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36화 (36/325)

제36화 동아리 선택 (2)

강의실로 향하면서 강우는 한설대학교 물리학과 사무실로 전화했다.

- 물리학과입니다.

익숙한 조교의 음성이 전화로 들려왔다. 얼마 전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보던 얼굴이었기에 목소리만 듣고도 눈앞에 그 얼굴이 그려졌다. 갑자기 그리움이 밀려왔다.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만…….”

강우는 어린 티가 나지 않도록 최대한 목소리를 연기하며 말을 꺼냈다.

- 말씀하세요.

“혹시…… 손강우 교수님 연구실 현재도 그대로 있습니까?”

- 무엇 때문에 그러시죠?“

“손강우 교수님 먼 친척인데요…….”

- 아!

전화기 건너편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들렸다.

연구실이 아직 남아 있다면 어떻게든 연구자료를 확보해야 했다. 이번에는 차도도를 데려갈 수 없으니 혼자 다녀와야 할 듯하다. 남아 있기만 하다면 연구를 재개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죄송합니다만 현재 손 교수님 연구실은 정리 후에 다른 교수님께서 사용하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곳에 있던 자료나…… 개인 물품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 아, 그건 연고자가 없어서…… 친구분이신 한국대 마도환 교수님께서 모두 가져가셨습니다. 연구자료와 PC는 마 교수님이 보관하시고, 일반 집기류는 처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도환 교수님요? 그랬군요.”

- 그런데 누구시라고요? 저희가 알기로는 친척분이…….

강우는 전화를 끊었다. 연구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면 다시 연락할 일은 없다.

마도환이라는 말에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그가 왜 연구자료를 가져갔을까. 그 이유를 가늠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마도환도 핵융합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고 항상 그에게 한 발 뒤처졌기에 손강우의 연구자료가 탐났을 것이다. 그 자료만 있으면 연구를 한층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그가 죽은 후 그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겠지. 그의 학교 클라우드 계정을 건드릴 수는 없었고 기껏 친분을 이용해서 연구실을 뒤지는 게 전부였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렵지.”

일부 도움은 되겠지만 자료를 완벽하게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사실을 알기에 강우는 그리 염려하지 않았다. PC에 남은 자료가 마음에 걸리긴 했으나 과연 마도환이 얼마나 알아볼지는 의문이다. 그 자료에도 암호가 걸려 있었으니까.

어쨌든 연구자료 일부를 마도환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전화기를 끄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그를 툭 밀었다.

“브라더! 나다, 나!”

고현성이 평소처럼 거들먹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그냥 한 대 쳐봤다. 전화하고 있길래.”

“싱거운 놈.”

강우는 피식 웃고는 강의실로 걸음을 빨리했다.

고현성이 허겁지겁 따라오면서 물었다.

“마도환 교수가 누구야?”

“응?”

강우는 벼락을 맞은 듯 몸이 굳었다. 손강우, 마도환……. 그의 엄청난 비밀이자 절대 밝혀져서는 안 될 부분이었다.

강우의 반응이 의외였던 듯 고현성이 웃으면서 그의 어깨를 쳤다.

“놀라긴! 벌써 과제연구를 준비하나 본데 1학년은 특별한 경우 아니면 외부 지도교수 선임이 불가능하다는 거 알지? 그건 2학년 R&E부터 허용되거든. 그래서 네가 그 교수와 친해도 어차피 지금은 소용없다 이거야.”

과학고 학생들은 가끔 국내 유수 대학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것을 시스템적으로 허용해둔 제도가 바로 R&E(Research and Education)다. R&E는 과제연구처럼 교내 지도교사와 함께하기도 하고 외부 기관의 교수나 교사와 공동연구를 하기도 한다. 다만 연구 효율을 위해 2학년부터 자격을 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네 녀석이 그렇게 전화로 부탁해봐야 당장에는 쓸데없다는 소리지. 크크.”

아무래도 고현성 이 자식이 오해한 것 같았다. 어차피 상관없긴 했다.

“그래? 난 몰랐어.”

“크크, 그런데 난 이미 최고의 선생님에게 부탁하고 있지. 너도…… 커윽!”

반대로 고현성의 어깨를 강하게 쳐서 갚아준 강우는 강의실로 홱 들어갔다.

얼이 빠진 고현성이 복도에서 길길이 날뛰었다.

“이 자식이! 가르쳐줘도 지랄이야!”

* * *

지금은 생물 시간.

강우는 맨 뒷자리에 앉아 길게 하품을 내쉬었다. 그의 바로 앞에는 거구의 최대우가 앉아 있어서 완벽하게 시선을 차단했다.

마침 생물 선생님은 교탁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고 가르치는 스타일이라 더없이 안전했다.

“……그래서 생물이란 무엇이냐? 바로 생명현상의 여섯 가지 특징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모호한 녀석이 있지. 바로 바이러스란 놈이다.”

생물 교과서 가장 앞 단원을 열심히 설명하던 박종수는 주목하는 학생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과학고 학생들의 학구열은 대단했다. 특히 최근에 바이러스에 사회적인 관심이 증폭되면서 설명을 조금도 놓치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태도가 마음을 뿌듯하게 했다.

“바이러스가 생물이냐 아니냐는 논란이 많지만 우리는 생물이 아니라고 간주한다. 바이러스는 세포가 아닌 단백질 결정체다. 일반 생명체는 핵산인 DNA, RNA를 둘 다 갖고 있으나 바이러스는 하나만 갖고 있어. 천연두 바이러스는 DNA, 에이즈나 독감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다. 그럼 유명한 COVID-19, 코로나 바이러스는?”

박종수의 시선이 학생들을 쭉 훑었다.

“RNA 바이러스입니다.”

가장 앞에 앉은 예쁘장하게 생긴 여학생이 대답했다. 박종수는 이 여학생이 누군지 안다. 차석으로 입학한 손차희란 학생인데 수업 태도를 보면 역시 다르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그렇지! 정답이다. 국내 연구 역사도 활발하다. 세계 3대 전염병으로 에이즈, 말라리아, 유행성 출혈열, 이 세 가지를 꼽는데 유행성 출혈열을 일으키는 한탄 바이러스는 우리나라에서 병원체 발견, 진단, 백신 개발까지 3단계를 모두 완료했다.”

“우와!”

“서울 바이러스라고 들어봤나? 한탄 바이러스 사촌으로 서울 집쥐의 폐에서 발견된…….”

설명을 계속하던 박종수는 다시 학생들을 쭉 둘러봤다. 그의 눈에 뒤에 앉은 우람한 학생이 눈에 띄었다. 흥미 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앉은 녀석을 보니 조금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누구인지 자세히 살폈다. 당연히 아직은 학생들 이름을 외우지 못했다. 그런데 녀석을 살피는 순간 뒤에 또 한 녀석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거구의 녀석이 뒤에 앉은 학생을 완벽하게 방어해주고 있었다. 그가 그 학생을 볼 수 없으니 그 학생 또한 그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감히 내 수업 시간에…….’

적어도 과학고에는 수학과 과학에 흥미가 있어 열심히 공부할 학생만이 들어와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박종수에게 수업 시간에 자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특히 재미가 가득한 그의 수업 시간에는.

“너!”

박종수의 손이 최대우를 가리켰다.

“네?”

반쯤 졸고 있던 최대우가 깜짝 놀라 허리를 세웠다.

“너 말고, 너 뒤에!”

여전히 조용했다.

“이 자식이! 자는구나!”

옆 학생이 강우를 깨웠다.

“흐응, 왜애애?”

“이 자식아! 안 일어나?”

손을 저어 옆 학생을 나무라던 강우는 호통 소리에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학생들의 웃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강우는 교탁 앞을 바라봤다. 안면이 울긋불긋해진 선생님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허억!”

“너! 서울 바이러스가 뭐야?”

서울 바이러스? 강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서울에는 바이러스 사촌이라 할 나쁜 녀석들이 많이 있다. 이를테면 마도환 같은 놈이다.

“나쁜 놈입니다.”

“뭐라고?”

“도둑, 강도, 사기꾼…….”

“뭔 소리야? 이 바이러스 같은 녀석아!”

아니! 그렇게 심한 말을……. 강우는 뚱한 표정으로 박종수를 노려봤다.

이것을 반항의 눈빛으로 읽은 박종수가 버럭 소리쳤다.

“너! 이름이 뭐야?”

“가, 강웁니다.”

“강우?”

어디에선가 들어본 듯하여 박종수가 머리를 굴렸다.

교무실에서 몇 차례 들었던 이름 같은데……. 아니 진단 고사 성적표에서 봤었나?

한참 고심하던 박종수가 다시 물었다.

“너! 2차 진단 고사에서 생물 몇 점이야?”

“시, 십팔점요.”

“아! 생각났다! 점수 그 자체가 욕인 녀석! 네 녀석이 이번에 생물에서 전교 꼴찌를 한 녀석이구나!”

화학은 그나마 뒤에 외국에서 온 세 학생이라도 있었으나 생물은 말 그대로 끝이었다. 성적이 끝인 데다 수업 시간에 자다가 걸렸으니 강우는 변명할 말이 없었다.

학생들의 폭소가 이어졌다.

강우를 유심히 쳐다보던 박종수가 마침 생각난 듯 최대우를 가리켰다.

“학생은 이름이 뭐지?”

“최대우요.”

“아하! 생각났군! 네 녀석은 꼴찌 앞잡이! 123등이야! 그렇게 둘이 딱 붙어 앉아 있으니…… 옛말에 유유상종이라고, 틀린 말이 하나도 없네.”

본의 아니게 성적이 공개되어 버린 최대우도 머리를 긁적였다.

박종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고곽에 들어왔으면 자부심을 느껴야지, 수업 태도가 그게 뭐냐? 이 학교에 들어오려고 얼마나 많은 학생이 잠을 설치는 줄 알아?”

일장연설이 쭉 이어졌다.

“여러분을 학원에 보내느라 부모님께서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생각해야지. 잠을 자면 어떡하나?”

“저흰…… 학원 안 다녔는데요?”

최대우가 머리를 긁으며 반박했다.

얼굴이 일그러진 박종수가 다시 버럭 소리 질렀다.

“하여튼! 학생이라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학교에서 잠만 자면 쓰나? 앞으로 내 수업 시간에 자는 놈은 뒈진다! 앞에 앉은 학생을 봐! 얼마나 열심히 하나! 그런데 너희들은 뒤에서 잠을 자?”

이후에도 다소 과격한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앞에 앉는 바람에 대표적으로 착한 학생이라고 지목받은 손차희와 윤수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조인 강우와 최대우가 혼나고 있으니 그녀들이라고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그러고 보니 생물 선생님 이야기를 선배들에게서 들은 것 같기도 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유별나게 차별한다고 알려진 선생님이다.

사실 과학고 학생이 공부를 등한시해 봐야 얼마나 하겠냐만 이 선생님은 공부 못하는 학생을 인간 이하로 취급한다던가.

강우는 특히 생물을 못하니 앞으로 고생문이 훤히 열렸다.

학생들의 눈총을 아랑곳하지 않고 박종수는 두 학생을 들들 볶다가 수업을 끝냈다.

정작 강우는 최대우에게 눈총을 보냈다.

‘대우야, 너…… 살 좀 더 찌워야겠다.’

* * *

일학년 교무실에서 교무회의가 열렸다.

오늘의 토의 주제는 과제연구 지도교사 선정. 과제연구는 학기별로 진행하기에 이번에 선정하면 1학기 말까지 계속된다. 과제연구 시간은 수요일 오후로 잡혀 있었다.

예년의 경우를 보면 학생 절반은 수업 목적에 부합하여 관심 분야 연구를 수행하고 절반은 과제연구는 뒷전이고 개인 공부에 몰두하기도 한다.

과학고라지만 고등학생이 수행할 수 있는 주제는 한정되어 있고 연구 역량도 부족하여 큰 성과를 거두기 어렵지만 훗날 연구자로 성장할 토대를 닦는다는 측면에서 이 과목은 대단히 중요했다.

과제연구의 시작이자 끝은 연구주제 선정이다. 특히 신입생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주제를 욕심내다가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잦았기에 담당 지도교사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래서 예년처럼 학생들과 짝을 이뤄 과제연구를 수행해주시기 바랍니다. 학생들이 두 명에서 네 명까지 팀을 구성하기를 권장하지만, 독자적인 수행도 가능합니다. 적어도 한 선생님당 서너 팀을 맡아주셔야 합니다. 예년의 경우를 보면 첫 과제연구 지도교사가 졸업할 때까지 쭉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주임 선생인 김윤택의 당부가 이어졌다.

해마다 같은 형식이었고 올해도 다르지 않아 선생님들은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수학 선생인 정명욱이 물었다.

“수석인 이민찬 군은 주임 선생님께서 데려가실 거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