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51화 (51/325)

제51화 중간고사 (4)

불빛에 비쳐 번뜩이는 이마를 빛내면서 정명욱이 웃음을 머금었다.

“강우 성적에 관심이 많은가 봅니다?”

“특이한 학생이잖아요?”

“특별한 학생 아니고요?”

그게 무슨 차이가 있지? 차도도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차분하게 의미를 되새겨보기에는 강우와 손차희의 성적 문제가 너무 컸다.

“그래서 성적은 나왔나요?”

“수학은 채점이 끝났습니다.”

정명욱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점수표를 차도도에게 내밀었다.

차도도는 점수표에서 재빨리 두 사람의 이름을 찾았다. 그녀의 안면이 팍 구겨졌다.

놀랍게도 강우의 점수는 만점이었다. 2차 진단고사와 같은 점수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다고 보고받았으니 못 치리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만점은 놀라웠다.

정작 그녀를 당황하게 한 것은 손차희의 점수였다.

중학교 성적에서, 또 두 차례 입학 진단고사에서 손차희는 안정된 성적을 보였었다. 그렇게 믿었던 손차희가 정작 첫 시험인 중간고사에서 믿을 수 없는 성적을 받았다. 손차희의 성적은 상위권이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예상대로입니다. 물론 강우 학생은 예상을 넘었고 손차희 학생은 예상보다 더 낮았지만요. 특별히 놀랄 일은 아니죠.”

정명욱의 차분한 분석이 차도도의 가슴을 강하게 울렸다.

“예상하셨다고요?”

점수표를 회수한 정명욱이 빙그레 웃었다.

“물론입니다. 강우 학생은 수업 시간에 놀라운 이해력을 보였거든요. 다만 얼마나 진지하게 시험에 임하느냐만 문제였죠.”

차도도도 비슷하게 생각하긴 했다.

“반면 손차희 학생은 최근 들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쫓기는 모습이랄까요, 또는 자신의 능력을 불신하는 모습이라 해야 하나……. 제가 보기에 이번 시험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듯합니다. 첫 시험이라 긴장해서 그런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적이 잘 나오기 어려우리라 예상했었는데 정말 그렇게 나왔습니다.”

정명욱의 분석에 차도도는 더 당황했다.

담임인 만큼 차도도는 손차희를 세밀히 관찰해왔다. 그녀의 중학교 학생기록부까지 살펴봤다. 그녀가 본 손차희는 자존심 세고 똑똑한 학생이었다. 실제로 실력도 있어 반에서 가장 과학고에 잘 적응할 학생이었다.

손차희는 외모가 예쁘장한 데다 성격도 그녀와 많이 닮아 더 친밀한 기분을 느꼈었다. 그런데 정명욱의 평가는 그녀와 완전히 달랐다.

“그럼 점수가 낮은 이유가?”

“심리적 불안 때문이죠. 이 문제를 극복하면 다음 시험부터는 회복하겠지만 못하면 더 떨어지겠지요.”

정명욱의 견해를 이해한 차도도는 신새벽도 같은 평가를 했는지 눈빛으로 물었다. 신새벽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차도도가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김선호가 들어왔다.

그녀는 김선호에게도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성적을 물었고 비슷한 견해를 들었다.

강우의 성적은 놀라웠고 반대로 손차희의 성적은 실망이었다. 그나마 지구과학은 수학보다 덜 망쳐서 다행이라고 할 수준이었다.

‘뭔가 일이 있을 거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이번 중간고사는 고등학교 3년의 시작일 뿐이다. 빨리 원인을 찾고 해소해야 손차희의 성적이 제 궤도를 찾아갈 것이다.

차도도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 *

성적이 발표됐다.

고려 과학고의 공식적인 성적은 절대평가다. 전체 학생의 80% 이상이 A를 받는다. 물론 이제 중간고사를 쳤을 뿐이니 기말고사까지 합산해야 제대로 성적이 나온다.

그 와중에도 석차는 매우 중요하다. 과목별 석차와 과목 합산 석차가 개별적으로 통보된다. 게다가 상위 20등까지는 모두에게 공개된다. 학생들의 관심이 쏠리는 항목은 절대평가 등급이 아니라 석차였다.

성적표를 받아든 강우는 도리어 마음이 차분해졌다.

‘예상 이상이군.’

이번 중간고사에서 그는 차도도와 신새벽에게 시험을 잘 치라고 갈굼을 당하긴 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중요하게 테스트한 부분은 자신의 천재성이었다. 천재성이 손강우 시절 때 익힌 내용에 국한되는지 아니면 전체적으로 더 나아졌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중간고사에서 여러 과목을 쳤기에 좋은 기회였다. 과거 손강우라면 절대 잘 칠 수 없는 과목의 성적도 확인했다.

물론 중간고사를 앞두고 열심히 하긴 했다. 하지만 전생의 학창시절에도 열심히 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가장 중요한 과목인 수학은 예상대로 만점을 받았다. 물리도 그의 실력이라면 당연히 만점이다. 신새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열심히 했던 화학도 만점이었다. 생물은 하나를 틀렸고 지구과학은 다 맞췄다.

영어와 국어는 하나씩 틀렸으나 사회과목은 만점이었다. 종합하여 그는 중간고사에서 모두 세 문제를 틀렸다.

과학고의 시험 난이도가 극악이란 점을 고려하면 이 점수는 전무후무했다. 즉 강우의 이번 성적은 전교 수석이면서도 모두를 놀라게 할 점수였다.

전교에서 2등은 예상대로 이민찬이었다. 이민찬은 전 과목에서 골고루 조금씩 틀렸고 다른 과목 대비 화학과 사회에서 조금 더 성적이 낮았다. 어쨌든 강우와는 차이가 크게 났다. 강우가 없었더라면 이민찬은 무난히 1등이었을 것이다.

“강우야, 강우야아!”

윤수아가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녀만이 아니었다. 반 학생들 모두가 강우를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그들이 보기에 강우는 항상 손차희에게 눌려 있었고 수업 시간에는 잠만 자는 학생이었다. 그런 학생이 이토록 놀라운 성적을 거뒀으니 놀랄 만도 했다.

“난 네가 잘 칠 줄 알았어!”

“고마워.”

평소에도 윤수아는 그를 외계인 보듯 했기에 강우는 그녀의 칭찬이 낯설지 않았다.

“넌 어떻게 됐어?”

“나? 음…… 망했지. 그래도…… 난 만족해.”

예전부터 손차희의 뒤만 따랐던 윤수아의 목표는 비교적 소박했다. 그녀는 전교 20등에 간신히 이름을 올렸다. 전교생이 124명이니 따지고 보면 꽤 대단한 성적이다.

“나도 잘했지?”

옆에 있던 최대우가 성적표를 보여줬다.

“에게게…… 대우야, 더 분발해야겠는데?”

윤수아가 곧바로 구박했고 강우는 최대우의 성적표를 한참 쳐다봤다.

최대우는 수학과 물리를 나름 잘 봤다. 두 과목 성적이 평균 이상이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과목은 모두 평균 이하였다. 특히 화학은 이번에도 뒤를 벗어나지 못했다.

“신새벽 선생님께서 화내시겠는데?”

“괜찮아! 그 선생님은 예쁘잖아.”

강우의 염려에 최대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강우는 실소를 머금으며 눈을 부라렸다. 설마 일부러 못 친 건 아니겠지.

성적을 안주 삼아 웃고 떠들다 보니 한 사람의 빈 자리가 느껴졌다.

바로 손차희였다.

강우는 전교 석차 상위 스무 명의 명단을 다시 훑었다. 가장 위에 그의 이름이 있고 그 아래에 이민찬이 있다. 마지막 부근에 전상철과 윤수아의 이름이 보였다. 고현성은 당연히 없다.

손차희 이름은 어디로 갔을까? 강우는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차희는 왜 안 보이지? 어디 갔어?”

“오늘 아프다고 빠졌어.”

윤수아가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차희 성적이…… 많이 안 좋아?”

“나도 모르겠어. 명단에 이름이 없는 건…… 좀 충격인데…….”

윤수아도 믿기지 않는 듯 연신 명단을 훑었다.

강우는 시험을 전후하여 손차희의 심리상태를 다시 떠올렸다. 그녀가 매우 불안해 보이긴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망칠 줄은 몰랐었는데.

‘나 때문일까…….’

손차희의 심리적 동요에 그가 적잖은 영향을 끼쳤음을 안다. 괜히 미안했다. 나중에 차분히 위로해야 할 듯하다.

* * *

“여어! 브라더!”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고현성이 강우를 불렀다.

강우는 가볍게 손짓으로 인사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뒤에서 고현성이 열심히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브라더! 사람이 부르면 답을 해야지!”

“너 사람이었냐?”

놀랍다는 표정으로 상대를 쳐다보자 고현성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하아, 그래, 내가 사람이 아니면…… 하여튼 됐고, 오늘은 웬일로 일찍 들어가냐? 조 모임 안 해?”

“시험도 끝났는데 뭘, 귀찮게.”

고곽천재는 입학 후부터 지금까지 거의 빠지는 날 없이 세미나실을 예약해서 함께 공부했다. 그런데 오늘은 곧바로 기숙사로 향하니 이상했던 모양이다.

사실 강우도 고민했었다. 다만 손차희가 몸이 안 좋아 빠지겠다는 말에 흥이 나지 않았을 뿐이다. 또 시험이 막 끝나서 휴식이 필요하다는 안일함도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세미나실 자습을 포기했다. 강우는 기숙사로 이동했고 윤수아와 최대우는 사이좋게 편의점으로 향했다. 덕분에 혼자서 움직이게 됐다.

“너…… 시험 잘 쳤더라?”

나란히 걸으면서 고현성이 말문을 열었다. 역시 화제는 바뀌지 않았다.

강우가 별말 없이 계속 걸음을 옮기자 고현성이 투덜대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우리 반에서 넌 공부 안 하기로 유명했잖아?”

“내가 언제?”

“맨날 뒤에서 잠만 잤으니까.”

그런 평가는 좀 억울했다. 그래도 수업 절반은, 정확히는 조별 테이블에 앉아 공부하는 시간에는 맨 앞에 앉아서 두 눈을 뜨고 수업을 들었었다.

“그래서 우리 반 애들도 네가 1등 하니까 이건 뭔가 착오가 생긴 거라며 말이 많아.”

“싱겁긴.”

“그런데 다른 반 애들은 어떻겠어? 갑자기 이름도 모르던 녀석이 갑툭튀한 거잖아?”

그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강우는 고현성을 쳐다봤다.

“특히 이민찬이랑…… 주영식이 이를 갈더라.”

“주영식은 또 누군데?”

“입학할 때 3등 한 놈.”

이를 간다는 것이 열심히 공부해서 1등 하겠다는 뜻인가? 당연히 그런 경쟁이라면 환영이다. 강우는 피식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열심히 하면 좋은 거지. 그런데 원수도 아닌데 왜 나에게 이를 갈아?”

고현성이 한심하다는 듯 그를 쳐다봤다.

“그게…… 어쨌든 서로 적이잖아? 대학 문 크기는 정해져 있으니까.”

문 크기가 정해져 있다? 서로 경쟁자란 뜻이었다. 전국도 아니고 이 좁은 학교에서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있겠냐고 반문하려다 강우는 입을 닫았다.

“크크, 하여간 나도 널 꼭 이겨보려고 하거든. 너도 1등 하는데 나라고 못 할 일이 어딨겠어?”

“어, 그래. 화이팅해라.”

좋은 마음가짐이었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인지라 강우는 녀석을 격려해줬다.

그의 대답을 삐딱하게 들은 고현성이 왜 자신을 무시하냐며 길길이 날뛰었다. 좋은 말을 해줘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다르게 받아들이면 방법이 없다.

“브라더! 각오해! 내가 꼭 이길 거야!”

그래도 공부로 승부를 보겠다고 계속 도전하는 것을 보면 천성이 나쁜 녀석은 아니었다. 강우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 있으면 또 내기하던가?”

* * *

최대우 없이 홀로 방에 들어오니 어쩐지 썰렁했다.

오랜만에 노트북이나 켜볼까.

침대에 앉아 노트북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톡이 울렸다.

- 신새벽 쌤 : 강우야~

- 강우 : 네?

- 신새벽 쌤 : 오늘은 왜 보고 안 해?

- 강우 : 시험 끝났잖아요? 게다가 오늘은 화학 공부를 안 했는데요?

- 신새벽 쌤 : 시험 끝났다고 금방 게을러지니? 너 화학 시험 잘 친 건 다 내 덕분이니까 앞으로도 계속 톡 보내.

으악! 귀찮게 계속하라니. 기겁한 강우는 어떻게든 벗어날 묘수를 찾았다.

- 강우 : 쌤! 제가 화학 일등하면 소원 들어준다고 했잖아요?

- 신새벽 쌤 : 헉! 기억 안 나는데?

- 강우 : 뭐예요? 사기꾼!

- 신새벽 쌤 : ㅋㅋㅋ 기억났어. 소원이 뭔데?

- 강우 : 매일 보고 톡 중지하는 거요.

잠시 답장이 날아오지 않았다. 이 선생님이 충격을 받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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