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말해 봐, 또.”
그녀는 두려움을 꾹 삼키고 속삭였다. 이 남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파악하지 못했다고 해서 무서워하지 말자. 아까 성문 앞에서 자유 의지를 존중해 주겠다며, 반지를 돌려 달라고까지 한 사람이다. 그녀를 품에 안고 다정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던 그를 떠올리며 그녀는 억지로 평정심을 찾았다. 어쨌든 지금 그는 그녀를 안고 싶어 한다.
“지금,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끈질기네.”
그녀의 혀가 그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할짝거리자, 그가 크게 움찔했다. 지금 이 사람이 바라는 건 나야. 확신을 가진 그녀가 눈웃음을 치고 위를 올려다보며 속삭였다.
“어서.”
그가 그녀의 입속으로 그의 남성을 밀어 넣었다. 그녀는 목 끝까지 차는 그의 것을 혀로 핥다가, 깊숙이 빨았다. 그가 그녀의 머리를 붙잡고 신음 소리를 흘렸고, 그녀는 손으로 그의 고환을 매만지며 머리를 움직였다. 그의 손이 그녀의 머리와 함께 잠시 동안 흔들렸다. 그가 갑자기 그녀를 번쩍 들어 테이블에 눕혔다.
“벌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찢어진 원피스 사이로 흰 다리를 벌렸다. 속옷을 급하게 벗긴 그가 그대로 그녀의 두 다리를 자신의 어깨에 얹으며 그녀의 여성을 부드럽게 핥았다. 그녀의 굴곡을 따라 섬세하게 핥던 그가 어느 순간 거세게 그녀의 음핵을 누르며 흡입했다. 빠른 혀의 움직임에 그녀가 어쩔 수 없이 신음 소리를 토해 냈다.
“아…… 아아…… 아…….”
그의 손가락이 그대로 그녀의 질 속으로 들어가 이미 알고 있는 민감한 곳을 건드렸다. 너무 강한 자극 때문에 그녀의 허리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그녀는 소리를 지를 것 같아 입을 틀어막았다. 쾌락이 온몸을 타고 올라가 머리가 울렸다. 그녀의 호흡이 점점 더 가빠지자 그가 고개를 들고 속삭였다.
“엎드려.”
그녀는 더듬더듬 테이블을 짚어 몸을 돌렸다. 그가 한 손으로는 그녀의 가슴을 쥐고, 손가락 하나로는 그녀의 음핵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목덜미에 쏟아지는 자잘한 입맞춤에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뜨거운 숨이 그녀의 귀 뒤와 목에 흩어졌다. 그의 작은 신음 소리와 거친 숨 때문에 상체가 부들부들 떨렸다.
“아, 아…… 아아…….”
그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놈과…….”
“……어?”
척추를 타고 내려오는 입맞춤 사이로 그가 말했다. 손가락 중 하나가 질의 입구를 살살 문지르고, 하나는 부드럽게 음핵을 건드렸다. 올 듯 말 듯 거대한 쾌락의 파도가 넘실대고 있었다.
“뭘 했지?”
다리 사이로 느껴지는 열기가 이내 온몸에 퍼졌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반응을 따라 세심하게 움직였다. 그녀가 쾌락에 아찔한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등 뒤에 와닿는 그의 입술이 뜨겁게 느껴졌다. 체온이 맞붙어 숨이 막혔다.
“시, 식사를 같이 하고…… 함께 사니까…… 아…….”
“또.”
“햇살이 맑고 날이 좋으면…… 마을을 함께 걷고, 언덕을 오르고…….”
“또.”
“사냥도…… 같이 나가고…….”
“또.”
“사람들과…… 아…… 함께 어울려서 웃고…….”
“또.”
당연히 두 번 입 맞췄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게 다야. 내겐 그냥 다니엘 같은 사람…….”
그러나 그녀의 순간적인 머뭇거림을 눈치챘는지 그가 단번에 그녀의 말을 잘랐다.
“웃기지 마. 저놈의 눈빛은 세 살 어린애도 알걸.”
그가 그녀의 허리를 고정한 뒤 그대로 뒤에서 밀고 들어왔다. 그녀의 가슴을 붙잡고 그는 깊게 왕복 운동을 시작했다. 길게 뺐다가 거세게 들어오는 움직임에 그녀는 작은 탄성을 질렀다. 깊숙한 곳에서 시작된 짜릿한 감각이 온몸에 퍼졌다.
“아…… 아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속삭였다.
“아, 이단…… 조금 더, 조금…… 조금 더…….”
그가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테이블이 흔들렸고, 그녀의 심장은 터질 듯이 부풀었으며 허벅지 사이가 부들부들 떨렸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시야가 하얬다. 들어올 땐 빠르고, 나갈 땐 느린 템포의 거칠게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넓은 방에 울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그는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기억해.”
“아…….”
“무조건 날 기억해. 잊지 마.”
순간 눈앞이 번쩍였다. 온몸이 부서지는 느낌에 그녀는 그대로 테이블 위에 무너졌다.
“널 두고 무슨 생각까지 해 봤냐고?”
“…….”
“듣지 않는 게 좋을걸.”
그가 그녀의 허리를 붙잡아 그대로 침대에 쓰러트린 뒤,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으스러져라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거세게 뛰는 그의 심장 소리와 헐떡이는 숨결 때문에 그녀는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이단.”
그녀는 침대에 누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작게 말했다.
“……왜 안 물어봐?”
“뭘.”
“아까 광장에 있었다면, 내가 아이를 갖고 또 잃은 것도 들었을 거 아냐.”
그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그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 대답했다.
“지금 그 아이는 없어. 그게 중요하지.”
“……뭐?”
“네가 누구의 아이를 배었건, 중요한 건 네가 내게 온다는 것이고 그거면 돼. 다른 진실은 필요 없어.”
그녀의 두 눈이 충격에 휩싸여 흔들렸다.
“내가 설마 저 갈색 머리 꺽다리와 네가 아무 일 없었다는 걸 믿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저렇게 너를 원하는 남자가 고작 너와 산책이나 다녔다고?”
그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녀가 켄에 대하여 모두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물론 켄과 가벼운 입맞춤을 두 번 했지만, 그게 그녀에게 어떠한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한들 그가 곧이곧대로 들을 것 같진 않았다.
“물론 저놈을 찢어 죽이고 싶지만 나는 더 이상 황자가 아니지. 공화정의 총독이란 사적인 감정으로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야. 중요한 건 네가 무사하게 내 곁에 오는 것이니 그것으로 됐어. 어차피 저놈이 강제로 널 범했다면, 네가 그런 표정으로 저 남자를 바라봤을 리 없으니.”
“그, 그게 가능해? 너 제정신이야?”
그녀가 어이가 없다는 듯 몸을 일으키자 그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지금 멀쩡해 보여? 저놈을 죽이지 않고 방까지 옮겨 준 건 학습의 효과라고 하지 않았나? 전쟁터도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너를 해친 것도 아닌데, 함부로 사람을 죽이면 안 되잖아?”
그의 말투가 담담한 것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내가 더 이상 캐묻지 않은 건, 네 입으로 막상 들으면 내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할 것 같아서야. 그랬다가는 네가 내게 오지 않을 수도 있고. 난 그게 가장 두려워.”
아셰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내가 켄과 몸을 섞고 네게 안겼다고? 너는 그럼 전쟁터에서 다른 여자를 무수히 안았나 보지?”
“나는 아냐.”
그는 짧게 대답했다. 아셰는 그 역시 그녀를 믿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속삭이듯 물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사랑한다고 했잖아, 널.”
그의 담담한 대답에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무리 황족이라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녀는 사실 아무런 동기 없이 고작 몇 가지 추억만으로 이토록 자신을 놓지 못하는 감정도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녀가 다른 사람의 아이를 배었건 말건 묻지도 않는 것은 정말 비정상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비참한 심정으로 말했다.
“……네 애였어.”
“……뭐?”
“우리 아이였다고.”
반쯤 감겨 있던 이단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녀가 어느새 고인 눈물을 닦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다니엘이 나를 이곳으로 보낸 건 내가 임신했기 때문이었어. 영주의 아들로 속여서 낳으라고. 나는 억지로 떠밀린 게 아니라 다니엘에게 감사해하며 이곳에 자진해서 왔어.”
“말도 안 돼……. 내 정보원은, 네가 회의에서 가기 싫다고 오열했다고…….”
“네 어설픈 스타람 정보원이, 100년의 역사를 지닌 수사국 사람들을 따라잡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공적인 회의 기록이 숨기고 있는 건 한두 개가 아니고. 아메탄 왕궁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내가 장담하는데…….”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
“그 스타람 정보원은 아마 다니엘이 외부에 보여 주고 싶어 했던 정보만 수집할 수 있었을걸.”
“그, 그럼 그 아이는…….”
“누가 억지로 없앴어. 벌써 3년 반 전이지만.”
담담한 척 말하려 했지만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려 오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왜…… 왜 말 안 했어?”
그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아셰의 눈물로 가득 찬 눈이 그를 응시했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 이단이 다급히 물었다.
“3년 전에, 그 배 안에서 말할 수도 있었잖아. 왜 말 안 했어? 그때 네가 말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내가 그 아이가 내 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어?”
“괜히 네 혁명에 방해가 될까 봐 그랬어. 내가 이 아이를 없앤 사람을 찾아 죽여 달라고 부탁했으면, 네가 들어줬을까?”
“당연히 난 대륙 끝까지 찾아가서 그놈을 찢어발겼을 거야. 네 눈물값을 몇 배로…….”
“거봐, 너는…… 너는 내가 예상한 답을 똑같이 하잖아.”
그녀는 눈물을 닦고 냉정하게 말했다.
“결국 내 눈물값이지. 우리 아이를 죽인 놈을 네가 죽이고 싶은 건 아니잖아. 넌 지금 내 부탁을 들어주고 싶어 하는 거지, 아이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어 하는 건 아냐. 난 네가 나를 위해 사람을 죽이길 원하지 않아. 그 과정에서 네 무언가를 희생하는 것도. 네 입으로 방금 말했잖아. 총독이란 사적인 감정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자리가 아니라며.”
“그건 어쩔 수 없어.”
이단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 아이를 본 적도 없고, 생겼던 사실조차 지금 알았어. 그리고 그나마 그것도 3년 반 전이야. 너를 힘들게 한 사람이니 지금이라도 당장 죽여 버리고 싶지만, 실체조차 없는 아이를 위한 복수심이 갑자기 들끓을 수는 없잖아.”
“……나는 그 아이를 3개월이나 품었어.”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아이에 대해 네가 나와 다른 생각을 할 거란 걸 알아서 네게 숨긴 거야. 이해해. 어차피 너는 아이를 갖고 싶다고 하지도 않았지. 그때 말하지 않은 걸 후회하지는 않아.”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