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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1화 (11/325)

제11화 첫 수업 (3)

세 학생이 머리를 맞대고 고심했다.

한 발 떨어져서 토론에 참여하던 강우는 다른 테이블로 눈을 돌렸다. 다른 조들도 비슷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한 사람이 리드하고 다른 학생들은 돕는 형태로.

열띤 토론이 오갔지만 딱히 대부분 소득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딴짓을 하던 강우는 교탁에서 학생들을 관찰하고 있는 차도도와 눈이 마주쳤다.

‘헉!’

그를 노려보는 차도도의 눈빛이 섬뜩했다. 아무래도 담임은 그에게 불만이 많은 게 확실했다. 선생님이라면 학생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봐야지, 잡아먹을 듯 보고 있다니?

조원과 협력하지 않고 홀로 딴짓한다고 질책하는 눈빛에, 제 발이 저렸던 강우는 토론에 끼는 척했다.

“질량을 구하려면 부피와 밀도를 알아야지.”

그때 손차희가 의견을 냈다. 중학교 때 배우는 가장 기초적인 과학 공식이었다.

“하아! 지구의 크기는? 밀도도 알아야 구할 수 있어. 원래는 지구의 질량으로 밀도를 구한 것 아냐? 그렇다면 과정이 정반대인데?”

그 말에 최대우가 탐탁지 않은 듯 고개를 저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지구의 크기를 가장 먼저 알아냈다. 지구의 크기는 지구를 구로 가정하고 위도 간 거리를 재보면 대충 가늠할 수 있으니까. 그다음에 지구의 질량을 구했다. 그리고 이 둘을 이용해서 지구의 밀도를 계산했다.

이렇게 구한 밀도로 지구 내부가 비어있다는 가설이 거짓으로 밝혀졌다. 또 지구 중심에는 무거운 물질, 즉 철이 있다는 추측도 그때부터 제시됐다.

“그럼 밀도 공식은 답이 아니지?”

윤수아가 질문했다.

손차희가 고민에 잠긴 모습을, 강우는 흥미롭다는 듯 상황을 지켜봤다.

막 손차희가 질문하려 할 때 옆 조가 한발 빠르게 질문을 던졌다.

“쌤! 지구 밀도는 아는 거예요?”

“다른 중요 상수들은 이미 안다고 가정해도 됩니다.”

“아싸!”

갑자기 학생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그럼 이건 되는 거네.”

윤수아가 밀도 공식을 정리했다.

“그럼 만유인력 공식이나 F=mg 같은 중력 공식도 가능하잖아?”

“만유인력상수나 중력가속도 상수를 안다고 하면 역으로 지구 질량 구할 수 있어.”

손차희와 윤수아가 죽이 맞아서 공식을 나열했다.

“하아, 케플러 법칙에서 달의 공전을 이용하면…….”

그때, 최대우가 새로운 발상을 꺼냈다.

최대우 이 녀석은 확실히 천문에 강점이 있다. 강우는 최대우가 물리와 화학 양쪽으로 S급 자질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럼 그것도 적고…….”

윤수아는 배포된 용지에 답을 논리 있게 정리했다.

그렇게 네 개를 적고 나니 적을 게 사라졌다. 이어서 고민에 잠겼던 손차희가 미간을 모으고 미간을 찌푸리며 강우를 툭 건드렸다.

“너도 생각 좀 해봐.”

“내가 아는 게 있어야지.”

강우는 어린애들 대화에 굳이 끼어들 생각은 없었다.

강우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손차희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차다가 본래의 토론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10분이 지났다.

“자, 그러면 각 조에서 한 명씩 나와서 칠판에 답을 적어요.”

강우네 조에서는 윤수아가 나갔다.

그들이 적은 답은 모두 5개였다. 그사이에 하나가 더 추가된 것이다. 반면 다른 조들은 하나밖에 못 적은 조도 있고 4개를 적은 조도 있다. 다른 조에서 적은 답도 사실상 같았다.

5개를 답한 조는 모두 둘이었다. 강우네 조와 바로 옆 테이블의 조.

그 테이블의 조원에는 고현성이 있었다. 바로 첫날 손차희에게 이상형을 물어본, 여자에 관심 많은 녀석이었다.

고현성이 그 조의 에이스는 아니다. 그 조에서 가장 유명 인사는 전상철이고, 이번에 반 2등으로 들어왔다. 손차희가 다녔던 학원과 경쟁하는 옆 학원 출신이었다.

남은 두 녀석은 조영제와 오동섭인데 조영제는 그럭저럭 평범한 모범생이고 오동섭은 전상철 똘마니를 자처하는 녀석이었다.

그 면면을 확인한 손차희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손차희가 이민찬을 라이벌로 여기듯, 전상철은 손차희와 라이벌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공교롭게도 손차희 조와 전상철 조가 적은 답이 5개로 같았다.

칠판에 적힌 답을 쭉 훑어본 차도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자, 지금부터는 다른 답을 생각해내면 바로 앞으로 나와서 적습니다. 제일 많이 적은 조가 점수를 가장 많이 받아요.”

스피드 게임이 시작됐다. 하지만 10분간 모여서 토론한 답이 저기까지니 바로 답이 떠오를 리 없었다.

손차희가 볼을 부풀리며 한참 고민하다가 번쩍 손을 들었다.

“혹시 중력가속도를 구하는 실험도 별개의 방법으로 들어가나요?”

“가능해요.”

그 순간 눈치 빠른 옆 조에서 바로 튀어 나갔다.

강우네 조와 전상철네 조가 강의실의 가장 앞 테이블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움직일 때 가장 유리했다.

다만 손차희의 움직임보다 고현성의 동작이 훨씬 빨랐다는 게 문제였다. 칠판 앞에서 고현성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손차희를 쓱 살피고는 당당하게 해답을 하나 더 적었다.

- 단진자의 주기를 이용해서…….

- 낙하실험을 이용해서…….

물론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여기 앉은 학생들은 모두 아는 내용이다.

“너! 치사하지 않아? 내가 먼저 선생님께 물었는데?”

“뭐가 치사해? 빨리 나와서 쓰는 게 답이지.”

손차희가 화가 나서 펄펄 뛰었고 고현성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받아넘겼다.

손차희는 차도도에게 심판을 요청했으나 차도도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둘의 다툼을 바라볼 뿐이었다.

5개 대 7개. 차이가 확 벌어졌다.

분을 삭이면서 손차희가 다시 질문했다.

“푸코진자는요?”

“그건 단진자 주기와 같은 거예요.”

낙담한 손차희가 자리에 앉았다.

강우는 그걸 보면서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 알 수 있었다.

진자와 낙하운동 실험은 영재고 입시를 준비하면서 학원에서 다루는 문제였다. 역시 대부분 학생의 사고 범위는 학원에서 배운 내용에 매몰되어 있다. 교과 과정에서 벗어난 새로운 방식을 떠올리기엔 한계가 있었다.

‘조금 치사하군.’

아무리 방관자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해도 번개처럼 새치기한 고현성이 좋아 보일 리 없었다.

“더 생각나는 것 없나요?”

더 나오는 게 없자 차도도가 마무리를 지으려 했다.

강우는 조원들을 둘러봤다. 최대우는 무덤덤한 모습이었고 윤수아는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손차희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주먹을 꾹 쥐고 부들부들 떠는 손차희는 분을 삼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고 싶지 않은가 보네.’

강우는 손차희의 승부욕에 감탄했다.

굳이 나설 생각은 없었는데 손차희의 울 듯한 표정을 보니 가슴이 싸하다. 게다가 칠판 앞에서는 고현성이 비웃는 표정으로 즐기고 있고.

그놈의 조 평가가 뭐라고.

하지만 노력하는 만큼, 애쓰는 만큼 보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고현성이 그의 조에 들어오지 못해 노려보던 장면과 방금 약삭빠르게 채가는 장면이 오버랩됐다.

저렇게 기고만장하니 아무래도 조금 손을 봐줘야겠다. 정의를 구현해야지.

‘아, 그리고 담임 시각도 바꿔야지?’

손차희를 도우며 차도도에게 새로운 인상을 심어준다. 게다가 조별 평가이니 그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잡아야 할 기회 같았다.

강우가 벌떡 일어났다.

손차희를 비롯한 조원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놀람, 기대, 의심, 당혹……. 온갖 표정이 그들에게서 엿보였다.

“만유인력상수를 구하는 실험도 되죠?”

강우의 질문에 차도도의 의미심장한 눈빛이 그에게로 향했다.

“당연히 되겠죠?”

“그럼…….”

강우는 성큼성큼 앞으로 나갔다.

“어이, 브라더! 잠깐!”

고현성이 한 손으로 강우를 제지하면서 칠판에 쓸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만유인력상수를 구하는 실험은 중력가속도와 달리 교과서에 없고, 참고서에도 간략하게만 소개되어 있었다.

우물쭈물하던 고현성은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강우는 칠판 앞에서 다른 학생들을 쭉 살펴봤다. 아무래도 만유인력상수는 아는 학생이 없는 모양이었다. 답을 말할 학생이 있다면 양보할 생각도 있는데 한 명도 없다.

과연 시험에 나오지 않는 문제는 머리에 들어 있지 않는 모양이었다.

“만유인력상수를 구하는 실험을 살펴볼게요. 마침 제가 어제 물리를 열심히 공부했는데…….”

“어? 어젯밤에 나랑 놀았잖아?”

최대우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으이그, 저 녀석은 끼지 말아야 할 순간에 끼어든다. 강우는 못 들은 척 깔끔히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마침 만유인력의 역사를 살피다 보니…… 캐번디시 실험이 나오더라고요?”

그의 말에 어떤 학생은 뜬금없는 이야기라며 표정을 찌푸렸고, 어떤 학생은 참고서에서 얼핏 봤었다며 기억을 더듬었다.

“18세기 영국의 물리학자인 캐번디시는 납덩어리를 매단 비틀림 저울을 이용해서 만유인력상수를 구하는 실험을 생각해냈죠. 이렇게 구해낸 값은 1% 이내의 오차일 만큼 정확했어요.”

강우는 캐번디시가 시도했던 실험 장치를 칠판에 그림으로 쓱쓱 그렸다.

그렇게 강우는 해답에 한 가지를 추가했다.

“그런데 이 실험은 조금 복잡하죠? 이를 단순화한 과학자가 또 있거든요! 율리라는 독일의 과학자는 무거운 납덩이를 이용해서 훨씬 직관적인 실험 방법을 생각해냈어요. 물론 오차는 훨씬 크지만요.”

강우는 율리의 실험을 그림으로 쓱쓱 그리고, 해답에 적어넣었다.

이렇게 2개가 추가됐다. 양쪽 조 모두 7개씩이다.

강우는 손차희의 밝아진 표정과 고현성과 전상철의 구겨진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강우를 마치 외계인 보듯 심상찮은 표정을 짓던 차도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리 역사에 해박하군요. 자, 같은 7개인데…… 여기가 끝?”

“끝이라면 섭섭하죠?”

전직 물리학 교수인 그가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다. 시작했으면 끝장을 봐야지.

사실 이런 광범위한 문제는 교과서만 파서는 답을 구하기 어렵다. 그보다 사고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그동안 틀에 박힌 학생들에게 천재적인 사고가 무엇인지 보여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강우는 칠판에 둥근 원을 그리고 지구라고 쓴 다음 그 외부를 도는 통신위성의 궤적을 그렸다.

- 케플러 3법칙을 지구와 인공위성에 적용하면…….

- 지구탈출속도인 11.2km/s를 구한 역학적 에너지 수식에서…….

막힘없이 설명까지 덧붙이는 강우의 대답에 차도도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차도도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강우 학생은 선행하지 않았다고 하더니…….”

“어제 말씀드렸듯이 제가 덕후라서……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무작정 파보는 습관이 있거든요? 마침 어젯밤에 중력을 파다 보니…….”

강우는 대충 둘러댔다.

하필 어젯밤에 공부한 내용이 오늘 수업 주제라고 우기니 차도도는 대꾸할 말이 사라졌다. 거짓말이 분명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지금 이 자리에서 따지고 들기엔…….

“또 있니?”

“아직 많이 남았죠. 하지만…… 더 추가하는 조가 없으면…….”

“알았어. 들어가 봐.”

강우가 자리로 돌아가자 차도도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더 추가할 답변 있나요?”

강우네 조의 답은 9개다. 전상철의 조는 7개. 그다음 조는 4개다.

“그럼, 강우네 조가 이겼네요.”

차도도의 선언에 최대우와 윤수아가 기뻐하며 환호성을 올렸다.

정작 손차희는 떨떠름했다. 자신의 조가 우승하여 점수를 땄으니 기뻐해야 마땅하지만, 그 주역이 본인이 아닌 강우란 점이 못내 거슬렸다.

더구나 그녀는 선행하지 않았다며 강우를 무시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오늘 이런 활약을 펼치다니!

손차희는 강우가 의심스러워졌다. 어제 아침 카페에서 관성모멘트를 설명하던 것도, 오늘 중력을 설명하는 것도 평범한 학생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그녀처럼 학원에서 문제 풀이에 매달린 공부를 했다면 아는 내용이어도 저런 식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 자식 대체 뭐야?’

손차희는 복잡한 마음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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