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5화 (5/325)

제05화 예비 입학일 (2)

두 번째 시간.

문제지가 든 봉투를 책상에 올린 차도도는 시험 개시를 알렸다.

“자, 과학시험 시간이다. 모두 자리에 앉아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시선은 강우에게 꽂혀 있었다.

교탁에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차도도 때문에 강우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여자가 왜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지 모르겠다.

답지 때문에? 문제가 어려우면 답지를 빈칸으로 놓아둘 수도 있지, 치사하게 그런 걸로 화를 내나?

역시 아름다운 장미에는 가시가 있는 법이다. 저 선생님은 아름다운 외모와 달리 성격이 만만찮을 것 같았다. 잠시나마 미모에 혹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강우는 신경을 껐다.

하긴 지금은 선생님과 학생 사이인데.

문제지와 답지를 받고 한차례 쭉 훑었다. 과학시험도 수학시험과 비슷했다. 두 시간 동안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네 과목의 주관식, 객관식 문제를 풀어야 한다.

절반은 고등학교 수능 시험에서 만날 그런 문제이고 절반은 학생들의 과학적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을 측정하는 문제였다.

물리는 그의 전공. 적어도 물리 문제는 껌을 씹으면서도 풀 수 있었다.

불과 몇 분 되지 않아 강우는 물리 문제를 모두 풀었다. 다른 학생이라면 답이 맞는지 고심하고 한 번 더 검토할 테지만 그는 검토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고등학교 예비라기엔 문제 수준이 높고 선행학습 여부를 측정하는 문제가 너무 많았다. 과학고라면 학생들의 영재성을 확인할 문제를 내야지 이런 암기식 공부를 조장하는 건 문제다.

물론 과학고도 대한민국 입시의 큰 틀인 수능과 학생부를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시험을 치고 가르치면 영재성을 키우기 어렵다. 국가 과학기술의 미래인 학생들을 제대로 길러낼 수 있을지 우려되었다.

답지에 답을 적으려던 강우는 생각을 바꿨다.

‘다른 과목은 전부 바닥인데 물리만 점수가 만점이면 그것도 이상하겠지?’

그는 정답의 빈도가 높은 번호를 찾았다. 3번이 가장 많았다.

그래서 답지를 3번으로 쭉 찍었다. 답지에 멋진 기둥이 그려졌다.

‘나쁘지 않네.’

* * *

수학 답지에는 지렁이를 그리고 물리 답지에는 기둥을 그렸으니 이만하면 예술가 입문이었다.

문제는 주관식. 그냥 빈칸으로 두려다가 변별력을 위해 넣었다고 예상하는 가장 마지막 문제를 확인했다.

마지막 문제는 지구 표면과 내부에서의 중력을 묻는 문제였다.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만유인력 원리를 이용하여 지구 내부에서의 중력을 구해야 했다. 이때 지구 내부에서 작용하는 만유인력을 도식화하려면 고등수학의 적분이 필요하다.

‘그나마 이 문제는 쓸만한데?’

강우는 다른 주관식 문제를 비워두고 마지막 문제만 답을 써넣었다. 기본 원리까지 완벽하게 유도해서 마치 한 편의 논문을 쓰듯 깔끔하게 정리했다. 좋은 문제를 무시하는 행동은 죄악이니까.

물리를 끝낸 다음은 화학.

강우는 이번에도 문제 풀이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2번으로 찍자.’

마찬가지로 예술가가 되어 기둥을 그리고 주관식을 모두 비웠다.

생물은 1번으로 찍고 지구과학은 4번으로 찍었다. 사이좋게 과목별로 번호를 나눴다.

시계를 보니 아직도 무려 1시간이나 남았다.

‘하아, 지겹다. 이제 잠을 자도 되겠지?’

그런데 갑자기 정수리를 찌르는 섬뜩한 기운이 감지됐다. 기겁한 강우는 고개를 들고 전면을 바라봤다.

‘히이익!’

차도도가 도끼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강우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째 첫날부터 찍힌 것 같은데……?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 모습도 예쁘긴 하지만, 오금이 저리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

‘이 여자도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네.’

앞으로의 1년이 심히 걱정되었다.

“자지 말고 똑바로 풀어라.”

조용히, 명령조로 지적하는 차도도의 어투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허억!’

펜을 놓으려던 강우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펜을 들고 문제를 푸는 척했다.

그때 지구과학 마지막 주관식 문제가 눈에 들어왔다.

물이 가득 차 있는 컵에 정육면체 얼음이 떠 있다. 물에 잠긴 부분과 밖으로 솟은 부분의 비를 구하는 부력 문제다.

이때 얼음이 녹으면 물의 양이 어떻게 되는지, 이를 참고하여 북극의 빙산과 남극의 빙하가 녹았을 때 지구의 해수면과 환경 변화를 논하려면…….

‘어? 이거 물리 문제인데?’

물리와 지구과학을 결합한 융합 사고력 문제였다.

몇 차례 답안지를 훑으며 고민에 잠겨 있던 강우는 물리 마지막 문제와 마찬가지로 답을 쭉 써 내려갔다.

* * *

뭔가가 머리를 툭툭 친다. 강우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러자 뭔가가 다시 머리를 건드렸다.

“하아, 됐다고…….”

“강우!”

뾰족한 여인의 목소리가 귀를 울리고 동시에 그의 한쪽 귀가 위로 당겨졌다.

그제야 강우는 눈을 번쩍 떴다.

“으악!”

차도도가 그의 왼쪽 귀를 붙잡고 위로 당기고 있었다.

강우는 아픈 귀를 누그러트리고자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푸하하!”

학생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섬뜩한 눈을 부라리며 차도도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망했다는 생각에 강우는 조심스럽게 차도도의 눈치를 봤다.

“손 올리라는 말 못 들었어?”

“그, 그게요…….”

“시험 치다가 자는 녀석은 네가 처음이야.”

“그, 그게…… 피곤해서…….”

“어제 공부 열심히 했나 봐? 물론 시험 치다가 잘 수도 있긴 해.”

“그, 그렇죠?”

“그렇긴 뭐가 그래!”

차도도가 인상을 확 찡그리고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답지를 회수하던 차도도가 그에게 물었다.

“너, 혹시 예술중학교 출신이니?”

“네?”

“그림을 잘 그려서.”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차도도가 학생들의 소란을 진정시킨 후 지침을 내렸다.

“자! 답지를 낸 학생은 식당으로 가세요! 오후에는 각자 소개 시간을 갖고 조를 짠 후 기숙사 입사 일정이 있어요.”

역시 밥이 최고다. 학생들이 왁자지껄 강의실을 떠나고 강우도 그들을 따라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강우?”

“예?”

“잠시 나 좀 볼래?”

강우는 어쩔 수 없이 차도도에게 불려 갔다.

교탁 앞에서 답지를 챙기는 모습이 아름답기는커녕 사악한 마녀처럼 느껴졌다.

‘나, 첫날부터 찍힌 거야?’

미녀에게 찍혔으면 당연히 좋아야 하는데 마치 감기가 든 것처럼 온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그를 노려보는 시원시원한 눈매에 강우는 몸을 움츠렸다.

“시험은 어떻게 봤어?”

“눈으로 봤습니다.”

얼떨결에 개그로 답하다가 노려보는 까만 눈동자를 마주하고는 강우는 바로 입을 닫았다.

“몇 문제 풀었어?”

“다 풀었습니다.”

“그림 그린 거 말고 제대로 푼 거.”

뭐라고 답해야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일단 우기고 봐야 하나.

“풀 수 있는 건 다 풀었습니다.”

“거짓말! 넌 물리 한 문제, 지구과학 한 문제만 풀었던데?”

“그래도 객관식을 다 채웠습니다. 답지에 기둥이 선 것은 아무래도 출제 선생님의 의도가…….”

“어휴.”

차도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호기심이 엿보였다.

잠시 고민하던 차도도가 다시 물었다.

“강우야, 학원 다닌 적 있니?”

강우는 이게 쉽지 않은 답변임을 깨달았다.

아마 차도도는 그의 입학지원서 내용을 꿰뚫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입학지원서의 자기 소개란에 무엇이 쓰여있는지 강우는 모른다.

그는 집 주변 환경을 떠올리다 적당히 답변을 골랐다.

“다닌 적 없습니다.”

설마 중학교 선생님이 추천서에 학원을 열심히 다녔다고 기록하지는 않았겠지?

“여기 입학생들은 대부분 학원에서 선행을 마치고 왔어. 수학 정석을 서너 번은 훑고, 물리와 화학은 대학 일반물리, 일반화학까지 끝낸 학생도 있어.”

“전 혼자 집에서 독학을…….”

차도도의 혼란스러운 눈빛이 쏟아졌다.

강우는 재빨리 추가로 대답했다.

“입학 전 선행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입학 후에 열심히 하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 맞는 말이야. 나도 사교육을 맹신하지 않아. 노력이 중요하지. 그런데 시험시간에 자는 게 열심히 하는 태도니?”

“아직 입학 전이잖아요?”

“어휴, 맹랑한 녀석! 알았어. 이제 앞으로는 열심히 하자!”

살았다며 강의실을 나가던 강우는 바로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왜 그러니?”

“그, 그게요. 식당이 어디예요?”

다른 학생을 따라가면 알 수 있겠지만 지금 복도에는 학생들이 아무도 없었다.

차도도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다가 답지를 챙겼다.

“알았어. 나랑 같이 가자.”

* * *

새벽에 상경했기에 강우는 지금까지 커피 한잔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당연히 배가 고플 수밖에 없다.

시험 치던 강의실과 달리 식당은 고향처럼 푸근한 기분이었다. 강우는 차도도의 뒤에 줄을 서서 식판을 들고 급식을 받았다. 이 순간에는 정말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고려 과학고의 급식은 상당히 질이 좋았다. 머리를 많이 사용하는 데다, 자라는 학생들이라 특별히 신경 쓰는 것인지, 아니면 오늘이 첫날이라 특식을 준비했는지 대학교의 학식에 비하면 질이 월등하다.

식당에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밥을 먹고 있었다.

빈자리를 찾지 못해 식판을 들고 우물쭈물하고 있자니 보다 못한 차도도가 그를 불렀다.

“따라와. 선생님 자리에서 같이 먹자.”

괜히 선생님 옆에서 밥을 먹는다니 뻘쭘하고 부담되긴 하지만 배고픔이 모든 감정을 이겼다.

강우는 차도도의 옆, 선생님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마치 신기한 동물을 발견한 듯 선생님들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강우는 그 시선을 무시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학생 신분으로 교사 테이블에 함께 앉아 있어 몸과 마음이 불편했으나 점심으로 나온 돈가스가 그 기분을 날려버렸다.

‘개새끼도 밥 먹을 때는 안 건드린다는데…… 설마 건드리진 않겠지?’

강우는 차도도가 그 정도의 상식은 있으리라 생각하고 열심히 손과 입을 놀렸다.

그 사이 이미 밥을 다 먹은, 물리 부장이자 1학년 주임인 김윤택이 화제를 꺼냈다.

“차 선생님, 학생들이…… 어떻습디까?”

“아직 불확실한데 작년에 비해서 괜찮아 보여요.”

“우리 반도 나쁘지 않았어요.”

“적어도 지금 2학년이나 3학년보다 우수합니다.”

차도도 외에 여러 선생님이 의견을 말했다.

흡족한 얼굴로 김윤택이 말을 받았다.

“입학시험 성적이 예상보다 월등하고 중학교 선생님들의 추천서 소견도 과거보다 더 좋아졌습니다. 특히 1등인 이민찬이나 2등인 손차희는 대단히 우수한 학생이에요. 오늘 손차희 학생은 어떻던가요?”

차도도가 기억을 되새기며 대답했다.

“웬만한 문제는 다 풀었어요. 주관식에서 수학은 마지막 문제를 못 풀었고, 물리와 지구과학도……. 화학은 전부 답을 쓰긴 했는데…….”

“비슷하네요. 마지막 문제는 킬러 문제라서 쉽지 않죠. 저도 오늘 이민찬 학생을 유심히 관찰했었는데…… 어렵다는 수학과 물리의 마지막 문제를 풀었어요. 다만 답은 맞췄는데……, 단순히 공식에 대입하고 풀어서 조금 아쉬웠긴 합니다만…….”

김윤택이 이민찬을 칭찬했다.

강우는 이민찬과 손차희를 아침에 카페에서 만났었기에 귀가 솔깃했다.

‘손차희가 마지막 문제를 놓쳤나 보네.’

수학 문제는 읽어보지도 않았으니 어떤 문제인지 기억에 없다. 다만 물리 마지막 문제는 그도 풀어본 문제다. 그 문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면 이민찬은 손차희와 실력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었다.

차도도는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김윤택이 자신의 학생인 이민찬을 손차희보다 더 우수하다고 열심히 칭찬하고 있어서였다.

“과연 물리 마지막 문제를 제대로 푼 학생이 있을까요? 이민찬이 그나마 제일 잘 풀었을 거예요.”

재차 김윤택이 이민찬을 칭찬하는 순간 차도도는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제대로 푼 학생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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