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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6화 (16/325)

제16화 야밤의 천문대 (2)

어둠을 뚫고 도착한 B동 옥상에는 하얀색의 반구형 돔 두 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정문에서 보이는 커다란 녀석은 플라네타리움 돔으로 천문영상을 보여주는 스크린 역할을 한다. 그 뒤쪽에 조금 떨어진 작은 돔은 천체망원경이 든 천문대 지붕이다.

천문대 지붕이 열리면 로봇이 출동한다는 학교 괴담의 배경이기도 하다.

강우는 지금까지 천문대를 견학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 장난감 망원경을 제외하고는 천체망원경을 구경한 적도 없다.

천문대 안으로 들어간 김선호가 불을 켰다.

갑자기 눈앞에 들어온 커다란 천체망원경에 강우는 입을 쩍 벌렸다.

“16인치 반사망원경이다. 상당히 큰놈이지.”

김선호의 설명에 강우는 눈앞의 하얀 망원경을 눈에 담았다. 대충 몸통이 사람보다 컸다.

신이 난 최대우의 모습을 보니 따라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은 훗날 천문학자가 될 건가?’

잠재력을 떠올리자 최대우의 머리 위에 S자 두 개가 빛났다. 최대우와 함께한 시간을 돌이켜보면 아직 이 녀석에게 천재란 평가를 매길 수는 없다. 두각을 드러낸 적도 없고 조에서도 존재감이 미미한 수준. 손차희와 윤수아가 바르게 끌어주면 다행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 망원경은 현재 과학고에 설치된 것으로는 가장 크다. 망원경 본 적 있나?”

강우는 바로 고개를 저었고 최대우는 신이 나서 대답했다.

“중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보통 이름뿐일 텐데?”

“울릉도에서는 별이 잘 보여서…… 활동을 자주 했었습니다.”

최대우가 은근하게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선호가 망원경의 기능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동안 강우는 천문대 내부를 구경했다.

중고등학교의 실험기구나 장비는 전시용인 경우가 많다. 장비를 구매한 후 포장조차 뜯지 않는다. 이 천체망원경도 그러리라 생각했는데 주변을 살펴보니 꽤 사용한 흔적이 있었다.

천체망원경이 야밤에 사용하는 기구임을 고려하면 뜻밖이라 할 정도였다.

“고곽에도 천문 동아리가 있다. 내가 지도교사이고. 대우 넌 입학하면 무조건 가입해라. 강우 너도.”

“네!”

힘찬 최대우의 대답에 강우도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동아리에 이름을 올려놓는 것쯤이야 별일 아니긴 하니까.

“별자리는 아니?”

“당근이죠.”

“설명해봐.”

열린 천문대 돔 사이로 보이는 밤하늘을 가리키며 최대우가 자신 있게 설명을 시작했다.

“저긴 오리온자리, 큰개자리, 쌍둥이자리…….”

강우가 보기엔 다 똑같은 별인데 최대우에겐 아닌 모양이다. 깊이 파고 넓게 알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이는 세상이다.

최대우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김선호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짙어졌다.

끊임없이 별자리를 쏟아내는 최대우를 어느 순간 김선호가 말렸다.

“자, 거기까지. 그 정도 실력이면 나를 충분히 도와줄 수 있겠어. 단순히 별자리를 확인하는 활동은 중학생이어도 충분하다. 그래도 우리는 명색이 과학고니까 제대로 관측해야 하지 않을까?”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을 보고 감탄하는 것만으로는 과학도라 할 수 없다. 주어진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천재라면 이미 알려진 풀이 방식에 그치지 않고 더 발전된 뭔가를 만들어내야 한다.

“요즘 소행성 하나를 추적하고 있는데…… 지금은 방학이라 재학생들이 나를 도와주지 못해. 그래서 오늘은 너희 둘의 도움을 받으려고 불렀다.”

재학생이 없는 방학이 이런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최대우가 김선호 선생님의 보조로 붙고 강우는 최대우를 도왔다.

“오늘 우리가 관측할 대상은 소행성 아스트리아다. 마침 태양 반대편에 위치하여 관측하기 쉬운 시기라 선택했다.”

태양계에는 수많은 소행성이 있다. 아스트리아는 5번째 소행성으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이름이다. 19세기 중반 헨케에 의해 최초로 발견된, 꽤 밝은 소행성이다.

새로운 경험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강우는 서서히 천체관측에 빠져들었다.

“일주일 전에 이 소행성을 한 번 관측했고 오늘 두 번째 관측을 시도할 거다.”

김선호가 천체망원경을 제어하는 컴퓨터에 좌표를 입력했다.

그그긍-

천체망원경이 목표물을 찾아 자동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우는 홀린 듯 천체망원경을 바라보았고 최대우는 김선호를 도와 각종 측정기기를 준비했다.

천체망원경이 잡은 목표물을 눈으로 들여다보니 까만 하늘 바탕에 밝은 점 몇 개가 보였다.

“……그냥 별인데요?”

“원래 별은 별로 보인다.”

이게 뭔 말이지? 어리둥절한 강우에게 최대우가 설명해줬다. 대충 들어보니 주요 행성을 제외한 모든 별은 천체망원경으로 본다고 크게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물리학에 광학이 포함되어 있으니 모를 수 없는 내용이건만 지금까지 강우가 접했던 물리학과는 꽤 거리가 있어 당황했다. 갑자기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어쨌든 신나게 별을 관측했다.

김선호가 천체망원경에 CCD 카메라를 부착했다.

“오늘 활동은 소행성을 사진에 담아서 그 위치를 측정하는 일이다. 오늘이 두 번째인데 최소한 세 개의 관측 데이터가 있으면 소행성의 궤도를 계산할 수 있지. 물론 관측 데이터가 많을수록 오차가 줄어든다.”

천체망원경을 사용하는 활동 목적이 분명해졌다. 하긴 과학고에서 아무런 목적 없이 재미 삼아 야밤에 망원경을 움직일 리 없다.

모니터 화면에 찍힌 사진에서 김선호가 별 하나를 가리켰다.

“이게 바로 아스트리아인데…… 며칠 전 사진이랑 비교해보면…….”

모니터에 다른 사진 하나가 더 올라왔다. 두 사진을 나란히 놓고 보자 다른 별들은 모두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유독 그 별만 움직였다.

“별은 하늘에서 움직이지 않기에 항성이라 부른다. 이렇게 이동하는 별은 소행성 아니면 혜성이지. 이런 관측을 더 응용하면 새로운 소행성이나 혜성을 발견할 수도 있어.”

“언젠가 새로운 혜성을 찾아서 제 이름을 붙이고 싶습니다.”

최대우가 포부를 밝혔다.

강우는 최대우를 격려해줬다. 물론 지금 최대우에게는 그보다 김선호의 격려가 훨씬 더 중요하겠지만.

* * *

잠을 깨우는 목소리에 강우는 눈을 비볐다.

새벽에 요란한 기상송을 듣고 일어난 기억은 나는데……. 아침 점호를 체크하고 들어와 또 누웠었다.

“얼른 일어나!”

눈앞에 펑퍼짐한 얼굴의 최대우가 보였다.

“몇 시?”

“하아! 수업 시작 직전.”

“젠장!”

어젯밤에 천체관측 후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잠이 부족했다. 아침까지 거르고 잠을 잤는데 잠 귀신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넌 밥 먹었어?”

“난 아침 안 걸러.”

체력이 좋기도 하다. 하긴 가냘픈 그와 비교하면 몸이 산도적을 닮았으니 체력이 좋아 보이긴 하다만.

이럴 때가 아니었다.

강우는 벌떡 일어나서 옷을 찾았다.

“으아악!”

“왜?”

그의 비명에 최대우가 놀란 얼굴로 쳐다봤다.

“아, 아냐.”

대충 옷장을 열어보니 마땅히 입을 옷이 없었다.

고려 과학고는 교복이 없다. 교복을 입고 학교 부근을 돌아다니면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교복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했다.

솔직히 자유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아야 하는 천재에게 교복이라는 틀에 맞춘 일체감은 이득보다 손해가 더 크다.

강우 또한 교복이 없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했다. 오래전 전생에서 교복을 졸업했던 그가 지금 다시 교복을 입어야 한다면 좌절감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교복 없이 자유로운 평상복을 입기에 나쁘진 않지만…….

‘젠장!’

눈앞에 보이는 옷들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왜 옷이 죄다 아동틱하냐고!’

강우네 집이 시골이고 잘 사는 집이 아니기에 시장바닥 패션인 점은 이해한다. 사실 고급 옷을 부러워할 정신 연령도 아니었고.

그런데 예전의 강우 이 자식이 가진 옷들을 보면 하나같이 중학교 아이들이 입을 옷뿐이다. 심지어 초등생이 입는 귀여운 컨셉의 옷도 있다. 그러니 욕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30대가 입는 그런 스타일은 없나?’

서울로 올라오던 첫날에도 옷 때문에 고민했었는데 며칠 그나마 어려 보이지 않는 옷을 입었더니 이젠 심각한 상황이 왔다.

아무래도 옷을 몇 개 사야 할 것 같긴 한데…… 가진 돈이라고는…….

강우는 어머니가 준 카드를 만지작거리다 한숨을 내쉬었다. 집안 형편이 어떤지 몸소 체험했었다. 절대 넉넉한 집안이 아니다. 기껏 좋은 옷 입고 싶다고 피 같은 돈을 쓸 수는 없다.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하아! 돈이 필요하네…….’

게다가 싸게 옷을 사려면 멀리 떨어진 아울렛이라도 가야 하는데 갈 방법이…….

몇 번 옷장을 뒤적이며 고민하던 강우는 결심을 굳혔다.

‘저 귀여운 옷을 입느니 차라리 운동복을 입고 만다.’

어차피 자유 복장이니 후줄근한 운동복을 입는다고 욕할 사람도 없겠다.

“가, 가자.”

“세수는?”

“젠장!”

강우는 수건을 들고 급히 화장실로 들어갔다.

* * *

오늘 첫 시간은 조회가 길어졌다.

평소처럼 차가운 도시녀 분위기의 차도도는 교탁에 서서 학생들에게 훈시했다.

강우는 가장 뒤에 앉았다가 윤수아에게 잡혀서 앞쪽으로 옮겨온 상황. 오늘따라 운동복을 입고 있어서 유달리 눈에 띄었다.

그를 힐끔 본 후 미간을 찡그린 차도도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 학교생활에 불편한 점은 없나요?”

“없어요!”

옆에서 윤수아가 재빨리 대답했다.

없다니? 모든 게 다 불편한데. 강우는 어이없어 윤수아를 노려보다가 손차희와 시선이 마주치자 바로 깨깽하며 물러났다.

“강우 학생은 불편한가 본데?”

차도도의 의미심장한 질문에 강우는 막 입대한 이등병처럼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잠옷이죠? 늦잠을 자더라도 옷은 제대로 챙겨입고 나와야지.”

강의실이 웃음바다가 됐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닌데 강우는 차도도의 말에 담긴 가시를 확연하게 읽었다.

“오늘은 중요한 공지사항이 있어요. 어제 일학년 담당 선생님들이 긴급회의를 했는데…… 조별로 과제를 하나씩 정해서 연구하기로 했어요. 기간은 예비입학 기간 마지막 날까지. 연구주제는 자유예요.”

중학교 때까지 이런 식의 팀플이나 연구를 경험한 적이 없는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학생들은 어리둥절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차도도가 과제연구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가장 잘한 팀에게 장학금이 주어진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 강우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어? 돈이라고?’

지금까지 적응한답시고 학교 탐색만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돈을 벌 방법이 보였다.

강우는 학교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과거에 자신이 연구했던 핵융합 분야에 몰두할 생각이었다. 이미 그가 가진 지식은, 또 과거에 이루었던 성과는 국내에서는 엄연히 그를 가르칠 사람이 없고 국외에서도 어떤 교수의 밑에 들어가서 배울 수준을 훨씬 넘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환경과 연구비 지원 정도였다. 연구를 보조해줄 인력이 붙으면 더 좋고. 그렇게 몇 년 연구하면 핵융합에서 세계적인 석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원대한 꿈을 설계하고 있는 그에게 지금 주어진 과제연구는 연구 축에도 들지 못하는 어린애 장난이었다.

“그래서 조원들끼리 잘 협력해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보세요. 모르는 것은 관련 교과목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학생들이 시끌시끌해졌고 자연스럽게 ‘고곽천재’ 조는 손차희에게 시선을 모았다.

조별 활동에 고무된 손차희가 막 입을 열려는 찰나 차도도가 강우에게 다가왔다.

“강우 학생, 어제 수학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유일하게 문제를 다 풀었다던데?”

3차, 4차 방정식의 근 이야기다.

“그, 그게요…….”

“잘했어!”

차도도의 칭찬에 손차희와 윤수아가 놀란 눈으로 강우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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