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8화 (28/325)

제28화 학기 시작 (1)

1등 이민찬.

2등 손차희.

3등 주영식.

올해 신입생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학생들이다.

학교 측에서 올해 신입생의 수준이 높다고, 앞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하는 이유의 상당 부분이 이들 세 학생 때문이다. 이들은 입학시험이나 진단 고사에서 눈에 띄는 성적을 보였다.

그리고 입학생들 역시 이 세 학생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이민찬과 손차희는 같은 유명 학원 출신이고, 주영식은 지방의 다른 학원 출신이었다.

의도하진 않았으나 특정 학원이 영재고 입시를 주도하는 상황은 현실이다. 사교육 논란 속에서 진정한 영재를 뽑기 위해 수차례 개선을 거쳐 정착한 입시제도가 이런 방식이라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지만.

평범한 학생이 학원에 다녔기 때문에 영재고에 입학한 게 아니고, 학원 출신이어야만 입학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지금은 우수한 천재가 대부분 학원에 다니기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혹자는 학원이 만들어낸 천재라고 낙인찍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은 학원에 다니지 않았더라도 이 학교에 입학했을 천재들이었다.

강우는 단상의 세 학생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그의 육신은 저들과 동급생이지만 정신 연령은 저들을 귀여운 후배로 바라보고 있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후배라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는 세 사람의 머리 위에 새겨진 재능을 확인했다.

- 이민찬, 수학 A, 물리 A, 화학 B, 생물 A, 지구과학 A

- 손차희, 수학 B, 물리 A, 화학 A, 생물 B, 지구과학 B.

- 주영식, 수학 A, 물리 B, 화학 A, 생물 A, 지구과학 B.

이것으로 A가 얼마나 희귀하고 높은 재능인지 다시 확인했다. 우수한 과학영재고 학생 가운데 소수만이 A에 해당하는 재능을 보였다.

그런데 S라면? 강우는 옆자리의 최대우를 슬쩍 돌아봤다.

입을 헤 벌리고 단상을 쳐다보고 있었다. 부러움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어쨌든 저 모습만 보면 녀석이 S급 인재라는 점이 도무지 상상되지 않았다.

“이 학생들에게는 상장과 격려금을 드립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 달라는 학교 측의 바람을 담았습니다.”

학생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학생들은 부러움과 승부욕을 동시에 내비쳤다. 앞으로 열심히 하면 저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예비입학기간에 주어진 과제연구 대회에서 일등을 차지한 조에게 상금을 수여하겠습니다.”

드디어 과제연구 결과 발표 시간이 왔다.

“참고로 신입생들의 과제연구 보고서는 내일부터 일주일간 A동 1층에서 전시될 예정입니다.”

강우는 조용히 단상을 응시했다.

과제연구 성적이 어떻게 될까. 고곽천재는 열심히 했고 주제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조원 모두가 스스로 연구하며 전체 내용을 이해하고 성과를 얻어냈다.

이런 연구 과정을 거쳤다는 것만으로도 조원들은 큰 경험을 했다. 앞으로 그들이 더 중요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은 것만은 사실이니까.

이미 다양한 연구 경험을 가진 강우와 달리 이제 첫발을 뗀 다른 조원들에게는 이번의 경험이 무척 중요했다.

강당에 앉은 학생들을 쭉 둘러보던 강우는 서너 자리 옆에 앉은 고현성과 눈이 마주쳤다.

떨떠름한 녀석에게 한차례 씨익 웃음을 보냈다. 녀석이 움찔한다. 이 학교 선생님들도 눈이 있다면 학원에서 뽑아준 흔해 빠진 주제로 과제연구를 수행한 조에게 상금을 수여하지는 않을 것이다.

“훌륭한 과제연구가 많아 행사를 기획한 선생님들도 감탄했습니다. 최우수상에는 ‘소행성 아스트리아의 궤도 계산과 검출’이란 연구를 수행한 강우, 손차희, 윤수아, 최대우 학생입니다. 해당 학생들은 앞으로 나와주세요.”

강우가 열심히 해서가 아니라 가나다순이어서 강우가 가장 먼저 호명됐다.

“그렇지! 이럴 줄 알았어!”

옆자리의 최대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연구를 수행한 네 학생에게는 소정의 상금을 수여합니다.”

최대우가 벌떡 일어나서 강우에게 눈짓했다.

“가자.”

강우는 최대우아 함께 단상으로 올라갔다. 윤수아가 도중에 합류하고 단상 아래에는 손차희가 대기하고 있었다. 손차희의 표정이 무척 밝았다. 그녀는 오늘 2관왕이다!

네 사람이 단상에 올라가자 박수 소리가 강당을 울렸다.

유명 인사인 손차희가 끼어있기에 수상을 의심하는 학생들은 없었다.

단상 위에서 강우는 환영하는 선생님들을 확인했다. 담임인 차도도가 그들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었고 그 옆에는 이 연구를 지도했던 김선호가 축하를 보내고 있었다.

이 두 선생님과 함께하는 과학고 생활이 기대되었다.

* * *

입학식 후 1학년 교무실에서는 선생님들이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과제연구 수상 조는 의외였어요.”

“주임 선생님과 각 과목 담당 선생님들의 의견을 모은 것입니다. 사실 너무 압도적이라 이견도 없었어요.”

이런저런 소감에 김선호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자신이 지도한 학생들이 상을 받았으니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 학생들에게서 연구자의 자질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기뻤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그와 함께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차 선생님께서는 예상하셨나요?”

학년 주임인 김윤택이 차도도에게 물었다.

차도도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 넷이 모여 열심히 한다고만 생각했지 그 성과마저 뛰어날 줄은 몰랐다.

“역시 손차희 학생이 잘하는 거겠죠?”

“차희가 열심이죠. 승부욕도 대단하고요. 물론 다른 학생들도 뛰어납니다.”

차도도는 과제연구의 진행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속에 강우란 이상한 학생이 꽤 큰 역할을 했으리란 사실만은 짐작할 수 있었다.

“차희 학생이 물리를 선택해서 담임 선생님의 지도를 받을 줄 알았는데 지구과학이라 놀랐습니다.”

김윤택이 은근히 차도도를 비꼬았다.

차도도는 대수롭지 않게 응수했다.

“저도 학생들이 지구과학에 소질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학기가 시작되고 본격적으로 과제연구가 시작되면 이번에는 그녀도 절대 이 학생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손차희는 반에서 일등이니까 연구주제로 물리를 택해야 정상이었다.

김윤택은 이번에 과제연구를 시도한 이유를 떠올리며 쓴맛을 삼켰다.

이번 과제연구의 목적은 이민찬을 띄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재능이 애매하던 강우란 학생의 능력을 확인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이민찬을 띄우기는커녕 손차희에게 눌렸다.

이민찬은 학원에서 받아온 흔한 주제를 연구했고 손차희는 달랐다. 거기에서 승부는 이미 결판났다. 아쉽지만 연구 능력에서 이민찬을 손차희가 압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 시험이나 수능은 연구 능력과 상관없으니까 여전히 이민찬의 우위는 견고했다.

다음 과제연구는 자신이 직접 이민찬을 코치할 테니까 이민찬의 우위는 확정이다. 이번 패배는 일시적인 결과일 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수상자 가운데 그때 그 학생…… 강우라 했나요? 그 학생도 있더군요.”

김윤택이 첫날 식당에서 오간 대화를 떠올렸다.

선행하지 않았다고 했던 그 학생은 과제연구에서 큰 역할을 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확인을 해봐야겠지.

“강우 학생은 과제연구에 얼마나 참여했나요?”

김윤택의 질문이 김선호에게 돌아갔다. 김선호가 그 과제연구의 지도교사였으니까.

“다른 조원과 비슷한 정도였습니다. 가장 고생한 학생은 윤수아였죠.”

새로운 이름이 나오자 김윤택은 미간을 모았다.

“흠, 그럼 강우 학생은 2차 진단 고사를 어떻게 쳤나요?”

김윤택의 질문에 모든 선생님의 시선이 차도도에게 모였다.

차도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게…….”

“그럴 줄 알았어. 그날 화학 시험 치는 것을 봤는데 답안지가 예술이더라고.”

신새벽이 씩씩대며 시험 때의 강우를 설명했다.

폭소가 터지자 차도도는 말을 아꼈다.

“그래도 지난번보다는 많이 좋아졌어요.”

차도도에게 강우는 여전히 의문의 학생이었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적어도 그녀에게 강우는 손차희처럼 가능성이 큰 학생이었다.

* * *

첫 시간이 끝나고 담임 차도도가 2차 진단 고사 성적표를 나누어 주었다.

전교 상위 학생 성적이 복도에 게시되기 전이었기에 아직은 아무도 자신의 성적을 알지 못했다.

성적표를 받은 학생들의 얼굴에 기쁨과 실망이 교차했다.

차도도는 학생들을 쭉 둘러보며 말했다.

“2차 진단 고사에서 반 일등은 두 사람이 동률이었어요. 손차희와 전상철의 성적이 같아요.”

학생들이 두 사람에게 환호성을 보냈다.

정작 손차희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입학시험에서 또 1차 진단 고사에서 그녀는 반에서 단독 1등이었으니까. 전상철과 점수가 같으면 그녀에게는 오히려 나쁜 결과였다.

더구나 전상철네 조와는 내기가 걸려 있었다.

강우는 자신의 성적표를 받자마자 확인하지 않고 테이블 위에 엎어 놓았다. 그는 손차희의 도끼눈에 찔끔 몸을 떨었다.

역시 기가 팍팍 살은 고현성이 건들거리면서 그들에게 다가왔다.

“자, 브라더, 씨스더! 약속대로 양쪽의 성적을 합산해서 결산해보자!”

모두가 머뭇거리는 강우네 조와 달리 저쪽은 신이 난 상태였다. 조장 싸움에서 비겼으니 나머지는 자신들이 이긴다는 자신감을 표출했다.

“먼저…… 수아! 성적 펼쳐봐.”

고현성과 윤수아의 성적이 나란히 테이블에 놓였다.

수학은 총점이 200점이고 과학은 각 과목이 100점이어서 만점이 600점이었다. 수학은 윤수아가 밀렸고 과학은 윤수아가 높았다. 다만 수학에서 손해 본 점수가 더 커서 윤수아는 총점에서 고현성에게 15점을 손해 봤다.

15점을 이긴 고현성이 더욱 기세를 높이며 뒷사람의 성적표를 꺼냈다.

강우네 조에서는 최대우의 차례였다.

최대우는 수학과 물리, 지구과학에서 성적이 그럭저럭이었으나 화학과 생물은 엉망이었다. 고현성네 조인 오동섭은 애초에 그 조에서 가장 아래였다. 특출나게 잘하는 과목이 없었고 전 과목에서 고루고루 못했다. 하지만 폭망한 성적은 아니었다.

다행히 최대우는 총점에서 겨우 15점을 이겼다. 수학과 물리에서 대폭 성적을 벌었는데 화학과 생물에서 반대로 대폭 처지는 바람에 일어난 결과였다.

“우와! 겨우 15점밖에 안 밀렸어!”

오동섭이 주먹을 불끈 쥐면서 환호했다.

강우는 그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전상철을 졸졸 따라다니는 저 녀석은 어딘지 모르게 덜떨어진 녀석이다. 최대우가 저 녀석을 확실하게 이겼어야 했는데…… 겨우 15점이라니.

손차희와 윤수아의 안색에 먹구름이 짙어졌다.

양 팀은 다시 동률이 됐다.

남은 사람은 강우와 조영제. 강우는 알다시피 화학 주기율표도 모르는 데다가 시험시간에도 신새벽에게 잔소리를 들었으니 성적이 좋을 리 없다.

반면 조영제는 전 과목에서 무난하게 성적을 받는 학생이다. 적어도 평균보다는 낫다. 그렇기에 고현성은 승부가 끝났다고 희희낙락했다.

고현성이 조영제의 성적표를 탁 내려놓았다.

조영제의 성적표는 수학이 123점, 물리가 64점, 화학이 80점, 생물이 82점, 지구과학이 75점으로 총점이 424점이었다. 대충 반 평균보다 조금 나은 성적이었고 이번 시험에서 특히 어려웠던 수학과 물리의 점수가 다소 미진했다.

조영제의 성적표가 공개되자 모두의 시선이 강우에게 쏠렸다.

“강우! 쫄리지? 졌지? 성적표 공개하기 부끄러우면 그냥 졌다고 말해!”

고현성이 비웃음을 마구 터트렸다.

수업 시간마다 워낙 기행을 선보였던 강우였기에 모두가 강우의 성적을 궁금해했다. 솔직히 강우 본인도 자신의 성적이 궁금했다.

“강우야, 어떻게 됐어?”

윤수아가 슬그머니 강우의 성적표로 손을 가져갔다.

“나도 아직 확인 안 했어.”

“내가 확인해도 돼?”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윤수아가 성적표를 뒤집자 강우의 점수가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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