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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3화 (13/325)

제13화 첫 수업 (5)

학생들은 이야기를 들으며 감탄을 연발했다.

지금 들은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그 천재들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었다.

“……그 세 사람은 이 학교를 졸업한 후 유학을 갔고 모두 수학을 전공했다. 현재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인으로 그 선배들이 꼽히고 있다. 여러분들도 그 선배 못지않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천재! 천재에 도전해보자!”

과학고나 한국대를 다닌 사람들은 역대급 천재의 전설을 한 번쯤 들어보게 된다. 강우도 한국대 물리학과 시절에 물리학과 3대 천재의 전설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전설은 세월이 흐르면서 바뀌고 진화한다. 그가 지방대 교수직에 임용되었을 때 후배들에게 회자하는 3대 천재 이야기를 듣고는 실소를 머금었었다.

왜 천재 이야기에는 항상 3명이 등장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들은 한국대 물리학과 3대 천재에는 놀랍게도 손강우란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똑똑했지만 수도권 대학에 교수직도 얻지 못한 비운의 천재로 말이다.

어쨌든 자신이 3대 천재에 속해있다는 말을 듣고는 ‘그놈의 천재들 다 얼어 죽었나?’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일까? 강우는 고려 과학고 3대 천재 이야기를 듣고도 전혀 감흥이 일지 않았다. 그냥 모두 호사가들의 입방아일 뿐이다.

반에서 천재 이야기에 가장 관심 없는 사람은 강우였다. 반면, 가장 눈을 빛내는 학생은 손차희였다.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고 승부욕을 불태웠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대단한 선배들이지만, 노력하면 자신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반드시 금메달을 따서 천재로 인정받을 거야.’

그녀는 고려 과학고 역대 최강의 천재로 이름을 날린 그 세 사람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그리고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수업 시간에 배우는 내용에만 안주해서는 안 된다. 고교 수학은 미적분을 주로 다루지만, 역사적으로 보자면 미적분학은 18세기와 19세기에 수많은 천재의 연구로 이미 종말을 고했다. 현대 수학에서는 미적분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그럼 뭘 하는데요?”

“베셀방정식, 라플라스방정식, 이런 미적분 방정식은 공학에서 다루고 수학에서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나 토플러지 같은 이상한 녀석을 다룬다.”

강우는 한숨을 내뱉었다. 오전 지구과학 시간에 베셀방정식이 언급될 때만 해도 뿌듯했었는데 오후 수학 시간에는 베셀방정식을 구닥다리로 취급했다. 왠지 모를 배신감이 느껴졌다. 그가 대학을 다닐 때 고생했던 여러 미적분 방정식이 한방에 쓸모없다고 치부되다니.

“물론 수업 시간에는 교과서에 충실해야지. 하지만 과제연구에서는 훨씬 심층적인 수학 문제를 다룬다.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은 교과서에 안주하지 말고 깊이 있는 진짜 수학을 연구해보기 바란다. 그런 인고의 시간이 여러분의 천재성을 키워줄 것이다.”

학생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일장연설을 마치고 씩 웃던 정명욱이 마침내 사악함을 드러냈다.

“자,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시험을 친다.”

“허억!”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강우는 이 학교 입학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무슨 학교가 허구한 날 시험이냐고.

즐거운 토론 수업이라더니 토론은커녕 시험만 치고 있다. 하필이면 과학고 신입생인 강우의 몸에 빙의해서 이 고생인지. 일반고였다면 놀고먹었을 텐데.

‘그냥 확 일반고로 전학 가버릴까?’

한숨을 푹푹 내쉬는 사이 정명욱이 돌린 시험지와 문제지가 도착했다.

무슨 이유든 가장 싫은 것이 시험이다. 주위를 돌아보니 모두가 벌레 씹은 듯한 표정이었다. 다들 동병상련을 겪고 있다.

문제지를 본 학생들의 한숨이 짙어졌다.

강우도 책상에 놓인 문제지를 펼치고 눈을 의심했다.

‘이게 뭐야?’

단순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문제였다.

- 3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구하시오.

- 이를 바탕으로 4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논하시오.

2차 방정식 근의 공식은 중학교 때 머리가 닳도록 외웠다. 어떤 교육평론가의 말에 따르면 열심히 공부하는 한국대 입학생들은 수능 때까지 이차방정식 풀이를 적어도 1만 번 한다고 한다. 공식 암기, 문제풀이 위주의 수학 공부를 질타하는 말이다.

그만큼 2차 방정식 근의 공식을 자주 쓰기에 누구나 암기하고 있다. 고등학생치고 근의 공식을 모르는 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다. 심지어 수포자라도 근의 공식은 안다. 그런데 3차 방정식 근의 공식이라니?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 떠올려봐도 배운 기억이 없다.

고민에 싸인 사람은 강우만이 아니었다. 손차희도 같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학원에서 영재고 입시 수업을 들을 당시 수학 선생님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뭔가 복잡한 수식을 잔뜩 칠판에 나열했던 선생님은…….

- 3차 함수 그래프는 반드시 x축을 지난다. 즉 3차 방정식은 근이 1개부터 3개까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 근을 구하는 근의 공식도 있다. 아주 오래전, 본고사 시절…… 그러니까 수능 세대 이전, 학력고사 세대 그 이전에 예비고사 세대가 있었는데 그때 대학교 입시 본고사에서는 이런 유형의 암기 문제를 냈었다.

- 하지만 지금은 절대 출제하지 않는다. 공식을 외워서 푸는 문제는 수학이라 할 수 없으니까. 영재고 입시에서도 당연히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학원에서는 3차 방정식 근의 공식 문제를 가르치지 않는다. 여러분은 몰라도 좋다.

‘하……. 쓸데없는 문제라고 들었는데.’

갑자기 왜 이런 문제가 등장해서 발목을 잡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고현성도 당황하고 있었다. 그는 점심시간 때 수학으로 강우에게 내기를 걸지 않았던가. 무려 손차희가 걸린 내기였다.

비록 강우가 물리 시간에 두각을 나타내긴 했지만 수학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선행하지 않은 녀석이니 수학은 어려울 테고 당연히 자신이 이긴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자신도 모르는 문제가 나와 버렸다.

당황한 고현성은 힐끔 고개를 뒤로 돌려 강우를 찾았다. 다행히 가장 뒤에 앉은 강우는 심드렁한 표정이다. 아는 문제라서 얼른 풀겠다는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후우, 다행이네. 저 자식도 모르는 게 확실해.’

간신히 가슴을 진정시키고 고현성은 문제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마음이 간절하면 하늘이 감동할지도 모른다.

학생들의 분위기를 파악한 수학교사 정명욱이 다시 입을 열었다.

“3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은 카르다노의 공식이라 알려져 있다.”

카르다노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수학자이다. 베니스의 타르탈리아가 3차 방정식의 해법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카르다노는 풀이법을 배우려 했다. 끈질긴 카르다노의 공세에 타르탈리아는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받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몇 년 후 카르다노는 타르탈리아의 풀이법을 자신이 집필한 수학책에서 공개했다. 이로써 카르다노는 명성을 얻었고 3차 방정식 근의 공식은 카르다노의 공식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명성을 도둑맞은 타르탈리아는 격분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카르다노는 확률이론을 도박에 적용했던 노름꾼이었다. 그는 점성술사이기도 해서 자신이 죽을 날을 예언하고 이를 증명하고자 그날 자살했다고 한다.

정명욱의 흥미로운 수학자 이야기에 학생들은 숨을 죽였다.

“16세기 수학자가 발견한 공식이다. 현대의 여러분들이 구하지 못한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에이, 그 사람들은 천재잖아요.”

“여러분도 천재다. 물론 지금 바로 푼다면 과거에 이미 배웠던 사람이겠지. 그런데…… 아마 그런 학생은 없겠지?”

피가 끓어오른다. 학생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열정을 드러냈다.

주위를 쭉 둘러본 정명욱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간단한 힌트를 주겠다. 힌트를 보고 근의 공식을 구할 수 있다면 여러분도 천재다. 잘 모르겠으면 2차 방정식 근의 공식을 어떻게 구했는지 고민해보기 바란다.”

강우는 정명욱이 칠판에 쓴 힌트를 보며 미간을 모았다.

‘저게 무슨 소리야?’

당연히 그는 모르는 분야다. 그는 물리와 관련 없는 수학에서는 다른 학생과 다를 게 없다.

칠판에는…….

- 3차식 인수분해 공식을 잘 살펴봐라.

“아! 쌤! 그게 뭐예요?”

“힌트가 더 어려워요!”

학생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하지만 정명욱은 충분한 힌트를 줬다는 듯 꿈쩍하지 않았다.

“천재라면 저 힌트만 보고도 눈이 번쩍 뜨일 것이다. 자, 천재는 어디 있느냐?”

정명욱이 자신한 이유는 최근에는 다루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학생들이 학원에서 배우지 않았으니 선행하지 않아도 불리하지 않다. 조건이 동등하다.

모두에게 공평하다고 여겼기에 이 문제를 선택했다.

“끙.”

학생들은 한참이나 머리를 싸맸다.

강우도 문제지와 칠판의 힌트를 열심히 살피다가 머리 쓰기를 포기했다. 그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였다.

‘3차 방정식 해는 컴퓨터 수치해석법으로 금방 구하는 시대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구시대적인 문제였다. 게다가 그는 물리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굳이 수학 시간에 점수를 딸 생각이 없었다.

답지를 덮어놓고 잠을 자려다가 정명욱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감전된 듯 상체를 세웠다. 정명욱의 대머리가 위압적이었다.

‘하아, 잠자기도 힘들구나.’

이미 그는 고현성과의 내기를 잊어버린 뒤였다. 솔직히 이기든 지든 상관없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 한 녀석이 손을 들었다. 고현성과 같은 조인 전상철이다. 반 등수가 손차희 다음인 녀석이었다.

“증명과정을 다 써야 합니까?”

“안다면 써라.”

“치환하면…….”

어? 저 녀석이 문제를 풀었나?

강우는 녀석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전상철이 풀었다고 했을 때, 마치 전염이 된 듯 몇몇 학생들이 열심히 답지에 적기 시작했다. 그중에 고현성도 있었다.

‘젠장, 저 녀석도 푼단 말이지?’

다시 내기가 생각났다. 분노가 일었다. 무엇이 걸려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기에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지배했다.

강우도 생각을 바꾸었다. 고현성에게 질 수는 없다. 당연히 손차희와는 상관없는 일이고.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칠판에 적힌 힌트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16세기 사람들이 푼 문제를 21세기의 내가 못 풀 이유는 없지.’

16세기라면 방정식도 제대로 풀지 못하던 시절이다. 그때의 표기법에 비하면 지금 표기법이 월등히 편하고 효율적이다.

비록 카르다노와 타르탈리아는 이탈리아의 세기적인 천재였겠지만 그도 모자란 게 없었다.

우스갯소리라지만 그는 한국대 물리학과 3대 천재 아닌가.

‘어? 놀랍게도 머리가 돌아간다?’

힌트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짐작이 된다. 갑자기 천재가 된 기분이 들었다.

대학원에 들어간 후 강우는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 남이 가지 않은 미지의 길을 개척했고, 새로운 방식을 고안하여 상온 핵융합 문제를 풀어나갔었다. 그때의 경험이 머릿속을 채웠다.

모르는 문제는 계속 두드리면 풀리는 법이다. 해결책은 멀지 않고 이미 알고 있는 지식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는 천재였다! 우스갯소리가 아닌 진짜 천재였다!

어쩐지 손강우 시절보다 더 머리가 좋아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16세기의 인물들이나 저 앞에 앉은 고현성 따위에게 질 생각은 없다.

시간이 되자 정명욱이 직접 답지를 거뒀다. 채점도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시험 결과를 놓고 정명욱이 입을 열었다.

“3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옳게 쓴 학생은 모두 네 명이다. 그 학생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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