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50화 (50/325)

제50화 중간고사 (3)

손차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사실상 시험이 시작된 후 시험 장소를 제외하면 거의 보지 못했었다. 강우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의 손차희가 신경 쓰였는데 다행히 윤수아가 어색함을 깼다.

“강우야, 집에 가? 웬일로?”

“기숙사에 남는 사람이 없어서. 대우도 가잖아.”

적당히 둘러대는 그의 대답을 최대우가 바로 반박했다.

“어? 난 강우가 가니까 가는 건데?”

어이없어진 강우는 최대우를 한번 매섭게 째려보고는 다시 손차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희 둘도 집에 가나?”

“우리야 뭐…… 주말마다 가니까.”

“나도 너희들처럼 집이 가까웠으면 좋을 텐데.”

사실은 지금이 딱 좋았다. 어차피 정든 집이 아니어서 자주 내려가기도 어색했으니까.

이번에 다녀오면 다음부터는 방학 때만 가도 충분하다.

“이번 주말에도 학원?”

“글쎄, 시험 끝이라 아직 모르겠는데…… 차희야, 넌?”

윤수아가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손차희를 쳐다봤다.

손차희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히히, 나도 그러면 빠져야지.”

윤수아가 히죽거리는 사이 손차희가 그들에게 손을 흔들고 바로 걸음을 옮겼다.

“어? 같이 가!”

윤수아가 정신없이 손차희를 따라갔다.

금방 손차희를 따라잡은 윤수아도 뒤를 돌아보고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대우야! 집에 가면 오징어 꼭 가져와라!”

강우는 멍한 상태로 교문을 향하는 손차희와 윤수아의 뒷모습을 살폈다.

오늘처럼 말이 없는 손차희는 처음이었다. 당연히 그녀의 태도가 중간고사랑 연결됐다.

‘시험을 많이 못 쳤나?’

손차희의 자존심은 대단하다. 그가 본 그녀는 전교 일등을 차지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하는 학생이었다. 오로지 이민찬을 꺾으려고 공부하는 것 같았다. 반에서 그녀를 추격하는 전상철을 안중에도 두지 않을 만큼.

없는 시간을 내서 공부했고 수많은 참고서와 학원 교재를 섭렵했다. 최대우나 윤수아보다 공부 시간이 월등히 많았다.

적어도 그의 눈에는 이 학교에서 손차희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은 없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우울한 것을 보면 시험 결과가 매우 나쁘다고 예상됐다.

이 세상은 항상 노력한 만큼 반드시 보상을 주지 않는다. 시험을 잘 치든 못 치든 그것도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기에 강우는 손차희를 달랠 수 없었다. 결국은 그녀 스스로 이겨내야 하니까.

집에서 기분을 전환하고 돌아오면 이전보다 훨씬 강해지겠지.

“자, 우리도 가자.”

강우가 떠나려고 옆을 돌아봤을 때였다.

최대우가 한껏 찌푸린 얼굴로 고민에 잠겨 있었다.

“뭐해?”

“오징어 때문에…….”

“오징어가 왜?”

“그거 가져오는 건 별문제 아닌데 기숙사에서 어떻게 먹지?”

이 녀석은 윤수아의 마지막 당부를 고민하고 있었나 보다. 손차희를 걱정한 그와는 방향이 다르다.

“그냥 먹으면 되는 거 아냐?”

“구워야 하잖아? 기숙사에 취사도구 없는데?”

어? 그러네. 오징어를 가져와도 불에 구울 수가 없으니 먹기가 곤란하다.

강우는 최대우의 어깨를 툭 치며 걸음을 옮겼다.

“그냥 가져와 봐. 수아가 방법이 있겠지.”

* * *

집에 돌아온 손차희는 방에 틀어박혀 고민에 잠겼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첫 시험이었고 그 결과는 아직 제대로 모른다. 다만 의심의 여지 없이 못 치긴 했다.

중학교보다 낮은 점수는 당연하다. 과학고 시험은 어렵게 나오니까. 과학고 성적은 절대평가라지만 인생은 절대평가가 아니다.

인생은 상대평가다. 의대는 정원이 있고 그 정원 안에 들어가야 진학할 수 있다. 점수가 높다고 무조건 진학 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른 시험도 마찬가지다. 절대평가라지만 중요 시험은 내부를 들여다보면 상대평가다. 뽑는 정원수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다른 모든 일이 다 그렇다. 그 인원수 안에 들어가야 한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흔히 월급 얼마를 받으면 행복하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높은 사람과 비교하며 행복을 판단한다. 그래서 인생은 항상 상대적이다.

시험도 마찬가지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점수가 아니었다. 석차가 중요했다.

전교 몇 등이냐에 신경을 썼고 적어도 이민찬보다 더 나은 점수를 원했다.

“이민찬은…… 잘 쳤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의 중간고사 성적은 엉망이었다. 수학시험을 망친 이후 과학시험은 아예 제대로 풀지도 못했다. 자잘한 실수도 잦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실수가 잦았던 시험은 처음이었다.

본능적으로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다.

이 성적으로는 전교 일등은커녕 반에서 일등도 어렵다. 이민찬도 전상철도 그녀는 절대 이길 수 없다. 평균은 될까……. 참담했다.

“왜 이렇게 되었지…….”

학기 초만 해도 자신감이 넘쳤었다. 반 학생 누구도 그녀의 적수가 아니라 여겼다.

비록 그 자신감이 조금씩 줄어들긴 했으나 시험 치기 직전까지만 해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손차희의 눈앞에 강우가 어른거렸다.

“강우 때문이었나…….”

그녀가 볼 때 강우는 알 수 없는 학생이었다. 그런 강우와 같이 공부하면서 그녀는 자신만의 페이스를 잃었다. 어쩌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강우를 보고 놀랐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결정타가 있었다.

바로 수학시험 시간. 첫 시험부터 괜히 강우를 의식하다가 제대로 문제를 풀지 못했다.

과학시험도 마찬가지였다. 물리는 원래부터 강우가 더 잘한다고 생각했기에 마음의 동요가 없었으나 화학은 달랐다. 그녀가 헤매고 있을 때 강우는 쉽게 풀었다. 그리고 다른 시험도…….

문제의 핵심은 그녀 스스로 평정심을 잃은 것이다. 그 부분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지만 어떻게 해결할지 도무지 해법이 보이지 않았다.

강우와 함께 공부하면 또 비슷한 문제점에 시달리게 될지도.

“괜히 강우를 조원에 넣어서…….”

조원을 구성할 때가 떠올라 그녀는 과거의 자신을 자책했다. 그때 강우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조원을 바꾸자고 할 수도 없다.

강우와 계속 같이 공부하다 보면 그녀는 페이스를 잃게 될 게 뻔하다.

물론 그 모든 문제가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손차희는 머릿속에서 이민찬, 전상철, 강우를 떠올렸다. 이번 시험처럼 맥없이 당해서 3년을 망칠 수는 없으니까.

“하아! 어떻게 하지…….”

그녀가 고민하고 있을 때 방문이 벌컥 열리고 어머니가 들어왔다. 어머니의 손에는 깎은 사과가 담긴 쟁반이 들려 있었다.

“시험은 잘 쳤니?”

어째 들어올 때 묻지 않더라니. 손차희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래도 누구 딸내미인데. 잘 쳤겠지. 고생했다.”

성적이 나오고 나면 놀랄 부모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리 학교에 온 애들 전부 다 중학교 때 날아다녔는데?”

“그래도 넌 차석으로 입학하지 않았니?”

어머니의 한마디에 갑자기 숨이 콱 막혔다. 아마 어머니의 머릿속에는 차석, 아니 수석밖에 없을 것이다.

쟁반을 내려놓는 어머니를 보며 손차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엄마, 나 학원 그만 다니면 안 될까?”

“왜? 언제는 다니겠다고 난리더니? 더 좋은 학원이 있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그녀 스스로 다니겠다고 우겨서 시작한 학원이다. 지금까지 학원 선택을 후회했던 적은 없었다.

“그건 아니고…… 학원 그만 다닐까 싶어서…….”

“응? 학원에서 잘 못 해주니?”

“아니, 혼자 해볼까 하고.”

어머니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기세에 눌린 손차희는 시선을 피하고 사과를 집었다.

“경쟁이 심하다며? 지금처럼 주말에만 학원 다녀서 효과가 부족한가 보네. 학원 시간을 더 늘려야겠다.”

혹을 떼려다 혹을 붙이게 된 손차희는 한숨만 쉬었다. 아무래도 학원을 끊기는 쉽지 않을 듯했다.

* * *

신새벽은 화학 시험 채점을 끝내고 출력된 성적을 살피고 있었다.

그녀가 가장 먼저 확인한 점수는 그녀의 반 학생이 아니었다. 바로 강우였다.

강우의 성적을 본 신새벽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백점이라…….”

백점이니 당연히 화학 성적에서는 전교에서 1등이다. 그녀는 백점을 맞은 다른 학생이 있는지 열심히 찾았다.

2등은 이민찬. 점수는 87점이었다. 무려 13점 차다.

상위권에서는 성적 차가 크지 않다. 그런데도 무려 13점이나 차이가 났다는 것은 실력 차 또한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중간고사를 꽤 어렵게 냈다. 고등학교 첫 시험인 만큼 학생들을 깊게 공부하게 하려고 문제 난도를 높였다. 당연히 100점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100점이 나왔다.

시험 감독 때가 떠올랐다. 그때 강우는 일찌감치 문제를 풀고 잠을 자지 않았던가. 자는 녀석의 머리를 붙잡고 막 야단치려 했다가 정식 시험이라 자칫 구설에 휘말릴 수 있어 자제했었다.

“어떻게 백점이 나왔지? 이 자식이 교무실을 털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강우가 최근에 열심히 공부했고, 그 내용을 그녀에게 꼬박꼬박 보고까지 했으며, 시험 치기 얼마 전에는 수업 시간에 강우를 테스트해보기까지 했었지만.

그 모든 결과를 종합하면 100점을 맞을 조짐이 최근에 계속 있긴 했다.

“그래도…… 이건 아닌데…….”

괜한 패배감을 느끼면서 신새벽이 씩씩대고 있을 때였다.

“왜 그래?”

텀블러에 커피를 받아온 차도도가 말을 걸어왔다.

“아! 차 선생님! 혹시…….”

“아하? 강우?”

“헉, 눈치 백 단! 어떻게 내 마음을 잘 알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차도도가 물리 성적표를 꺼냈다.

“어디 보자…….”

당연히 차도도는 강우의 성적을 제일 먼저 확인했었다. 다만 지금은 신새벽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늑장을 부렸다.

“몇 점 받았는데?”

“백점.”

“헉! 문제를 얼마나 쉽게 냈으면. 전교에 100점짜리가 수두룩한 거 아니야?”

차도도는 성적표를 쭉 훑었다.

“아니. 2등은 91점이야. 이민찬이 91점 받았어.”

신새벽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민찬은 모든 선생님이 공감하는 에이스 아닌가. 그런데 물리와 화학 모두에서 강우에게 밀렸다. 그것도 큰 점수 차로.

“화학은 어때?”

신새벽이 대답하기도 전에 차도도가 성적표를 뺏어갔다.

성적표를 쭉 훑던 차도도의 안면이 확 일그러졌다.

“어? 강우를 응원하는 거 아니었어?”

“응원하긴 하는데…….”

차도도의 안색은 꽤 어두웠다.

심상찮은 조짐에 신새벽도 다시 화학 성적표를 살폈다. 차도도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 손차희의 점수가 보였다.

“차희가…… 왜 이래?”

아무리 입학시험 성적에 거품이 끼어있다고 해도 절대 나올 수 없는 점수였다.

“차희의 강점이 화학인데…….”

차도도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물리 성적도 그래?”

“응, 물리도 영…… 맥을 못 췄어.”

강우의 성적 때문에 기쁘기도 잠시, 손차희의 성적은 날벼락이나 마찬가지였다. 3반의 에이스인 데다가 흔들리지 않을 학생이라 여겼건만 결과는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차희랑 강우의 성적이 바뀐 것 아니야?”

“진짜 이상하네. 강우가 이렇게 잘한 것도 이상하고, 차희가 이렇게 못한 것도 이상한데?”

차도도는 자신이 손차희에게 쏟은 관심을 돌이켜 봤다. 물론 강우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손차희나 다른 학생에게 무관심하진 않았다.

다른 과목은 어떠려나? 강우는 톡으로 매일 보고하던 과목만 잘한 게 아닐까?

두 사람이 고민하고 있을 때 수학 담당인 정명욱이 등장했다.

순간 차도도는 목소리를 높였다.

“정 선생님, 강우 성적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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