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43화 (43/325)

제43화 주제 선정 (3)

“어?”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강우는 한번 쓱 보는 것만으로 이 문제를 풀어버렸다.

어떻게 풀었는지 그림만으로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니 어떻게 저런 발상이 가능한지 알 수 없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강우가 적은 숫자가 정답이었기에 차도도는 일순간 머리가 굳었다. 그녀조차 강우가 어떻게 풀었는지 짐작이 쉽지 않았다.

학생들의 의문을 차도도가 대표로 질문했다.

“그림의 뜻이 뭐지?”

“힘을 분해한 다음 서로 상쇄되는 힘을 제거한 건데요.”

강우는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런 문제는 일견 복잡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단지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문제일 뿐이다.

“힘과 운동을 배울 때 서로 상쇄되는 힘은 제거하고 같은 방향은 합하고…….”

강우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논했다.

“그럼 본인이 줄을 당겨 움직이는 것은…….”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잖아요. 어차피 같은 힘이니까.”

그제야 차도도도 이해했다. 강우가 푼 방식은 그녀가 알던 방법과 달랐다. 작년에 이 문제를 김윤택이 냈었고 정답지에는 이보다 훨씬 복잡한 풀이법이 제시되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그 풀이법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손쉬운 방법이 있었다니. 이 방법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었다니. 교과서에 나오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사용해서 쉽게 풀다니.

차도도는 다시 강우의 그림을 주의 깊게 살폈다. 역시 틀린 부분은 없었다.

‘이 학생은…… 보면 볼수록 놀라워.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

이것은 거창한 물리 이론이 아니다. 단순히 물체에 작용하는 힘을 계산하는 문제다. 하지만 이런 발상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천재다.

그녀가 보기에 강우는 천재가 확실했다. 그녀는 작년에 천재라는 박일현과 권유성을 가르쳐 보았었고 올해는 차석인 손차희를 눈여겨봤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강우만큼 그녀에게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녀는 선생님이기에, 학생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기에 가슴이 뛰었다. 교직에 투신한 지 이 년째였지만 강우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던 유형이었다. 그런 학생을 자신이 지도한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다.

“그럼 이렇게 푼 거네?”

차도도가 강우의 생각을 세밀하게 파헤쳐서 학생들에게 설명했다.

서서히 학생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이곳에 있는 학생들은 뛰어나다. 그렇기에 이런 발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를 수 없었다.

“우와! 그렇게 간단한 문제였다니!”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감탄 속에서 손차희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어째 그녀의 생각보다 강우가 점점 대단한 학생이라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자신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그런 천재일까.

노력해도 따라잡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막막함이 밀려왔다. 하필 그게 같은 반, 같은 조인 강우라니.

그렇다면 강우의 공부 방식이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그녀라면 저 문제가 풀리지 않았을 때 대학교재를 뒤지면서 유사한 문제를 찾았을 것이다. 그런데 강우는 저 문제에서 기본 개념을 놓치지 않았는지부터 검토했다.

그녀가 선행을 통해 어설프게 지식을 쌓아왔었기에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차이였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녀 방식도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수능 때까지는 가장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강우는…… 완전히 달랐다.

강우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차도도에게 꾸벅 인사한 후 자리로 돌아왔다.

옆에서 최대우가 귓속말로 물었다.

“저런 거 어떻게 생각해냈어?”

“그냥 떠오르던데?”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강우의 이맛살이 살짝 주름졌다.

물리 이론에 해박하다고 생각해낼 수 있는 풀이법은 아니다. 예전이라면 강우도 쉽게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강우는 저 문제를 보는 순간 바로 문제의 핵심을 뚫어보았다. 문제의 곁가지를 쳐내자 답이 보였다.

확실히 강우로 새 인생을 살면서 바뀌었다. 물리 지식이 높아졌다기보다 전반적인 이해력, 응용력 등이 확실히 증가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쁜 일은 아니다. 천재여서 손해 볼 일은 없으니까.

차도도가 어수선한 강의실을 통제하고 말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굳이 어려운 교재로 머리 싸매지 않아도 돼요. 나중에 대학교재는 다시 접할 일이 있으니까요. 시험 대비로 그런 교재를 쓴다고 더 유리하지 않아요. 알겠죠?”

어떻게든 차도도는 결론을 내렸다.

* * *

매주 수요일 오후는 과제연구 시간이다. 지도교사를 정한 학생들은 해당 지도교사와 과제연구를 수행한다.

이 시간에 절반 정도의 학생은 열심히 연구를 수행하고 나머지 절반은 과제연구를 제쳐놓고 중간고사 공부를 한다.

김선호 선생님에게 지도받는 학생들은 모두 천문대에 모였다.

B동 옥상의 천문대 옆에 붙은 강의실에서 강우는 최대우, 윤수아와 함께 머리를 싸맸다.

이곳에 올 때마다 강우는 최대우의 표정이 유난히 밝아진다고 느꼈다. 특히 물리를 제외한 다른 수업 시간과는 차이가 확연하다. 이곳에서 최대우는 세상을 모두 가진 듯 해맑아지니까.

“가장 좋은 지역은 코페르니쿠스야.”

최대우가 달 지도를 펴놓고 한 부분을 가리켰다.

달 표면에는 역사상 유명한 천문학자나 지역 이름이 곳곳에 붙어 있는데 코페르니쿠스라는 이름이 붙은 크레이터도 있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처음으로 지동설을 주장한 과학자다. 엄밀히 따지면 과학자라기보다 성직자이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보면 성직자가 바로 과학자이자 철학자였다.

코페르니쿠스는 과거의 관념을 과감히 깨트렸기에 존경을 받고 있다. 그만큼 새로운 사상을 떠올리는 일이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지역은 주변 평원에 비해서 눈에 잘 띄고 달 중심에서 멀지 않아 반달이 지난 직후에 가장 잘 보이거든.”

반달이 하늘 높이 뜨면 저녁 시간이다. 학생인 그들은 이 시간대만이 관측할 수 있다. 최대우가 제안한 몇 지역 가운데 시간대 면에서 가장 유리했다.

“코페르니쿠스 크레이터 중앙에는 거대한 산이 있어. 그래서 기본적인 시험 테스트를 하기에도 적합해.”

복잡한 달 지형 중에서도 특징이 두드러지는 지형이기에 수행 과제의 이론적인 방법을 점검할 수 있다. 강우도 최대우의 제안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역시 기본적인 천문학 지식이 있으면 이런 세세한 부분에서 결정이 빠르다.

“그럼 난 계산 수식을 프로그래밍할게. 먼저 해당 시각의 지구, 달, 태양의 위치를 정확하게 입력해서 그 시각 달에서의 태양 고도를 계산한 다음…….”

윤수아도 과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사실 지난번에 수행한 과제연구를 완벽하게 이해한 사람은 강우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강우의 지시에 수동적으로 끌려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달랐다. 두 사람이 내용을 파악하고 있기에 강우의 할 일이 확 줄어들었다. 오히려 할 일이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그들이 머리 모아 회의하고 있을 때 한 학생이 어슬렁거리면서 나타났다.

“오올! 강우! 열심인데?”

강우는 눈을 찌푸리며 바로 외면했다. 이곳에서 이런 식으로 시비를 걸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다.

“유성이 왔구나?”

윤수아가 부드러운 웃음으로 반겼다.

권유성이 터벅터벅 걸어와서 윤수아 옆에 턱 앉았다. 눈에 거슬렸으나 강우는 애써 무시했다.

“누나, 뭐해? 이거 과제연구야?”

책상에 펼쳐진 달 지도를 확인한 권유성이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했다.

자신도 망원경으로 달을 자주 관측했고 달 지형에 익숙하다는 자랑이었다. 나아가 달 사진을 어떻게 찍는지 천문대 망원경의 성능이 좋아 달 표면에서 꽤 작은 크레이터까지 볼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최대우와 윤수아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고 있었으나 강우는 중간에 말을 잘랐다.

“넌 과제연구 안 해? 그러고도 이길 수 있어?”

강우와 권유성은 과제연구로 내기를 했다. 두 사람의 지도교사가 김선호이기에 이 시간에 천문대에 함께 모일 수 있었다.

지금 천문대 내부와 옆의 강의실에는 천문 쪽으로 연구주제를 잡은 1, 2학년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들은 팀별로 흩어져서 고민하다가 수시로 지도교사의 지도를 받았다. 물론 일부는 한쪽 구석에서 물리나 지구과학 중간고사를 준비하기도 했다.

“크크, 난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거든.”

“누구랑 하는데?”

윤수아의 질문에 권유성이 두 사람을 호명했다. 물론 강우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권유성도 셋이서 합동연구를 준비한 모양이다.

“주제가 뭐야?”

윤수아의 질문이 이어졌다.

권유성이 주저하면서 말을 아꼈다.

“왜 말을 안 해? 강우 때문에? 이미 결정한 거 아냐?”

윤수아가 눈을 부릅뜨자 권유성이 헤헤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팀은 태양의 위치를 조사하고 있어.”

흥미가 동한 최대우가 바로 끼어들었다.

“어? 태양의 위치? 천구에서 태양이 움직이는 길, 황도는 아닐 테고…… 뭐지?”

“비밀이야.”

권유성의 대답에 최대우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닦달했다.

그게 무슨 비밀이라고. 강우는 피식 웃으며 월면 지도로 시선을 옮기다가 얼마 전 점심시간에 봤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때 천문대 옥상에서 선배들이 태양을 찍는다고 북적거리고 있었는데? 대낮에 태양을 찍는 일이 평범하지 않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만일 그 장면이 권유성의 과제연구와 관련 있다면…….

강우는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렸다.

“무한대 그림 그리나 보네.”

“헉!”

“메타 말이야.”

놀란 토끼처럼 눈을 크게 뜨고 권유성이 강우를 노려봤다.

“일 년 동안 준비했나 보지? 고생 많이 했겠네.”

권유성이 얼어붙은 얼굴로 안색이 빨개져서 입을 열지 못했다.

“강우야! 뭔데? 나도 알려줘.”

최대우가 강우를 마구 흔들었다.

시달리다 못한 강우가 설명을 시작했다.

매일 정오가 되면 태양은 남쪽 하늘에 위치한다. 하지만 항상 같은 위치는 아니다. 여름철에는 태양이 높게 떠서 하늘 높은 곳을, 겨울이 되면 태양이 낮게 떠서 낮은 곳에 자리 잡는다.

태양이 하늘을 하루에 한 바퀴씩 도는 이유는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이다. 지구 자전 속도는 일정하지만, 지구의 공전 궤도는 원이 아닌 타원이기에 지구에서 보는 태양은 정확히 24시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즉 어떨 때는 빨리 돌아오고 어떨 때는 늦어진다.

그래서 매일 정오에 확인한 태양의 위치는 일 년 내내 달라진다. 권유성 팀은 일 년 동안 정오에 천문대를 배경으로 태양을 찍었다. 이 사진을 지상에 고정된 물체, 즉 천문대를 기준으로 합성하면 태양 위치 변화가 나타난다.

이때의 태양 위치 궤적은 하늘에서 꽤 거대한 무한대(∞) 모양을 그린다.

강우의 설명을 들은 윤수아의 놀라움은 매우 컸다.

“설마 일 년 동안 매일 태양을 추적했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고생했네.”

권유성이 자신 있게 강우와 내기한 이유가 밝혀졌다. 작년 봄부터 기록을 시작하여 올봄이 지나면 기록이 완성된다. 이 기록 분석이 과제연구 주제였다.

대단한 이론이 바탕이 된 현상은 아니지만, 무려 일 년간 꾸준히 수행해야 하는 정성과 흥미도를 따지면 고등학생에게 대단한 연구주제다.

“생각보다 엄청난 주제잖아? 강우가 지겠네.”

윤수아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권유성의 주제가 나쁘지 않았다. 무리하게 이론적으로 파고들지 않고 고등학생에게 적합한 주제를 골랐다. 어려운 내용을 골라 인터넷에서 뜻도 모르는 해답을 짜깁기하는 것보다 월등히 낫다.

강우는 권유성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좋긴 한데…… 우리를 이기긴 어려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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