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6화 (6/325)

제06화 예비 입학일 (3)

“누, 누구요?”

믿지 못하겠다는 교사들의 시선이 차도도에게 쏠렸다.

순간 차도도는 후회했다. 괜히 말을 꺼낸 것 같았다. 어차피 밝혀질 일이니 상관없긴 하지만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 학생이요.”

차도도가 눈짓으로 옆에 앉은 강우를 가리켰다.

순간 테이블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학생 이름이?”

“강우라고…… 모르실 거예요.”

차도도의 대답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위 입학생 가운데 없던 이름이었으니 당연했다.

정작 강우는 전혀 관심 없이 열심히 돈가스와 싸우고 있었다.

‘젠장, 칼이 시원찮네. 칼을 바꿔 달라고!’

잠시 강우를 관찰하던 김윤택이 다시 물었다.

“그럼 물리는 저 학생이 제일 잘 쳤나요?”

“아뇨, 마지막 문제 빼고 나머지는…… 반타작이던데요.”

묘한 눈으로 김윤택이 밥을 먹는 강우를 훑었다.

“잘한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못한다는 뜻인가요?”

“글쎄요. 아직은 모르겠네요.”

“흐음.”

고심하던 김윤택이 강우를 향해 말을 돌렸다.

“강우 학생?”

“예?”

역시 상식 없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면 그가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중이거나.

밥을 먹던 강우는 고개를 들고 상대를 확인했다. 누군가 했더니 강당에서 일학년 주임이라고 소개하던 사람이었다.

“오늘 물리 문제 어땠나?”

“치사하던데요.”

밥 먹기를 방해하니 절대 좋게 말이 나갈 수 없었다. 그리고 그리 좋지 않은 문제를 놓고 학생들의 실력을 가늠하는 선생님들도 못마땅했다.

인상을 팍 찡그린 김윤택이 가까스로 평정심을 유지하고는 다시 질문했다.

“마지막 문제가?”

“그 문제도 별거 없던데요?”

“어떻게 풀었지?”

“구각을 정하고 미소 질량을 적분해서 증명했습니다.”

강우는 인상을 팍팍 쓰면서 잡다한 풀이 과정을 늘어놓았다.

그가 설명한 내용은 일반 참고서에 적힌 간단한 풀이를 완전히 벗어난, 상세하고 근본적인 해답이었기에 김윤택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강우의 실력을 반신반의하던 차도도 역시 내심 많이 놀랐다.

말문이 막힌 선생님들이 강우를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을 때 차도도의 맞은 편에 있던 한 선생님이 질문을 던졌다.

“강우라 했지? 혹시 지구과학 마지막 문제를 풀었어?”

“음, 그거 껌이잖아요?”

껌이란 말에 질문한 선생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강우는 재빨리 말을 정정했다.

“물리 문제이기도 하고요.”

“물리?”

“부력 문제요.”

“그래, 맞다. 그래서 풀었니?”

대화에 김윤택이 끼어들었다.

“이민찬도 풀긴 했습니다. 컵의 물은 넘치지 않고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에 다른 영향을 준다는 점까지. 그런데 답은 맞는데 각각의 문제를 연결해서 설명하진 못하더군요.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답을 맞혔으니까요. 손차희 학생은요?”

김윤택이 자랑하듯 말하고는 차도도의 대답을 기다렸다.

차도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손차희는 제대로 못 풀었지만, 강우 학생은 제대로 풀었어요. 얼음의 부력을 완벽하게 구했고 이 결과를 이용해서 북극 빙산이 녹은 상황을 제대로 유추했어요.”

그녀의 대답에 선생님들의 시선이 다시 강우에게 쏠렸다.

강우는 돈가스를 한입 털어 넣고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게 풀었는데요.”

“그런데 객관식은 하나도 못 풀었지.”

차도도가 책망하듯 덧붙였다.

약간 심각해진 표정으로 김윤택이 차도도에게 물었다.

“설마…… 강우 학생이 천재라는 말은 아니겠죠?”

“천재까지는…….”

이민찬을 띄우려다 스텝이 꼬인 데다, 학생 앞에서 할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 김윤택이 화제를 전환했다.

“이번 신입생들 실력이 우수해서 앞으로 기대되네요. 이민찬은 과제연구로 물리를 선택할 것 같고 손차희는 화학을 선택하겠죠? 다들 제대로 키워 봅시다.”

그때 강우에게 지구과학 마지막 문제를 물었던 선생님이 다시 질문했다.

“그럼 강우 학생은 과제연구 생각해봤니? 물리? 화학? 만일 지구과학을 선택하면 내가 잘 봐줄 수 있는데?”

강우는 지금 선생님들의 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대충 앞으로 전공을 무엇으로 선택할지 묻는 것 같기도 하고.

당연히 물리로 가겠지만 일단은 말을 아꼈다.

“아직 모르겠습니다.”

“아하, 그렇구나. 조만간 나랑 얼굴 한번 보자.”

강우는 이 선생님이 지구과학 담당이라고 추측했다.

식사를 마친 선생님들의 잡담이 이어지는 사이 강우는 혼자서 열심히 돈가스를 썰었다. 그래도 급식이 맛있어서 앞으로 3년간 학교가 즐거울 것 같다.

정신없이 먹다 보니 식판이 바닥을 드러냈다. 다 먹었는데도 배가 고프다.

그의 눈에 차도도가 먹다가 남긴 돈가스 조각이 보였다. 슬그머니 눈치를 보던 강우는 조심스럽게 차도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응?”

“선생님, 저 이거 먹어도 돼요?”

차도도가 미소를 짓더니 직접 남은 돈가스를 넘겨주었다.

* * *

같은 시각, 손차희 역시 점심으로 나온 돈가스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우와, 이건 학교 급식이 아닌데?”

옆에서 윤수아가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다.

확실히 중학교 때의 급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물론 오늘이 예비입학 첫날이라 유달리 잘 나온 것이겠지만, 앞으로도 이런 수준의 급식이 나와준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뭐니 뭐니해도 학생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급식이니까.

“나 갑자기 학교를 막 사랑하고 싶어졌어.”

“넌 정말!”

윤수아의 식탐을 익히 아는 손차희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맞은 편에 앉은 이들을 살폈다. 그런데 하필이면 맞은 편에 앉은 게 이민찬과 그 추종자들, 다 같은 학원에 다니면서 경쟁하던 학생들이다.

이미 밥을 다 먹은 남학생들은 디저트로 나온 요구르트를 마시면서 시험 이야기를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그래서 풀었어?”

“당연히 다 풀었지. 물론 모두 정답이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어렵진 않더라.”

이민찬이 자신 있게 대답하면서 목을 빳빳하게 세웠다.

손차희도 이민찬이 어떻게 풀었는지 무척 궁금했다. 이 학교에서 그녀의 유일한 경쟁자는 이민찬뿐이라고 생각하니까. 그 사실을 이 테이블에 앉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손차희가 대답 없이 포크질을 하고 있자 이민찬이 슬쩍 질문을 던졌다.

“물리 마지막 문제 풀었어?”

“대충.”

“난 답을 정확히 구했어. 그런데 그거 공식까지 유도해야 할까?”

“적분이니 안 해도 되겠지?”

“그렇겠지?”

이민찬도 손차희도 적분해서 그 문제를 이론적으로 완벽하게 풀 자신은 없다.

손차희는 이민찬이 제대로 풀지 못했다는 답변에 한결 마음이 놓였다. 마음속의 찜찜한 구석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이민찬이 못 풀었다면 그 문제를 제대로 푼 학생은 없을 게 당연하니까.

그런데 문득 아침에 카페에서 만났던 이상한 남학생이 떠올랐다.

‘설마? 에이, 아니겠지.’

손차희는 강우를 금방 머릿속에서 지웠다.

* * *

시험을 끝내고 식사까지 마친 학생들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다시 강의실로 들어가면서 강우는 학생들의 활기를 만끽했다.

‘젊음이 역시 좋구나.’

끝없이 재잘대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부러운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자신도 무려 이십 년이나 젊어졌으니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는다면 앞으로 많은 일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런 이유로 그가 강우에게 빙의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이 잠시나마 가슴을 뿌듯하게 했다.

생각을 바꾸니 세상이 밝고 활기차 보인다. 강우는 학생들 사이에서 모처럼 젊어진 기분을 만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인 차도도가 들어오자 실내가 조용해졌다. 강우는 강의실 가장 뒤에 앉아서 관람객처럼 상황을 지켜봤다.

“자, 점심 맛있었어요?”

차도도의 인사에 학생들이 그렇다고 합창했다.

“우리 학교가 다른 것은 몰라도 급식은 잘 줘요. 너무 많이 먹어서 체중이 늘어나서 문제죠. 선생님도 이 학교에 온 후 살이 푹푹 쪄서…….”

“에이, 그게 찐 거예요?”

“그럼 우리는 전부 돼지란 거죠?”

차도도의 말에 학생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차도도의 몸매는 늘씬함 그 자체였으니까.

차도도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여튼, 그러니 졸업 때까지 비만 조심하세요. 공부하느라 책상에 앉은 시간이 늘어난 만큼 적절한 운동을 병행해야 하는 거 잊지 말고.”

학생들의 웃음이 교실에 가득했다.

“자, 지금부터 오늘 일과를 시작할 거예요. 신입생 수는 모두 백이십사 명, 한 반에 열다섯, 또는 열여섯 명인데, 우리 반은 열여섯 명이에요. 물론 임시 반이라 확정은 아니지만 최종으로도 그리 바뀌지 않을 거예요.”

“진단평가 성적으로 다시 편성하잖아요?”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그대로 갈 거예요.”

학생들이 웅성거리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지금 같이 있는 학생들과 일 년간 함께 지낸다고 생각하니 달리 보였다.

“으아! 괜히 열심히 시험 쳤어.”

한 학생이 투덜투덜 불만을 늘어놓았다.

“우리 반은 선택받은 반이에요. 여학생이 두 명이니까. 올해 신입생 가운데 여학생은 모두 열 명이고 두 명씩 한 반에 넣으니까 모두 다섯 개 반에만 여학생이 있어요.”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두 여학생에게 쏠렸다. 손차희와 윤수아다.

과학고는 특성상 여학생이 드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학생이 있는 반에 배정되었으니 희비가 갈렸다. 물론 여학생 있는 반을 싫어하는 학생도 있지만.

3반 담임에 차도도가 배정된 이유도 여학생이 두 명이나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학생과 마찬가지로 과학고는 일반고와 달리 여선생님 비율도 낮다.

객관적으로 볼 때 손차희와 윤수아는 꽤 예쁘게 생겼다.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을 타입이었다. 물론 강우가 짐작하는 손차희의 성격을 고려하면 학생들과 그리 원만할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고 왕따 기질은 아니고 여왕 기질이 있다고 해야 하나?

반면 윤수아는 손차희에 비하면 꽤 친화력이 좋아 보였다.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손차희는 오히려 목을 빳빳하게 세우는 반면 윤수아는 학생들에게 미소를 던진 것을 보면.

“요즘 남녀 젠더 문제가 많잖아요? 학교에서는 그런 문제가 없었으면 합니다. 모두 서로 도우며 일 년간 화목하게 지내요.”

학생들을 쭉 둘러본 차도도가 말을 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각자 소개를 시작하죠. 참, 여러분들은 오늘 네 명씩 조를 짜야 합니다. 조원들끼리 서로 도우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예요. 수업 시간에 조별 평가도 있으니까 신중하게 생각해서 마음이 맞는 학생들끼리 한 조를 구성하면 돼요. 소개하는 동안 누구와 같은 조가 될지 고민해보세요.”

차도도가 가장 앞쪽에 있는 학생에게 소개를 부탁했다.

그때부터 돌아가면서 학생들이 앞으로 나와 각자 소개를 시작했다.

학생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면 글자가 나타났다. 강우는 그때마다 학생의 머리 위에 흐릿하게 드러나는 글자에 주목했다.

- 김명신, 수학 C, 물리 C, 화학 B, 생물 B, 지구과학 B.

몇 학생이 넘어가면서 강우는 A가 대단히 높은 평가란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 평가가 현재의 수준을 의미하지 않고 학생의 잠재력을 보여준다는 점까지.

그러다 손차희의 순서가 됐다.

“나는 한국중학교를 나온 손차희야. 모든 과목을 다 좋아하지만 특히 수학과 화학을 좋아해, 앞으로 좋은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는 누구나 환영해.”

그런데 이번에는 손차희의 머리 위에는 글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강우가 그녀를 주시하며 글자를 떠올리자 그때처럼 흐릿하게 그녀의 잠재력이 보였다.

그녀의 소개가 끝나자 여기저기에서 수군거림이 들렸다.

“우와, 여신이다. 친구 먹어야지.”

“킥킥, 혹시 너 거울 봤냐?”

“우리 반 일등이래.”

“그래도 민찬이에게 밟혔을걸.”

이민찬 이야기가 들리자 손차희는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역시 반에서 가장 유명 인사는 손차희였다. 그녀와 같은 학원에 다닌 학생이 있는 데다 이 반에서 입학성적이 가장 우수하다고 알려진 덕분이었다. 게다가 꽤 예쁜 외모도 학생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혹시…… 이상형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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