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자리-85화 (85/112)

85화.

“네가 사랑을 속삭이면 내가 이럴 수밖에 없는 걸 알면서…….”

그가 그녀의 가슴을 쥐고 거칠게 누르며 말했다. 그가 그녀의 몸을 돌려 그대로 포개는 바람에, 그녀는 벽을 짚고 엉덩이 뒤에서 느껴지는 그의 부푼 남성을 그대로 느껴야만 했다.

“회의라니, 너를…… 그곳에서 보다니.”

“아……으…… 밖에서…… 아…….”

그가 그녀의 다리 사이에 손을 집어넣고 허벅지 사이를 매만지다 촉촉해질 정도로 음핵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이 자연스럽게 숙여지고, 드레스 자락은 허리까지 올라와 흰 다리가 훤히 드러났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목과 귀를 간질이는 동안, 그녀는 그의 부드럽고 섬세한 손길 때문에 손가락이 하얗게 될 정도로 벽을 짚었다.

“네 말대로 넌 너무 진실 되지 못하여, 내게 보여 주는 얼굴이 너무 많아.”

“어…… 아…… 이단, 음…….”

“적어도 이 모습은 진실이겠지. 그럼 돼. 넌 그냥 내 곁에 있으면 되니까.”

그의 손가락이 빠르게 음핵 사이에서 진동하고, 그녀는 눈이 하얘질 정도로 오는 쾌감에 몸을 떨었다. 발에 힘이 들어가 발목이 그대로 굳었다. 이렇게 햇빛이 쏟아지는 대낮에, 아무도 없는 황량한 궁의 정원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아…… 제, 제발…… 아…….”

“상관없어.”

그가 낮게 속삭였다. 그의 한쪽 손이 부들부들 떠는 그녀의 가슴을 세게 눌렀다.

“내 여동생이 죽은 궁에서조차 널 가지고 싶은 나는, 어차피 네가 없으면 안 되니까.”

“이단, 넣어, 넣어 줘. 응?”

“너도 나를 원한다면…….”

그가 그녀의 질 입구에 자신의 것을 걸쳐 놓고, 낮게 속삭였다. 그의 두 손이 그녀의 부푼 유두를 살짝살짝 건드렸다. 그의 손끝이 감질나게 스칠 때마다 몸이 소스라쳤다. 들어올 듯 들어오지 않는 그의 남성을 아쉬워하며 그녀의 안쪽이 세게 수축했다.

“말해.”

“이단…….”

“제발.”

“사랑해.”

“또.”

“네 곁에 있을게…… 항상.”

“또.”

“내게는…….”

그녀의 안을 꽉 채우는 뜨거운 남성이 드디어 밀고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그녀가 속삭였다.

“너뿐이야.”

그가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거세게 움직일 동안, 고요하고 황량한 궁에 그늘이 들었다. 그녀가 너무 센 자극 때문에 몸부림을 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캐넌에서 가져온 그녀의 물건들은 시간이 지나도 그녀에게 오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일하는 사람에게 물어봤지만 모두가 행방을 모른다는 말뿐이었다. 이단에게 한 번 더 말해 보았지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여기서 새로 구해 주겠다는 냉담한 대답만 들었다. 당연히 당장 필요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인데…….

그녀가 조금 서운했던 것은, 이곳에는 오랜 시간 지닌 물건들이 없었다는 점이다. 아메탄에서 캐넌에 갈 때에는 떠나는 것이 처음이라 몰랐지만, 이전 시간을 추억할 수 있는 물건들이 없다는 건 조금 슬픈 일이었다. 그나마 챙겼던 옷이나 장신구도 너무 빠르게 캐넌에서 처분해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캐넌에서 황궁으로 올 때에는 소박하지만 몇 가지 물건을 챙겼었다. 에소트가 선물해 준 가죽 머리끈, 헤라가 준 향초, 켄이 준 화분, 에곤이 남긴 책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행방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 * *

표면적으로 그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가 캐넌을 갑자기 언급한 것은 그녀가 황궁에서 지낸 지 거의 1년이 되었을 때였다. 어느 날 갑자기, 평상시의 그답지 않게 그녀에게 진한 애무를 요구하고, 나른한 정사를 나눈 이후 문득 물었던 것이다.

“켄 카세튼은 널 언제부터 좋아했지?”

아셰는 뜬금없는 그의 질문에 살짝 당황했다. 캐넌에서는 1년 동안 편지 한 통이 오지 않았다. 캐넌을 추억할 수 있는 물건도 하나 없었다. 그녀가 종종 회의에서 캐넌을 언급할 때에도 이단은 아무런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켄의 이야기라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단의 말수는 줄어들었고 문득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하곤 했다. 아셰는 그에게 이유를 묻지 않고 명랑하게 대답했다.

“몰라.”

“……너같이 눈치 빠른 애가?”

“난 너처럼 선천적으로 감이 좋은 사람이 아냐. 내가 눈치가 빠른 건 다분히 후천적인 거라고. 내가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있다면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지. 켄의 마음을 눈치채기 전까지는 캐넌에선 딱히 신경 쓸 것이 없었어. 별로 관심 없는 것에 대해 무심한 건 당연한 것 아냐?”

켄의 마음을 눈치챈 이후에 대하여 이단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만 새까만 눈으로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셰는 그에게 한 번도 그 어떤 육체적 접촉도 없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묻지도 않았는데 괜히 거짓을 말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단이 본능적으로 자신의 거짓말을 알아챌까 봐 두려웠다.

그리고 그녀에게 이단은 차마 그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자꾸만 회의에서 사람들은 그녀에게 민생을 묻는답시고 캐넌을 물었고, 그녀가 밥 먹듯이 캐넌을 언급할 때마다 떠오르는 한 남자는 이단의 위태로운 마음에 절망으로 새겨졌다. 그녀가 캐넌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가 모르는 그녀의 시간을 짐작할 수 없어 아득해졌다.

차라리 연적이 눈앞에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싸워 이길 텐데. 그녀의 과거 속에 있는 그 남자와는 싸우는 방법조차 몰라 결국 이 괴로움은 그만의 것이 되었다. 마음속의 그 남자를 아무리 상상 속에서 난도질을 하더라도, 결국 다치는 것은 그의 마음이니까.

결국엔 곁에 데려왔는데 왜 예전과 달라진 게 없을까. 왜 몸만 내 곁에 있는 느낌일까. 왜 아메탄의 궁과 다를 것이 없을까. 그녀는 대체 왜 켄 카세튼에게 보여 주던 그 맑은 표정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것 같은 눈물은 없고, 그에게는 마치 짐승에게 먹이를 주듯 선택적인 관심만 표현하며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을까.

그러나 아셰가 바쁜 것은 당연했다. 그녀는 빠른 손으로 소위 말하는 ‘뒤처리’를 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곳에 온 이유를 잊지 않았다. 사브르에게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총을 얻어 내 그를 그녀의 눈앞에서 직접 죽여야 했다. 점점 더 상태가 나빠지는 이단에게 맡기지 않고, 그녀가 직접.

회의에서 그녀는 절대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무언가를 ‘주장’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공공의 적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조용히 숨죽인 채 모든 결정을 남들에게 맡겼다.

회의에서는 딜라나파와 시튼파가 열심히 싸웠고, 어떻게든 결론을 내려 주면 그녀는 그에 따라 차근차근 일을 진행시켰다. 결정한 바를 직접 시행하는 것은 번거롭고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힘이 없으면 견뎌야 했고 남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다. 그녀는 그 지루한 과정들을 잘 알고 있었다.

“아셰, 내일은 사냥을 가는 게 어때.”

“안 돼. 사브르가 새로 개편된 우편 체계에 대해 안건을 정리해 오라고 했어. 대신 잠시 티파티를 하자. 쿠키와 케이크를 준비할게.”

그렇게 2년이 다 되도록 그녀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혼자서 차곡차곡 묵묵히 일했다. 정치적인 문제에는 관여하지 않고 필요한 일을 처리해 나가는 산하기관 사람들처럼. 처음엔 그녀를 견제하던 사람들도 그녀가 2년 동안 정치적 노선을 타지 않고 아무런 의견을 말하지 않으니 마음을 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을 놓았다는 것 자체가 그녀의 영역을 인정했다는 뜻이었다. 처음엔 안건을 정리하는 일만 시킬 뿐, 이를 정하는 것에 대해선 그녀에게 권한을 주지 않았던 사람들이 차차 그녀가 슬그머니 끼워 넣는 안건들에 토를 달지 않기 시작했다.

“아셰, 산책을 좀 나갈까. 며칠째 도서관에만 틀어박혀 있잖아.”

“잠시만. 보고서 검토 하나만 하고. 너도 보던 책 보지 그래? 저번에 28대 황제의 기록을 보고 있지 않았어? 오늘은 29대를 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어서 대단한 업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누구나 다 아셰가 있어서 회의가 좀 편해진 것은 인정했다. 차근차근 복지와 행정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회의에 별다른 취미가 없는 이단은 결론을 빠르게 내려 주거나, 나른하게 그녀를 지켜보고 있거나, 아니면 먼 곳을 바라보고 있거나 했다.

그는 점점 더 말수가 줄었다. 아셰는 그의 위태로운 분위기를 이해했다. 황궁에 오랜 시간 있으면 있을수록 그는 불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마 그의 말수가 점점 주는 것은 그녀에게 실수를 할 것 같아서일 테고, 침묵이 길어진다는 뜻은 그가 점점 더 자신을 통제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녀는 워낙에 바빠서 그에게 모든 신경을 쏟을 수는 없었지만, 그가 어느 한계점에 온 것 같으면 부드럽게 다독여 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이단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안았다.

“통령님.”

어느 날 회의가 끝나고, 사브르는 이단에게 낮게 말했다.

“영부인님은 여기서…… 그 누구의 미움도 받지 않으면서 가장 낮은 자세로 유능함을 뽐내고 계십니다. 보이시지요?”

이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영주와 회의 안건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바쁘게 계단을 내려가는 아셰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별다른 초점이 없었다. 사브르가 싱긋 웃었다.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자리입니다.”

왜 모르겠는가. 가족들의 처분을 두려워하던 소녀, 작은 궁에서 갇혀 있던 왕녀, 낙후된 영지에서 영지민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던 안주인, 이단은 그 모든 모습을 보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녀는 가장 빛났다. 어릴 때부터 배워 온 지식, 남들을 관찰하며 쌓아 온 경험, 그 모든 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 그녀의 오라비인 다니엘이 아메탄의 방향키를 잘 잡고 있듯 그녀 역시 폴라리아에서 어느새 자신의 영역을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영부인님의 입지는 더 단단해질 겁니다. 왕녀 출신인데도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실제로 ‘일’을 하시다니, 역시 캐넌 같은 시골짝에서 꽃이나 뜯고 있으실 분이 아니셨군요.”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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