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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48화 (48/325)

제48화 중간고사 (1)

강우가 치킨을 뜯고 콜라를 마시는 동안 손차희도 치킨을 먹었다.

물론 다른 학생들처럼 치킨에 열중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치킨을 먹으면서도 눈으로 열심히 학원에서 준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차희는 정말 열심히 해. 본받아야지.”

강우는 손차희의 열성에 감탄했다. 시험일이 가까워질수록 더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였으니까.

“차희는 예전부터 열심히 했어. 내 주변에서 차희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니까.”

윤수아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설명했다.

강우도 대충 이해했다. 차희는 이 학교에 차석으로 입학했고 중학교에서는 전교 일등을 놓친 적이 거의 없다고 들었으니까. 그녀의 유일한 경쟁자는 학원에서 만난 이민찬이었다고 했던가.

저렇게 열심히 하니 당연한 결과다. 머리가 좋은 데 노력마저 뒷받침되니 못 하려야 못할 수가 없다.

“그래도 치킨을 앞에 두고 공부하는 건 반칙이야!”

윤수아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투덜댔고 손차희를 제외한 강우와 최대우는 윤수아에게 동의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손차희는 치킨을 먹으면서 눈으로는 열심히 문제를 풀었다.

자연스럽게 강우의 시선도 그 문제집으로 향했다. 학원에서 시험 대비용으로 준 문제집이었다.

고려 과학고에서는 중간고사를 나흘에 걸쳐 치렀다. 첫날은 수학, 둘째 날은 과학, 셋째 날은 국어와 영어, 넷째 날은 나머지 과목이다.

가장 힘든 날은 둘째 날이다. 무려 물리부터 지구과학까지 네 과목을 쳐야 하니까. 둘째 날이 지나가면 마치 시험이 끝난 것처럼 해방감을 느낀다고 할 정도다.

하지만 신입생들에게는 내일 첫 시험이 가장 힘들다. 과목도 가장 중요한 수학이고 입학 후 첫 시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식당에서 배달 음식을 먹고 있는 학생들의 분위기는 어딘지 모르게 무거웠다.

문제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샤프를 놀리다가 일순간 멈춘 손차희가 안면을 확 찌푸렸다. 그녀의 시선이 문제집을 떠나지 않았다.

잠시 그 모습을 관찰하던 강우 또한 안색이 어두워졌다.

손차희가 헤매고 있는 문제는 삼각함수 문제였다. 과학고의 수학 진도는 일반고에 비해 두 배 이상 빠르고 순서도 달라서 삼각함수도 이번 중간고사의 범위에 속했다.

문제집에 실린 문제가 삼각함수란 탈을 쓴 변형 문제임을 강우는 바로 눈치챘다. 그렇다고 쓸모없는 문제는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꽤 유명한 문제이니까. 다만 고교과정을 살짝 벗어나는 수준이었다.

“사이클로이드와 현수선 문제…….”

강우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원이 직선 위를 구를 때 원 위의 한점이 그리는 곡선을 사이클로이드라고 한다. 또 양 끝부분을 매단 줄이 중력에 의해 처진 곡선을 현수선이라고 한다.

사이클로이드는 삼각함수로 표현되고 현수선은 쌍곡코사인함수로 표현된다. 다만 쌍곡코사인함수는 삼각함수와 대단히 유사하지만 약간 차이가 있고 대학교 과정에서 다루는 함수다.

강우가 기분이 나빠진 이유는 고교과정을 벗어난 함수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가 판단할 때 이런 유형의 문제가 시험에 출제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비록 고교 수학을 모두 끝낸 손차희일지라도 이 문제는 당연히 풀기 어렵다. 그런 문제를 풀겠다고 기를 쓰며 노려보고 있으니, 그것도 시험 바로 전날 고생하고 있으니 강우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강우의 중얼거림을 들은 듯 손차희가 시선을 들고 강우를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절로 움찔한 강우는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강우야! 이 문제 알아?”

“응?”

“이거…… 아냐고!”

따지듯 묻는 손차희에게 강우도 거짓을 말할 수는 없었다.

“응, 알긴 알아. 하지만…… 그거 교과 과정 밖이라 안 나와.”

“우리 학교 시험 문제는 어렵기로 유명하잖아? 나올 수도 있지.”

시험 문제에 나올지도 모른다며 질책하는 표정이었다.

강우는 입을 다물었다. 시험 전날에 싸울 수도 없고. 나오지 않을 문제를, 이해하지도 못하는 문제를 붙들고 끙끙거리면 오히려 자신감만 하락할 뿐이었다.

그는 이 문제가 손차희에게 절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손차희의 태도는 그와 달랐다.

“얼른 풀어봐. 나도 배우게.”

강우는 손차희의 미묘한 표정을 꿰뚫어 보았다. 풀이과정이 궁금해서,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서 묻는 눈빛이 아니었다. 단지 그가 정말 아는지 그게 궁금한 눈빛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강우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상대가 원한다면 해줄 생각이다. 다만 이렇게 가르쳐주는 것이 당장 내일 시험을 쳐야 하는 손차희를 오히려 힘들게 할 수도 있었다.

강우는 먹던 치킨을 내려놓고 손을 쓱쓱 닦은 다음 샤프를 들었다.

“이거…… 수학 문제라기보다 오래된 물리 문제야. 여기에서는 삼각함수 문제이지만.”

강우는 연습장에 원을 그리고 수식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가 문제를 풀기 시작하자 질문한 손차희는 물론 윤수아와 최대우까지 먹던 치킨을 손에 들고 열심히 설명을 들었다.

여느 때처럼 강우의 설명은 유창했다. 딱 고등학생 수준에 맞추어서 설명하기에 그들은 쉽게 이해했다. 마법처럼 복잡하던 문제가 하나씩 껍질이 벗겨지며 정체를 드러냈다.

“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네…….”

가장 먼저 최대우가 탄성을 터트렸다.

“사이클로이드 곡선은 갈릴레이, 호이겐스, 베르누이 등 유명한 과학자들이 손을 댔던 중요한 문제였어. 예를 들어 공이 미끄럼틀을 가장 빨리 내려오는 길이 바로 사이클로이드 곡선이거든. 다른 유명한 문제인 현수선은 베르누이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어.”

강우의 설명에 윤수아와 최대우는 정신없이 고개만 끄덕였으나 손차희는 달랐다.

그녀는 설명을 들을수록 점점 불안해졌다. 강우도 아는 이 문제를 자신은 왜 모를까, 게다가 설명을 들어도 점점 머릿속만 복잡할까. 이 문제도 못 풀면서 내일 시험을 잘 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자 손차희는 더욱 문제를 이해하기 힘들어졌다. 그때부터 그녀는 강우에 대한 부러움과 패배감에 휩싸였다.

“……대충 이 정도인데…… 알겠어?”

“으응, 대충.”

손차희는 강우의 손에서 샤프를 뺏은 후 풀이를 들여다보며 아는 척했다.

강우는 다시 치킨으로 손을 뻗었고 윤수아와 최대우도 후다닥 먹는 일에 열중했다.

가슴이 답답해진 손차희는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먼저 들어갈게.”

“차희야, 치킨 마저 먹어야지!”

“다이어트 중이야.”

윤수아의 만류를 재빨리 뿌리치고 손차희는 기숙사로 올라갔다.

남은 치킨을 세어본 윤수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희가 왜 저러지?”

“흐아, 다행이다. 나 먹을 것도 부족했는데.”

최대우가 신이 나서 남은 치킨을 손으로 집었다.

강우는 기분이 착잡했다. 손차희가 흔들린다는 느낌은 착각일까. 그래도 손차희는 열심히 했으니까 시험을 잘 치르기를 바랐다.

* * *

다시 고등학생이 되어 치르는 첫 시험은 당연하게도 즐겁지 않았다.

옛날 고등학교 시절의 압박감이 되살아났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히 갑갑한 시간이었다.

시험 때는 지정 좌석이라 강우는 맨 뒤가 아닌 앞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아야 했다.

수학시험 감독으로 들어온 선생님은 강우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어차피 누구든 상관없었다.

시험지를 배부하기 직전 강우는 눈을 감고 마음을 안정시켰다.

오랜만에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덕분에 잠자던 천재성을 깨웠다. 천재가 된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물리뿐만 아니라 전 과목에서 능력을 확인해 볼 것이다. 열정을 다한 만큼 좋은 성과로 보상받을 것이다. 이처럼 정성을 다해 하나의 일에 매진하기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시험이 즐겁다.

수학시험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못 보던 낯선 문제가 다수 있었으나 그를 당황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 난이도는 예상대로였다. 과학고라 해서 교과 과정을 벗어나거나 지나친 선행이 필요한 문제는 없었다. 문제 하나하나에 선생님들이 심혈을 기울여 출제한 티가 역력했고 고차원문제는 학생들의 사고력을 테스트했다.

대학 과정을 미리 공부하거나 선행했다면 조금은 유리할 수 있겠지만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문제는 없었다. 학원 강사들이 성의 없이 대학교재에서 갖고 온 그런 문제와는 차원이 달랐다.

강우는 시험이 만족스러웠다. 역시 이 학교 선생님들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강우는 막힘 없이 쭉쭉 풀어나갔다.

배정된 두 시간이 절반쯤 지났을 때 강우는 모든 문제를 다 풀었다. 수학시험인데도 시간이 남는 기적이 일어났다.

“완벽하네. 이제 잠이나 자자.”

조용히 문제지와 답지를 덮은 강우는 바로 책상에 엎드렸다.

그에게서 비스듬히 뒤쪽에 앉은 손차희는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강우에게 신경을 모으고 있었다. 그러다가 강우가 문제지를 덮고 잠을 자기 시작하자 마음의 동요가 일었다.

그녀가 보기에 이 문제들은 절대 쉽지 않았다. 계산량도 많았다. 중학교 때 학교 시험과는 확실히 달라서 그녀는 적잖게 당황했다. 어려운 몇 문제를 일단 제쳐 놓고 다음 문제로 넘어가기도 했다. 그런데 강우는 벌써 다 풀고 잠을 자다니.

물론 예전에도 강우가 대충 찍고 잠을 잔 이력이 있기에 지금도 그렇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매일 공부량을 체크하는 차도도를 무시하고 대충 풀고 잠자는 행동을 할 만큼 멍청하진 않을 것이다.

엎드려 자는 강우를 보는 순간 손차희는 알 수 없는 패배감에 휩싸였다. 수학에서 자신은 강우에게 졌다. 강우는 천재였고 그녀는 둔재였다. 그런 자괴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으……”

그때부터 문제는 더욱 풀리지 않았다. 어제 풀 수 있던 문제도 지금은 막혔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현상에 손차희는 당황했다.

이제는 글자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시험지가 흐릿하게 얼룩졌다. 급기야 시험지에 눈물이 뚝 떨어졌다.

* * *

강우가 세미나실에 들어갔을 때 윤수아가 반갑게 맞았다.

“강우야, 강우야아! 시험 잘 쳤어?”

“대충. 넌?”

“난 반타작.”

“어? 나돈데? 우리 동지 아이가!”

최대우가 윤수아와 하이파이브했다.

반타작이라면서 윤수아와 최대우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웃음이 활짝 폈다.

“강우야! 넌 쉬웠지?”

쉽다고 대답했다가는 모가지가 위험할 것 같아서 적당히 둘러댔다.

“딱 우리 학교 수준. 작년 기출이랑 비슷한 것 같았는데?”

“난 어렵더라. 중학교랑 차원이 달랐어. 그땐 시험만 보면 백점이었는데 오늘은……. 하나같이 새로 보는 문제뿐. 이런 시험을 잘 본 녀석은 괴물이야.”

“난 안 풀리는 것투성이. 절반은 맞았겠지? 아냐, 꼭 맞아야 해.”

윤수아와 최대우도 자신의 소감을 밝혔다.

대충 종합하니 두 사람은 절반 정도 맞춘 듯했다. 그 정도면 고만고만하게 치른 수준이다.

정작 강우는 조용히 미소 짓고는 화학책을 꺼냈다. 책에 집중하려던 강우는 그제야 자리가 허전하다는 생각을 했다.

늘 먼저 와서 공부하던 손차희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얘는 어디 갔데?”

“아, 차희? 컨디션이 별로래. 오늘은 기숙사에서 쉬면서 공부하겠다네.”

아프면 쉬어야지. 강우는 곧 신경을 끄고 내일 있을 과학시험을 대비했다.

* * *

그 시각 손차희는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하느님, 저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결과를 받아야 하나요? 왜 저에게 시련을 주시나요? 저도 노력했잖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감은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오늘 시험은 그녀의 일생에서 최악이었다. 더 큰 문제는 오늘이 시험 첫날이란 것이다. 이런 상태로는 앞으로의 시험도 결과가 뻔했다. 도무지 흔들리는 마음을 잡을 수 없었다.

“하느님, 내일은 제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세요. 많은 것을 바라진 않아요. 제가 공부한 것만큼만이라도 수확할 수 있게 해주세요.”

손차희는 끊임없이 기도했다. 책상에 펼쳐 둔 책이 눈물에 젖어 흥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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