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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56화 (56/325)

제56화 월면 과제연구 (1)

“알다시피 이게 정부에서 후원하는 대회여도 학생부에 기재가 안 돼. 그래서 아예 무시하는 학생도 많은데…….”

“저희는 그런 것 신경 안 씁니다.”

“너만 그렇지 않아?”

“다 그럴걸요?”

김선호와 강우의 대화가 이어졌다.

강우의 표정은 평소와 달리 진지했다.

김선호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최대우와 윤수아를 향했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니?”

“강우랑 같아요.”

윤수아가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김선호가 긴 한숨을 내뱉었다.

“사실 이 대회는 공부에 방해된다고 안 나가려는 학생이 많아. 그나마 주제도 적합하고 의욕도 있는 유성이네 조를 택한 거야. 너도 알다시피 유성이가 약간…… 흠, 그래 똘끼가 있거든. 스스로 자원하는 학생은 너희가 첨인데…….”

“하겠습니다. 학습 부담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요.”

“좋아, 이론적인 내용보다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주란 점은 알지? 예전에 사이언스 페스타를 구경한 적 있어?”

“본 적은 없지만 대충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예전 행사 장면도 찾아봤고요.”

강우는 실제로 강연 때문에 참석해봤기에 행사 성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꼭 나가겠다면 말리진 않으마. 다만 강우 넌 중간고사 성적이…… 그 성적을 지키려면 이럴 시간이 없을 텐데…….”

“성적 신경 안 쓰는데요?”

“응? 그런데 중간고사에선 왜……?”

“아, 그게 신새벽 선생님이랑 저희 담임 선생님 때문에…….”

잠깐 멍해져서 강우의 말을 곱씹던 김선호는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과학고가 심심풀이로 전교 1등을 할 수 있는 곳은 아니지 않나?

“그, 그래. 알았다. 내가 너희 팀도 신청해두마. 이제 관측 시작해야지?”

대화를 마무리 지은 김선호가 자리를 떴다.

천문대 돔이 열렸다.

하늘은 구름 천지였다. 다만 달빛에 비친 구름의 밝은 부분으로 달의 위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구름 사이로 뻥 뚫린 부분에 달이 빠져나오면 관측할 수 있는 상황.

최대우를 중심으로 열심히 관측 준비를 했다.

“운이 좋으면…… 가능해 보이긴 하네.”

하늘을 살핀 김선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하현 때도 한번 찍었으면 하는데요?”

“새벽에 관측하겠다고?”

달의 위상은 초승달부터 부풀어 올라 반달인 상현달을 거쳐 보름달이 된다. 이 기간에는 저녁 시간에 주로 달을 볼 수 있다. 오늘이 바로 상현달 직후라 저녁에 가능하다.

보름달 이후부터는 반대로 반달인 하현달을 지나 그믐달로 모양이 이지러진다. 이 기간에는 저녁이 아닌 새벽에만 볼 수 있다.

달 중앙 부근에 있는 코페르니쿠스 크레이터는 매월 저녁에 한차례, 새벽에 한차례 관측할 기회가 온다.

지구로 따지면 아침에 해 뜰 때 서쪽으로 길게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가 저녁에 해 질 때 동쪽으로 길게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현상과 같다.

강우는 이 두 시기를 모두 관측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그게 더 정확하고 다양한 지형을 보여주지만…… 굳이?”

“사이언스 페스타 나가려면 필요하죠.”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강우의 계획을 김선호도 수긍했다. 이왕 출전한다면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최대한 노력해야 했다.

다만 새벽 관측을 위해서는 새벽에 기숙사를 나와야 하므로 담당 선생님의 허락이 필요했다.

“알았다. 너희 셋은 기숙사 야간 통제를 풀어주마.”

김선호의 허락에 강우는 내심 득의양양했다. 딱히 야간에 돌아다닐 생각은 없지만 어쨌든 야간 출입이 허용되니 갑갑한 속박이 한 꺼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사이 구름 사이로 달이 모습을 내밀었다.

최대우가 재빨리 CCD 카메라를 연결해서 시험 촬영을 했고 윤수아와 강우는 촬영된 달의 모습이 목적에 적절한지 확인했다.

월면 확대 촬영을 위해서는 적합한 접안렌즈를 조합하여 망원경의 분해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을 이용해야 한다.

몇 번의 시험 촬영 끝에 그들은 코페르니쿠스 크레이터를 찍기에 가장 적합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다시 달이 구름에 가렸다.

잠시 쉬는 시간.

“자, 관측 끝나면 정리 잘해두고 가라.”

김선호가 먼저 떠나고 강우와 팀원들은 머리를 맞댔다.

“강우야, 강우야아! 사이언스 페스타 정말 할 거야?”

“당연하지. 유성이한테 질 수는 없잖아?”

윤수아의 물음에 강우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두 사람 모두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그렇지, 꼬맹이한테 질 수는 없지!”

최대우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의기투합했다고 생각한 강우는 준비해둔 계획을 늘어놓았다.

“보여줄 거리는 충분해. 우리는 일단 월면 모형을 제작하고…… 크레이터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영상도 만들 거야. 1분 간격으로 월면을 촬영해서 이것을 영상으로 합성하면 크레이터에 그림자가 쭉 생겼다가 줄어드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다만 이걸 완성하려면 내일 하루 더 찍어야 하는데…….”

팀별 과제에 임하는 팀원들이 모두 비슷한 능력자라면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사람이 매우 뛰어나면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남은 팀원들이 공기화되고 한 사람에게 일거리가 집중되기 마련이다. 뛰어난 한 사람도 자신이 원하는 수준에 맞추려고 혼자 무리해서 과다한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그 결과 팀원의 화합이 깨지고 한 사람이 집중적으로 수행한 결과물이 오히려 나빠지기도 한다.

대학원생 시절에 학부생 리포트를 평가하면서, 교수가 된 후 학생들 조별 과제를 평가하면서 강우는 이런 경우를 숱하게 경험해보았다.

지금 그들 팀이 그런 상황이었다. 강우의 능력에 비해 최대우와 윤수아의 능력은 경험이나 지식 면에서 아직 일천했다. 이것을 강우 혼자서 강제로 끌고 나가면 문제가 발생할 것이 분명했다. 강우가 의도한 친구들의 능력 발현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렇기에 강우는 최대한 자신의 의견을 줄이려 했다. 덕분에 최대우와 윤수아의 아이디어가 빛을 발했다.

“크레이터 옆, 산맥도 같이 촬영하자.”

“모형은 지구의 산맥과 비교할 수 있도록 지구의 산맥 모형도 만들면 어떨까?”

신선한 아이디어였다.

다행스럽게도 그들 셋은 특화된 분야가 각각 달랐다. 최대우는 천체 관측에 뛰어났고 윤수아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재능을 보였다. 이를 조율하여 최선의 결과물을 만드는 일은 강우의 몫이었다.

다시 구름 사이로 달이 드러났다.

최대우의 지시에 따라 그들은 본격적으로 월면 촬영을 시작했다. 영상 제작을 위해 1분 간격으로 달을 찍었다. 사이언스 페스타가 아니었다면 오늘 몇 장 찍고 끝났을 관측이 대규모 작업으로 바뀌었다.

모두가 이 관측을 즐거워했다.

다행히 구름의 방해로 못 찍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일 추가 관측을 계획하면서 그들은 천문대 돔을 닫았다.

* * *

손차희는 이민찬과 함께 물리 부장인 김윤택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알다시피 1학년이 과제연구를 제대로 수행하기는 어렵다. 역량도 부족하고 여건 또한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래서…….”

과제연구는 짐작한 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담당 선생님이 적절한 주제를 던져주면 그들이 자료를 조사하고 약간의 계산이나 실험을 추가해 논문 형태로 결과를 만들어내면 되는 일.

과정과 방식이 학원 선생님이 주제를 던져준 지난번과 큰 차이가 없어서 손차희는 내심 실망했다. 하지만 내색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약간 다른 점은 있다. 처음에 학생들에게 원하는 주제를 여러 개 찾아오라고 했으니까. 다만 이후 과정은…….

“내가 생각해봤는데 너희가 준비한 주제는 단기간에 수행하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이런 주제가 더 낫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김윤택이 주제를 던져줬다. 그것도 두 사람이 함께 조를 구성해서 수행하도록 하나의 주제만이 주어졌다.

손차희는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반발할 수는 없었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만의 주제를 수행하고 싶다고 강력히 주장했었다. 그나마 초기에는 그녀의 의견을 받아들여지는 듯 했으나 중간고사 이후 모든 게 변했다.

엄밀하게는 그녀가 시험을 망쳤기에 발언권이 거의 사라졌다. 과제연구는 이민찬 위주로 돌아갔고 그녀는 거의 곁다리 수준으로 전락했다.

손차희는 선생님의 편애를 처음으로 실감했다. 지금까지 그녀는 항상 선생님의 총애를 독차지하는 학생이었다. 자신을 무시하는 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었다. 또 선생님이 다른 학생보다 자신을 더 예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선생님이 공부 못하는 다른 학생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지금 상황이 뒤집히고 보니 확실하게 느껴졌다. 김윤택은 그녀를 은연중에 무시하고 있었다. 시험 이후로 바뀐 태도로 보아 시험 성적과 관련 있었다.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나…….’

비록 그녀가 원해서 지도교사를 선택했지만, 김윤택이 그녀를 눈독 들이고 있었음을 그녀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예상과 너무 달랐다.

속이 쓰렸으나 그녀는 꿋꿋하게 참았다. 지금까지 그녀가 받았던 선생님들의 관심이 반대로 작용한 것뿐이니까. 다른 많은 학생이 예전부터 이런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다만 이민찬 앞이라 심리적 타격이 무척 심했다.

“어떻게 생각해?”

“저는 괜찮다고 봅니다. 크게 부담도 없고요. 고교 수준에서 다루는 물리 이론이라 교과 과정에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해보겠습니다.”

이민찬이 긍정을 표했다.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던 손차희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 했다.

“저는…….”

곧바로 김윤택이 손을 저었다.

“그렇다면 이 주제로 하지. 두 사람이 같이했으면 좋겠어. 보고서를 누가 작성할지는 서로 협의하도록 해. 그럼 다음 과제연구 수업 때까지 자료를 조사하고 계획을 잡아 오도록. 그만 가봐.”

자연스럽게 손차희에게 발언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민찬이 수락했으니 그걸로 끝이란 듯이.

어쩔 수 없이 손차희는 이민찬을 따라 물러났다.

돌아오는 길에 이민찬이 푸들푸들 웃으며 말했다.

“난 선생님이 주제를 주실 줄 알았어. 다른 조도 대부분 그렇더라. 이거 열심히 할 필요 없어. 당장 시험공부에 방해되니까. 그래서 난 적당히 할 생각인데…… 너는 어때?”

“……나도 딱히.”

저렇게 나오는데 그녀라고 열심히 하겠다는 의욕을 보일 수 없다.

손차희는 지난 과제연구를 떠올렸다. 그때 윤수아를 비롯하여 조원들은 대단했었다. 2차 진단 고사가 있었음에도 과제연구에 매진했다. 솔직히 틀에 박힌 교과서 공부보다 월등히 재밌었다.

과제연구가 이런 식으로 흘러갈 줄 알았으면 조원들이랑 같이 하는 건데……. 후회가 일었다.

강우와 조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번 과제연구도 주도적으로 일을 벌이려나? 아니면 시간 때우기로 처리하고 공부에 집중하려나?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녀의 발걸음이 늦어졌다.

이민찬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녀를 향해 손을 저어 인사하고는 자습실로 사라졌다.

“망했네.”

이민찬과 함께하니, 또 부장 선생님인 김윤택이 지도교사니까 과제연구 성적은 잘 나오겠지. 하지만 이래서는 학원에서 주제를 받은 때와 차이가 없다. 이런 방식을 원해서 김윤택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담임이랑 하는 건데…….”

후회해봐야 이미 늦은 일이었다.

만일 기말고사 성적도 별로라면 다음 학기 과제연구에서 김윤택은 그녀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내년에 한국대와의 협동연구를 노릴 생각이었는데 완전히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음 학기에는 설사 김윤택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절대 사양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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