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천재 가우스 (2)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면서 강우와 윤수아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대우 그 덩치로 한 개 가지고 될까?”
“두 개?”
“부족할걸? 음료수도 사다 줘야지?”
예상과 달리 윤수아는 상당히 세심했다.
“생수. 저기 있어.”
강우는 콜라를 만지작거리다가 김밥에 콜라는 이상할 듯하여 윤수아의 말대로 생수를 꺼냈다. 생수 큰 거 한 통이면 셋이서 물배는 채우니까.
“너도 두 개는 먹어야지?”
“대우랑 내 몸을 비교해봐. 난 한 개면 돼. 너야말로 두 개는 먹어야 하지 않겠어?”
윤수아가 눈을 확 부라렸다.
강우는 곧바로 입을 닫았다. 얘도 손차희 못지않게 성깔 있네.
어쨌든 학교 앞 편의점에서 김밥과 물을 샀다.
강우는 전생까지 합쳐서 난생처음 여자와 함께 편의점을 방문하는 경험을 했다. 주머니 사정만 아니라면 나쁘지 않은 시간이다.
한 손엔 삼각김밥, 한 손엔 생수를 들고 다시 학교로 들어가며 신세를 한탄했다. 이 좋은 주말에 무슨 짓인지.
한때 세계의 주목을 받던 과학자가 지금은 과학고생이 되어 기초 공부를 하고 있다니 세상만사 새옹지마였다. 하긴 공부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공부하는 척하면서 놀고 있을 뿐.
다시 계획을 세우고 노력해야 한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윤수아가 우물쭈물하는 것을 보니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왜 그래?”
“강우야, 넌 볼수록 신기해.”
“뭐가?”
“공부 말이야. 첫날 관성모멘트를 열심히 설명했잖아? 그리고 근의 공식도 너 혼자 풀었다며?”
“그런데?”
“근데 방금 화학을 물어보니 완전 맹탕이란 말이지.”
그거야 배운 지 십 년도 더 지났으니까.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면 천재지. 물론 찬찬히 기초를 훑어보면 기억나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화학을 공부할 생각이 없었다.
“난 물리 말고는 관심이 없어서.”
대충 둘러댔다.
“강우야, 너 왜 대우 안 도와줘?”
“응?”
무슨 말인지 몰라 윤수아에게 다시 물었다.
“지금 대우가…… 어떻게든 과제연구를 해보려고 고생하잖아? 원래는 우리 조 전체가 하는 건데.”
안 도와준다니? 무려 장학금이 걸려 있는데. 당연히 제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강우 스스로 멱살을 붙잡고 끌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최대우의 능력을 더 살펴봐야 한다.
“난 지구과학 몰라. 수아 네가 도와줘야지.”
“난 더 모르는데……. 근데, 지금 대우가 헤매고 있는 거, 그거 물리 아냐?”
비록 천문학이란 탈을 쓰고 있지만 역학이니 물리가 맞다. 그가 제대로 연구해본 분야는 아니지만, 한때 물리학과 학부에서 다룬 적이 있기도 했고. 천체역학도 물리에 해당한다.
“그렇긴 하지.”
“하여튼 대우 혼자 고생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
강우는 슬쩍 윤수아의 머리 위를 쳐다봤다. 그녀의 머리 위에서 잠재력 수치가 은은하게 나타났다. 역시 물리는 그리 높지 않다.
“너도 잘할 수 있을 거야.”
강우는 미소를 지으며 윤수아를 격려했다.
“……과연 그럴까?”
윤수아는 오랜 친구인 손차희를 떠올렸다. 함께 학원에 다닌 지 꽤 오래됐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윤수아는 커다란 벽을 경험했다. 손차희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그녀는 어느 순간 그 벽을 넘는 것을 포기하고 그저 곁에 머물러 있기로 했다.
아마 고려 과학고에서의 3년도 그럴 것이다. 그녀가 손차희를 능가할 일은 없을 테니까.
윤수아는 착잡한 마음에 기운이 쭉 빠졌다.
* * *
주섬주섬 삼각김밥을 먹으면서 노트에 뭔가를 열심히 쓰던 최대우가 손을 뻗었다.
손에 잡히는 것은 공기뿐이었다.
“흑, 벌써 없어?”
그 모습을 본 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몇 개 먹은 줄 알아?”
“세 개.”
“그런데?”
“간에 기별이 안 갔어.”
하긴 저 덩치에 삼각김밥 세 개면 완전 다이어트 식단이긴 하다.
강우는 종이컵에 물을 채워 넘겼다.
“물로 배 채워.”
물을 벌컥 마신 최대우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하아! 이거 너무 어렵잖아?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
하긴 쉬운 문제를 천재 가우스가 풀어 이름을 날렸을 리 없고 김선호가 권했을 리도 없다.
“그래도 가우스가 해낸 거라면 너도 할 수 있을 거야.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계산이 훨씬 체계화되어 있고 자료를 손쉽게 접할 수 있으니까.”
강우는 최대우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렇긴 한데…… 이건 처음 접하는 분야라…… 아무래도 월요일에 지구과학 선생님께서 출근하시면 물어봐야겠어.”
김선호가 막히면 마음껏 물어보라고 했으니 잘못된 길은 아니다. 아마도 김선호는 이렇게 흘러가리라고 예상하고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지금의 그들은 딱 김선호가 짐작한 수준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디까지 했어?”
“하아! 관측기록에서 별의 좌표를 뽑아내는 것까지. 그다음이 헬이야.”
“아직 시작 단계잖아?”
최대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아직은 무리였나? 생각해보니 현재의 최대우는 천체의 궤도를 계산하고 위치를 예측하는 분야에서는 완전 초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짧은 시간에 성과를 끌어내기 어렵다.
지금 최대우의 말대로라면 벽에 막혔기에 월요일까지 모든 연구를 중단해야 한다. 월요일에 선생님에게 내용 설명을 듣고 다시 시도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엔 주말 시간이 아까웠다.
‘상금 타려면 어쩔 수 없나?’
강우는 최대우의 앞에 놓인 자료를 끌어당겼다.
한두 쪽 넘기다 보니 과거에 공부했던 내용들이 슬금슬금 떠올랐다. 아직 최대우는 이 문제의 전체적인 그림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 지엽적인 계산식에 몰두해서 나무만 보고 숲을 알지 못했다. 이런 방식의 연구를 해본 적이 없어서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라도 대우에게 큰 그림을 그려줘야겠어.’
묘한 기분이 일었다. 눈에 보이는 수식이 곧바로 이해되어 머리에 박히는 기분이다.
‘내가 천재였나?’
강우는 빠른 속도로 쓱쓱 넘기면서 핵심을 확인했다.
강우가 몰두하자 최대우와 윤수아는 방해하지 않으려고 옆에서 조용히 지켜봤다.
시간이 흐를수록 윤수아의 눈이 점점 커졌다. 어째 강우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최대우는 1시간에 1쪽을 넘기기 힘들어했는데 강우는 1분에 한쪽씩 넘기고 있었다. 게다가 집중한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처, 천재다!”
윤수아는 그동안 강우가 보여준 놀라운 능력을 떠올렸다. 이 문제도 강우가 풀어낼 거라고 믿고 싶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벌떡 일어난 강우가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자, 지금부터 내가 간략한 개요를 설명해줄게.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부터 명확하게 이해해야 해.”
최대우와 윤수아가 눈을 크게 뜨고 화이트보드에 집중했다.
강우는 마카로 태양과 주변을 타원으로 도는 소행성의 궤도를 그렸다.
“우리는 관측한 기록을 이용해서 소행성의 궤도를 구해야 해. 그리고 이 궤도를 이용해서 소행성의 위치를 계산해야 하지. 그럼 무엇부터 할까? 궤도부터 구해야 하잖아?”
“그렇지.”
최대우가 맞장구를 쳤다.
강우는 설명을 이었다.
“소행성의 타원궤도를 결정하려면 6가지 궤도요소가 필요해. 이런 방식을 처음 고안했던 사람이 가우스이고, 훗날 발전시킨 사람이 라그랑주와 라플라스야.”
강우가 설명한 당대의 대천재인 가우스, 라그랑주, 라플라스라는 이름이 모두의 가슴에 벅찬 환희를 몰고 왔다. 지금 그들은 당당하게 천재들의 발자취를 밟아가고 있었다. 물론 강우 혼자만이 아니고 최대우, 윤수아와 함께였다.
화이트 보드에 수식을 썼다. 싸인과 코사인 함수로 이루어진 복잡한 수식이다.
비록 고등학교 입학생이지만 최대우와 윤수아는 삼각함수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학에서 보던 그 함수가 천체의 운행 계산에 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복잡하게 보여도 사실은 별것 아니야. 우리는 태양이 아닌 지구에서 관측하는 거니까 좌표 변환이 필요하고…….”
강우는 신들린 듯 설명을 계속했다.
잠시 자료를 살펴본 것만으로 이런 강의가 가능하리라고는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칠판에 적으면서 수식을 하나씩 풀어나가다 보니 놀랍게도 막힘이 없었다. 마치 얼음판 위에서 미끄러진 물체가 관성력만으로 계속 나아가듯이 강우의 수식 풀이도 끊임없이 계속됐다.
강우의 설명이 적절했기에 최대우는 막혔던 부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윤수아는 강우의 설명을 모두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강우는 평범한 학생이 아니다. 자료를 한번 보고 완벽하게 이해해서 남에게 설명하는 저 장면은 진정한 천재만이 보일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 강우는 찬란한 빛을 발하는 듯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강우가 손차희보다 더 뛰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칠판에 적은 수식이 살아 움직이고 강우의 손에서 서로 엮이며 새롭게 태어났다. 그가 쓴 수식은 마치 자아를 가진 생명체처럼 새로운 의미를 도출했다.
‘물리는 내가 최고다!’
물리 천재였던 강우의 자부심이다.
그가 설명을 끝냈을 때 보드에 적힌 수식은 소행성의 궤도를 완벽하게 그려냈다. 마치 신이 빚어낸 자연의 비밀을 수식으로 옮겨 놓은 모습이었다.
몇 번이나 화이트보드를 채웠다가 지우며 설명을 반복한 후 강우는 조용히 마카를 내려놓았다.
“이해했어?”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최대우와 윤수아는 입만 쩍 벌렸다.
뭔가 어마어마한 강의를 들었다는 것은 알겠다. 이 녀석은 인간이 아니었어! 최대우와 윤수아는 강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최대우의 시선은 강우의 손끝 수식에 멈추어 있었고 윤수아의 시선은 강우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강우의 머리 뒤로 아우라가 빛나는 듯했다.
“가우스는 이 모든 과정을…… 19세기 초에 완성했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백 년이 훌쩍 지났어. 21세기의 우리가 못한다면 이상하잖아?”
강우가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아니, 네가 더 이상해.’
윤수아는 그 감동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강우에게 들키면 어색할 것 같아서다.
정작 강우는 그들의 반응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지금 그는 두 사람을 이해시켜 과제연구를 제대로 수행하겠다는 목표에 과몰입해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나열한 수식 있지? 이거 따라 쭉 계산하면 해답을 얻을 수 있어.”
사실상 해법을 제시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 문제는 최소한의 관측 데이터, 즉 조건이 3개 이상 필요하다. 반면 미지수인 궤도요소는 모두 6개다. 게다가 때로는 무수히 많아지는 이 데이터들은 필연적으로 관측 오차를 포함한다.
즉, 흔히 접하는 연립방정식 문제와는 결이 다르다.
과거에 가우스는 일일이 손으로 계산하여 무려 일주일이나 걸렸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산 프로그램을 짜라고?”
최대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응. 관측자료가 더해질 때마다 새로 계산할 수는 없잖아? 다른 소행성이나 혜성에도 적용하려면 최종 완성은 프로그램이나 앱 형태가 되어야지.”
“하아!”
최대우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울릉도에서 별을 자주 봤어도 컴퓨터를 다루는 실력은 약하다.
그럼 강우는?
한국의 평범한 이공계 학생은 간단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할 줄 안다. 엑셀은 기본이고 C언어나 파이썬을 다룬다. 강우도 학부에 다닐 때 사용하기는 했었다. 아주 기초적인 수준이었지만.
그 이후에는 주로 물리학 이론에 심취하면서 프로그래밍 언어와 점점 멀어졌었다.
강우는 최대우의 고민을 이해하고는 가슴이 뜨끔했다.
‘아! 아직은 이공대생이 아니어서 어렵나?’
그렇다고 그가 프로그래밍까지 손을 대면 너무 많이 관여하게 되어 최대우가 병풍으로 전락한다. 이는 그의 애초 목적에서 벗어난다. 그렇기에 프로그래밍을 하고 싶지도 않고 자신도 없었다.
“어, 어려워?”
강우가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였다.
지금까지 눈만 반짝이며 넋이 나가 있던 윤수아가 입을 열었다.
“나…… 프로그램 잘 짜는데?”
새로운 스타가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