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62화 (62/325)

제62화 사이언스 페스타 (1)

모형 제작이 완료된 후에도 사이언스 페스타 출품 준비는 끝이 없었다.

날짜가 다가오자 그들의 저녁 공부는 완전히 사라졌다. 막바지 준비로 한창인 천문대는 참여 학생들로 북적였다.

페스타 참가 팀은 두 팀. 강우네 팀과 권유성네 팀이었다.

평소처럼 저녁을 먹고 편의점에 들렀다가 천문대에 도착한 강우는 월면 모형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정말 비슷하게 생겼네.”

“그렇지? 이거 실물 그대로 축소한 거야.”

권유성의 감탄에 윤수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강우는 조용히 거리를 두고 두 사람의 대화를 경청했다.

“크레이터 벽과 중앙에 솟은 산, 내부의 작은 크레이터까지…… 진짜 그대로인데? 이거 누나가 다 했어?”

“아니, 강우가.”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권유성은 말이 없었다.

“그래도 누나도 많이 했을 것 아냐?”

“나도 하긴 했지. 강우랑 대우가 수식을 작성해주면 난 열심히 코딩한 것뿐이야. 심지어 수식을 최적화해서 알고리즘을 단순화하는 작업을 강우가 했는걸.”

“……강우 중간고사 잘 쳤다고 했지?”

“응, 전교 1등.”

다시 대화가 사라졌다.

축 처진 권유성의 어깨를 다독이며 윤수아가 물었다.

“유성아, 너희 팀은 잘 돼?”

“아니, 기본적인 건 했어. 하지만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왜?”

“너무 단조로워서. 뭘 더 보여줘야 할지 모르겠어.”

“무려 일 년간 관측한 거잖아, 자신감을 가져.”

윤수아와 권유성의 친한 장면을 보니 강우는 괜히 심술이 났다.

“크흠!”

강우는 두 사람 앞으로 쓱 나섰다.

윤수아는 그를 반겼고 권유성의 표정은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강우는 웃음을 머금고 말을 걸었다.

“모형 죽이지? 끝내주지?”

“끝내주긴 뭘 끝내줘? 그냥 팍 망해버려라!”

권유성이 강우를 향해 적의를 팍 드러내고는 밖으로 튀어 나갔다.

어이없는 강우는 할 말을 잃었고 윤수아의 안타까운 시선이 권유성의 뒤를 쫓았다.

“저 녀석 왜 저래?”

“요즘 잘 안 풀리나 봐.”

강우는 권유성의 재능을 떠올렸다. 녀석은 수학에서 A, 물리에서 S의 잠재력을 가졌다. 현재 그와 권유성의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천재를 좋아했다. 또 천재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뭐가 안 풀린대?”

“출품 작품 말이야. 그게 너무 단조롭다나. 뭔가를 더 하고 싶은데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나 봐.”

권유성 팀은 정오의 태양을 1년간 추적했다고 들은 적 있었다. 대단히 흥미로운 주제이긴 하지만 일 년의 기록을 합성한 사진 한 장이 전부였다. 게다가 그 사진만 보고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를 바라긴 힘들었다. 천문학을 공부한 학생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강우도 생각에 잠겼다. 페스타에서는 볼거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복잡한, 중요한 과학 이론 설명보다 일반인의 호기심을 끌 장치가 더 중요하다.

“음, 나라면…… 다른 행성에서의 결과와 비교할 것 같아.”

“다른 행성?”

“예를 들어 금성은 자전이 엄청 느리니까, 또 화성은 지구랑 비슷하거든. 각기 다른 행성에서 보았을 때를 가정한 실험 결과를 비교하면 어떨까? 화성은 공전 궤도가 심한 타원이니까 여기서 관측한 것보다 태양이 더 큰 모양을 그려내지.”

“그래?”

물론 윤수아는 강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유성이는 똑똑하니까 스스로 방법을 찾겠지.”

강우는 그녀에게 미소를 보내고는 작업을 시작했다. 페스타에 제출할 보고서를 완성해야 한다.

아마 윤수아는 방금 그가 한 말을 기억해 뒀다가 권유성에게 말해줄 것이다. 권유성이 똑똑하다면 분명히 힌트를 얻겠지.

페스타에 나갈 권유성 팀의 작품을 떠올리니 기분이 좋아졌다.

* * *

사이언스 페스타는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한 6월 중순, 서울 근교인 일산 킨텍스 전시장에서 열렸다. 기간은 3일, 금, 토, 일이었다.

금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강우네 팀은 킨텍스로 출발했다. 월면 모형이 꽤 커서 김선호가 운전하는 학교 승합차를 타고 이동했다. 안타깝게도 내부공간 제한 때문에 권유성네 팀은 지하철을 이용해야 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도로가 붐벼 일부 구간의 길이 막혔다. 그나마 강변북로에 접어들자 막힘이 줄었다.

“10시까지 세팅을 완료해야 하니까 조금 서둘러야 해.”

김선호의 지시에 강우를 비롯한 팀원들은 각자 할 일을 나눴다. 어차피 현장에 도착하면 두서없어지겠지만.

과거 손강우 시절 사이언스 페스타를 구경한 경험이 있는 강우와 달리 윤수아와 최대우는 이런 전시가 처음이라 뜬구름 잡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수업을 빼먹으니까 아주 좋아!”

강우가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나도! 차희는 지금 열심히 수업 듣고 있겠지?”

“하아, 우리가 없어서 심심하겠네.”

윤수아와 최대우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차희는 구경 오겠지?”

“내일 온대.”

그래도 같은 조원이라고 응원하러 오는 모양이다.

이런 행사는 고등학생들의 연구열과 사기 진작에 큰 도움이 되지만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다고 할 순 없었다.

만일 손차희가 내년 페스타에 출품하겠다면 올해 전시되는 연구 주제와 분위기를 확인할 필요가 있겠지만, 아마도 계획이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페스타를 구경하러 오는 이유가 있다면 오로지 친구들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강우 또한 내년에 다시 이 대회에 나설 생각이 없었다. 그러므로 올해 반드시 상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시간을 쓴 보람이 있다.

“상 탔으면 좋겠다. 탈 수 있을까?”

윤수아가 강우에게 물었다. 물론 강우도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확신하듯 대답했다.

“당연히 수상할 거야.”

“타면 좋겠어. 고생했으니까. 다른 학생보다 한발 앞서가는 기분도 좋고.”

윤수아는 지금까지 손차희보다 앞서간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이런 기분이 무척 낯설었다.

“자신감 가지고 한 번 열심히 해보자. 어차피 결과는 3일 후에 나오니까.”

강우는 두 사람에게 용기를 불어넣고는 창밖을 바라봤다.

차창 밖으로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 물이 평화로웠다. 숨 막히는 학교에 있다가 이처럼 밖으로 나오니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아침 8시 무렵 그들은 킨텍스에 도착했다.

그들처럼 페스타에 참가하려고 온 학생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봉고차에서 월면 모형을 내리고 노트북을 비롯한 가져온 짐들을 점검하고 있자니 한 무리의 학생들이 다가왔다. 강우네와 달리 그들은 모두 교복을 입고 있었다.

옆으로 지나가던 녀석들이 월면 모형을 힐끔 보고는 피식 비웃음을 던졌다.

“이야, 올해는 준비 단단히 했나 본데?”

“돈 좀 들였겠어?”

“그런다고 될까? 올해의 대상은 우리 꺼지!”

들려오는 대화에 강우는 괜히 기분이 상했다.

“저건 어디 학교야?”

강우의 혼잣말을 들었는지, 네 학생이 어깨를 쫙 펴고 다가왔다.

“교복 보면 몰라? 중앙 과학고다!”

중앙 과학고는 수도권에 있는 명문 과학영재고였다. 항상 고려 과학고와 비교되는 학교였고 양쪽 학교 학생들은 자기네 학교가 더 낫다고 주장했다. 고려 과학고와 달리 이들은 교복을 입었다.

“중앙 과학고가 어디야? 과학고야? 영재고야?”

그 학교의 존재를 제대로 모르는 강우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윤수아에게 물었다.

강우가 정상적으로 과학고 입시를 치렀다면 중앙 과학고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 강우는 갑자기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고 전생의 손강우는 과학고 출신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중앙 과학고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그런 학교 있어. 엄밀하게 구분하면 영재고라서 전국 단위 모집이고 우리랑 같아.”

“흐음, 그렇구나.”

강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중앙 과학고 녀석들이 씩씩대며 소리쳤다.

“이 자식이! 우리 학교를 모른 척해? 입시 때 두 학교를 놓고 고민했을 것 아냐?”

“고민? 난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천연덕스러운 강우의 반응에 속이 뒤집힌 녀석들이 길길이 날뛰었다.

역시 정신연령 차이 때문일까. 어린 녀석들의 반응에 강우는 흥미가 동했다.

“페스타 참가 때문에 온 건가? 아니면 그냥 구경?”

“당연히 우리도 참가하러 왔지.”

“흐음, 그렇구나. 주제가 뭔데?”

“지구와 달의 만유인력을 연구했지! 우리는 동해안, 서해안에서 밀물 썰물과 달의 움직임을 관찰했거든!”

녀석 가운데 주장처럼 보이는 녀석이 열심히 설명했다. 대충 분위기를 보니 이 녀석이 실험을 주도했나 보다.

“오…… 기조력? 로시 한계도 연구했어?”

달이 지구 주위를 돌면서 밀물과 썰물을 발생시킨다. 이 현상은 달의 위치에 따라 대단히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어? 로시? 잘 아네?”

“그 정도야 뭐……. 그런데 이름이 뭐야?”

이름을 물은 이유가 있다. 강우는 이들도 고려 과학고 학생들만큼 잠재력이 있을지 궁금했다.

“어…… 난 남동훈. 중앙 과학고 1학년. 넌?”

“남동훈? 난 강우, 고려 과학고 1학년.”

강우는 남동훈의 머리 위를 쳐다봤다. 녀석의 잠재력이 스르륵 나타났다.

- 남동훈, 수학 A, 물리 S, 화학 C, 생물 C, 지구과학 B.

이 녀석도 최대우처럼 전형적인 물리 천재였다. 완전히 물리에 특화되어있는 놈이다. 역시 과학고 학생이란 건가.

강우의 시선이 다른 학생을 향했다.

학생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하긴 굳이 소개가 필요 없나? 교복을 입은 그들은 목에 이름표를 걸고 있었다.

학생들을 쓱 둘러본 강우는 금방 실망했다. 남동훈을 제외하고는 변변찮은 인물이 없었다. S는커녕 A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흠, 그럼 우리는 서로 경쟁자네? 그렇다고 싸울 필요 없잖아? 페스타 기간 동안 잘 지내보자. 상 타면 서로 축하도 해주고.”

예상치 못한 강우의 반응에 중앙 과학고 학생들이 머뭇거렸다.

“부스 잘 꾸며놔. 구경 갈게. 그럼 난 이만 바빠서.”

강우는 학생들을 보내고는 윤수아에게 물었다.

“작년 페스타에서 양쪽 학교가 대결했었어?”

“나도 모르는데…… 어차피 출품작은 모두 경쟁이니까. 작년 대상작은 다른 학교였어.”

“그런데 저것들은 왜 저래?”

“그냥 전통적으로 라이벌이잖아? 물론 우리는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우리 학교 역사가 훨씬 오래됐으니까.”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이 잡혔다. 어쨌든 서로 간의 경쟁이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좋은 일이었다.

강우가 학생들이 사라진 곳을 보고 있자니 윤수아가 생각난 듯 말했다.

“강우야, 대충 누군지 알 것 같아. 그 남동훈이란 학생 있잖아? 유명한 애야. 전상철이랑 같은 학원 다녔을걸? 물리와 수학을 잘한다는 소문이 있었어.”

녀석의 머리에 뜬 등급을 보고 이미 짐작했던 바다.

“그래 봐야 저쪽은 걔 하나뿐이야.”

강우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오늘따라 윤수아는 강우가 더 믿음직해 보였다.

* * *

전시 부스를 꾸미려니 손이 많이 필요했다.

강우를 비롯한 세 사람이 바쁘게 움직인 덕분에 부스 내부를 꽤 만족스럽게 장식했다. 중앙에 심혈을 기울인 월면 모형 코페르니쿠스를 두었고 그 옆에 망원경으로 찍은 실제 사진을 전시해서 둘을 비교할 수 있게 했다. 급히 만든 에베레스트산도 같은 축적으로 옆에 전시되어 달의 산과 크기를 비교할 수 있었다.

한쪽의 대형 모니터에는 코페르니쿠스 크레이터의 여명을 동영상으로 반복 재생했다. 벽에는 달에 있는 산의 높이를 구하는 과학 이론을 상세하게 설명한 판넬을 걸었다. 그리고 크레이터 발생 원리와 달의 전반적인 지형을 설명한 각종 볼거리를 전시했다.

테이블에 놓인 노트북에는 관측 기록을 지형 데이터로 변환하는 프로그램을 띄워 놓았다.

모두가 애쓴 덕분에 그들의 작품 ‘코페르니쿠스 크레이터의 새벽’이 훌륭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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