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9화 (9/325)

제09화 첫 수업 (1)

새벽까지 최대우와 주절거리다가 잠이 든 강우는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눈을 번쩍 떴다.

창밖은 아직 깜깜한데 스피커에서 요란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둥근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 제일 먼저 이를 닦자 윗니 아래 이 닦자.

‘이게 대체 무슨 노래야? 초등학교 기숙사인가?’

강우는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봤다.

낯선 장소였다. 연구에 몰두하다가 간이침대에 누웠던 실험실도 아니고, 한설대학교에 자리 잡은 후 살던 원룸도 아니고, 강우로 빙의한 후 며칠 머물렀던 시골집도 아니다.

이곳은…… 고려 과학고의 기숙사였다. 그런데 이 이상한 동요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으아! 이게 기상송이야? 여기가 유치원이야?”

강우의 비명에 최대우도 눈을 비비며 잠을 깼다. 시계는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제 기숙사에 입사하면서 들었던 주의사항이 생각났다.

- 기상 시간은 새벽 여섯 시. 기상송이 울리면 바로 튀어나와서 아침 점호를 한다. 기상송은 10분간 울리고 기상송이 끝난 후 나오면 벌점이다. 벌점이 누적되면 기숙사에서 퇴사다.

고려 과학고 학생은 반드시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기에 퇴사는 곧 일반고로의 전학을 의미했다.

“으아!”

최대우가 옷을 갈아입느라 야단법석이다. 강우도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군대도 아니고…….”

강우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

편히 잠을 못 자게 하는 것은 고문이다. 그런데 저 기상송을 들으니 도저히 계속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래도 첫날인 만큼 순순히 따라야지.

잠시나마 강우는 고등학생이 된 것을 무척이나 후회했다.

두 사람이 나온 것과 엇비슷하게 기숙사 여기저기에서 학생들이 쏟아져나왔다. 일부는 세수까지 끝낸 말끔한 상태이지만 일부는 엉클어진 머리에 눈곱이 덕지덕지했다.

기숙사 생활 첫날이라 설렌 데다 새 친구랑 이야기하느라, 또 잠자리가 낯설어서 일부는 제대로 잠을 못 잔 표정이다.

대충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이 모였다. 강우도 눈치를 보다 적당히 줄을 섰다.

주변을 휘휘 둘러보던 그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같은 반이라 그나마 눈에 익은 손차희와 윤수아가 다른 여덟 명의 여학생과 함께 줄을 서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학생들은 머리를 감은 듯 말끔했다.

‘첫날이라 깔끔한 거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엉망인 머리를 하고 아침 점호에 참석한다는 것에 전 재산 몇만 원을 걸 수 있다.

사감인 김선호가 출석부를 들고 학생들에게 소리쳤다.

“출석 체크 안 한 사람 빨리해라. 노래 끝날 시간 됐다.”

아직 체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강우는 눈썹을 휘날리며 뛰어가서 출석 표시를 했다.

대충 소동이 마무리될 무렵 요란하던 기상송이 그쳤다. 다시 세상에 평화가 돌아온 것만 같았다. 기상송을 만든 사람은 분명 세계를 침략한 악당이고 기상송을 끈 사람은 세계를 구한 정의의 사도가 분명하다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을 쭉 둘러본 김선호가 말했다.

“오늘은 첫날이라 힘들겠지만, 며칠 지나면 익숙해진다. 그 후로는 기상송이 그리워질 거다.”

절대 아니라고 반박하는 학생들 틈에서 한 학생이 호기롭게 물었다.

“쌤! 이제 뭐 해요?”

“아침 체조.”

“예? 으아, 싫어!”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그러자 김선호가 웃으며 학생들을 달랬다.

“아침에 일어나서 체조하면 건강해진다. 필수는 아니지만 하는 게 좋아. 몸이 아픈 사람은 들어가도 된다. 아침 식사는 여덟 시부터다.”

들어가도 된다고 했지만 정말 들어가는 학생은 없었다. 모두 첫날이라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마 며칠 지나면 체조는커녕 들어가서 다시 자다가 아침도 거르고 수업에 뛰어갈 게 뻔히 보였다.

* * *

과학고는 학점제로 운영한다.

선택 과목에 맞춰 학생들이 강의실을 이동하지만 1학년은 과목 선택을 허용하지 않아 반 전체가 시간표가 같기에 항상 함께 수업을 듣는다. 예비입학 기간에도 사정은 같다.

강우는 첫 수업을 맞이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되었으니, 아니 대학교 수업을 들은 지도 까마득하여 기분이 새롭긴 개뿔……. 만사가 귀찮다. 특히 아홉 시 첫 수업은 침대 생각만 났다.

그래도 열심히 살겠다는 결심을 했기에 강우는 졸음을 삼켰다.

임시시간표를 보니 첫 수업은 지구과학이었다.

지구과학 강의실로 걸음을 옮겼다. 강의실을 전혀 모르지만, 강우는 아무 생각 없이 학생들을 따라갔다. 어차피 옆에 최대우가 있으니 길을 잃지는 않겠지 싶었다.

“조별로 앉으래.”

한 학생의 전달에 가장 뒤에 앉아서 잠을 청하던 강우는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옮겼다. 조원이 어디 있나 했더니, 중간에 최대우가 있고 가장 앞 테이블에 손차희와 윤수아가 보였다.

강우는 가장 뒤 테이블에 앉자고 조원들에게 무언의 시위를 했으나 손차희의 사나운 눈빛에 바로 꼬리를 말았다.

‘젠장, 맨 앞에서 어떻게 자라고.’

대세를 감지한 최대우도 바로 꼬리를 내리고 앞쪽 테이블로 옮기고 있었다.

그렇게 강우는 조원들과 나란히 가장 앞 테이블에 앉았다. 열심히 할 생각이지만 맨 앞에 앉고 싶지는 않은데 어쩔 수 없었다. 분위기로 봐서는 손차희에게 잘못 걸리면 사망선고가 날 것 같았다.

“잘 잤어?”

손차희가 밝은 표정으로 먼저 인사했다.

“이 얼굴이 잘 잔 것처럼 보여?”

강우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긴 하품을 내쉬었다. 그러자 손차희의 눈에 약간 경멸하는 빛이 비쳤다.

‘난 너처럼 모범생이 아니라고.’

강우는 속으로 구시렁댔다.

“흐암!”

최대우의 하품에 손차희의 눈빛이 더욱 사나워졌다.

예상대로 담당 선생님은 김선호였다. 아는 선생님이라 강우는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했다.

김선호가 웃으며 수업을 시작했다.

“기숙사 첫날밤, 어땠니?”

학생들의 얼굴을 보니 대충 감이 왔다.

대부분 학생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숙사에서 밤을 지냈을 것이다. 낯선 환경에 룸메이트와 어울리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을 게 뻔했다. 더구나 아침 6시에 점호가 있었으니 쉽지 않은 하루가 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학생들의 잠투정이 쏟아졌다.

“졸려요.”

“잠이 부족해요.”

너무 일찍 깨운다고 학생들이 투덜거렸다.

“아침 기상송 바꿔 주세요!”

“기상송이 어때서?”

갑자기 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아침에 대박이었지.”

“BTS 정도는 틀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유치원인 줄 알았다니까요!”

“최신 가요! 최신 가요!”

“그건 사감 선생님께 부탁해라.”

“선생님도 사감이시잖아요!”

한차례 떠들썩한 분위기가 지나간 후 김선호가 프린트물을 돌렸다.

예비입학기간이지만 학기와 마찬가지로 수업을 진행한다. 과학고에서도 일반고에서 사용하는 교재를 쓴다.

물론 실제로 교과서로 수업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수업에 사용하는 프린트물은 대학교 일반 교양과목 수준이었다.

“에이, 선생님! 첫날부터 수업해요?”

“아직 개학 안 했잖아요, 지금 예비입학기간인데요?”

학생들의 반응은 어디나 똑같았다. 첫날이니 적당히 놀자는 분위기였다.

“첫사랑 이야기해주세요!”

그놈의 첫사랑 레퍼토리는 여기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물론 강우는 신경 끄고 잠잘 궁리만 할 뿐이었다.

“첫사랑? 선생님은 카사노바라서 지금까지 사귄 사람을 운동장에 줄 세우면 몇 바퀴를 돌려야 한다.”

“에이, 거짓말!”

“진짜다.”

“롤 할 줄 아세요? 배틀 그라운드는요?”

“세계 대회 나갈 뻔했다.”

“우와! 오늘 한 판 떠요!”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김선호가 첫인사를 마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김선호가 표정을 굳히고 진지하게 물었다.

“여러분들은 우수한 학생이다.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하는 사람 있나?”

학생들의 시선이 그에게 쭉 모였다.

“있으면 손들어봐.”

예상대로 손을 드는 학생은 없었다.

하지만 정말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고 생각해서라기보다 손을 들기 쑥스러운 것이다. 여기 학생들은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품고 있고, 스스로가 우수하다고 여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강우는 김선호의 다음 말이 기다려졌다.

“오늘은 천재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천재란 무엇인가? 여러분들은 천재인가? 이런 의문에 답을 해보기로 하자.”

학생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졌다.

특히 가장 앞에서 수업에 주목하는 학생이 있었다. 바로 손차희였다. 손차희의 옆에는 윤수아가 딱 붙어 있었다.

강우는 두 여학생의 태도를 확인하고는 혀를 찼다. 딴짓하려 했더니 비교가 되어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자, 인류 역사에는 많은 천재가 있었다. 누구였을까?”

“아인슈타인!”

“뉴턴!”

가장 흔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제갈공명!”

강우는 실소를 머금었다.

‘어? 그래도 이건 좀 새로운 시각인데?’

제갈공명 또한 불세출의 천재인 건 확실했다. 세상에는 분야별로 다양한 천재가 존재하니까.

“이공계 쪽 과학자만 고려하기로 하자.”

온갖 이름이 튀어나오자 김선호가 재빨리 정리했다.

학생들의 입에서 몇몇 유명한 과학자의 이름이 이어서 튀어나왔다. 천재라고 불리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인물들이 줄줄이 언급되었다.

“자, 그럼 뉴턴은 왜 천재일까?”

그러자 윤수아가 안경을 매만지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만유인력을 생각해냈으니까요.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본 사람은 무수히 많지만, 그 현상에서 만유인력을 떠올린 사람은 뉴턴이 유일했어요. 그래서 뉴턴은 천재라 할 수 있어요.”

뉴턴이 정말 사과에서 만유인력 영감을 얻었는지는 불분명하다. 흥미를 끌기 위해 이야기를 지어냈다는 설도 있으니까.

뉴턴의 그 사과나무 후손이 이 학교에도 한 그루 심겨 있으니 전혀 거짓말은 아닌 것 같지만.

“근데 전 사과를 앞에 두면 먹을 생각만 나요!”

윤수아의 대답에 모두는 웃음이 터졌다.

“그래, 그런 면에서 뉴턴은 천재라고 할 수 있다. 뉴턴은 페스트를 피해 고향에 돌아온 짧은 기간에 역사적인 세 가지 이론의 실마리를 얻었다. 바로 만유인력, 미분, 색 분산이다. 그때 뉴턴의 나이는 불과 24세였으니 천재가 확실하다.”

김선호의 설명에 다른 학생이 손을 들었다.

“가우스도 있어요.”

“가우스는 카페 이름인데…….”

한쪽에서 태클이 들어왔다.

“가우스는 왜 천재일까?”

“어린 시절 가우스는 1부터 100까지 더하는 문제를 등차수열의 원리를 써서 금방 풀었어요.”

천재 가우스의 유명한 일화를 기억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김선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계속했다.

“맞아. 가우스는 초등학생 때 등차수열 합을 계산할 줄 알았기 때문에 천재라고 불렸다고 전해지지. 그런데 여기서 더 생각해보자. 초등학생 때 1부터 100까지 덧셈할 줄 알았던 사람 손 들어봐.”

학생들 대부분이 손을 들었다.

과학고에 입학한 학생 상당수는 초등학교 다닐 때 이미 고등수학인 ‘수학의 정석’ 책을 시작했다. 당연히 등차수열을 배웠고 100까지 자연수 덧셈을 1초 만에 풀었다.

하지만 강우는 손을 들지 않았다. 그는 초등학교 때 어떠했는지 전혀 기억이 없었으니까.

“자, 그럼 생각해보자. 가우스처럼 초등생 때 합을 구할 줄 알았던 여러분도 가우스 못지않은 천재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떨어지자 학생들의 표정이 사뭇 심각해졌다.

학생들 대부분이 자신이 영재 또는 천재라고 생각하지만, 역사상 천재로 손꼽히는 가우스와 비교할 만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차이가 뭘까?”

“처음 생각한 사람과 아닌 사람 아닐까요?”

손차희가 대답했다.

“그래. 오늘은 천재였다고 전해지는 한 과학자의 일생을 알아보겠다. 베셀이라고 들어봤니?”

아는 학생이 없었다.

물론 강우는 알고 있었다. 베셀은 19세기 독일의 유명한 과학자다. 하지만 뉴턴이나 아인슈타인만큼 대중적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웬만한 이공계 학생들은 대학 2학년 때에야 이름을 접했다.

“베셀 함수는 들어본 적이 없을 테고…… 연주시차는 배웠지?”

“알아요. 지구가 공전할 때 별의 위치가 달라지는 현상이에요.”

역시 똑똑한 학생들이라 교과 과정 내에서는 모르는 게 없었다.

“그래, 연주시차는 지구 공전의 증거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후 과학자들은 공전의 증거를 찾고자 무척 노력했지. 그 가장 명료한 증거가 연주시차이고 이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이 바로 베셀이다. 들어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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