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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64화 (64/325)

제64화 사이언스 페스타 (3)

아마 이민찬이 준다는 자료는 정리는커녕 학원에서 받은 그대로일 것이다.

사실상 이민찬이 한 일은 없다. 있던 자료를 그녀에게 넘길 뿐이니 실상 과제연구의 대부분을 그녀가 하게 되는 것이다. 이민찬은 단지 생색만 내는 꼴이었고.

손차희는 과제연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민찬의 태도에 놀랐고 이 상황을 이용해 그녀가 기말고사를 대비하지 못하도록 지능적으로 방해하는 술수에 더 놀랐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엿보이는 녀석의 의도가 놀라웠다.

물론 겉으로는 자신이 난제를 해결했으니 넌 정리해서 보고서를 만들라는 것이었지만.

쪼옥-

이민찬의 빨대에서 커피가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울렸다.

“마음에 들지 않나 본데…… 과제연구를 열심히 하고 싶으면 쌤한테 말해도 돼. 단 내가 도움을 주기는 어려워. 난 기말고사 공부를 해야 하거든.”

손차희는 어이가 없어 입을 닫았다.

“솔직히 지난 중간고사 성적은 너무 쪽팔려. 어떻게 시골에서 올라온 녀석한테 1등을 내주는지. 또 그렇게 당할 수는 없잖아? 너도 열심히 해. 적어도 반에서 1등은 뺏기지 말아야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이민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차희의 반응을 보지 않고 녀석이 휴게실을 나섰다.

그가 앉았던 자리에는 얇은 빨대가 꽂힌, 먹다 남은 커피 컵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 * *

역시 경험이 중요했다.

전시를 완료했다고 생각했는데 강우와 윤수아가 주변을 구경하다가 돌아오니 최대우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부스 상단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영상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역시 문제는 항상 일어나는 법이다.

강우와 윤수아가 재빨리 조치해서 금세 완벽한 상태로 복구해 놓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관람객 수가 늘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우는 주변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윤수아와 최대우도 다르지 않았다.

학생들이 주도하는 행사이기에 지도교사인 김선호가 도와줄 수는 없었다. 다른 전시물에 비해 유달리 볼 게 많고 직관적인 그들의 전시물은 관람객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시간이 되어 주최 측이 전시회 개회를 선언하고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떼를 지어 움직였다.

당연히 강우네 팀도 긴장에 휩싸였다.

“질문하면 어떡하지?”

“어차피 질문자가 이 내용을 연구한 전공자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돼.”

걱정하는 윤수아를 다독이며 강우는 소문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 장내를 돌아보는 핵심 인물은 교육부 차관이라 했다. 물론 그 주변에는 이 나라의 과학기술을 이끄는 몇몇 교수들이 포진해 있었다. 물론 강우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차관을 비롯한 VIP들이 직접 전시물을 심사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당연히 크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준다면 수상 가능성이 한층 커진다.

마침내 기자를 포함한 관람객을 구름처럼 몰고 다니는 한 떼의 VIP가 등장했다. 그들을 따라다니는, 호기심 많은 학생들도 여럿 보였다.

“가, 강우야, 저기 온다.”

강우와 달리 윤수아는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런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최대우는 그나마 듬직하게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강우는 최대우의 얼굴에서 미묘한 변화를 읽었다.

‘이 녀석도 떨고 있군.’

사실 경험이 부족한 신입 고등학생이 강우처럼 능숙해도 문제다.

차관과 VIP들이 전시물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질문했다. 어떤 부스에서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여 쩔쩔매기도 했고 어떤 부스에서는 하필이면 그때 고장 나서 제대로 시연을 보이지 못하기도 했다.

입안이 바짝 마르는 가운데 마침내 VIP 일행이 그들의 부스로 들어왔다.

“학생이…… 연구한 건가?”

차관이 윤수아에게 질문했다.

참여한 여학생이 많지 않아 유독 눈에 띄었나 보다.

정작 윤수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그, 그렇습니다.”

“달 표면처럼 보이는데…… 설명해줄래?”

“이것은 달에 있는 코페르니쿠스 크레이터 모형입니다. 가로세로뿐만 아니라 높이까지 정확하게 측정하여 축소한 모형이에요. 옆에 있는 산은 지구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이고…….”

바짝 얼어붙은 윤수아가 그럭저럭 설명했다.

차관과 VIP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겠어.”

“달에 있는 산 높이를 측정하다니!”

VIP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씩 감평했다. 그렇게 무난하게 넘어갈 때였다.

“천체망원경의 분해능이 어떻게 됩니까? 관측한 망원경으로 잡아낼 수 있는 최소 크기의 지형이 어떻게 되지요?”

갑자기 옆에서 따라다니던 한 학생이 질문을 날렸다.

난데없이 날아든 돌발적인 질문에 윤수아는 얼어붙어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천체망원경에 대해서는 그녀가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위기의 순간 천체 관측의 대가 최대우가 나섰다.

“고려 과학고에 있는 망원경은 구경이 16인치, 즉 40센티미터 망원경입니다. 이 망원경의 분해능은 0.58초각으로…….”

“그건 망원경이 제 성능을 발휘할 때 이야기잖아요? 실제로는 대기의 요동 때문에 분해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아는데요?”

질문이 전문적으로 변했다.

강우는 질문한 학생을 노려봤다. 중앙 과학고 교복을 입은 학생이다. 아마 아침에 그들과 티격태격했던 학생일 것이다.

그는 이 학생의 질문 의도를 깨달았다. 제대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을 퍼부어 VIP 앞에서 망신을 주려는 행동이다. 그 이면에는 고려 과학고의 전시물보다 중앙 과학고의 전시물을 더 돋보이게 하려는 욕심이 내재되어 있다.

강우는 간신히 화를 참으며 녀석에게 눈으로 경고를 보냈다. 자기 전시물을 선전하고 돋보이게 하는 행동이야 자유지만 이런 식으로 남을 깎아내리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녀석은 비웃는 표정으로 강우를 약 올렸다.

웬만하면 끼어들지 않으려 했더니 이 녀석의 비열한 술수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서지 않으려 했더니 어쩔 수 없나…….’

버벅대는 최대우를 대신하여 강우가 앞으로 나섰다.

“실제로는 대기의 요동 때문에 망원경은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없지요. 하지만 최근에는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습니다. 핸드폰 카메라의 렌즈 크기는 매우 작지만 화질 선명도가 대단히 뛰어나죠. 저희도 이미지 스테빌라이제이션 기술을 적용하여 더 상세히 월면을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가요?”

“망원경의 이론적인 분해능을 구하는 공식, 레일리 한계라고 들어보셨죠? 빛의 회절에서…….”

강우는 파동과 위상을 수식으로 풀었다. 오래전 갈릴레이가 천체망원경으로 관측을 시작한 후 만들어진 경험식에서 시작하여 빛의 회절에 의한 파동의 간섭에 이르기까지 막힘없는 이론이 강우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자 질문한 학생은 바로 입이 막혔다.

강우의 설명이 계속되는 동안 녀석은 완벽하게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모두가 감탄하는 가운데 VIP 무리에 섞여 있던 교수 한 사람이 강우에게 물었다. 안경을 낀 학구파로 보이는, 오십 대가량의 교수였다.

“그 간섭식은 사인 코사인으로 표시되어 대단히 복잡한데 적분이 가능한가?”

“사인은 기함수이고 코사인은 우함수라 생각만큼 복잡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첫 번째로 0이 되는 적분방정식의 해를 구하려는 목적이기에…….”

막힘없는 강우의 대답에 교수가 입을 쩍 벌렸다.

“자네 고등학생 맞나?”

“고려 과학고 학생이라면 이 정도는 압니다.”

“몇 학년이지?”

“1학년인데요.”

교수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교육부 차관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강우를 격려했다.

“자네 같은 학생이 있어서 우리나라의 앞날이 밝아. 앞으로도 열심히 해주게.”

VIP 무리가 떠나고 처음 질문했던 학생만 남았다. 강우는 목소리를 높였다.

“너, 잠깐 이리 와봐. 어디 학교야?”

물론 교복 때문에 당연히 어느 학교인지 알고 있었다. 움찔하던 녀석이 최대우의 덩치를 보고는 부리나케 도망쳤다.

“싱거운 놈.”

윤수아가 얼이 빠진 표정으로 강우를 쳐다봤다.

“가, 강우야. 너 방금 대답한 거…….”

“오늘 질문이 들어올 느낌이라 며칠 전부터 대비했거든. 마침 그 자식이 물어보더라. 운이 좋았지.”

“설마…….”

윤수아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둘이 짜고 질문과 대답을 했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었다.

윤수아의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계속되자 강우는 얼른 분위기를 바꿨다.

“나 잘했지?”

“잘한 거 같긴 한데…….”

“우리 차례는 끝났지? 다른 부스 구경하러 가지 않을래?”

강우는 최대우와 윤수아를 떠밀었다. 이럴 때는 더 생각하지 못하도록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이 최선이다.

* * *

최대우와 윤수아를 끌고 간 곳은 중앙 과학고의 물리 과제연구 부스였다.

준비가 끝난 직후 강우가 방문했던 곳이었다.

그곳은 지금 교육부 차관과 VIP 일행이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었다. 역시나 이들을 따라다니는 기자와 학생들이 다수 모였다.

강우는 차관에게 열심히 설명하는 남동훈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는 남동훈에게 유감이 없다. 그의 시선은 다른 학생을 향하고 있었다.

조금 전 그들의 부스로 와서 질문을 던진 녀석이다. 정말 궁금해서 질문했다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지만 이 녀석은 남을 골탕 먹이려고 작정한 놈이다. 이대로 용서할 수는 없었다.

저들과 똑같은 방법을 쓸 수도 있겠지만 강우는 치사하게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그는 교육부 차관 일행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남동훈의 답변을 칭찬한 VIP 일행이 다음 부스로 넘어갔다.

중앙 과학고 학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지도교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숨을 돌리고 있을 때 강우는 적진에 뛰어들었다.

“질문 좀 해도 될까요?”

“아, 그러세…….”

무심코 대답하던 그 남학생이 강우를 보고는 얼어붙었다.

강우는 미소로 대응하며 빈정거렸다.

“원래는 차관께서 계실 때 질문하려 했는데 그러기엔 너무 치사해 보이더라고. 개를 상대하려고 굳이 나까지 개가 될 필요는 없잖아?”

명백히 시비를 거는 강우의 지적에 남학생의 안색이 급변했다.

“아까 질문하는 것을 보니 제법 하던데…… 그래서 나도 궁금증을 좀 풀고 싶어.”

그때 남동훈이 강우를 만류했다.

“강우? 내가 대신 대답해줄게. 뭔데?”

“아, 넌 됐고. 난 저 자식한테 답을 듣고 싶어.”

강우의 고집에 남동훈은 어쩔 수 없이 한발 물러섰다. 그의 옆에는 담당 지도교사가 흥미로운 눈으로 강우를 관찰하고 있었다.

“밀물 썰물을 직접 확인했나 보죠? 실제 측정해보면 달이 머리 위에 있을 때 만조가 되진 않죠? 대략 한두 시간 지연된다고 나오는데 이 현상이 왜 나온 걸까요?”

“그거야 물이 밀려들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그 남학생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는 대답하면서도 지도교사와 남동훈의 눈치를 슬슬 봤다.

“아, 혹시 조석퍼텐셜에 관한 기본방정식 들어봤어요? 라플라스 조석방정식이라고…….”

“그게…….”

“이거 계산하려면 테일러 급수 전개가 필요한데…… 분모가 제곱근으로 표시되는 방정식의 급수 전개가 어떻게 되나요?”

“…….”

강우가 폭풍처럼 질문을 쏟아내자 그 남학생은 바로 말문이 막혀 전혀 답변할 수 없었다.

강우가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자 남학생이 찔끔하며 한발 뒤로 물러났다.

피식 비웃은 강우는 모두가 들으란 듯 다소 큰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 팀에 와서 열심히 질문하길래 꽤 실력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아는 게 하나도 없네. 관련 문제를 파고들었다면서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도 답을 못하잖아?”

남학생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고 그 모습을 본 담당 지도교사가 안면을 팍 일그러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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