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4화 (24/325)

제24화 작은 성과 (4)

공부란 모르는 것을 아는 과정이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은 공부를 싫어한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기쁨보다 공부 자체가 주는 스트레스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의 근원에는 시험이 존재한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윤수아와 최대우는 시험을 치기 위한 공부를 했었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듣는 수업이나 숙제, 자습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부는 오직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였다.

자연스럽게 공부의 목적이 오로지 시험에 맞춰져 있었다. 세상을 더 알려는 공부의 본래 목적 따위는 버린 지 오래였다.

지금 두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험 점수가 아닌, 공부 그 자체에 매달리고 있었다. 소행성의 궤도요소를 구하고 그 요소로 다시 소행성의 위치를 계산하고자 하는 그 목적 하나만을 위해 정열을 불태우고 있었다.

이런 문제는 시험에 나오지 않고 이 과제연구는 교과 과정과 무관하며 설사 보고서를 완벽하게 쓴다고 한들 입학 전이어서 학생부에 반영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집중했다.

이 연구 문제가 두 사람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고 두 사람은 사활을 걸다시피 했다.

그 과정에서 하나씩 장벽을 넘어서고, 해결되지 않던 문제를 풀었다.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열심히 공부해서 백 점을 맞았을 때의 기쁨보다 월등했다. 그들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바로 자연과학 연구를 성취했을 때 접하는 희열이다.

“다시!”

윤수아가 주먹을 불끈 쥐고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모니터에 계산된 숫자가 좌르륵 올라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일순간 화면이 멈췄다. 이전처럼 알고리즘의 문제로 무한루프에 빠졌다.

“서브루틴 간 데이터 공유에 문제가 있어. 지정된 데이터가 계산되기 전에 호출되어서…….”

이제는 제법 프로그램에 익숙해진 최대우가 옆에서 의견을 넣었고 고민에 잠겼던 윤수아는 다시 프로그램을 뜯어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을 방해할 수 없는 강우는 손차희를 힐끔거렸다.

열심히 공부하는 척하던 손차희도 눈과 귀가 윤수아에게 돌아가 있었다.

“수아가 컴퓨터를 잘 다뤘어?”

“초딩 때부터 자질 있었어. 집에서 컴은 공부가 아니라고 못 하게 해서 그렇지.”

“요즘엔 코딩 배운다고 하면 부모들도 좋아하지 않아?”

“그것도 정도 문제지. 예전에 수아는 피씨를 끼고 살았거든. 그러니 집에서 난리가 났어.”

강우는 과학고에 들어갈 영재가 책을 보지 않고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는 장면을 떠올렸다. 확실히 부모의 속이 터질 법하다.

손차희가 윤수아를 훑어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수아 얼굴이 활짝 폈네……. 저렇게 좋을까.”

두 사람이 같은 학원에 다닌 지 벌써 수년이 지났다. 그동안 손차희는 윤수아가 지금처럼 집중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윤수아는 지금 그 자체만으로 즐거운 것이다.

새삼 자신이 친구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고 반성했다.

“프로그래밍하는 수아가 더 좋아 보여?”

손차희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얼굴에 부러움이 가득했다.

강우도 안다. 뭔가를 이루었을 때 솟구치는 만족감과 자부심, 목적을 달성할 것 같다는 희망이 있을 때 느끼는 행복. 이 모든 것이 바로 불타는 연구의 밑바탕이 된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다. 핵융합 전문가로 열심히 연구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외부의 일이 잘 풀리지 않자 본연의 연구 자세를 잃어버렸다. 연구보다 교수직에 더 매달렸고 거부당한 연구비 신청에 분노했었다.

그 모든 사태가 본연의 연구에 지장을 초래했다. 그러다 보니 연구 성과도 지지부진해졌다.

지금 윤수아와 최대우를 보면서 그도 행복을 느꼈다. 자신도 하루빨리 준비해서 저 기분을 느끼고 싶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시 핵융합 연구에 뛰어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재도전!”

“고!”

윤수아의 시도에 최대우가 추임새를 넣었다.

모니터에 복잡한 숫자가 뿌려졌다.

“넘어갔어!”

조금 전까지 애를 먹던 지점에서 프로그램이 작동을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했다.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윤수아가 환호성을 질렀다.

“답이 나왔어!”

“어? 답이 좀 이상한데?”

최대우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윤수아가 웃으며 응수했다.

“그건 단위 변환을 하지 않아서 그래. 라디안 값을 적경, 적위 좌표로 변환해야 우리가 알아볼 수 있지.”

강우는 윤수아의 대답에서 이제는 그녀가 프로그램에서뿐만 아니라 천문 쪽에서도 완전히 전문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아! 늦었다! 선생님 기다리시겠어!”

무심코 시계를 본 최대우가 후다닥 일어났다.

프로그램 수정에 정신이 팔려 천문대에 가는 시간을 놓쳐버렸다.

* * *

“선생님, 오늘은 저희가 계산한 위치에서 소행성 아스트리아를 탐색해보겠습니다.”

최대우가 호기롭게 제안했다.

김선호가 놀란 표정으로 확인했다.

“벌써 다 했어?”

“당연하죠. 우리가 누군데요.”

“어떻게?”

“필요한 부분은 다 했어요. 바로 관측에 투입해도 될 만큼.”

윤수아가 가져온 노트북을 폈다.

그녀는 모니터에 프로그램을 띄우고 열심히 설명을 시작했다.

김선호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감탄이 어려 있었다.

“좋아, 오늘은 그렇게 해보자.”

천문대 돔이 열리고 천체망원경이 준비됐다.

윤수아는 앞선 세 번의 관측기록에서 위치 좌표를 뽑아내어 제작한 프로그램에 입력했다.

“아자! 아자!”

모니터에 오늘 현재 시각의 소행성 위치 좌표가 떴다.

이 결과를 망원경 제어 프로그램에 바로 입력하면 좋겠지만 아직 중간 인터페이스를 만들지 않았다. 사실 이 과정은 핵심이 아닌 자투리여서 중요하지 않다.

그그긍-

육중한 천체망원경이 해당 위치를 찾아간다.

계산된 지점을 조준하는 망원경을 쳐다보며 모두가 한마음이 됐다. 저곳에 목표한 소행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우는 기대감과 흥분 속에 하늘을 쳐다봤다. 까만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 저 별들 사이에서 어두운 소행성 하나가 존재감을 발하고 있을 것이다.

‘성공해야지,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실패하면 억울하잖아.’

그는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어느새 동료를 믿고 있는 자신이 놀라웠다.

윤수아와 최대우는 홀린 듯 망원경에 부착한 CCD가 촬영한 영상을 모니터에 띄웠고 손차희는 그런 두 사람을 응원했다.

강우는 뿌듯한 마음으로 김선호를 찾았다. 정작 김선호는 윤수아도 모니터도 보고 있지 않았다. 김선호의 시선은 강우를 향해 있었다.

괜히 멋쩍어진 강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재빨리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모니터에 두 개의 영상이 떴다. 하나는 지금 찍은 해당 위치 하늘의 영상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에 있는 참고 영상이다.

소행성은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두 영상을 비교하면 참고 영상에서 보이지 않는 새로운 별이 찍혀 있어야 한다.

“발견했어요!”

윤수아가 모니터를 손으로 가리키며 환호했다.

비록 화면 중앙에서 약간 벗어나 있어 오차가 다소 보였지만 어쨌든 성공했다.

“잘했어! 너희는 가우스가 했던 그 작업을 현대판으로 구현한 거야.”

김선호가 성공을 확인했다.

물론 가우스는 일주일에 걸쳐 손으로 계산했고 그들은 일주일 만에 프로그램을 짰다. 그들이 사용한 기본 알고리즘은 가우스 때보다 훨씬 발전한 과학 그 자체였다.

윤수아가 최대우와 손차희를 얼싸안았다. 그들은 한동안 기쁨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강우도 몸이 들썩이고 손이 간질거렸다. 이럴 때는 정신 연령이 높은 게 방해였다.

‘역시 서로 보완하고 협업하면 더 확실하게 성과를 얻을 수 있어.’

문득 과거 손강우 시절의 자신과 비교했다. 그때는 같이 연구할 동료가 없었다.

지금 강우는 저들과 얼싸안고 감격을 누리고 싶었으나 어째 몸이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비록 몸은 고등학생이지만 여전히 저들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어서다.

감격이 가시고 난 뒤 김선호가 후속 조치를 지시했다.

“오늘 관측까지 포함하면 인풋 데이터가 모두 네 개가 될 거야. 그 네 개를 이용해서 이번 주말에 최종 관측을 시도하고 보고서 결과를 뽑아.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윤수아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과제연구 보고서로 작성해야 하는데 그건 누가 할래?”

“제가 할게요. 보고서 작성은 자신 있어요.”

손차희가 손을 들었다. 그녀는 학교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숙제나 보고서를 꼼꼼하게 챙겨왔었다. 당연히 다른 사람보다 이런 면에서 월등할 수밖에 없다.

“차희가?”

“다른 애들은 진단 고사를 준비해야 하거든요.”

진단 고사란 말을 듣는 순간 강우를 비롯한 세 사람은 안색이 노래졌다. 무려 내기까지 걸려 있었는데.

“그렇게 하렴, 차희는 중간에 한번 검사받으러 오고.”

천문대로 내리던 별빛이 사라졌다. 돔이 닫히고 천체망원경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강우는 어둠 속에서 고고한 자태를 과시하는 천체망원경을 눈에 담은 후 동료들과 함께 천문대를 떠났다.

최근 며칠간 이곳에서의 활동이 그와 동료에게 연구의 불씨를 지폈다. 그 불씨는 먼 훗날 거대한 불길이 되어 이 나라의 과학기술을 선도하게 될 것이다.

* * *

“강우는 잠시 남아.”

오전 수업이 끝나고 재빨리 식당으로 도망치려는 순간 차도도가 강우를 붙잡았다.

강우는 떨떠름한 얼굴로 교탁 앞에 섰다.

“상담 좀 해야겠는데…….”

아무래도 문제 학생으로 찍힌 것 같은데. 딱히 상담을 거부할 이유가 생각나지 않아 강우는 적당히 둘러댔다.

“조원들이랑 밥 먹어야 하는데요?”

강우는 하나둘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동료들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차도도가 먼저 손차희에게 선공을 날렸다.

“점심때 강우 빌려 가도 되지?”

“당연히 되죠.”

손차희가 피식 웃으면서 윤수아를 데리고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으, 저것들이 이렇게 나를 버리는구나.”

강우는 신세 한탄을 연발하면서 차도도의 뒤를 따랐다.

“강우는 쌤이랑 함께 밥 먹기 싫은가 봐?”

‘내가 아무리 정신 연령이 높기로서니 학생이 선생님 사이에 앉아 먹으면 그게 넘어가겠냐고!’

강우는 속으로 한탄을 계속 늘어놓았다.

“어? 정말 싫은가 보네? 대답이 없어.”

“그게 아니라 선생님들과 함께 앉으면 자리가 불편하죠.”

“아하!”

알겠다는 듯 차도도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소심하기는. 알았어! 그럼 오늘은 쌤들 자리 말고 학생들 자리에서 같이 먹자.”

소심이라니! 강우는 속으로 툴툴거리면서 식당에 들어섰다.

오늘은 밥을 받아서 선생님 자리가 아닌 학생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들 시선을 받아 소화불량 걸리는 것보다 이 자리가 훨씬 낫다고 생각하면서 자리에 앉았건만 불과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젠장!’

주변 학생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집중됐다. 차도도가 학교 내에서 워낙 인기 있는 선생님이다 보니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강우는 더 먹기 힘들어진 반면 얼굴에 철판을 깐 차도도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평소처럼 식사에 열중했다.

“강우야, 넌 한창 자랄 때니까 많이 먹어야지, 난 다이어트 중이라…….”

차도도가 반찬으로 나온 스테이크를 절반 뚝 잘라 넘겼다.

그 몸에 무슨 다이어트까지? 고마워해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 강우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소화불량 일보 직전인 그와 달리 우아하게 포크질을 하던 차도도가 의문을 표했다.

“왜? 이 자리도 불편해? 저쪽 쌤들 자리로 갈까?”

“아뇨.”

옮기면 더 이상하지! 강우는 이 자리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너! 어제도 클래스룸 앱 접속 안 했더라?”

적응 도움 프로그램을 수강하라던 차도도의 지시가 별안간 떠올랐다. 어제저녁에 천문대에서 관측하느라 깜박했다. 물론 고의였다.

“과제연구가 바빠서요.”

“너만 바쁘니? 대우는 그 와중에도 접속했던데?”

아, 최대우 이 자식! 배신을 때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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