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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57화 (57/325)

제57화 월면 과제연구 (2)

천문대 관측이 없는 날 저녁 자습시간에 고곽천재는 세미나실에 모여 함께 공부했다.

최근에는 손차희도 빠지지 않았고 분위기도 예전처럼 돌아왔다.

달라진 점이라면 손차희와 강우는 서로 말이 없었고 윤수아와 최대우는 모르는 것을 손차희가 아닌 강우에게 먼저 질문했다. 자연스럽게 손차희는 간섭을 받지 않고 공부할 여건이 마련됐다. 물론 그게 반드시 좋다고 할 수 없다.

강우는 최대우가 들고 온 물리 문제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참고서에 나온 응용문제였고 문제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이 문제는 역학적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라서 탄성력이…….”

강우가 볼 때 특이한 문제가 아니었다. 최대우 수준이라면 충분히 풀어야 할 문제다. 역시 윤수아도 옆에서 보다가 끼어들었다.

“나도 이 문제 풀어봤어. 별거 아니던데.”

“너도 풀 줄 알아?”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자신감 넘치는 윤수아의 말에 최대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직도 영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눈치다.

강우는 해답을 고민하는 최대우의 머리끝을 쳐다봤다.

- 최대우, 수학 A, 물리 S, 화학 C, 생물 C, 지구과학 S.

최대우는 그가 이 학교에서 발견한 최고의 인재다. S급인 학생은 최대우 외에 권유성과 박일현 둘뿐이다. 손차희나 이민찬도 S급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윤수아를 힐끔 살폈다.

- 윤수아, 수학 C, 물리 B, 화학 B, 생물 B, 지구과학 C.

최대우와 윤수아의 지표상 차이는 컸다. 윤수아는 이 학교 학생의 평균이었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과학고 학생의 평균이 C였다. 즉 윤수아는 물리, 화학, 생물에서 평균보다 약간 잘하는 정도였다.

방금 푼 문제를 두고 강우는 고민에 빠졌다.

머리 위에 보이는 이 등급은 학생의 실력이 아닌 잠재력을 나타낸다. 그렇기에 현재의 실력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도 최대우의 물리 잠재력은 S이고, 윤수아의 잠재력은 B였다. 이는 작은 차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 문제를 윤수아가 더 잘 풀까?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아! 강우야, 이것도 좀 설명해줘.”

최대우가 다른 문제를 내밀었다. 자주 보기 힘든 문제이긴 했지만 강우가 보기에 특별할 게 없었다.

최대우와 물리 토론을 해보면 폭넓은 응용력과 날카로운 이해력에 놀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최대우의 천재성이 눈에 띄지만 지금처럼 평범한 문제를 풀 때는 S라는 수치가 잘못된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열심히 문제를 노려보는 최대우를 보고 있자니 문득 떠오르는 직감이 있었다.

“대우야, 이번에 물리 점수 얼마나 나왔어?”

“여섯 개 틀렸는데?”

“어? 나보다 잘 봤잖아? 난 여덟 개인데.”

윤수아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험을 망친 손차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문제는 많이 풀어봤어?”

“아니. 난 문제 푸는 거 별로 안 좋아해. 물리는 사유하는 과목이거든.”

물리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단순히 문제를 많이 푼다고 이해도가 높아지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사고실험이라 불렀다. 물론 반대로 고교 과정에서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점수가 오르지 않는다. 그 둘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강우가 보기에 최대우는 문제풀이를 싫어했다. 그렇다 보니 단순한 문제에서 의외로 자주 걸린다. 반면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에는 강했다.

문제를 더 푸는 방법은 없을까? 단순히 문제집을 던져준다고 열심히 풀 녀석이 아니다. 물론 원숭이에게 바나나를 던져주듯 먹을 것으로 녀석을 유인하면 가능성이 조금 있어 보이긴 하지만.

“문제 많이 풀어야 해?”

윤수아가 진지한 표정으로 강우를 쳐다봤다.

“꼭 그런 것은 아닌데…….”

말끝을 흐리던 강우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물리 문제풀이 블로그나 유튜브.

강우는 녀석의 포동포동한 몸집을 쓱 훑었다. 아! 유튜브는…… 말을 말자.

“대우야, 블로그 운영해볼 생각 있어?”

“블로그? 난 걸그룹 덕질 블로그는 자신 있는데.”

왜 생각이 그쪽으로 넘어가지?

“어휴, 물리 블로그.”

강우의 말에 모두가 뜨악한 표정이다.

최대우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고 손차희는 고개를 저었다. 다만 곰곰이 생각하던 윤수아는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다.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운영해서 대학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는데…… 우리랑은 상관없지 않아? 그런데 물리로 블로그 운영이 돼? 그게 인기 있으려나?”

“수학에서 비슷한 것 있지 않아? 문제 풀어주는 블로그. 대표문제나 좋은 문제는 별도로 풀어올리고 질문 들어오면 받아주고. 중고등학생 대상으로.”

강우의 적극적인 의견에 윤수아가 동의했다.

“가능할 것 같아. 블로그 운영하면서 물리 문제를 많이 풀어보자는 거지?”

“조금 성가실 수도 있는데…… 계획적으로 잘 운영하면 의외로 도움이 될 수 있어.”

수학 블로그는 익숙하기에 금방 그림이 그려졌다.

“할 수 있을까?”

“대우 능력이면 충분해. 힘들면 우리가 도와줄게.”

강우가 윤수아와 손차희의 동의를 구했다.

“블로그 꾸미는 건 내가 잘해. 홈페이지를 별도로 만들어도 좋고. 거기에 지난번에 우리가 과제연구 했던 작품 올려놓아도 되겠다.”

컴퓨터를 잘 다루는 윤수아가 도와주겠다고 장담하자 최대우도 용기를 얻었다.

“너희들이 도와주면 해볼게.”

“어려운 문제는 내가 풀어줄 테니까 한번 시도해봐. 물리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될 거야.”

강우의 격려에 최대우가 주먹을 불끈 쥐고 의지를 밝혔다.

“좋아! 일단 해보고 재미없으면 블로그 폐쇄하면 되지.”

최대우가 운영하는 ‘물리 문제풀이 센터’가 인터넷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 * *

“하아, 이렇게 하면 되냐?”

천문대 옆 천문 실험실에서 최대우가 진흙을 주물럭거리며 물었다. 거의 몇 시간에 걸친 고생 끝에 최대우는 마침내 월면과 비슷한 모양을 만들었다. 최대한 사진과 비슷하게, 계산한 값과 크기를 맞추어서 작업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렇게 손으로 만든 월면 모형과 3D 프린터를 이용해서 작업한 모형을 나란히 놓고 비교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이 작업에 드는 비용은 사이언스 페스타 출품 명목으로 학교에서 지원해준다고 했다. 모두 김선호 선생님 덕분이었다.

“아직 좀 어색해.”

강우가 딴지를 걸었고 열심히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모니터를 주시하던 윤수아도 고개를 저었다.

안색이 붉어진 최대우가 재차 소매를 걷어붙이고 진흙을 주물렀다. 그 모습이 흡사 조각품을 만드는 예술가를 닮았다.

윤수아의 시선이 다시 모니터로 돌아갔다.

그녀는 최대우의 ‘물리 문제풀이 센터’ 블로그 제작 작업을 하고 있었다.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기본 표지를 쓰지 않고 독특하게 만들다 보니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림을 그리고 색칠하며 꾸미는 데 몰두하는 모습이 마치 예술가 같았다.

강우는 두 사람을 번갈아 살피며 내심 실소를 머금었다.

과학도인 두 사람이 예술가 흉내를 내는 것도, 정작 최대우의 블로그를 윤수아가 더 열심히 만드는 장면도 흥미로웠다.

어쨌든 열심히 하면 좋은 일 아닌가.

참고서와 빈 백지를 놓고 강우는 고민에 잠겼다. 그가 할 일은 블로그에 넣을 적당한 기본 문제를 뽑아내는 일이다. 원래는 최대우에게 맡길 생각이었는데 녀석이 월면을 만드는 예술가로 변신했으니 달리 맡을 사람이 없었다.

바로 윤수아의 질책이 쏟아졌다.

“강우야, 다 했어?”

“응?”

“아직 한 자도 안 썼네? 계속 놀았지?”

놀지 않고 최대우의 예술품을 구경했을 뿐이다. 간혹 윤수아의 모니터도 구경하고.

열심히 연구하는 학생들을 보면 정말 예쁘고 반갑다. 물론 윤수아의 외모도 한몫하긴 하지만.

“차희는 벌써 두 문제나 뽑아서 타이핑까지 쳐서 보냈거든. 너도 얼른 줘.”

눈을 부릅뜬 윤수아의 얼굴은 전혀 위압감이 없다. 그냥 귀여울 뿐.

손차희가 벌써 끝냈다니! 과연 학습 면에서는 정말 부지런하다.

“설마…… 너 타이핑 못하는 거 아니지?”

“그럴 리가. 금방 해준다, 해줘.”

타이핑 치는 거야 대학원생 시절 죽도록 해봤다. 문제풀이 답지를 만드는 것도. 그래서 강우는 자신의 노트북을 열었다.

걸그룹이 그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다. 최대우가 깔아준 바탕화면이다.

“어? 강우, 너! 너도 아이돌 덕질하니?”

“덕질? 덕질이 뭔데?”

어리둥절한 강우를 향해 윤수아가 눈을 흘기더니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어쨌든 두 사람이 있어서 월면 과제연구와 문제풀이 블로그는 순항 중이다. 지금 당장은 최대우가 문제를 풀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해결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지만 제 궤도에 올라서면 최대우의 몫이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최대우는 자신의 물리 특성을 깨닫고 각성하지 않을까.

* * *

언제 잠이 들었을까. 누군가가 몸을 흔들었다.

몇 차례 반항하다가 견디지 못한 강우는 눈을 번쩍 떴다. 눈앞에 포동포동한 얼굴, 최대우가 보였다. 이 자식이 잠을 자서 얼굴이 부었나?

“강우야, 시간 됐다. 일어나!”

“몇 신데?”

“새벽 3시.”

오늘은 새벽 관측이 있는 날이었다.

단순히 과제연구였다면 굳이 새벽 관측까지는 필요 없겠지만, 사이언스 페스타에 출전하려면 다양한 영상을 만들어야 했다. 물론 새벽 관측 데이터를 이용해서 코페르니쿠스 크레이터의 높이와 크기를 한 번 더 계산할 수 있으니 실험 데이터 오차를 평가하기 유리한 점도 있었다.

정말 일어나기 싫었지만 최대우의 얼굴을 보니 계속 자기에는 틀린 것 같았다.

평소에 최대우 또한 알람 소리를 가볍게 무시하는 스타일인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천체 관측만 할 때면 거짓말처럼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대우야, 안 피곤해?”

“관측하러 가는데 피곤할 리 있어?”

이 녀석은 천상 천문학자다. 별을 보는 일이라면 절대 피곤하지도 않고 잠도 안 오고 세상 어떤 일보다 우선이다. 다만 먹는 것과 별 보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을 추구할지는 고민해봐야겠지만.

최대우의 재촉에 강우는 주섬주섬 일어나 대충 옷을 챙겼다.

세수하니 제법 정신이 말짱해졌다. 조용히 문을 열고 방을 빠져나왔다.

기숙사 출입문이 보이고 평소처럼 학생증 카드키를 댔다.

“열려라! 참깨!”

철컥!

오! 열렸다! 보통 때라면 ‘지금은 출입금지 시간입니다.’라는 멘트가 나왔을 텐데 김선호 선생님의 조치로 출입이 허용됐다.

강우는 즐거운 마음으로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온 세상이 잠에 빠진 듯 풀벌레 소리만 들렸다. 하늘과 땅을 향해 맨손 체조하듯 기지개를 켠 강우는 어둠이 내려앉은 교정을 관찰했다.

“벌써 나와 있었어?”

뒤늦게 윤수아가 합류했다. 그녀 역시 평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자다가 나온 모습이 평소의 깔끔한 이미지를 모두 잡아먹었지만 오늘은 못 본 척해주기로 했다.

“수아야, 저기 봐봐.”

“어디?”

“저기 건물 입구. 뭔가 하얀 거 있지?”

“으악!”

윤수아가 기겁해서 최대우 뒤로 몸을 숨겼다.

낄낄 웃던 강우는 윤수아의 주먹에 몇 대 두들겨 맞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우리 천문대에 들어갈 수는 있어?”

“선생님이 풀어주셨어. 기숙사처럼 입구에서 카드키 대면 된다더라. 물론 ‘열려라! 참깨!’라고 외쳐야지.”

강우의 시답잖은 농담을 무시하고 최대우가 현관에 카드키를 댔다.

철컥-

현관이 열렸다. 적어도 지금 그들은 학교의 모든 문을 출입할 수 있었다.

다른 학생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들뜨는 기분이다.

강우는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최대우와 윤수아 역시 설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얼른 천문대로 가자.”

최대우가 그들을 재촉했다. 역시 녀석은 조금이라도 빨리 달과 별을 보고 싶은 모양이다.

정작 강우는 어둠에 싸인 학교를 더 돌아다녀보고 싶었다. 그가 슬금슬금 옆으로 새려 할 때 윤수아가 그의 팔을 콱 붙잡았다.

“강우야, 사고 치지 마!”

이 시간의 윤수아는 감독 선생님과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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