면서 울음을 참았다.
방 안쪽에서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지기 전까지.
“에녹 왔느냐?”
문에 기대어 주저앉은 에녹을 본 아이작이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먹을 것을 가지러 내려간 에녹이 좀처럼 돌아오지를 않아 잠깐 나와 본 참이었다.
그런데 설마 이렇게 문 앞에 주저앉아있을 줄이야.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구나. 밖에서 무슨 이야기를 듣기라도 했어?”
“…….”
“에녹?”
아이작이 재차 그를 불렀다.
그에 에녹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놓을 수 없었던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로레이나가, 그러니까 아멜리오 백작이…….”
“아멜리오 백작이?”
“……죽었다고 합니다.”
“죽어?”
에녹에 대한 걱정이 담겨있던 목소리가 아까와 달리 다소 높아졌다.
동시에 무언가 다른 감정이 깃들었지만, 에녹은 그저 그가 놀라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넘겼다.
“화, 확실한 정보인 것이냐?”
“네. 아예 장례식까지 치렀다고 하더라고요. 수도에 다녀온 이가 확인했다고 합니다.”
말을 하면 할수록 에녹은 점점 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온몸이 심연 한가운데로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로레이나와 만났던 마지막 순간이 언제였더라.
‘고마워요. 에녹.’
그래, 분명 그때였지. 이중 첩자 제안을 위해 황궁을 방문했던 날.
하필 마지막 기억이 제게 고맙다며 속삭이는 로레이나의 모습이라니. 더 떠올리는 것이 괴로워서 에녹은 잠시 찌를 듯한 고통이 느껴지는 머리를 감쌌다.
이럴 거면서 반드시 지켜주겠다고, 당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지껄였다.
로레이나가 힘들어하면 데리고 갈 것이라며 레오나드 앞에서 으름장을 놓았다.
그냥 에녹은, 정말로 죽고만 싶었다.
제 아버지를 살리면 로레이나가 죽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는데. 그랬는데도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괴로웠다.
하지만 아이작 앞에서 티를 내어서는 안 되었다.
그동안 속았다며,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며 죄를 뉘우친 사람이다.
저 대신 로레이나가 죽은 것에 아들이 슬퍼하면 괴로워하지 않겠는가.
그 마음 하나로 에녹은 애써 슬픔을 눌렀다.
그러니까, 감정을 어느 정도 조절한 뒤 고개를 들어 제 아버지와 눈을 맞추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래서, 황제는 어떻게 되었니?”
왜, 그런 걸 물으시는 거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에녹은 잠시 멈칫하다가 대답했다. 궁금할 수도 있는 일이다. 로레이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였으니까.
걱정되어서 물은 것일 터였다. 그럴 것이다.
“폐하께서 화가 많이 나셨다고 하더라고요. 로레이나가 그렇게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죠.”
“……화가 나?”
“예, 두 분은…… 사랑하는 사이였으니까요.”
“왜?”
“……네?”
반복되는 질문에 이상함을 느낀 에녹이 말을 멈추고 아이작을 살폈다. 그의 아버지는 더는 에녹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초점을 잃은 시선이 저 먼 곳을 훑었다. 에녹은 그가 보는 곳이 지금 레오나드가 있을 황궁이 있는 방향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설마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다. 그래서는 안 돼.
하지만 아이작은, 이런 그의 바람을 박살 내버렸다.
“왜 안 죽었지?”
“…….”
“둘이 반려의 언약을 맺은 것이 아니었나?”
“……아버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에녹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것에 관심이 쏠린 아이작은 더는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새 혼잣말이 된 말이 그의 입을 타고 계속 흘러나왔다.
“그 반쪽짜리 계집애가 죽으면 당연히 반쪽 드래곤도 따라 죽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언약을 맺지 않았다니 말도 안 돼.”
“…….”
“말도 안 돼!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어!”
괴로운 듯 아이작이 제 머리카락을 거칠게 헤집었다. 그가 그럴수록 에녹의 마음은 점점 더 진창에 처박혔다.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아니지, 아니야. 아직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다시 재정비해서, 이번에야말로 황제를 죽이는 거야. 본래 내 자리를 찾는 거다.”
“…….”
“우선 이사벨을 찾아야겠어. 분명 아직 제국 내에 있을 거야.”
이사벨. 당연하다는 듯 언급된 그 이름에 에녹은 셀리아 데프론이 실은 이사벨이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아니 사실은 예전부터 어렴풋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의 아버지가 평소라면 절대 입에 올리지 않았을 존칭까지 써가며 셀리아를 대했을 때부터. 그녀가 마법을 부린다는 의심을 했을 때부터.
그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아버지가, 아이작 데프론이 이 정도로 극악무도한 인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여자에게 속았다고 하셨잖아요.”
“뭐?”
“이용당하다 버려졌다고. 다시는 이런 짓을 안 할 거라고, 후회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당신이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이제 와 당신이 그러면, 당신을 선택한 나는 어떻게 해.
에녹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저와 비슷하지만 항상 올곧던 녹색 눈을 보던 아이작이 나직이 입을 뗐다.
“에녹. 일이 급하니 간단하게만 설명해주마.”
“…….”
“내가 속은 게 아니라 그 여자가 나에게 기회를 준 거야. 네가 아브로고를 찾았다는 그날에, 나한테 모든 걸 설명해주며 묻더구나.”
아이작의 두 손이 에녹의 어깨를 잡았다.
“마지막 방법이 있는데 시도해보겠냐면서.”
에녹의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저 아래로 떨어졌다.
예상했던 불안감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