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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9화 (29/325)

제29화 학기 시작 (2)

- 강우 : 수학 200점, 물리 100점, 화학 31점, 생물 18점, 지구과학 76점. 총점 425점.

“어? 점수가 왜 이래?”

강우의 점수를 본 학생들이 화들짝 놀랐다.

무려 수학과 물리가 만점이었다. 이번 시험에서 가장 어려웠다는 두 과목이다. 평균점수가 반타작인 100점과 50점에도 채 미치지 못했다는 극악 난이도였다. 그런 과목에서 모두 만점을 받다니.

“차, 차희야! 너도 수학이 160점 아니었어?”

윤수아가 놀란 눈을 부릅뜨고 손차희의 성적표를 확인했다.

“물리도 강우랑 차이가 크게 나네?”

윤수아의 시선이 다시 강우에게로 쏠렸다.

“그런데 화학과 생물은 이게 뭐야? 찍어도 이보다는…….”

그나마 화학이 점수가 높은 이유는 시험 때 신새벽이 주기율표를 쓰지 않았다고 구박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주관식 한 문제를 일부 건졌다.

강우의 과목별 점수 옆에 적힌 과목별 등수는 더욱 가관이었다. 수학과 물리 옆에는 당연히 1등이라 적혀있었는데 화학 옆에는 121등, 생물 옆에는 당당하게 124등이라 적혀있었다. 참고로 전교생이 124명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구과학은 점수가 정상이었다. 물리와 친척이라는 천문이 들어 있고 대기도 물리와 일부 연관되어 있다. 암기 위주인 지질은 당연히 폭망이었고.

강우의 휘황찬란한 성적에 시선을 빼앗겼던 학생들은 그제야 총점에 눈이 갔다.

“어? 영제보다 1점이 높아!”

“차희야! 우리가 이겼어!”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크으! 1점 차라니!”

각양각색의 반응이 터져 나왔다. 고곽천재의 환호성이 강의실을 울렸다.

점수가 널뛰리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실제로 그런 점수를 받고 보니 강우는 헛웃음만 나왔다.

수학과 물리에서 한차례의 실수도 없었다는 점은 고무적이었으나 화학과 생물은 사실상 맞춘 문제가 없어 앞날이 캄캄했다.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총점의 전교 석차가 41등으로 평균보다 위였다.

1차 진단 고사에서 전교 석차가 거의 끝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이 모든 성과를 며칠간 손차희의 수학 참고서를 공부하고 얻어냈다.

낙심해서 분을 삼키는 고현성에게 강우가 피식 웃음을 보냈다.

“봤냐?”

“으아아악! 어떻게 1점을…….”

“밥 사라! 비싼 곳에서.”

강우는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정리했다.

고현성을 비롯한 학생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간 후 강우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손차희의 시선을 간신히 무시했다.

점수표를 배부하고 돌아가던 차도도가 흐뭇한 표정으로 격려했다.

“강우! 꼴찌에서 벗어났네?”

“그렇죠?”

“이번 시험에서 수학과 물리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은 네가 유일해. 주관식도 완벽했다고 하더라.”

강우의 예상보다 고려 과학고 학생들의 수학과 물리 실력이 별로인 듯했다. 학원에서 다루지 않는 몇몇 문제를 학생들은 손을 제대로 대지 못했다.

“제가 엄청 열심히 했거든요.”

“정말?”

“클래스룸 매일 접속했잖아요? 공부한 것도 매일 보고하고요.”

“맞아! 그렇지! 좋아! 앞으로도 계속 보고하자! 파이팅!”

“으악!”

차도도가 활짝 웃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강우는 그 자리에서 자지러졌다.

“아참, 강우야! 신 선생님이 이를 벅벅 갈고 있더라.”

화학 점수를 보면 당연한 반응이긴 했다.

한숨을 푹푹 내쉬자니 차도도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좋아. 성적이 잘 나왔으니까 약속대로 선물을 줄게. 원하는 거 알려줘. 파이팅!”

차도도가 눈을 찡긋하고는 강의실을 나갔다.

강우의 성적이 공개된 후 가장 충격받은 사람은 손차희였다.

손차희의 성적은 총점으로는 강우보다 압도적으로 앞서 있었다. 하지만 수학과 물리 성적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동안 그녀는 과제연구를 수행하면서 강우의 남다른 실력을 눈치챘다. 복잡한 수식을 말끔하게 전개하고 풀이하는 강우가 평범할 수 없다. 수학 기본서를 한번 본 후 학원 문제집을 거침없이 푸는 모습도 그녀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진단 고사에서 만점이라니. 이번 시험 수준은 그녀에게도 절대 쉽지 않았다. 실수로 한두 문제를 틀린 게 아니라 확실히 모르는 문제가 많았다. 그렇기에 그녀의 마음은 매우 참담했다.

화학이나 생물을 강우가 못 하는 것은 맞지만 공부를 하지 않았을 뿐, 이 두 과목 또한 제대로 공부하고 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지 두려웠다.

‘대체 이 녀석 정체가 뭐지?’

손차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이 천재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 눈앞에 갑자기 등장한 강우는 자신과 차원이 다른 경지에 있었다.

남보다 우월하다는 자부심이 갑자기 한 줌의 모래처럼 손에서 빠져나갔다.

‘앞으로 반 일등도 어려우려나…….’

생각할수록 그녀는 기분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마음을 단단히 다잡았다.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고.

정작 옆에 있는 윤수아는 강우의 성적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었다.

* * *

입학 첫날이라지만 재학생들이 개학해서 세미나룸 예약은 전쟁터였다.

고곽천재는 이런 상황을 미처 예견하지 못하여 세미나룸 예약에 실패했고 저녁 자습시간에 모여서 공부할 수 없었다.

각자 자습실에서 따로 공부하던 그들은 밤 10시가 되자 곧바로 자습실을 빠져나와 기숙사로 향했다. 모여서 공부하던 평소와 달라서 그런지 흥이 나지 않았다.

강우는 기숙사로 가면서 집으로 전화했다.

전생에 손강우의 부모는 그가 대학원에서 학위를 밟고 있을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형제나 자매도 없었고 친척들과의 교류도 거의 없었다. 그렇다 보니 손강우 시절에는 사실상 혼자였다. 그가 강우로 다시 살게 된 후로도 부모나 친척을 알아볼 필요가 없었다.

지금 강우의 어머니는 그에게 친어머니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며칠 보지 않았음에도 친어머니와 같은 정을 느꼈다. 전생에서 부모를 잃었기에 부모의 정에 굶주려서일지도 모른다.

- 우야!

“오늘 입학식 했어요.”

전화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음성이 밝아서 마음이 놓였다.

- 그래, 별일 없지?

“오늘 입학식에서 상을 탔어요. 장학금도 받았고요. 어머니 통장에 입금되었을걸요?”

- 그래? 장하네, 울 아들. 당장 은행에 가서 통장 찍어봐야겠어.

“모두 100만 원이에요.”

- 큰돈이네. 멀리서 고생하지? 그 돈은 그냥 너 필요한 거 사.

“어머니께서 쓰세요.”

- 난 괜찮아. 카드 있지? 그걸로 써.

시골 생활이 여의치 않기에 강우는 그 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그 돈을 직접 쓰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강우는 몇 마디 더 안부를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손강우가 교수로 살던 시절에는 딱히 돈이 궁핍한 적은 없었다. 연구비는 전혀 없었지만 먹고살기에는 풍족했다. 그러나 강우가 된 후로 수중에 돈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 장학금은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어떻게 쓸지는 조금 더 생각해보기로 하고.

기숙사로 올라가려는데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강우야! 걍우야아!”

기숙사 1층에는 휴게실과 식당이 있어서 간편한 음식물 섭취가 가능했다. 그곳에 고곽천재 세 사람이 모여 그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강우야! 얼른 와! 컵라면 먹고 가자!”

윤수아가 컵라면을 흔들며 그를 유혹했다.

강우는 딱히 컵라면을 좋아하진 않았으나 당장 방에 가 봐야 할 일도 없었기에 발길을 돌렸다.

“야밤에 먹는 컵라면이 최고지!”

신이 난 윤수아가 뜨거운 물을 받아 뚜껑을 덮은 후 하나씩 돌렸다. 강우의 앞에도 컵라면 하나가 놓였다.

윤수아와 마찬가지로 최대우도 환하게 웃음을 머금고 컵라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흐뭇한 시간이다.

다만 손차희는 오늘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강우가 눈치를 보고 있자니 윤수아가 손차희를 달랬다.

“차희야, 다음에 잘 치면 되잖아?”

“그게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

손차희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입학시험에서 차석이었고 1차 진단 고사에서도 전교 2등이었던 손차희는 이번 2차 진단 고사에서 전교 5등으로 밀렸고 반에서는 전상철과 동률이었다.

대단히 우수한 성적이었으나 손차희는 굴욕으로 받아들였다.

“그래도 우리 조가 우승했잖아? 넌 과제연구 하느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서 그래. 다음에 잘할 거야.”

윤수아가 계속해서 그녀를 위로했다.

“과제연구 별로 하지도 않았는데…….”

“아냐, 보고서 네가 다 썼잖아? 난 네 덕분에 우승해서 무려 백만 원이나 벌었어. 차희 넌 총 얼마야?”

“4백.”

입학 차석으로 받은 장학금이 3백이었고 과제연구로 받은 돈이 1백이었다.

“그 돈으로 뭘 할 건데?”

“글쎄? 어머니께서 알아서 쓰라던데?”

강우는 그때야 조원 모두가 오늘 받은 장학금 사용처를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축하 파티가 소소한 컵라면이다. 그와 최대우에게는 큰돈이었으나 손차희나 윤수아에게는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강우 넌 뭐할 건데?”

윤수아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생각 안 해봤어.”

지금 강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노트북이다. 과제연구를 하면서 윤수아와 최대우의 노트북이 무척 부러웠다.

실질적으로 지금 노트북이 필요했다. 아직은 살아있을 손강우의 학교 계정에서 과거 그가 연구했던 각종 연구자료를 다운받아놓을 필요가 있었다. 언제 계정이 폐쇄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상온 핵융합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 자료는 실로 중요했다. 다만 1백만 원을 노트북 비용으로 쓰기에는 부족했다. 조금만 더 많았어도 어떻게 해보겠는데…… 학생이라 돈이 생길 구석이 없었다. 저가형 노트북이라도 사야 하나?

머리가 복잡해진 강우는 컵라면 뚜껑을 열고 나무젓가락을 분리했다.

뚝!

젓가락이 엉뚱한 지점에서 부러졌다. 젠장!

재수가 없어 일이 꼬일 모양이다. 강우는 적당히 젓가락을 만들어서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야밤에 모여서 먹는 라면은 과연 색다른 맛이 있었다.

“우리 앞으로도 계속 함께 공부하면 어떨까?”

윤수아의 제안에 최대우가 가장 먼저 찬성했다.

별 관심이 없는 강우는 어떻든 상관없었다.

손차희의 시선이 강우를 향했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복잡해 보였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손차희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세미나룸 예약은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아자, 아자! 끝나고 컵라면도 꼭 먹어야 해!”

윤수아가 의지를 불태웠다.

그렇게 고곽천재 모임은 입학 후에도 계속 이어지게 됐다.

* * *

예고했던 대로 다음 날부터 A동 복도에서는 신입생들의 과제연구 결과가 전시됐다.

과제연구를 완료해서 보고서를 제출한 조는 전체의 절반가량인 16개 조였고 주요 내용을 확대하여 그 보고서를 커다란 판넬에 전시했다.

이 전시에 예상외로 많은 구경꾼이 몰렸다. 신입생들은 자신의 전시물을 확인하고 친구들의 보고서 내용을 살펴보느라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시간이 나면 전시물 앞을 전전했다.

이번 신입생들이 우수하다는 소문을 들은 고학년들이 확인차 전시장을 방문했다.

덕분에 가장 주목받는 과제연구 보고서를 써냈던 고곽천재는 전시장을 떠날 수 없었다.

“정말 직접 관측했어?”

“우와, 이거 엄청 어려운데!”

“좋았겠다. 별을 보다니! 얼마나 낭만적이야!”

친구들이 몰려들어 그들을 부러워했다.

정작 강우는 속으로 푸념을 연발했다.

‘낭만적이라니! 야밤에 얼마나 개고생했는데!’

그들이 수행한 연구를 제대로 이해하는 학생은 없었다. 덕분에 질문도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정작 발등에 불이 떨어져 고생한 쪽은 바로 옆에서 판넬을 전시한 조였다. 바로 고현성네 조에서 수행한 ‘다차방정식의 근의 공식’ 연구였다.

강우에게 수학 선생님이 벼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전전긍긍하고 있던 차에 정작 수학 선생님인 정명욱이 등장하자 고현성은 놀라 기절할 지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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