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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41화 (41/325)

제41화 주제 선정 (1)

- 강우 : 화학 2단원 공부. 해당 단원 참고서 문제 풀다가 던짐.

- 신새벽 쌤 : 왜? 설마 휴지통에 던지진 않았겠지?

- 강우 : 몽땅 틀려서요.

- 신새벽 쌤 : ㅋㅋㅋ좌절하지 말고 열심히 해. 힘내(이모티콘)!

- 강우 : 쌤도 힘내세요.

- 신새벽 쌤 : 그래, 내가 너 때문에 웃는다. 웃음(이모티콘).

신새벽에게 공부한 내용을 보고하면서 강우는 피식 웃었다. 어쨌든 보고하면 반응이 째깍째깍 날아오는 편이었다. 매일 톡을 보내려니 귀찮기만 했는데 이게 은근히 습관을 잡아주는 것 같도 했다.

“신새벽 선생님은 친구도 없나? 내 톡만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강우가 투덜대면서 톡 내용을 보여줬다.

최대우는 눈이 동그래졌고 윤수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 대우 넌 안 보내?”

“나? 안 보내도 야단 안 치던데? 안 보낸 지 며칠 됐어.”

“드디어 마녀의 족쇄에서 풀려났구나!”

“난 족쇄를 채워줬으면 좋겠는데…….”

“왜?”

“예쁘잖아.”

윤수아가 더욱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최대우를 쿡 쥐어박았다.

어쨌든 최대우가 벗어났다니 강우도 이 귀찮음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본 셈이었다.

아직도 숙제가 남았다. 이번에는 차도도에게 톡을 넣었다.

- 강우 : 오늘 물리 공부는 쨈.

- 차도도 쌤 : 벌써 농땡이 피우는 거니?

- 강우 : 신 쌤한테 볶여서요.

이럴 때는 신새벽 핑계를 댔다. 어차피 그는 물리 공부를 대충 해도 됐다. 반면 화학은 꽤 신경 써야 한다. 중간고사에서 전 과목을 모두 신경 쓰기로 했으니 차도도와의 내기에서 이기려면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것이 유리하다.

- 차도도 쌤 : 신 쌤이 열심인가 보네. 너도 열심히 하니 좋잖아?

- 강우 : 노트북 고마워요.

- 차도도 쌤 : 게임은 하지 말고. 나중에 불시에 노트북 검사할 거야.

- 강우 : 알았어요. 제 노트북은 청정지역이죠.

- 차도도 쌤 : 파이팅(이모티콘)!

강우는 오늘의 숙제를 마무리했다. 매일 두 선생님에게 톡을 보내다 보니 어린애가 된 기분이었다.

다시 화학책을 편 강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왠지 모르게 내용이 머리 밖에서 맴돌았다. 역시 교과서의 제한된 설명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럴 때는 다른 참고서가 필요했다.

그는 손차희를 보았다. 마침 손차희도 화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녀가 보는 책은 대학교재 일반화학. 요즘 배우는 내용을 일반화학책으로 심화 학습하는 중이었다.

그가 물끄러미 바라보며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자니 손차희가 말을 걸어왔다.

“강우?”

“그 책 잠시 볼 수 있어?”

“이거? 옥스토비라고…… 대학교 수업용인데?”

“상관없어. 그게 필요한 거니까.”

“넌…… 화학은 별로잖아?”

손차희의 안면이 조금 찌푸려졌다.

과학고에는 이런 유형의 교재로 공부하는 학생이 많았다. 중학교 때 고교과정을 모두 끝내고 입학한 학생들은 교과서보다 대학교 교재를 선호하기도 했다. 대학교재가 더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낫다는 평도 있으니까 이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고등학교 과정을 제대로 끝내지 못했음에도 뒤처지고 싶지 않아서 옆의 친구를 따라 대학교재를 보는 학생들도 더러 있었다.

이 경우 오히려 수업을 따라가기 더 힘들어지기도 했다.

당연히 강우는 손차희의 염려를 짐작하고 있었다.

2차 진단고사에서 꼴찌로 밝혀진 그의 화학 실력에 어려운 대학교재를 요구하니 걱정이 된 것이다. 그 마음은 고맙지만 그는 이미 계획이 서 있었다.

한숨을 연발하던 손차희는 그에게 책을 넘기며 충고를 남겼다.

“달라니까 주긴 하지만…… 권하진 않아. 조금 더 기초를 쌓고 나서 봐야 하거든.”

“걱정해줘서 고마워. 오늘 끝날 때까지만 볼게.”

고마움을 표시한 강우는 앞부분부터 읽기 시작했다.

역시 그의 생각이 옳았다. 교과서는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체계적이지 못했다. 고등학교 수준에서 딱 필요한 내용만 다루기에 근본적인 의문을 풀어주진 않는다. 하지만 대학교재는 화학의 기초를 잡아준다는 점에서 그 용도가 달랐다.

이미 한 분야에서 완벽한 연구자의 반열에 올라선 강우에게는 타 분야에서도 대학교재가 훨씬 편했다.

강우는 집중해서 책장을 넘겼다.

손차희의 미간이 확 찌푸려지고 이마에도 주름이 잡혔다. 강우가 공부를 하는 건지 책장 넘기기 시합을 하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아서다.

‘그래도 화학은 물리와 달라.’

손차희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정작 강우는 점점 화학 교재에 몰입했다.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갈수록 빨라졌다.

손차희는 학원에서 준 문제집을 꺼내어 문제를 풀기 시작한 후에도 강우가 신경 쓰여 시선을 떼지 못했다.

두 사람의 신경전을 눈치챈 듯 윤수아와 최대우의 시선도 강우에게로 모였다. 보다 못한 윤수아가 한 소리 했다.

“강우야? 그렇게 빨리 넘기면 머리에 들어와?”

“필요 없는 부분을 떼 내고 보고 있는 건데…….”

“책은 처음부터 차근차근 봐야 하는 거야.”

“난 그렇게 본 적이 없어서…….”

강우가 빨리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이유는 초반부에 쓸데없는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또 이 책에서 고교과정과 겹치면서 기초에 해당하는 부분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지금 그는 이 두꺼운 대학교재를 완독하겠다고 들고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물론 그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은 연신 고개만 갸웃거렸다.

점차 호기심 어린 시선이 거두어지고 각자 공부 세상으로 빠져들었다. 세미나실에는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 * *

한참 후에 손차희는 문제집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아아, 또 세 개나 틀렸어.”

“세 개 가지고 엄살은.”

윤수아의 눈에서 부러움이 뿜어졌다.

“차희야, 괜찮은 문제 있지? 한번 줘 볼래?”

어느새 책을 물리면서 강우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거?”

“아무거나.”

손차희는 학원에서 준 화학 문제지를 꺼냈다. 강우는 참고서 문제도 제대로 못 풀었으니 어려운 학원 문제지는 어림없으리란 생각에서였다.

강우의 나쁜 공부 버릇을 고쳐주려면 어려운 문제로 기를 죽여놓는 게 좋다. 멋 낸답시고 대학교재를 보지 말고 고교 참고서로 공부하라고. 대학교재는 어차피 3학년 때 수업 시간에 다루게 되니까. 이번 기회에 그 점을 확실하게 알려주어야 했다.

“여기. 조금 어렵겠지만 풀어봐.”

문제지를 넘겨받은 강우가 집중해서 몰두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강우가 답안지를 그녀에게 넘겼다.

“다 풀었는데 채점해줄래?”

손차희는 두말하지 않고 채점하기 시작했다. 강우의 점수는 그녀가 더 궁금했다.

채점을 끝낸 손차희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떨림을 멈추려고 해도 도무지 진정할 수가 없다.

“어떻게 됐어?”

윤수아가 답안지를 채어가서 훑었다. 그녀의 안면 역시 웃음기가 사라지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답안지를 받아든 강우는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별거 없던데?”

윤수아가 강우에게 매달렸다.

“강우야, 어떻게 다 맞췄어?”

“그냥…… 내용이 책에 다 있더라?”

“그럴 리가…….”

손차희와 윤수아는 강우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책에 나온 내용을 비틀어서 꼬아놓은 문제들이다. 절대 쉽지 않았고 심지어 배웠는지 알 수 없는 문제도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맞춘 걸까.

손차희는 궁금증이 폭발할 지경이었으나 자존심이 상해서 차마 물을 수 없었다.

오늘로 확실해진 것도 있다.

‘강우가 천재였어…….’

그녀는 지금까지 여러 천재를 보아왔다. 입학 수석인 이민찬이나 2년이나 일찍 입학한 권유성이나. 하지만 그 학생들과 경쟁하면서도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 학생들은 그녀가 조금 더 열심히 하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강우는 달랐다. 아직도 강우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강우의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손차희는 주먹을 거머쥐고 숨을 골랐다. 지난 수학 공부 때 강우의 능력을 확인하고서도 아래라고 내려다봤었는데 아니었다.

화학만은 자신이 우위라고 여겼는데 그게 무너진 지금 어떤 과목에서 강우를 이겨야 할지 막막했다.

인생에서 공부가 가장 쉬웠다던 어떤 사람이 떠오르기도 하고.

‘공부가 그렇게 쉬울 리가 없어.’

몇 년 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그녀다.

중간고사는 고등학교 진학 후 첫 시험이다. 차석으로 입학한 그녀의 명예를 절대 망칠 수 없다. 밤잠을 자지 않고 공부해서 현재의 자리를 사수해야 했다. 아니 더 올라야 한다. 이번 시험에서는 강우뿐 아니라 이민찬까지 반드시 눌러야 했기 때문이다. 첫 시험이기에 더 중요하다.

손차희는 투쟁심을 불태웠다. 지금까지 더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했었고 대부분 그녀는 이기는 게임을 해왔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그녀는 지지 않을 것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손차희는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다짐했다.

* * *

자습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은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잠자던 학교가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가로등이 드리워진 어둑어둑한 길을 지나 저 멀리 기숙사가 보였다. 항상 이 시간에 이 길을 걸으며 하루를 돌아보곤 한다.

강우는 고곽천재 동료와 나란히 걸었다.

하늘 높이 뜬 달이 그들의 앞길을 밝혔다. 고즈넉한 분위기였다.

갑자기 말이 사라진 손차희 때문일까. 분위기가 어색했다. 물론 강우는 그것이 자신 때문이란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있나. 윤수아가 평소처럼 식탐을 일으켰다.

“컵라면?”

“조오치!”

최대우가 바로 환영을 표했고 손차희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강우는 당연히 따라올 거고…….”

자신이 그런 캐릭터였는지 이해 못 하면서도 강우는 물론 반대하지 않았다.

윤수아가 손차희에게 다시 물었다.

“난 안 먹을래. 자기 전에 먹으면 살찐다니까.”

웬일로 손차희가 윤수아의 제안을 거절했다. 오늘은 윤수아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럼 먼저 들어가. 난 먹고 갈 거니까.”

그렇게 손차희가 먼저 떨어졌다.

식당에서 컵라면 물을 받으면서 최대우가 의문을 표했다.

“차희 기분이 별로네? 게임이 잘 안 되나?”

“뭐가? 평소랑 똑같지 않았나.”

“둔한 나도 알겠던데……. 수아 네가 더 모른다고?”

“너, 죽을래?”

윤수아가 타박하며 컵라면을 들고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으로 달이 보였다.

야밤에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을 맞으며 야식을 먹으니 기분이 그럭저럭 괜찮았다.

“강우야, 우리 과제연구는 뭐로 하지?”

“김선호 선생님께 신청했는데 아직 답이 없어.”

“주제가 뭔데?”

“달. 그날 천문대에서 달을 보니까 신기하더라.”

그날 망원경으로 관측한 달의 표면이 눈앞에 다시 떠올랐다. 창밖으로 보이는 달은 깨끗하고 환한 모습이지만 망원경에서는 엄청 복잡하고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 달을 보고 있자니 자연의 신비와 우주의 법칙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었다.

“달을 어떻게 하려고?”

“그때 달 표면에서 산을 봤어. 그 산 높이를 측정하고 싶은데.”

강우는 새로운 제안을 내놨다.

“그게 가능해?”

“그리 어렵지 않아. 대낮에 운동장에 서 있는 사람의 그림자를 생각해봐. 그림자 길이를 재면 키를 추정할 수 있지.”

이때 태양의 고도를 알면 단순한 직각삼각형 문제가 된다. 직각삼각형에서 직각이 아닌 한 각의 크기와 한 선분의 길이를 알면 남은 각과 선분이 정해진다.

지구에서 달에 있는 산의 높이를 측정한다니! 세 사람이 기대감에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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