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60화 (60/325)

제60화 차도도와 신새벽 (2)

“유체역학?”

공기나 물 같은 물질의 흐름을 다루는 역학이다. 고체의 운동 역학과 달리 생소하고 매우 복잡한 분야이기도 하다.

고교 과정에서 다루는 유체역학을 떠올려 보니 물체의 부력이나 물속의 압력 등을 간략하게 배웠고 비행기의 양력을 다룬 내용이 전부였다.

강우는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

“얼마 전에…… 월면 사진 찍을 때 달로 가는 로켓의 속도를 생각해봤거든?”

“그런데?”

“그게 전투기보다 빠른지 고민되더라고. 보통 전투기는 음속보다 더 빠르게 날아다니잖아? 그래서 음속에 관한 책을 조금 찾아봤는데…… 그러다가 압축성 유동에 흥미가 생겨서 마하파를 파고들었지.”

“하아!”

최대우가 제일 먼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어떤 호기심에 몰입하면 관련 자료를 열심히 뒤졌던 기억이 있어서다.

강우와 방을 같이 쓰는 최대우가 수긍하자 윤수아와 손차희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압축성 등엔트로피 유동의 상태방정식으로 풀 수 있어.”

다음은 강우의 독무대였다.

강우는 학생들이 익숙한 수식에 새로운 항을 덧붙은 생소한 수식을 나열했고 이 수식을 풀어 처음 보는 방정식을 유도했다. 간간이 각항의 의미를 나열하고 설명을 덧붙이자 손차희 등은 마치 이 수식을 완벽하게 이해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한 페이지가량 수식을 쭉 나열한 강우가 마침내 답을 끌어냈다.

“여기에 숫자를 대입하면 답이 나오지. 이 문제를 질문한 사람은 아마 이 지점에서 혼란을 느꼈을 거야. 이렇게 식을 변형하는 게 쉽지 않거든.”

강우가 푼 완벽한 해답을 넋 놓고 바라보던 최대우가 얼른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블로그에 해답을 올렸다.

당연히 강우에게 이런 문제는 어렵지 않았다. 물리학과 고학년 때 유체역학 수업을 들었거나 관련 전공 대학원생이라면 손쉽게 풀 수 있는 문제였으니까.

어쨌든 블로그에 올라온 곤란한 문제를 해결하게 되어 모두가 흡족했다.

다만 손차희는 의문을 지우지 못했다.

그녀는 예전부터 강우의 특이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한때 강우의 공부법을 따라 해보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었으니까. 그녀가 가진 강우에 대한 호기심은 윤수아나 최대우와는 방향이 달랐다.

강우를 찬양하는 두 사람과 달리 손차희는 강우를 이겨보려고 했으니까.

고등학교 과정을 선행하지 않았다는 강우가 대학교 내용을 아는 점이 이상했었다. 오늘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며칠 전 관심 가졌던 분야에서 하필 오늘 블로그에 질문이 올라왔다니 너무 공교로웠다. 그렇게 보기에는 너무 전문적이고 세부적이었다.

우연도 한 번이지 여러 번 겹치면 그건 필연이다.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 분명해.’

손차희는 강우가 물리 전 분야에서, 또 수학 전 분야에서 다양한 지식을 이미 습득했다고 간주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것을 그들에게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뿐이라고.

입학 때 선행하지 않았다고 소개한 말은 거짓임이 분명했다. 학원에서 배운 것은 아니다. 이런 내용을 가르쳐주는 학원은 없으니까. 아마 그래서 선행하지 않았다고 대답했겠지.

어쩌면 혼자서, 또는 물리 전공자에게서 어릴 때부터 물리를 배우고 익혔다고 추측했다. 수업 시간에 가우스나 베셀 이야기가 나왔을 때 누구보다도 흥미롭게 받아들인 사람이 강우 아니었던가.

‘그래, 강우도 그런 천재였던 거야.’

강우를 천재로 인정하자 모든 의문이 다 풀렸다. 천재의 행동을 자신 같은 범재가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그동안 감히 천재를 이겨보려고 발버둥 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려 하면 다리가 찢어진다. 자신이 딱 그 꼴이었다. 그 무모한 도전 때문에 중간고사를 완전히 망쳐버렸다.

물론 그 시간이 헛되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했고, 이 세상에는 자신이 범접할 수 없는 천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앞으로 강우를 넘어서려는 무모한 짓을 하지 않는다면, 강우를 따라 공부하면 그녀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졸업하기 전에 이민찬을 추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갑자기 그동안 꽉 막혔던 장벽이 허물어진 기분이었다.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차희야, 안색이 밝아졌어, 기분 좋은 일 있어?”

윤수아가 손차희의 변화를 눈치챘다.

정작 무던한 강우는 전혀 낌새조차 알지 못했다.

“응, 방금 든 생각인데…… 이 블로그 꽤 유용할 것 같아. 어렵고 까다로운 문제를 많이 풀게 되니까. 다음 물리 시험에 도움 될 거 같아…….”

손차희가 블로그 운영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선언했다.

강우는 세 사람의 이런 반응을 기대했었다. 그들은 기초가 잘 닦여 있기에 적극적으로 물리 문제를 다루기 시작하면 물리에 관련된 재능을 깨울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는 말릴 수 없다. 시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공부와 달리 호기심 해결을 위한 공부는 훨씬 효율이 높았다.

강우는 물리 문제풀이 센터의 효과를 예상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런 활동들이 친구들의 대학교 수시입학에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 * *

일요일이 되고 강우는 강남 번화가로 나갔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라지만 딱히 강우와는 인연이 없는 곳이었다.

이번 생을 시작한 이후에는 이곳을 방문할 일이 없었고 전생 손강우 시절에도 연구실에 틀어박혀 연구만 했던 터라 기억이 없는 동네였다.

연애하거나 젊은 사람들과 모임을 하거나, 하다못해 어학 공부라도 하지 않는다면 굳이 복잡한 이곳을 방문할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강우에게 이 정신없는 동네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약속장소인 CGV 앞에서 빈둥대고 있자니 약속 시각보다 딱 5분 늦게 두 여인이 나타났다. 한 사람은 오른쪽에서 한 사람은 왼쪽에서. 5분 정도는 늦었다고 뭐라 하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이야! 오늘따라 잘 입고 나왔네?”

그의 옷차림은 평소와 다르지 않기에 놀리는 것이 분명한 신새벽을 무심코 쳐다본 강우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여자는 마치 연예인처럼 차려입고 왔다. 한국대 탐방 가던 날도 유별나게 차려입고 왔다 싶었는데 오늘은 그 이상이었다.

“오늘 짧은 치마 입어봤다. 머리도 웨이브치고. 어때?”

신새벽이 장난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강우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강우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원색인 붉은 계열의 색상에 몸에 달라붙는 원피스다. 그녀의 귀여움 못지않게 몸매가 확 드러났다. 마치 콜라병처럼 들어갈 곳과 나올 곳이 확연했다.

“어우.”

강우는 과장된 표정으로 눈을 가렸다.

“순진한 고딩을 놀라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신새벽이 킥킥대며 웃었다.

무릎에서 한 뼘이나 올라간 치마 때문에 하얀 허벅지가 눈부시다. 만일 학교에 이런 차림으로 왔다면 난리가 났겠지.

한편 차도도 또한 오늘은 치마를 입고 왔다. 학교에 출근 패션에 비해 격식을 없앤 차림이긴 하지만 평소와 비슷한 정장 스타일이다. 흰 블라우스에 어두운 재킷과 스커트를 걸쳤다. 치마 길이도 무난한 무릎 부근이었다. 머리는 자연스럽게 어깨너머로 내렸다.

차도도는 신새벽의 복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한껏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저으며 투덜댔다.

“학교 선생이란 사람이…… 어린 애도 아니고.”

“히히, 강우야 누가 더 예뻐? 나야? 담임이야?”

이건 완전히 어린애를 놓고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묻는 수준이다.

강우도 농담을 담아 대답했다.

“당연히 화학 선생님이죠.”

“그렇지? 내가 훨 낫지?”

차도도를 힐끔 보니 갑자기 표정이 확 변한다.

“그렇게 대답해야 다음에 우리 담임쌤도 짧은 치마 입으시겠죠.”

“뭐야?”

차도도가 눈을 흘기며 구둣발로 살짝 그를 차는 시늉을 했다.

간신히 웃음을 참은 신새벽이 그들을 극장 안으로 안내했다.

“오늘 무슨 영화를 보냐 하면…… 강우야, 보고 싶은 거 있어? 19금 빼고.”

당연히 강우는 고등학생이라 19금은 불가다. 게다가 그는 영화를 본 기억이…… 안타깝게도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손강우였던 시절에 연애를 하지 않았으니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일도 없었다. 딱히 취미도 아니었고.

“없는데요?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그럼…… 스릴러물 보자, 차 선생님은 어때요?”

신새벽의 손가락 끝에 요즘 잘나가는 배우들이 등장한 영화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물론 강우는 누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지만.

* * *

강우는 품에 커다란 팝콘 봉투를 끌어안았다. 오늘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남은 한쪽 손에는 콜라를 잡았다.

그의 오른쪽에는 차도도가 왼쪽에는 신새벽이 앉았다.

사람들이 입장 중이라 주변은 아직 밝았고 스크린에는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영화 자주 봐?”

“아뇨. 볼 일이 없죠. 시골에서 영화는 무슨.”

강우의 대답에 차도도가 불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양쪽 옆에서 손이 다가와 팝콘을 집어갔다. 그 와중에 강우도 팝콘을 먹으면서 두 사람을 힐끔거렸다. 팝콘을 집느라 부딪치는 손이 간지러웠다.

차도도는 그렇다 해도 신새벽 쪽은 어디로 눈을 두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시선을 스크린에 고정해버린 강우는 팝콘만 줄기차게 먹어댔다.

다행히 금방 불이 꺼져서 양옆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됐다. 그제야 강우는 안정적인 숨을 내쉬었다.

영화가 시작됐다. 평소 영화를 즐기지 않는 강우는 재미있는지 아닌지 관심이 없었다. 대충 눈치를 보니 차도도와 신새벽은 영화에 몰두한 것처럼 보였다.

어느새 팝콘과 콜라도 다 떨어지는 바람에 강우도 편한 자세로 앉아서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영화 속 장면들이 급하게 돌아갔다. 스릴러물답게 긴장된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럴 때마다 깜짝 놀란 신새벽과 차도도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러다 점점 영화에 몰두하면서 점차 두 사람을 신경 쓰지 않게 됐다.

평소에 취미가 없어서 그런지 자꾸 잡생각이 끼어들었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런 게 보상이 된다고 데려온 걸까?

자신이 어린 남자 학생이고, 이런 종류의 호의에 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강우는 잠깐 고개를 돌려 영화에 몰두한 신새벽 쪽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은 아무래도 즐거운 모양이었다.

이런 제안도 그저 강우가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 분명했다.

차도도는.

그러다 차도도의 시선이 강우를 향했고 우연히 둘의 눈이 마주쳤다. 어둠 속 그녀의 얼굴에서 약간 당혹스러워하는 미소가 보였다.

강우는 왠지 모르게 두근거리는 기분을 무시하고 다시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순간이었지만.

전생을 포함해서 그의 평생에 이렇게 이상야릇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방금 뭐였지?’

영화는 금세 클라이맥스로 접어들었고 사건의 진상이 슬슬 드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강우는 자신의 기분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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